아이를 낳지 않는 한국의 청년들, 그 이유를 알고 싶다면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성태용
명사칼럼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김도형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마이클 킴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조성현
전정훈
Mystery
새움터
멜리사 리
휴람
김준
박기태
Timothy Cho
독자기고

아이를 낳지 않는 한국의 청년들, 그 이유를 알고 싶다면

0 개 573 명사칼럼

580e827e9cc405e582e766c6a2cd6d4c_1753263909_4607.png
▲ 6월 29일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의 모습. 연합뉴스


저는 며칠 전에 루마니아의 클류즈에서 대학생들에게 한국의 젠더 의식, 젠더 관계의 역사에 대해 특강한 적이 있었습니다. 특강의 끝에 최근의 출산율의 극단적 저하, 즉 한국이 세계 최저의 초저출산율을 기록한 나라가 됐다는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바로 이 부분에 대해 학생들이 질의시간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2006년부터 저출산 대책을 정부 차원에서 고안하여 계획적으로 실시해 왔는데, 왜 아무런 효과도 나타나지 않고 있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사실, 아마도 한국학을 배우는 외국인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인들도 궁금해 하는 대목일 것입니다.


​저는 답변을 하기 위해서는 <자본론> 이야기를 먼저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본론>에서는 노동자들의 절대적 및 상대적 빈곤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많은 마르크스주의 비판자들이 상대적 빈곤화 이론을 “1840년대 이전의 현실만을 반영한”, 이미 철지난 이야기로 일축하곤 하는데, 미국 제조업의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실질 임금 지수를 보면 좀 다른 그림이 나옵니다. 1949년이 100이라고 치면 1973년, 즉 전후 황금기의 마지막 해에는 177 정도로 오르긴 오른 게 맞습니다. 단, 2024년에는 이 제조업 실질 임금의 지수는 1949년과 비교했을 때에는 174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즉, 전후 황금기가 끝나고 나서는 제조업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임금이 미국에서 그냥 제자리에 멈추어졌다는 겁니다.


전후 황금기야말로 예외적인 것이었는데, 그 뒤로는 미국 자본주의가 마르크스가 분석한 그 “정상적 궤도”에 돌아온 겁니다. 제조업 상품 수출을 늘리고, 그 당시만 해도 저임금 국가였단 중국과 나름의 분업 구조를 가진 신자유주의 시대 한국은, 이와 약간 다르긴 했습니다. 2000년 노동자 실질 임금이 100이라면, 2004년에는 111 정도 된 것입니다. 한데, 2004년부터 2017년까지 오르긴 올라도 아주 소폭이었고, 2015년에 겨우 120를 돌파한 것이죠. 1인당 노동 생산성 등은 같은 기간에는 거의 50% 정도 올랐음에도 말입니다. 즉, “나라”는 부강해져도 노동자들의 벌이는 제자리 걸음이거나, 아주 성공적인 수출 대국(한국)의 경우에는 겨우 약간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한데 절대적 빈곤화 이론에 반대자들이 토를 달아도 상대적 빈곤화 이론을 많은 비마르크스주의적 경제 학자들도 수용합니다. 피케티 등이 제시한 통계도 있지만, 육안으로 봐도 자본 소득은 노동 소득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증가된다는 것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대한민국을 봅시다. 2003년에는 서울시 소재 아파트 1평당 매매가격은 평균 1158만 원이었습니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2018년에는 이미 그 액수는 두 배 이상 뛰어서 2542만 원이 됐습니다. 지금은 평균 1평당 가격은 3861만 원이 평균입니다. 20년 동안 3배, 즉 300% 이상 오른 것입니다.


같은 기간에 명목 노동자 임금은 120%밖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그게 바로 상대적 빈곤화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아파트 같은 지대 소득의 원천을 갖고 자본 소득을 올리는 유산자에 비해서는, 노동만을 팔면서 살아야 하는 노동자들은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늘 “열세”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누가 봐도 <자본론>의 이 빈곤화 이론을 빼놓고 현재 자본주의 사회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건 한국의 재앙적인 초저출산율과 무슨 상관 있느냐고 이제 반문하시겠지만, 상관은 아주 직접적입니다. 한국 총인구의 대략 70% 정도는 임금 노동자들입니다. 그 중에서는 대기업 독과점 프리미엄이 없는 중소기업 종사자들은 약 80% 정도 될 것입니다. 이들이 아이를 가지려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바로 재정적, 시간적, 심적인 “여유”입니다. 한데 부동산 매매가나 전세, 월세 값 등이 노동 임금보다 훨씬 빨리 오르는 상황에서는 그들에게는 이런 재정적 여유는 어디에서 올 수 있겠어요?


또, 상대적 빈곤화 속에서는 많은 이들은 투 잡을 뛰어야 하는 등 사실 “육아”에 바칠 시간을 아예 갖지 못합니다. 또 특히 젊은층에서는 개개인의 여가 시간은 거의 소셜 미디어 등 전자 자본에 의해 많이 식민화된 상태이기도 합니다. 비정규직 비율이 43%나 이르는 사회에서는, 언제 직장에서 잘릴지 모를 사람들에게 아이까지 책임질 심적 여유가 쉽게 생기겠어요? 결국 노동자들의 빈곤화와 저출산 현상이 서로 연결돼 있고, 한국의 극단적인 초저출산은 비교적 높은 부동산 가격 증가폭과 부유한 나라치고 아주 극단적인 노동 불안화, 육아 비용 폭등 등과 직결돼 있다는 것이 제 답변의 골자였습니다. 그리고 초저출산을 포함해서 사회 현상들을 제대로 이해하자면 <자본론>이 필독이라는 점을, 제가 답변 끝에 다시 한 번 강조했습니다.


​위의 사례를 보시면 기초적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강의가 왜 대학생들에게 필요한지 바로 아실 것입니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모르면 사회 제현상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래서 서울대 당국들이 지금 폐강시키려 하는 서울대 경제학부에서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강의 존속을 위한 그 학생들의 투쟁을 꼭 지지하고 싶습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익힌 사람과 익히지 못한 사람의 사회를 보는 “눈” 자체가 다릅니다. 그리고 사회 제현상에 대한 체계적 파악이 불가능한 사람은, 차후 “민주 시민”의 역할을 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죠. 저는 그래서 서울대는 물론이고, 각 대학에서 <자본론> 등을 읽는 강좌를 적어도 교양 선택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나은 미래라도 보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 박노자 l 오슬로대 한국학과 교수


580e827e9cc405e582e766c6a2cd6d4c_1753263868_0739.png
 

700만 디아스포라에게 조국을 묻다

댓글 0 | 조회 221 | 2025.11.26
지난 18일 이재명 대통령을 맞은 아… 더보기
Now

현재 아이를 낳지 않는 한국의 청년들, 그 이유를 알고 싶다면

댓글 0 | 조회 574 | 2025.07.23
▲ 6월 29일 서울 시내 아파트 단… 더보기

우크라이나 전쟁의 결산

댓글 0 | 조회 759 | 2025.03.12
▲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1천킬로미터 … 더보기

이 시대의 야만을 응시하는 법

댓글 0 | 조회 617 | 2024.12.18
▲ 왼쪽부터 이연식의 ‘다시 조선으로… 더보기

평화, 놀랄 만큼 많이 주는 행복 에너지

댓글 0 | 조회 574 | 2024.12.04
▲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자로 한국에… 더보기

잊혀져 버린 정의, 그들을 기억하며

댓글 0 | 조회 637 | 2024.11.20
▲ 항일 투쟁과 반독재 투쟁으로 점철… 더보기

작가 한강의 노고를 기리며

댓글 0 | 조회 680 | 2024.11.06
▲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 더보기

반수연 작가의 문학적 복수

댓글 0 | 조회 658 | 2024.09.25
▲ 첫 소설집 ‘통영’을 낸 반수연 … 더보기

김민기의 우리말 사랑

댓글 0 | 조회 775 | 2024.09.11
▲ 가수로서의 정체성을 거부하며 사석… 더보기

종교 언론은 부패한 세상 소금이 되어야

댓글 0 | 조회 650 | 2024.07.23
엘살바도르 유일의 공정 언론이었던 로… 더보기

베드로의 거짓말, 언론의 거짓말

댓글 0 | 조회 750 | 2024.07.10
수백 년 동안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 더보기

‘큰 북한’으로 변해가는 러시아

댓글 0 | 조회 895 | 2024.06.11
▲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페이스북은 북… 더보기

남북, ‘동족’은 아니라 해도 적이 될 필요야…

댓글 0 | 조회 1,386 | 2024.05.29
▲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 더보기

두 죽음의 방식: 홍세화와 서경식

댓글 0 | 조회 1,044 | 2024.05.14
▲ 왼쪽부터 고 홍세화 장발장은행장,… 더보기

박노자 “성공만 비추는 한국식 동포관, 숨은 고통과 차별 외면”

댓글 0 | 조회 1,482 | 2024.04.24
▲ 노르웨이 오슬로대 인문학부 교수이… 더보기

로렐라이의 선율과 제주 4·3

댓글 0 | 조회 711 | 2024.04.10
▲ 영화 ‘비정성시’ 포스터지난해 출… 더보기

‘내 잘못’보다 ‘세상의 악’ 더 성찰해야 하는 사순절

댓글 0 | 조회 952 | 2024.03.13
지난 2월 14일 수요일은 안중근 의… 더보기

인맥 관리 ‘노하우’ 5가지 오해

댓글 0 | 조회 1,085 | 2024.02.27
“인사나 이권을 청탁하면 패가망신한다… 더보기

한국, 세계에서 가장 개인주의적 사회?

댓글 0 | 조회 2,116 | 2024.02.14
저는 직업상 식민지 시대 사회주의적 … 더보기

관료주의의 무능, 권력자의 광기, 그리고 인간의 존엄 - <서울의 봄>이 상기시키…

댓글 0 | 조회 839 | 2024.01.31
공허한 권력의 실체이 영화 후반부에서… 더보기

사람 마음을 얻으려면

댓글 0 | 조회 1,109 | 2024.01.17
공통년 392년 로마제국 테오도시우스… 더보기

한해를 되비추는 예술의 힘

댓글 0 | 조회 883 | 2023.12.22
▲ 영화 ‘괴물’. 미디어캐슬 제공1… 더보기

선한 마음 사이로도 차별이 샐 수 있다

댓글 0 | 조회 1,026 | 2023.12.13
▲ 단편 영화 ‘빠마’의 한 장면으로… 더보기

‘전쟁의 해’ 2023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댓글 0 | 조회 980 | 2023.11.29
▲ 지난 5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 더보기

깊은 슬픔이 흐르는 강

댓글 0 | 조회 874 | 2023.11.15
▲ 경남 합천 황강. 사진 합천군청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