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의 우리말 사랑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성태용
명사칼럼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김도형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마이클 킴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조성현
전정훈
Mystery
새움터
멜리사 리
휴람
김준
박기태
Timothy Cho
독자기고

김민기의 우리말 사랑

0 개 775 명사칼럼

faebee663fb1e5acfdf2e8976aff6206_1726013761_2504.png
▲ 가수로서의 정체성을 거부하며 사석에서도 노래하지 않았던 김민기가 ‘겨레의 노래’에서 ‘아침이슬’을 부르고 있다.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프로그램 갈무리


지난 4월부터 5월 초까지 에스비에스(SBS)에서 방영된 다큐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삼부작의 먹먹한 여운이 방송이 끝난 후에도 계속 남아 마음을 흔들었다. 한동안 김민기의 삶과 노래에 대해 깊은 관심을 지녔으면서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사실이 많았음을 알게 됐다. 이 글에서는 다큐와 그 이후에 발표된 김민기에 대한 글들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않은 다른 시각으로 김민기에 대해 써보고 싶다.


그것은 김민기의 모국어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드문 감각이다. 김민기의 노래를 즐겨 들었던 이라면 누구나 느꼈겠지만, 김민기 노래의 가사는 우리말이 지닌 담백한 아름다움과 깊은 애수의 한 경지를 품고 있다. ‘상록수’, ‘아침 이슬’, ‘그 사이’, ‘강변에서’ 등등 그가 직접 지은 수많은 노래 가사는 가슴에 파고드는 여운과 때 묻지 않은 감성을 전달한다. 가령 그 정겹고 아름다우며 때로는 비장한 가사가 빠진 김민기의 노래를 과연 상상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경지가 가능했을까.


김민기는 이진순과의 2015년 한겨레 인터뷰에서 “내가 학전 배우들한테도 유난히 강조했던 게, 배우는 ‘모국어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는 점이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런 우리말과 모국어에 대한 그의 태도는 오래전부터 지속돼 왔다.


김민기는 1998년 강헌과의 대화에서 동시대 동료 가수 한대수에 대해 “그는 미국에서 돌아왔지만 이 땅에서 산 어떤 음악가들보다도 한국어의 강인한 미감을 단숨에 포착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고 얘기했다. 그 자신이 한국어의 미감에 대해 누구보다 깊은 관심을 지녀왔기에 이 발언이 가능했으리라. 그건 1971년 발매된 그의 음반이 “최초의 싱어송라이터 앨범”(강헌)이라는 사실과도 연관될 테다. 그래서일까. 그는 같은 대화에서 자신에게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오적’ 시절의 김지하 시인을 들며 “내가 대학 초년생 때 우리말의 생동감을 처음으로 각인시켜 준 유일한 분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말의 생동감’은 그의 여러 노래를 통해 한껏 구현된다. 이런 노래 가사를 지을 때 김민기는 “작게는 노랫말 하나를 다루는 자세, 즉 낱말 하나하나마다 정서의 빛깔이 다른 것”을 생각하며 우리말의 질감을 최대한 섬세하게 살핀다. 그의 노래를 한 곡, 한 곡 듣다보면 그 정답고 아름다운 가사가 귀에 그대로 박힌다. 김민기의 노래가 그토록 많은 사람의 가슴에 남아있는 것도 바로 그가 특별한 정성을 기울인 가사에 있지 않을까.



김민기가 대하소설 ‘토지’와 ‘임꺽정’에 대해 관심을 표하며 이 작품들을 오디오북으로 만드는 걸 고민한 점도 모국어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라는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으리라. 그는 2004년 주철환과의 인터뷰에서 “한글이란 게 참 매력적이거든. 매력이라는 것은 애증관계야. 한글에 새로운 체계를 한 번 만들어보고 싶어”라고 말했다. 한글의 매력, 모국어의 미감은 대학 시절부터 쭉 이어져 온 김민기의 커다란 관심사였다. 이렇게 본다면 김민기는 노래(극)를 통해 평생 우리말의 매력과 아름다움을 위해 헌신하고 고민해 온 가수이자 음유시인이며 문화기획자라 할 수 있겠다.


그를 이상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누구나 그렇듯이 김민기 역시 어떤 한계와 모순을 마주하며 살아왔을 테다. 다만 김민기의 노래, 뜻, 한국어의 미감이 우리에게 온전히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부디 그의 건강이 회복되기를 간곡하게 바란다.


*출처 : 한겨레신문


- 이 글은 김민기(학전 소극장)대표의 사망(2024.7.21)이전에 쓴 칼럼입니다.


faebee663fb1e5acfdf2e8976aff6206_1726013819_1289.png
 

■ 권 성우 ㅣ 숙명여대 교수·문학평론가 

700만 디아스포라에게 조국을 묻다

댓글 0 | 조회 221 | 2025.11.26
지난 18일 이재명 대통령을 맞은 아… 더보기

아이를 낳지 않는 한국의 청년들, 그 이유를 알고 싶다면

댓글 0 | 조회 574 | 2025.07.23
▲ 6월 29일 서울 시내 아파트 단… 더보기

우크라이나 전쟁의 결산

댓글 0 | 조회 759 | 2025.03.12
▲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1천킬로미터 … 더보기

이 시대의 야만을 응시하는 법

댓글 0 | 조회 617 | 2024.12.18
▲ 왼쪽부터 이연식의 ‘다시 조선으로… 더보기

평화, 놀랄 만큼 많이 주는 행복 에너지

댓글 0 | 조회 574 | 2024.12.04
▲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자로 한국에… 더보기

잊혀져 버린 정의, 그들을 기억하며

댓글 0 | 조회 637 | 2024.11.20
▲ 항일 투쟁과 반독재 투쟁으로 점철… 더보기

작가 한강의 노고를 기리며

댓글 0 | 조회 680 | 2024.11.06
▲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 더보기

반수연 작가의 문학적 복수

댓글 0 | 조회 658 | 2024.09.25
▲ 첫 소설집 ‘통영’을 낸 반수연 … 더보기
Now

현재 김민기의 우리말 사랑

댓글 0 | 조회 776 | 2024.09.11
▲ 가수로서의 정체성을 거부하며 사석… 더보기

종교 언론은 부패한 세상 소금이 되어야

댓글 0 | 조회 650 | 2024.07.23
엘살바도르 유일의 공정 언론이었던 로… 더보기

베드로의 거짓말, 언론의 거짓말

댓글 0 | 조회 751 | 2024.07.10
수백 년 동안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 더보기

‘큰 북한’으로 변해가는 러시아

댓글 0 | 조회 895 | 2024.06.11
▲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페이스북은 북… 더보기

남북, ‘동족’은 아니라 해도 적이 될 필요야…

댓글 0 | 조회 1,386 | 2024.05.29
▲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 더보기

두 죽음의 방식: 홍세화와 서경식

댓글 0 | 조회 1,044 | 2024.05.14
▲ 왼쪽부터 고 홍세화 장발장은행장,… 더보기

박노자 “성공만 비추는 한국식 동포관, 숨은 고통과 차별 외면”

댓글 0 | 조회 1,482 | 2024.04.24
▲ 노르웨이 오슬로대 인문학부 교수이… 더보기

로렐라이의 선율과 제주 4·3

댓글 0 | 조회 711 | 2024.04.10
▲ 영화 ‘비정성시’ 포스터지난해 출… 더보기

‘내 잘못’보다 ‘세상의 악’ 더 성찰해야 하는 사순절

댓글 0 | 조회 952 | 2024.03.13
지난 2월 14일 수요일은 안중근 의… 더보기

인맥 관리 ‘노하우’ 5가지 오해

댓글 0 | 조회 1,085 | 2024.02.27
“인사나 이권을 청탁하면 패가망신한다… 더보기

한국, 세계에서 가장 개인주의적 사회?

댓글 0 | 조회 2,116 | 2024.02.14
저는 직업상 식민지 시대 사회주의적 … 더보기

관료주의의 무능, 권력자의 광기, 그리고 인간의 존엄 - <서울의 봄>이 상기시키…

댓글 0 | 조회 839 | 2024.01.31
공허한 권력의 실체이 영화 후반부에서… 더보기

사람 마음을 얻으려면

댓글 0 | 조회 1,109 | 2024.01.17
공통년 392년 로마제국 테오도시우스… 더보기

한해를 되비추는 예술의 힘

댓글 0 | 조회 883 | 2023.12.22
▲ 영화 ‘괴물’. 미디어캐슬 제공1… 더보기

선한 마음 사이로도 차별이 샐 수 있다

댓글 0 | 조회 1,026 | 2023.12.13
▲ 단편 영화 ‘빠마’의 한 장면으로… 더보기

‘전쟁의 해’ 2023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댓글 0 | 조회 981 | 2023.11.29
▲ 지난 5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 더보기

깊은 슬픔이 흐르는 강

댓글 0 | 조회 874 | 2023.11.15
▲ 경남 합천 황강. 사진 합천군청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