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죽음의 방식: 홍세화와 서경식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성태용
명사칼럼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김도형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마이클 킴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조성현
전정훈
Mystery
새움터
멜리사 리
휴람
김준
박기태
Timothy Cho
독자기고

두 죽음의 방식: 홍세화와 서경식

0 개 1,048 명사칼럼

86841f026cfde9a0d348d39858893004_1715652030_9258.png
▲ 왼쪽부터 고 홍세화 장발장은행장, 고 서경식 일본 도쿄경제대 명예교수.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 4월20일 오후에는 2023년 12월18일 세상을 뜬 재일 디아스포라 논객 서경식 선생을 추모하는 모임이 그가 생전에 재직했던 도쿄경제대학에서 열렸다. 그날 저녁에는 4월18일 세상을 뜬 홍세화 선생의 추모제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거행됐다.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들을 기리는 행사가 같은 날 있었다는 사실은 단지 우연만은 아닌 듯하다. 불과 4개월 사이에 목도한 홍세화와 서경식 두 사람의 죽음은 그들의 글과 삶을 지켜보았던 독자와 지인에게 커다란 상실감과 슬픔으로 다가왔지 싶다.


이들은 오랜 세월을 망명자로 이국에서 보내거나 디아스포라로서의 자의식을 지니며 살아왔다. 늘 시대의 야만에 저항하고 소수자를 옹호하는 데 평생을 바친 홍세화와 서경식은 한겨레 지면에 장기간 칼럼을 써온 공통점도 지니고 있다. 물론 그들 사이에는 차이점이 더 많다. 


서경식은 감옥에 갇힌 형들을 위한 구원 활동이 계기가 되어 글쓰기를 시작해 재일조선인, 디아스포라, 예술의 사회적 맥락 등 여러 사회적 현안에 대해 에세이 형식의 글을 통해 발언해 왔다. 그는 누구보다도 지성의 퇴행에 치열하게 저항하면서도 특유의 매력적인 문장이 보여주듯이 기본적으로 아름다움에 민감한 개인주의자의 기질을 지녔다. 홍세화는 그보다 사회적 맥락을 중시했던 실천가이자 척탄병이었다. 그는 늘 공동체의 그늘과 소수자를 챙기며 장발장은행장과 진보신당 대표라는 이력에서 볼 수 있듯이 배제된 이들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현장에 깊게 관여했다. 그에게 글쓰기는 바로 이런 소명을 구현하기 위한 의미 깊은 과업이자 한국 사회의 어떤 편향성과 이데올로기를 깨뜨리는 도끼였다.


물론 이들은 상대방의 존재와 글에 대해 잘 알고 있었겠지만, 생전에 깊은 교류를 한 것 같지는 않다. 수많은 저자가 공저 형태로 펴낸 책까지 쳐도 이 두 사람의 이름이 함께 오른 책은 없다. 때로 어떤 사안에 대해서 이들은 상당히 다른 관점을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겸허함이라는 점에서 만난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홍세화가 지인에게 남긴 것은 ‘겸손’이라는 단어다. 이런 덕목은 글쓰기에서 늘 자신을 낮추며 세상을 헤아렸던 서경식의 태도와 만난다.


생각해 보니 죽음의 방식도 이들의 생애와 고유한 실존의 감각을 닮았다. 서경식은 집 근처 온천에서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이, 순간적으로 전혀 예고되지 않은 죽음을 맞이했다. 늘 죽음을 응시하고 한 개인의 존엄과 권리를 섬세하게 살폈던 서경식다운 죽음이 아닌가. 그의 유골함은 여전히 나가노 신슈 자택에 모셔져 있다. 이에 비해 홍세화는 오랜 시간 그를 신뢰했던 지인과 동지의 보살핌 속에 투병 과정을 통해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유골함은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묻혔다. 죽음 이후에도 그의 옆에는 뜻을 함께했던 동지들이 있다. 당신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정답은 없다. 각자의 운명과 표정이 존재할 뿐.


나는 이들로부터 시대의 퇴행에 저항하는 비판적 지성,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의 감각, 글쓰기의 매력과 힘에 대해 배우고 느꼈다. “고마움이 흐르는 물이라면 막아 큰 저수지를 보여주고 싶다”고 생전에 표현했던 한 비평가의 문장을 이제는 밤하늘의 별이 된 그들에게 전하고 싶다. 저세상에서 만나게 될 홍세화와 서경식이 생전에는 미처 다하지 못한 깊은 우정을 쌓게 되기를 간곡한 마음으로 바란다.


* 출처: 한겨레 신문


86841f026cfde9a0d348d39858893004_1715652100_9807.png
■ 권성우 | 숙명여대 교수·문학평론가  

700만 디아스포라에게 조국을 묻다

댓글 0 | 조회 221 | 2025.11.26
지난 18일 이재명 대통령을 맞은 아랍에미레이트(UAE) 동포간담회에서 한인회장은 “한국인의 저력과 품격을 보여주는 수많은 교민이 있다”며 “주변에서 ‘한국인이어… 더보기

아이를 낳지 않는 한국의 청년들, 그 이유를 알고 싶다면

댓글 0 | 조회 577 | 2025.07.23
▲ 6월 29일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의 모습. 연합뉴스저는 며칠 전에 루마니아의 클류즈에서 대학생들에게 한국의 젠더 의식, 젠더 관계의 역사에 대해 특강한 적이… 더보기

우크라이나 전쟁의 결산

댓글 0 | 조회 765 | 2025.03.12
▲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1천킬로미터 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전선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양쪽 군인들이 소중한 목숨을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푸틴과 트럼프 … 더보기

이 시대의 야만을 응시하는 법

댓글 0 | 조회 618 | 2024.12.18
▲ 왼쪽부터 이연식의 ‘다시 조선으로’, 조형근의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지난여름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문학의 역할에 관한 서한을 발표했다. 각기 … 더보기

평화, 놀랄 만큼 많이 주는 행복 에너지

댓글 0 | 조회 574 | 2024.12.04
▲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자로 한국에 온 북아일랜드 작가 애나 번스. 그는 “평화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것을 가져다준다”고 말한다.서울 은평구에서 주관하는 이호철… 더보기

잊혀져 버린 정의, 그들을 기억하며

댓글 0 | 조회 637 | 2024.11.20
▲ 항일 투쟁과 반독재 투쟁으로 점철된 생애를 담은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의 작가 김학철항일 독립운동가이자 작가였던 고 김학철(1916~2001)의 인생을 다룬… 더보기

작가 한강의 노고를 기리며

댓글 0 | 조회 686 | 2024.11.06
▲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의의는 훌륭한 번역을 통해 세계의 독자들이 비로소 한국문학이라는 두꺼운 책의 한 … 더보기

반수연 작가의 문학적 복수

댓글 0 | 조회 663 | 2024.09.25
▲ 첫 소설집 ‘통영’을 낸 반수연 작가가 2021년 7월13일 오전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며 책에 서명을 하고 있다.캐나다에 거주하는 한인 작가 반수연의 … 더보기

김민기의 우리말 사랑

댓글 0 | 조회 780 | 2024.09.11
▲ 가수로서의 정체성을 거부하며 사석에서도 노래하지 않았던 김민기가 ‘겨레의 노래’에서 ‘아침이슬’을 부르고 있다.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프로그램 갈무리지… 더보기

종교 언론은 부패한 세상 소금이 되어야

댓글 0 | 조회 656 | 2024.07.23
엘살바도르 유일의 공정 언론이었던 로메로 대주교의 방송1932년 중미 엘살바도르에서 독재정권에 저항한 농민 약 3만 명이 살해당했다. 그후 군사독재정권이 무려 6… 더보기

베드로의 거짓말, 언론의 거짓말

댓글 0 | 조회 755 | 2024.07.10
수백 년 동안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희망의 빛을 주겠다며 나타난 인물 가운데 예수가 있다. 그런데, 예수는 제자들을 잘못 뽑았던 탓에, 결국… 더보기

‘큰 북한’으로 변해가는 러시아

댓글 0 | 조회 899 | 2024.06.11
▲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페이스북은 북한에서도 러시아에서도 차단돼 있지만, 주북 러시아 대사관은 여전히 페이스북 계정을 운영한다. 이 계정을 오랫동안 열심히 보면서… 더보기

남북, ‘동족’은 아니라 해도 적이 될 필요야…

댓글 0 | 조회 1,392 | 2024.05.29
▲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지난 14일 신형 지상 대 해상 미사일 ‘바다수리-6’형 검수사격시험을 지도하며 ‘해상 주권’을 무력 행사로 지켜야 … 더보기
Now

현재 두 죽음의 방식: 홍세화와 서경식

댓글 0 | 조회 1,049 | 2024.05.14
▲ 왼쪽부터 고 홍세화 장발장은행장, 고 서경식 일본 도쿄경제대 명예교수. 한겨레 자료사진지난 4월20일 오후에는 2023년 12월18일 세상을 뜬 재일 디아스포… 더보기

박노자 “성공만 비추는 한국식 동포관, 숨은 고통과 차별 외면”

댓글 0 | 조회 1,485 | 2024.04.24
▲ 노르웨이 오슬로대 인문학부 교수이자 귀화한 러시아계 한국인인 박노자(48) 교수2001년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인문학부 교수에게… 더보기

로렐라이의 선율과 제주 4·3

댓글 0 | 조회 712 | 2024.04.10
▲ 영화 ‘비정성시’ 포스터지난해 출간된 현기영 작가의 장편소설 ‘제주도우다’에는 제주 4·3 시절 산에 올라 투쟁에 나섰던 청년들이 부르던 노래가 소개된다. 이… 더보기

‘내 잘못’보다 ‘세상의 악’ 더 성찰해야 하는 사순절

댓글 0 | 조회 958 | 2024.03.13
지난 2월 14일 수요일은 안중근 의사가 사형 판결을 받은 날이면서, 교회성당에서는 사순절이 시작되는 첫날이다. 사순절, 즉 40일은 그리스도교에서 예수 죽음 이… 더보기

인맥 관리 ‘노하우’ 5가지 오해

댓글 0 | 조회 1,085 | 2024.02.27
“인사나 이권을 청탁하면 패가망신한다는 걸 보여주겠다.” 제17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노무현 당선자의 일성이다. 나는 이 말을 인수위원회 파견 근무할 때 직접 들었… 더보기

한국, 세계에서 가장 개인주의적 사회?

댓글 0 | 조회 2,121 | 2024.02.14
저는 직업상 식민지 시대 사회주의적 독립 운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의 투사들에 대한 자료를 읽다 보면 이 분들이 정말 “초인”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더보기

관료주의의 무능, 권력자의 광기, 그리고 인간의 존엄 - <서울의 봄>이 상기시키…

댓글 0 | 조회 844 | 2024.01.31
공허한 권력의 실체이 영화 후반부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들로 시작하고 싶다. 반란 성공이 확실해지고 수괴 전두광 장군(황정민)은 일행과 함께 본부로 돌아가려다 혼자… 더보기

사람 마음을 얻으려면

댓글 0 | 조회 1,112 | 2024.01.17
공통년 392년 로마제국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성당 출입을 금지당한 사건이 생겼다. 390년 그리스 테살로니카에서 주민 폭동이 일어났고, 황제는 군대를 보내 주민 … 더보기

한해를 되비추는 예술의 힘

댓글 0 | 조회 889 | 2023.12.22
▲ 영화 ‘괴물’. 미디어캐슬 제공12월의 첫 주말, 저녁 산책을 하며 한해를 되돌아보니 무엇보다 대립과 증오로 넘친 1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지구촌 두곳… 더보기

선한 마음 사이로도 차별이 샐 수 있다

댓글 0 | 조회 1,026 | 2023.12.13
▲ 단편 영화 ‘빠마’의 한 장면으로 방글라데시에서 농촌으로 시집 온 니샤의 일상을 통해 우리 농촌에 사는 이주여성에게 부과된 삶의 무게를 보여준다. 한글교실에서… 더보기

‘전쟁의 해’ 2023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댓글 0 | 조회 985 | 2023.11.29
▲ 지난 5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상공에서 이스라엘군이 쏜 조명탄이 빛나고 있다. AFP 연합뉴스2023년이 이제 저물어간다. 2023년은 깊어져 가는… 더보기

깊은 슬픔이 흐르는 강

댓글 0 | 조회 879 | 2023.11.15
▲ 경남 합천 황강. 사진 합천군청 누리집사람의 정성이 나무와 쇠를 감동시킨 곳영남지방 낙동강의 지류 가운데 경남에서 가장 긴 강은 남강과 황강이다. 남강은 진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