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담하지 말고, 지치지 말고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성태용
명사칼럼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김도형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마이클 킴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조성현
전정훈
Mystery
커넥터
Roy Kim
새움터
멜리사 리
휴람
김준
박기태

냉담하지 말고, 지치지 말고

0 개 2,001 명사칼럼


법(法)의 옛글자는 灋(법)이다. 이 글자는 물을 의미하는 水(수)와 상상의 동물인 廌(태), 그리고 물러남을 의미하는 去(거)가 결합한 것이다. 해태 또는 해치라고도 하는 廌는 옛 문헌인 '이물지(異物志)'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뿔달린 짐승으로 기록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法은 본래의 형태에서 廌가 빠져 있는 셈인데, 필자에게는 마치 法이 상상 속의 짐승을 통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주술적 관점을 벗어나 근대적 합리성을 추구하는 노력으로 읽힌다.

실상 법의 근대성은 개인이 자신의 판단하에 행위를 하고 그 결과를 스스로 책임지게 함으로써 개인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핵심으로 한다. 칸트는 실천이성 개념을 통해 자기입법의 의지로서 도덕법칙과 보편 입법의 원리를 강조함으로써 근대적 개인의 철학적 토대를 정립하였다. 여기에 사회계약이라는 이론을 통해 근대적 개인의 생명, 신체, 자유, 재산이 보호된다. 특히 부르주아적 시민의 등장으로 개인의 재산권이 강조됨에 따라 재산에 대한 자기결정권 침해는 민사 분쟁을 넘어 국가의 형벌을 통해 처벌되는 범죄가 되었다. 절도(竊盜)는 소유권자의 동의 없는 재산의 불법적 이전이고, 여기에 폭행과 협박을 수단으로 하면 강도(强盜)가, 기망 내지 위계를 수단으로 하면 사기(詐欺)가 성립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동안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이, 재산에 대한 자기결정에 비해, 상대적으로 촘촘한 보호를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특히 성(性)은 국가나 사회의 것, 이른바 풍속(風俗)으로 다루어지면서 자기결정의 영역 밖으로 밀려났다. 엄밀히 말하자면, 모든 성이 그렇게 취급된 것은 아니다. 여성의 성만이 국가나 사회의 것으로 취급되었을 뿐, 남성의 성은 철저하게 자기결정의 영역으로 강조되었고, 심지어 가부장의 권리로서 엄격하게 보호되었다. 

우리 법의 사정도 다르지 않아서, 입법을 통해 형법 제32장이 “정조에 관한 죄”에서 “강간과 추행의 죄”로 바뀐 것은 비교적 최근인 1996년부터다. 이때부터 형법은 여성(부녀)의 ‘정조’가 아닌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할 수 있었다. 이후 성적 자기결정권은 빠르게 법적 개념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2013년에는 성폭력 범죄의 객체를 ‘부녀’에 한정하지 않고 ‘사람’으로 규정함으로써 남성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동등하게 보호받게 되었다. 친고죄 규정이 삭제됨에 따라 피해자가, 합의를 종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2차 가해를 피할 수 있었던 것도 자기결정권의 관점에서 타당한 변화였다.  

올해부터는 강간 등의 예비ㆍ음모를 처벌하는 조문이 신설되었고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기준이 13세에서 16세로 상향됨으로써,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다 두텁게 보호될 여지가 마련되었다.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려는 노력은 해석을 통해서도 지속되었다. 부부 강간을 처벌함으로써 부부 사이에도 성적 자기결정권이 존중되어야 함을 확인했고, ‘성인지 감수성’ 이라는 개념을 통해 통상 여성인 피해자의 자기결정권이 수용될 여지가 확보되었다. 이른바 ‘기습추행’ 처럼 폭행 자체가 추행인 경우 폭행의 정도는 ‘반드시 상대방의 의사를 제압할 정도임을 요하지 않고 그 의사에 반한 유형력의 행사가 있는 이상 힘의 대소강약은 불문’ 함으로서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를 폭넓게 인정할 수 있었다. 

이에 더 나아가 ‘비동의 간음죄’의 신설이 논의되고 있다. 폭행과 협박을 수단으로 하지 않더라도 ‘동의가 없거나’ ‘상대방의 의사에 반한’ 간음을 처벌하자는 것이다. 동의없이 이루어지는 재산 침해를 절도나 횡령으로 구성함으로써 재산권을 보호하는 것처럼, 동의없는 성적 행위를 처벌함으로써 성적 자기결정권을‘온전히’보호하려는 것이다. 물론 최근 발의되는 비동의 간음죄의 경우, 법정형 등이 기존 강간 및 강제추행과 정합적이지 않고, 법문언으로서 ‘동의’ 개념의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성을 개인의 선택과 결정이 아닌 국가와 사회의 산물로 보아온 그동안의 문화 또한 비동의 간음죄의 도입을 주저하게 만든다. 그러나 반사회적인 것이 아닌 한, 자기의 선택과 결정은 온전하게 존중받고 끝까지 보호되어야 한다. 이는 결국 주체의 자율성을 회복하는 것이며 언젠가 우리가 도달해야 할 미래이기에, 이 노력은 미완의 프로젝트로서 계속되어야 한다. “Ne pas se refroidir, Ne pas se lasser” (냉담하지 말고, 지치지 말고, 김연수, ‘일곱 해의 마지막’ 중에서)  

출처 : 한국일보 <형형색색>

■ 김대근

한국 형사 정책 연구원 & 경제범죄 연구실장

553c429a7b8aff1d211c5dc35aa7101b_1598418531_3229.jpg
 

人生을 바꿀 수도 있는 최신 이민 정보

댓글 0 | 조회 4,152 | 2020.08.26
희망차게 시작했던 2020년이 코로나 19의 예기치 않은 습격으로 인하여 어언 3분의 2가 휘이익 지나가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무섭다는 것을 … 더보기
Now

현재 냉담하지 말고, 지치지 말고

댓글 0 | 조회 2,002 | 2020.08.26
법(法)의 옛글자는 灋(법)이다. 이 글자는 물을 의미하는 水(수)와 상상의 동물인 廌(태), 그리고 물러남을 의미하는 去(거)가 결합한 것이다. 해태 또는 해치… 더보기

황진이 선인과 대화를 시작하며 5

댓글 0 | 조회 1,366 | 2020.08.26
그러면 왜 우리가 굳이 선악과 공부를 해야만 하는가?그 이유는 지구가 바로 선계에서 만들어 놓은 학습장이기 때문이죠.이 학교에서는 졸업을 해야만 다른 우주로 갈 … 더보기

어른이 돼서 본 뉴질랜드의 삶

댓글 0 | 조회 3,938 | 2020.08.26
지난 칼럼에서도 언급했듯 나는 뉴질랜드에서의 학교생활을 참 좋아했다. 물론 초반에는 누가 말만 시키면 “pardon?”만 백만 번 외쳐야 했던 언어의 장벽이나 하… 더보기

가장 빠르게, 가장 필요한 곳에, 마지막까지 월드비전 코로나19 긴급구호 현황

댓글 0 | 조회 1,988 | 2020.08.26
코로나바이러스는 의료체계가 열악한 나라에 심각한 위협입니다. 아프리카 등 개도국 아동 수백 만 명이 감염에 노출될 수 있고, 바이러스에 부모님마저 잃을 경우, 영… 더보기

새로운 일자리

댓글 0 | 조회 2,312 | 2020.08.26
지난 두 달간 우리는 세상과 동떨어진 생활을 했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모임도 자제하고, 심지어 학교도 못 가는 동안 우리는 언제 어떤 일이 있… 더보기

산길

댓글 0 | 조회 1,580 | 2020.08.26
시인 : 성 백군산길을 간다한 걸음 한 걸음산정을 향해 또박 또박낯선 풍경에 눈이 열리고새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에 귀가 트이고꽃향기, 신록 냄새에 코가 즐겁기… 더보기

체질이 궁금하세요?

댓글 0 | 조회 1,914 | 2020.08.26
한의학에서 체질에 따라서 질병을 치료해야 한다는 의견은 한의학의 원전 이라고 할 수 있는 『황제내경』 「영추 72편」, 즉 「통천편」의 ‘오태지인 五態之人’에서 … 더보기

최소 근무 시간이 있는 고용계약서의 초과 근무 시간 급료 계산 방식에 대한 다툼과…

댓글 0 | 조회 2,771 | 2020.08.26
제목이 좀 길어졌습니다.예전에 어떤 신문사에서 수습기자 교육을 받을 때, 강의를 하셨던 선배 기자가 (신문기자들은 누구에게도 ‘님’자를 붙이지 말라고 교육을 받습… 더보기

어드레스의 의미

댓글 0 | 조회 2,104 | 2020.08.26
좋은 어드레스란 어떤 어드레스를 말하는 걸까요.흔들리지 않고 안정감있는 어드레스가 좋은 어드레스일까요?흔히 어드레스를 기마자세와 비교하고는 합니다. 누가 뒤에서 … 더보기

창조 놀이

댓글 0 | 조회 1,823 | 2020.08.26
게러지에 있었던 재봉틀을 내 방으로 옮겼다. 그 덕분에 나는 옷장 정리를 하면서 리폼에 대한 의욕이 일어났다. 예전에 수선하려다 만 옷들도 찾아내고, 모자를 만들… 더보기

너 자신을 알라

댓글 0 | 조회 1,749 | 2020.08.26
세상은 넓고 먹거리는 많다지만 그 다양하고 풍성한 음식들 가운데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음식으로 유명한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화산활동으로 유명한 나라 아이슬란드입… 더보기

봉숭아 물들여 주며

댓글 0 | 조회 1,451 | 2020.08.26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여름 더위로 가득 채워진빨간 봉숭아로아내는 그리움을 만나고 싶은지손톱 물들이겠답니다봉숭아 물이 지기 전에첫눈이 오면첫사랑이 온다지요당신 살다… 더보기

다른 인종에 비해 9.5배 높은 동양인들의 문제 도박

댓글 0 | 조회 2,893 | 2020.08.25
도박의 해를 알리는 주간은 일년에 한번 전통적으로 9월 1일을 도박을 안하는 날로 지정하여서 이 날은 지역사회가 모여 도박의 해를 토의하고 방지하는 방법들을 알리… 더보기

천부경의 현대 물리학적 접근

댓글 0 | 조회 2,017 | 2020.08.25
천부경은 약 1만년전에 전해졌다는 우리 민족의 최초의 경전에 가깝고 그후 통일 신라의 최치원이 한문으로 다시 펼쳐냈다. 그 이후 많은 이들이 천부경을 해석하고 설… 더보기

7,8월 월간조황

댓글 0 | 조회 1,848 | 2020.08.25
7월은 뉴질랜드에서 가장 추운 겨울입니다. 일조량도 짧아서 아침해가 7시가 넘어서야 뜨고, 오후 5시30분이면 어느새 어둑어둑 해지는 밤을 맞이합니다.썸머타임이 … 더보기

Lockdown 기간의 임금 지급 의무

댓글 0 | 조회 3,447 | 2020.08.25
오클랜드가 코로나바이러스 (Covid -19) 2차 유행으로 인해 두번째 lockdown에 들어간 지금 lockdown 기간의 임금 지급 의무가 재조명 받고 있습… 더보기

MLCC(적층 세라믹 커패시터)

댓글 0 | 조회 1,653 | 2020.08.25
삼십 촉 백열등이 그네를 타는 목로주점 흙바람 벽엔 그녀와의 사랑이 켜켜이 묻어있다. 그때 지리산 계곡의 우리 집에선 물방앗간에서 돌리는 수차에 횟대를 연결해 발… 더보기

푸른 수염 3편

댓글 0 | 조회 1,994 | 2020.08.25
어느 숲 속에 한 남자가 세 아들과 딸 하나를 데리고 함께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여섯 마리 말이 끄는 금빛 마차가 많은 하인들을 태우고 달려오더니 집 앞에 조용… 더보기

잃은 것과 남은 것

댓글 0 | 조회 3,307 | 2020.08.25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발걸음이 달라지는 것은 마음자세 때문일까요?편한 옷차림에 운동화를 신으면 몸도 마음도 한결 가볍습니다. 차도를 따라 10분쯤 걸으면 운동장 … 더보기

치유와 힐링을 위한 요가

댓글 0 | 조회 1,863 | 2020.08.25
허리에 좋은 스트레칭자주 허리가 뻐근하고 아프신가요? 컴퓨터 앞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혹은 의자에 앉아 일하는 시간이 많은 사무직에 종사하시는 분들, 혹은 살림 육… 더보기

오이소박이 (2)

댓글 0 | 조회 1,661 | 2020.08.25
이민 10년차인 한씨아줌마는 남편이 한인교회에서 허드렛일을 봐주며 살아간다고 했다. 이민선배라고 해서 별반 사정이 나아보이지 않았다. 구체적으로는 모르지만, 고향… 더보기

“코로나19 상황에서 2021학년도 대학 입시를 겪고 준비하며”

댓글 0 | 조회 2,736 | 2020.08.22
2020년 7월 중순 오클랜드, 크라으스트쳐,치 타우랑가, 헤밀턴 그리고 호주와 일본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2021학년도 초중고전과정 이수자를 포함한 재외국민 전… 더보기

미니 뇌졸증

댓글 0 | 조회 2,768 | 2020.08.22
더위 먹어서 나타나는 증상들, ‘뇌졸중’일 수 있다?– 기온 올라갈수록 조심해야.. 증상 나타나면 검사 필요최근 낮 최고 온도가 35도까지 올라가면서 곳곳에 폭염… 더보기

우울증(憂鬱症) 급증

댓글 0 | 조회 2,757 | 2020.08.22
전 세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확진자가 2000만명이 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최근에는 하루 30…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