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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의 겨울은 찬란했던 여름만큼이나 반대로 힘겹다. 시도때도 없이 내리는 겨울비는 나를 우울하게 만들고 모든 사물들이 젖고 마르기를 반복한다. 이런 날엔 뜨끈한 아랫목에서 먹던 그 어떤 것들이 두서없이 생각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에선 아랫목은 없다. 뜨끈한 국물도 지금은 없다.
이럴 땐 꼭 오래전에 돌아가신 시어머님 생각이 난다. 늘 정갈하시고 어머님이 만드신 모든 음식들은 맛이 있었다. 어쩌다 요리방법을 물으면 나중에 저절로 할 수 있게 된다 말씀하시며, 가르쳐주지도 않으셨다. 별로 부지런하지도 않고 손끝이 야물지 못했던 나는 거의 완벽한 어머님의 살림살이에 주눅들어 옳타구나 하고 손을 놓아버렸다. 생각해보면 그래도 그때 어깨너머로 배운 어머님의 레시피를 뒤적여 만들어 먹곤 있지만 시원찮다. 추적대는 비와 잔뜩 끼어있는 먹구름이 오늘도 예외없는 뉴질랜드의 겨울임을 예고하는 듯 으스스하다.
따뜻한 아랫목은 없어도 뜨끈한 그 무엇을 한번 만들어볼까 생각하며 보던 티브이를 끈 후 일어서는데 “하긴 뭘해” 하는 듯 무릎 관절이 우두둑하고 아우성을 친다. 비가 오려나…? 그래도 오늘은 주고 싶은 사람도 있고 해서 삶아 얼려두었던 무청 우거지를 꺼내 녹인다.
마른 고사리 토란대 버섯 등은 따뜻한 물에 불려놓고 매운 청양고추가 있는지 확인하고 대파도 다듬어 놓는다. 음- 그리고 콩나물은 고기 사러가서 같이 사오기로 작정한다. 고기 삶을 땐 오래전 중국인 친구가 건네준 월계수 잎을 몇 장 띄우고 고추기름도 내어놓는다. 모든 일은 순조로운 듯 해도 중간중간 주방에서 깜짝 놀란듯 멈춰서서 그때의 어머님은 어떻게 하셨더라? 하곤 딱 내나이쯤의 어머님을 생각하며 불러모신다.
커다란 들통이 모든 재료들을 품어안고 육개장이 끓고 있다. 제법 맛있는 냄새를 풍기고 얼큰해 보이는 모양새도 그럴듯 하다. 마지막으로 콩나물을 뿌리듯 얹고 뚜껑은 열어둔다. 그때쯤 K에게서 전화가 왔다. 뭐하시느냐. 보고싶다. 날씨가 좋네요. 안부전화를 할 때 난 벌써 그녀의 목소리가 눅눅해져있음을 감지했지만, 얼마전 좀 먼 곳으로 이사를 가서 선뜻 놀러오라는 말도 쉽지 않아 짬짬하고 있는데 “엄마가 보고싶어서요” 한다. 세상에 손주를 둘씩이나 본 할머니가 엄마가 보고싶어 울고 있다. 점점 눅눅함을 넘어서는 그녀의 목소리에 놀라 나도 모르게 “놀러와 맛있는 거 줄께, 큰 냄비 가지고…” 우는 아이 사탕으로 꼬시듯 가장 저차원의 숫법으로 그녀의 눈물샘을 막아버렸다.
그녀의 어머니는 나도 너무 잘 아는 분으로 이년전쯤 한국에서 돌아가셨다. 몇번 한국엘 다녀온 후 어느날 화급히 나가더니 긴 이별을 고하고 돌아왔었다. 작은 체구에 딸같은 나에게도 항상 존댓말을 쓰셨다. 웃을 때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셨다. 하루도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은 강인한 한국의 어머니셨다.
그녀는 폰 프로필 사진으로 자기 어머니를 동영상으로 올려놓았다. 핑크색 모자를 쓰시고, 대각선으로 검고 넓은 띠를 어깨에 맨 모습이 낯설다. 나뭇잎 그늘이 얼룩이처럼 내려앉은 어느 곳 벤치에 앉아 앞뒤도 없이 “마안든 꼬바테 마안든 꼬바테” 외계인 언어처럼 반복하여 읊조리는 동영상을 나는 뭉클한 마음으로 자주 들어가 뵙곤 한다. 그땐 이미 좀 편찮으실 때가 아니었을까 짐작하지만 나는 묻지도 못하고 또 자주 들어가 뵙는다는 말조차 건네지 못하고 있다. 행여 그녀의 눈물버튼이 눌러질까봐서…
애초에 큰 냄비를 가져오라 한 것은 혹시 국물이 넘쳐 자동차 시트를 망칠까 하는 걱정때문이었지만 전화를 끊고는 마음이 확 바뀌었다. 가져온 그릇이 어떤 크기이든 꽉 채워 주리라고… 그녀는 적당한 크기의 그릇속에 손수 만들었다는 깨강정과 함께 엊그제 양파 한자루를 샀다며 자주색 양파 몇개를 함께 담아왔다. 우린 정말 오랫만에 얼굴을 마주보는 예기치 못했던 만남을 하게 되었다. 둘이는 많은 얘길 해가 지는줄도 모르고 주고받는다. 하지만 내가 들려줄 말이 별로 없다. 그냥 들어주고, “어머머머 이러언” “그러면 안되지” “아~ 그랬었구나” “괜찮아질꺼야” 등등 책임지어야할 말은 골라내고 추임새로 거들어줄 뿐 도움이 될법한 말은 별로 하지 못한다. 때론 그의 슬픔이 내가 생각하기엔 그렇게 큰 일은 아닌 것 같고, 세월가면 저절로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고, 또는 누구던지 겪을 수 있는 일들인 것을… 그녀는 이 나라의 모범시민이고 훌륭한 신앙인으로 나보단 한참 손아래여도 내가 존경하는 사람중 한사람으로 손꼽는데 다만 나는 그 시절을 이미 건너온 선배로서 다독여줄 뿐이다. 살면서 건너야 할 징검다리를 건너는 그녀에게 잠시 손을 잡아주는 것처럼…
밖이 어둠으로 내려앉는다. 한결 밝아진 그녀는 교회 기도시간에 맞춰 가야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저 육개장 한그릇 먹고가면 안되요?” 안될거야 없지 한데 국 끓이느라 반찬이…잠시 주저하는 나에게 “국이면 돼요 국이면…” 마침 끝난 새밥에 그야말로 육개장만 해서 한그릇 먹고 일어난다. 나는 항상 소탈하고 편안하게 나를 대해주는 그녀 부부를 늘 고마워하고 또 사랑한다. 담아놓은 국냄비를 넘겨주며 누구에게나 꼭 하는 말이 있다. “이건 미완성품이다. 집에 가서 간도 다시보고 계란도 풀고 국물이 진하니 물은 좀 더 부어도 된다”고. 맛 없을 때를 대비해서 빠져나갈 구멍을 애써 만들어 고명처럼 얹어 보낸다.
어둠속을 그녀 차의 빨간 후미등이 멀어져간다. 누군 내가 끓여준 육개장을 먹고 감기 들었던 아들이 금방 나아지기도 했다니 그녀의 엄마 보고픈 마음이 좀 무뎌지기를 바랄 뿐이다. 육개장 한그릇으로 허기를 완전히 메꿀 순 없겠으나 따뜻한 요기는 되었으면 하고 생색을 내본다.
갠 하늘에 쏟아질 듯 유난히 많은 별들이 내려다본다. 그 속에서 그녀의 어머니가 반복해서 노래한다. “마안든 꼬옷바테…마안든 꼬옷바테…” 울고 있는 그녀를 대신해서 내가 답신을 보낸다. “채애송화도 봉숭화도 한창입니다…” 다음날 그녀에게서 톡이 왔다. “남편이 너무 맛있대요.” “아! 그래? 난 맛있다면 또 해주는데…” 나도 답톡을 한다. “자기가 해다준 깨강정이 느므느므 (이건 너무의 최상급) 맛있어 달라고 하지마! 아껴먹을 거니까.” 무엇으로든 그녀가 허기지지 않기를… 뉴질랜드의 겨울이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