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는 모자이크(Mosaic)와 같다. 하나의 모자이크가 훌륭한 예술품으로서 가치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참여한 각자의 조각들이 제 자리에서 제 몫을 해주어야 한다. 큰 조각만이 역할이 크다거나 가운데 있는 조각만이 더 돋보이는 것은 아니다. 같은 크기의 같은 색깔의 조각들로는 모자이크 미술이 완성 될 수 없다. 그 조각들 하나하나는 별로 볼품이 없고 색깔도 다르지만 그것들이 조화를 이루며 배치되었을 때에 비로소 작품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인간의 생체 조직을 보아도 몸의 어느 것 하나 쓸모없는 것은 없다. 그 모든 부분이 제각기 자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때에 비로소 몸은 균형이 잡히고 건강이 유지된다.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 것은 대체로 몸 전체가 동시에 약해졌다기보다는 어느 한 부분에 균형이 깨졌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는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단일 민족, 단일 언어, 단일 문화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오다가 다양한 피부 색깔을 지닌 150여 민족이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며 다양한 문화를 발산해내는 뉴질랜드에 이주해와 살고 있다. 그러한 뉴질랜드가 심각한 갈등 없이 평화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 것은 모자이크화가 잘 이루어진 결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
흔히 한국인을 모래에 비유하는데 지향해야 할 국민성으로서 물과 비교해 본다. 모래는 하나하나가 단단하지만 결집이 안 되어 힘을 합치려 해도 쉽게 무너지고 만다. 반면 물은 매우 약한 물체이지만 합치면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 모래는 자기 개성만을 내세워 다른 모래와 좀처럼 동화되지 않지만 유연한 물은 다른 물과 쉽게 화합을 이룬다. 그리고는 무슨 일이든 자기에게 주어진 과업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다. 음료수로 또는 청소용으로, 농업용으로나 공업용으로나 안 쓰이는 데가 없는 것이다.
모래와 같은 한국인들은 자기가 서 있어야 할 위치를 망각하고 부화뇌동함으로써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자기의 주관이 없이 남의 일을 부러워하거나 참견하려고 한다.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업신여기는 경향마저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직분을 가지고 태어난다. 하느님은 이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보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바로 찾아 수행하는 것이 가장 보람된 인생을 사는 길인 것이다.
인간은 모든 면에서 다재다능할 수는 없다. 이 치열한 경쟁 사회를 보다 슬기롭게 살아가는 길은 자기가 맡은 직무를 열심히 하고 그 분야에서 탁월성을 발휘하되 이러한 조직의 구성원들이 모여 모자이크를 형성 할 때 그 사회가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뉴질랜드의 봄은 오는 듯 지나가고 여름으로 이어지면서 크리스마스 연말이 찾아온다. 더불어 각종 문화 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 뉴질랜드는 파고들수록 묘한 감흥을 느낄 수 있는 사회이다. 지구상의 남극 가까이에 위치한 외딴 섬, 인구 4백 50만의 조그마한 이 나라가 왜 매력을 발산하는 것일까?
아메리카 대륙은 원주민과 그 문화를 말살하고 이주민에 의해 개발되는 과정에서 흑인 노예를 들여와 지배와 피지배, 반목과 갈등의 복잡한 문화 체계를 형성해 왔다. 반면 이곳은 마오리의 생활과 언어가 온전히 가꾸어져 온 터전 위에 남태평양 문화를 수용한 유럽 중산층의 기반이 터를 잡은 평화의 공간이기도 하다. 최근에 아시아 이민이 증가하면서 남태평양, 유럽, 아시아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
세계화란 모자이크 문화의 사회라고 말 할 수 있다. 지구촌 안에서 각 나라가 각기 전통 문화의 개성을 가지고 다른 문화를 수용하면서 그것이 융합되어 하나의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해 가는 모자이크 사회……. 나는 그 모자이크 사회가 반드시 뉴질랜드에서 꽃 피울 것이라고 확신하며 이 나라 국민은 그것을 이룰 소명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동서양 문화가 적절히 융화되어 새로 태어난 모자이크 사회, 그것은 제 3의 개념으로‘남양문화 사회’로 호칭될 수도 있겠다. 서양 문물에 무비판 적으로 오염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 것을 지키고 그것을 전파시키는 일은 모자이크 사회에 당당히 기여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모자이크 사회에서는 모래와 같은 근성을 발휘할 게 아니라 물과 같은 유연성을 유지하며 사회구성원의 일부로서 당당히 자기 몫을 수행하여 전체적으로 하나의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하는 데 참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