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칼럼 | 지난칼럼 |
다들 아시다시피 뉴질랜드에는 Accident Compensation Corporation, 약칭 ACC라는 정부기관이 있습니다. 모든 “사고”로 일어난 “상해”를 누구의 잘못인지 가릴 필요 없이 정부에서 보상해주는 제도이지요.
가장 대표적인게 신체 상해 (physical injury) 입니다.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다른 여러가지 이유로 (꼭 타인잘못이 아니더라도 내가 자전거를 타고가다 넘어져서 등) 중경상을 입으면 기본적으로 해당됩니다. 특정한 영역에서의 정신적인 상해 (mental injury) 도 해당이 되고, 의료사고로 발생한 상해 (treatment injury)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가장 대표적인 보상제도는 주당 보상금 (weekly compensation)입니다. 상해로 인해 근무를 못하게 되었을 때 원래 받던 급여의 80% 정도를 받는 것입니다.
사망의 경우에도 해당은 되는데, 그 때에는 장례식 비용과 배우자 혹은 어린 자녀들을 위한 소정의 보상만 제공됩니다.
오늘 칼럼에서는 어떤 경우에 ACC에 해당이 되고 어떤 보상을 받는지에 대한 부분은 아닙니다. 그 부분은 사고를 당하셨을 때 의료진에게 문의를 하는게 더 효과적일 것 같습니다. ACC신청도 보통 의료진이 도와서 진행되고, 또한 ACC에서 확실하지 않은 점이 있을 때에도 신청인을 다른 의료진을 통해 검진받도록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대신 오늘 칼럼에서는 ACC로 인해 뉴질랜드 사회와 민사소송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다루려고 합니다.
미국이나 한국 법정드라마를 보시면 개인 상해를 다루는 장면을 많이 보셨을 겁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보상금액이 심각하게 부풀려져 있어서, 사고를 당한 경우 수백만달러의 소송을 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만 하더라도 미국 법원에서는 스타벅스 ‘드라이브스루’에서 뚜껑이 제대로 덮히지 않은 뜨거운 음료를 받다가 화상을 입은 배달기사에게 5천만달러 (대략 700억원) 배상을 명령하기도 했구요.
뉴질랜드에서는 ACC로 인해 이러한 소송이 원천 차단되었습니다. “너무나도 심각한 고의”가 있어서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능할 수는 있는데 보통은 1-5만불 선을 크게 넘지 않을 것이구요.
소송 변호사로서 개인적으로는 ACC제도가 없었다면 일거리가 더 많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아무래도 ACC로 인해 “개인 상해”라는, 나름 큰 소송의 한 분야가 아예 없어져버린 것이라서요. 하지만 반대로, ACC의 결정에 부당함을 갖고 소송하는 분야가 생겼습니다. 행정소송의 한 갈래처럼 진행됩니다.
하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정말 뉴질랜드 다운, 그리고 어느정도 바람직한 제도라는 데에는 많은 분들이 동의할 것입니다. 사고를 일으켰다가 수십만에서 수백만달러의 소송을 당하고 그걸 막기 위해서 변호사를 쓰고 또한 그런걸 예방하기 위해 사설보험에 가입해야 하고 하는 것들이 결국은 다 사회적인 비용이니깐요.
기록을 보면 처음 ACC제도가 도입되었던 1970년대부터 “혹시 ACC제도를 믿고 사람들이 사고를 더 남발하면, 혹은 더 부주의한 사회적 행태가 벌어지면 어떡하냐” 등의 문제가 제기되어 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설보험에 가입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갑자기 부주의하게 행동하지 않는 것처럼, ACC제도를 믿고 사람들이 사고를 딱히 더 남발하지 않는다는건 대략 50년의 세월에서 입증된 것 같습니다.
ACC제도로 인해서 피해자가 더 억울하게 되는 경우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예를들어 한국에서는 부주의한 운전으로 야기된 교통사고로 인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사망했거나 중상을 입었다면, 운전자가 형사소송에서 처벌받는 것과 더불어 민사적인 손해까지 배상하는게 일반적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서는 형사처벌은 똑같이 진행될 수 있지만, 민사소송은 위와 같이 원천 차단되어 있어서 정부가 (비교적) 소액을 보상하는 게 전부입니다. 사회적인 비용 절감으로 인해 개인이 손해를 본다는 느낌이 분명히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독자분들께서는 ACC제도를 좀 더 이해하셔서 앞으로 사고가 일어났을 때 도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