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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종기
내가 죽어서 물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끔 쓸쓸해집니다.
산골짝 도랑물에 섞여 흘러내릴 때,
그 작은 물소리를 들으면서
누가 내 목소리를 알아들을까요.
냇물에 섞인 나는 물이 되었다고 해도
처음에는 깨끗하지 않겠지요.
흐르면서 또 흐르면서,
생전에 지은 죄를 조금씩 씻어내고,
생전에 맺혀 있던 여한도 씻어내고,
외로웠던 저녁 슬펐던 앙금들을 한 개씩 씻어내다보면,
결국에는 욕심 다 벗은 깨끗한 물이 될까요.
정말 깨끗한 물이 될수 있다면
그 때는 내가 당신을 부르겠습니다.
당신은 그 물 속에 당신을 비춰 보여주세요.
내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주세요.
나는 허황스러운 몸짓을 털어버리고 웃으면서,
당신과 오래 같이 살고 싶었다고 고백하겠습니다.
당신은 그제서야 처음으로
내 온 몸과 마음을 함께 가지게 될 것입니다.
누가 누구를 송두리째 가진다는 뜻을 알 것 같습니까.
부디 당신은 그 물을 떠서 손도 씻고 목도 축이세요.
당신의 피곤했던 한 세월의 목마름도 조금은 가셔지겠지요.
그러면 나는 당신의 몸 안에서 당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죽어서 물이 된 것이
전연 쓸쓸한 일이 아닌 것을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 마 종기 : 시집으로 <조용한 개선>, <두 번째 겨울>, <평균율1>, <평균율2>, <변경의 꽃>,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그 나라 하늘빛>, <이슬의 눈>, <마종기 시전집>,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하늘의 맨살>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아주 사적인, 긴 만남>,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등이 있다.
▲ 마종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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