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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단하는 사회
요즘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 혐오가 만연하다. 당장 눈앞의 여성 혐오, 남성 혐오, 난민 혐오, 한국인 혐오, 유색인종 혐오, 유대인 혐오에 이르기까지 그 혐오의 대상과 역사가 매우 넓고 오래되어 보인다. 더구나 요즘 충蟲을 붙여 혐오의 감정을 대놓고 드러내는 맘충, 한남충, 한녀충 등의 새로운 용어들도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인터넷과 매체의 발달은 이 현상들을 벌레가 순식간에 알을 까고 번식하듯 우리 주변을 온통 징그럽고 끈적거리는 혐오의 벌레로 가득 메우고 있는 것처럼 자극적으로 포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 그로 인해 사람들은 혐오와 경계, 피해의식, 자격지심 등으로 서로의 관계를 점점 더 힘들게 만든다. 이 현상이나 감정이 극단으로 치달으며 부정적인 방식으로 표출될 때 일부의 사람들은 대상을 나누고 단절시키며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하니 때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이것이 머리가 익지 않은 아동들에게 걸러짐 없이 그대로 주입되어 그들 사이에서도 갈등과 폭력의 형태로 드러나고 있는 것을 볼 때 걱정스러운 마음도 든다. 그러나 동시에 이 현상에 대하여 표면이 아닌 그 이면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진지한 고민을 함께 나눌 때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번에 내가 가져가고 싶은 주제는 젠더Gender와 관련된 것이다. 요즘 페미니즘feminism이라는 단어가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의 소지도 많은 것 같다.
불평등한 여성의 권리에 대해 말하는 사람을 무조건 싸잡아 골수 페미니즘 또는 여자 마초macho로 일갈하고 워마드나 메갈리아를 갖다 붙이며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보려 하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도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굉장한 남성 우월주의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로, 여성이나 페미니즘에 대하여 알고자 하는 마음은 전혀 없고 이기적인 행태로 여성을 탄압하는 경우가 많다. 아직도 그런 이들의 목소리가 크다 보니, 여성들의 분노와 억울함이 미러링 형태로 나타나고 그것이 또 다른 갈등을 조장하게 되는 것이다.
또 좀 소극적이고 배제를 두려워하는 사람의 경우 스스로를 향해 절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전제로 깔며 자신의 의견을 조심스레 꺼내 놓는 것을 볼 때 여전히 약자로서 남성들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정작 난 내가 어떤 부류인지 잘 모르겠다. 페미니스트인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내가 페미니스트이거나 아니어도 상관없다. 다만 남녀노소 누구나, 특히 약자이고 힘이 없는 사람들까지 모두 자신의 권리를 누릴 수 있고, 조금이라도 더 정당하고 공정한 대우를 받으며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에서 다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하는 사람일 뿐이다.
더 나아가 사람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와 자연이 그러할 수 있기를 바란다. 힘 있는 자가 힘 없는 누군가를 맘대로 절단할 수 있는 세상이 더 이상 아니기를, 이제라도 그런 자들이 부끄러워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모래알보다 작은 지구상의 한 인간일 뿐이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손 없는 처녀’에 대하여 공감하고 아파한다. 이 이야기를 통해 절단된 여성의 고통과 불편함, 불공정함과 남성들에게 종속된 존재로서의 삶에 대해 들여다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젠더 문제를 떠나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면 조금 더 따뜻하고 살만한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송영림 소설가, 희곡작가, 아동문학가
■ 자료제공: 인간과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