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은 시간이 아니다,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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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은 시간이 아니다, 우리다

0 개 997 수필기행

■ 장 기오 


요즘도 나는 수시로 발 앞꿈치의 굳은살을 면도날로 베어 낸다. 

이렇게 안 하면 발바닥이 아프다.

  

함께 일하는 연출진이라고는 달랑 연출, 조연출 둘 뿐이었던 시절, 조연출은 잡부나 마찬가지였다. 현장 정리에서부터 엑스트라 운영, 여관 잡기, 식사 조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조연출의 몫이었고 현장에서 사고가 나도, 동네 깡패들이 촬영을 방해해도 조연출이 처리해야 했다.

 

추운 겨울날 야외촬영에는 연기자 부르러 다니는 게 일이었다.


연기자들 대부분이 버스 속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밤새도록 촬영 현장과 버스 사이를 수도 없이 뛰어다녀야 했다. 또 스튜디오 녹화 날엔 운동화 끈을 바짝 조여 매고 스튜디오 구석구석을 미친 개 뛰듯 돌아다녀야만 녹화가 제대로 진행되었다.

  

조연출은 연기자들에게도 만만한 존재였다. NG가 나면 무조건 조연출이 큐를 잘못 주어서 그랬다고 둘러댄다. 일반적으로 카메라에 ‘온 에어’ 불이 들어오면 노련한 연기자들은 조연출의 큐가 없어도 스스로 알아서 연기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연기자들은 꼭 조연출의 지시에만 의존한다. 요즘은 FM라디오 주파수를 이용해 서로 교신하지만 당시는 카메라 몸체에 헤드폰을 끼워 지시를 받았다. 한데 카메라가 3대나 되다 보니 이걸 단번에 빼고 끼우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카메라가 흔들려 NG가 나고 큐 주는 시간을 놓쳐 또 NG가 난다. 그러면 연출자에게 혼이 난다.


이런 저런 수모를 견디며 녹화가 끝나고 나면 운동화에 땀이 흥건히 고여 철벅거릴 정도였다. 그 짓을 한 3년 하고 나니 발바닥에 감각이 없어지면서 굳은살이 생겼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조연출 생활을 청산하고 연출로 데뷔하고도 나의 여정은 더욱 고달파졌다. 

 

연출이란 직업은 끊임없이 경쟁을 해야 하는 직업이다. 10년 경력의 연출자나 이제 막 데뷔하는 연출자나 똑같은 입장에서 경쟁한다. 누가 연륜이 많으냐가 아니라 누가 더 잘 만드느냐의 문제다. 방송 후 평가가 좋지 않거나 앞선 프로보다 못하다는 평가가 나오면 죽을 맛이다. 곧바로 만회해야지 이런 현상이 몇번 되풀이 되면 삼류가 되고 만다.

 

데뷔하고 3년 만에 나는 위기를 맞았다. 당시 KBS의 대표 프로그램인 <대하드라마>의 제작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경력도 일천했지만 능력도 부족했다. 그러나 그 호소는 먹혀들지가 않았다. 작가와 뜻도 맞지 않았고 연기자들도 위에서 지정되어서 내려왔다. 당연히 실패했다.


그 후 나는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아이템만을 고집했다. 그 대신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부담도 있었다. 나는 촬영과 편집, 그리고 장소 헌팅으로 한 달에 20일 이상을 바깥에서 보냈다. 그런 열정으로도 늘 아슬아슬했다. 뛰어나지도 그렇다고 뒤처지도 않았다. 고민이 깊어 갔다. 그러던 중 나와 콤비를 이루던 작가 한 사람이 갑자기 집필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났다. 아 그런 길이 있었구나.


목이 말라 왔다.  NYU(New York University) 같은 대학에서 정통 연출이 어떤 것인가를 배우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진 것이 없이 월세 방에서 시작한 우리들이었다. 내가 없으면 아내와 아이들의 생계는 막연해진다. 나는 방황했다. 어느 날 술에 취해 들어왔는데 아내와 아이들이 마루에서 나를 기다리다 지쳐 잠들어 있었다. 아이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고 한 박목월 선생의 시를 낮게 웅얼거리며 자는 아이들을 껴안았다. 홀어머니 밑에서 보낸 불우한 나의 성장기가 겹쳐 왔다.


그날 나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내 꿈을 키워주지 못한 내 가족들을 내가 원망하듯이 저 아이들도 종국에는 나를 원망할 것이다. 그날 나는 밝아 오는 새벽을 울면서 맞았다. 내가 저 아이들의 꿈을 지켜 주어야 한다고, 더 이상 나의 전철을 밟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허망함에 며칠을 두고 심한 몸살을 앓았다.

 

그 대신 나는 나만의 연출패턴을 고집스럽게 지켜 왔다. 처음에는 예술하고 있네, 어쩌고 하면서 비웃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나의 연출 세계를 인정하는 추세로 돌아섰고 자리가 잡히면서 하는 프로마다 평균 이상의 평가를 받아 중견 연출자로서 면모를 갖추어 갔다. 그러나 매 프로마다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으로 인해 나는 평생 위궤양에 시달렸다.

 

아이들의 추억에는 아버지가 없다. 생애에 딱 2번 바닷가를 찾았던 일이 유일하다. 대신 아이들은 깊은 밤, 책상 앞에서 무언가 열심히 일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되살리곤 한다. 집에 와서도 나는 콘티(연출 플랜) 짜는 일로 날밤을 세우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 아버지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우리 아이들은 지금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30여 년을 보내고 나니 내 발바닥의 굳은살은 바위처럼 단단해졌다. 굳은살은 젊은 날, 땀의 상징이고 인생의 옹이다. 한 해의 마지막 볕 좋은 날 나무에 나앉아 한가롭게 면도날로 굳은살을 베어 낸다. 살 한 점, 한 점이 떨어져 나갈 때마다 지난날의 기억들이 하나씩 떠오르고 사라진다. 삶이, 기억이 그렇듯 이 옹이도 언젠가는 엷어지고 사라질 것이다.

 

평생을 무엇을 그리 찾아 헤맸기에 이렇게 두텁게 옹이가 앉은 걸까. 지금은 바삐 돌아다닐 일도, 누가 숨 가쁘게 찾는 일도 없다. 굳은살이 점점 얇아지는 발을 어루만지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쨍하게 차갑고 높아 보였다. 사라지는 것은 시간이 아닐 것이다…… 우리들일 것이다.


■ 장 기오(전 KBS 대PD,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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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대PD, 드라마 제작국장, TV문학관 <금시조>, <홍어>를 비롯하여  대하드라마, 특집드라마 등 총 47편의 드라마를 직접 연출하였다.  제1회 프로듀서상, 제 25회 백상예술대상, 1989년 독일 후트라상, 제10회 상하이 TV페스티발 백목련상 등을 수상, 그 외 다수가 있다. 


<현대수필>로 등단하였으며 수필집 <<나 또한 그대이고 싶다>>, <<누구에게나 마음 속의 강물은 흐른다>>, <<바람되어 가리라>>, <<사라지는 것은 시간이 아니다, 우리다>>그 외 저서로는 <<TV드라마 바로보기, 바로쓰기>>, <<TV드라마 연출론>>, <<장기오의 TV드라마론>> 이 있으며, 문예교양지 <<연인>> 편집고문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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