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그리고 ‘다이아나’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성태용
명사칼럼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김도형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마이클 킴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심혜원
전정훈
Mystery
새움터
멜리사 리
휴람
김준
박기태
Timothy Cho
독자기고

‘시드니’ 그리고 ‘다이아나’

1 3,043 오소영
잠에서 깨일 때마다 이층침대 머리맡 창밖을 내다보면 시커먼 바다. 그 검푸른 물결을 가르고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속을 달리기만 하는 배.

항상 늦잠이 달아 잠뽀인 내가 웬일인지 새벽 일찍 잠이 깨인 것이 그 날의 행운이었다.

저만치 뿌우연 여명속에서 희미하게 육지같은게 보이기 시작했다. 서둘러 시간을 보니 예정된 도착시간에 거의 이르렀다. 드디어‘시드니’에 입항을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창가에 매달렸다.   

예서제서 반딧불처럼 불빛이 빛나더니 괴물처럼 큰 빌딩들이 나타나 바다에서 바라보는 새아침의 도시 분위기가 활기차게 전달되었다. 거대한 ‘시드니’를 한눈에 바라보는 흥분이 시작될 때. 물가에 조가비를 겹쳐놓은듯한 ‘오페라 하우스’가 막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자랑스럽게 반짝이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도 보았고 내항의 작은 선상에서도 보았지만 그 것과는 전혀다른 새로움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물속에서 불쑥 솟아오른 조각 작품일까. 물가에 설치한 무대의 조형물 같기도 하고 8층 높이에서 내려다보니 손에 잡힐듯 한 귀여운 ‘미니어쳐’ 같아 아름다웠다. 배가 달리는대로 모습을 달리하며 색다름을 과시하면서 스크린처럼 시야를 벗어나는 아쉬움을 달랠즈음. 14층 대형 ‘크루즈’가 ‘하버 브릿지’를 거뜬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와~ 크루즈는 이런 재미로 타는구나) 수만가닥의 철주로 엮인듯한 육중한 다리밑을 지나며 탄성이 절로 나왔다.

막상 ‘시드니’에 배가 닿았을 때는 촉촉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더위를 식혀주는 단비라던가. 

아침을 먹으러 12층 식당으로 올라가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넉넉한 시선으로 사위를 둘러보며 마치 정복자의 느긋한 마음을 닮아보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Can you speak English?”

(어? 마귀할멈!) 아이들 만화에 나오는 별나게 굽은 매부리코가 마귀할멈의 상징이듯 첫 인상이 그렇게 느껴지는 서양 할머니였다.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웃음으로 답하고나서 식사를 계속하는데 어디선가 조용히 부르는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도 가늘고 고운 소리에 놀라서 바라보니 일행이 먼저 나가고. 혼자 남은 그 할머니가 내 쪽을 향해서 부르는 노래였다. 깜짝놀래서 나도 모르게 두손을 모아쥐고 기도하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또 한 곡. 내 몸이 공중에 붕 떠서 마치 유영을 하는 기분에 휩싸였다. 그리고 또 한 곡. 무려 세 곡을 부르는데 너무도 감동스러워 눈가가 촉촉해져 왔다. 찌들어가던 내 감성에 맑은 열혼을 불어넣어 주는 것 같아 오싹 소름이 돋는데 가슴은 감전이 된듯 짜릿하게 뜨거워졌다. 그 때 누군가가 다가오더니 그 분에게 반색을 한다. 오늘은 무슨 노래를 부를 것이냐고 물으니까 “오 대니 보이”를 할 것이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할머니. 세상에! 그 유명한 ‘다이아나’ 할머니가 바로 이 분이었구나.

피아노를 치면서 너무도 아름다운 미성으로 노래하는 할머니에 반해서 이번 여행이 값지다고 하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밤마다 6층 홀에서 기다렸었는데. 어쩜 이런 행운이 내게.... 너무도 황홀해서 잘 안되는 영어지만 오늘은 기뻐서 내 생일 해야겠다고 했더니 내 이름을 묻는다. 그리고 ‘Happy birthday to you’를 내 이름을 넣고 불러주는게 아닌가! 오늘이 내 생일이라고 잘못 알아들은 모양이지만 어쨌든 침잠(沈潛)해 있던 건강한 내 영혼을 끌어내 마구 뒤흔들어 놓았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는 손에 들은 찻잔을 보여주었다. 이 ‘티’는 ‘암’ 환자가 마시는 ‘티’라고 하면서 자기의 하반신 어딘가를 가리키며 그 곳에 ‘암’을 앓고 있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꽃가루 ‘티’에 레몬 두쪽을 띄운 차였는데 자기 어머니도  같은 병을 앓아 그 ‘티’를 항상 마셨다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말해. 이 쪽이 오히려 당황했다. 노래로써 모든이의 우상인 그 분도 그러고보니 외로운 영혼끼리의 교감이 필요했던 것일까? 마귀할멈같은 인상을 풍긴 이유도 병색으로 너무 말랐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마음이 아팠다. 젊어 한 때는 오페라 가수로 유명했을지도 모른다. 예술혼을 불태우며 살다가 그도 늙으니 병들어 죽음이 다가오고...

‘오페라 하우스’가 추억을 일깨워 아침의 노래를 불렀을 것이라 짐작을 해 본다. 그 분과 말벗이라도 되어주었으면 옛날 자랑도 듣고 더 좋았을 것을 안타까웠다. 그 분의 삶은 과연 얼마나 남았을까? 이번 여행이 아마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이 연민으로. 쓸쓸한 뒷모습을 지켜봤다.  

그의 노래를 더 듣고싶어 밤마다 기대했지만 또 다시 들을 기회는 없었다. 많은 인파속에서 여러번 먼 발치로 그 분을 보았는데 늘 찻잔을 들고 서성거리는 모습이 불안정하게 보였고 차림새는 보통사람보다 특이하게 원색으로 짙고 어지러웠다. 몸은 비록 병들었지만 예술혼이 담긴 영혼만은 건강하게 남아있어 아직도 노래를 부를 수 있으니 그는 행복한 여자임이 틀림없다. 삶에 지치고 고달픈 사람들에게 기쁨을 선사하고 아름다운 감성으로 행복한 순간을 가지도록 봉사하시는 고령의 ‘다이아나’할머니.

인생은 죽는 그 순간까지 그렇게 열심히 사는 것이라고 교훈을 주시는 ‘다이아나’. 그 분께 감사를 드리며 그 청아한 목소리로 오래오래 노래 부를 수 있도록 나는 그를 위해 기도하련다.

랑랑
누구나 끔을가지면 끔대로 된다고햇죠 ..기대하세요 ...

현재 ‘시드니’ 그리고 ‘다이아나’

댓글 1 | 조회 3,044 | 2012.02.29
잠에서 깨일 때마다 이층침대 머리맡 창밖을 내다보면 시커먼 바다. 그 검푸른 물결을 가르고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속을 달리기만 하는 배. 항상 늦잠이 달아 잠뽀인 … 더보기

Happy new year

댓글 0 | 조회 2,873 | 2012.01.31
2012년. 첫날 새 아침. 현관문을 열고 나서려는데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 “happy new year_” 언제나처… 더보기

12월의 노래

댓글 0 | 조회 3,081 | 2011.12.23
‘하늘을 쳐다보며 사-뿐 귀에다 손을 대보라 구름이 방긋 웃는 소리 고요하게 들린다.’ 밝고 맑은 꿈을 꾸던 어린시절. 푸른풀밭에 누워 드넓… 더보기

호박잎에 싸 보내는 할머니 마음

댓글 1 | 조회 3,209 | 2011.11.23
얼마 전 점심초대를 받아 어느 식당에 갔었다. 한식에 맞는 깔끔한 기본반찬 서너가지와 작은 뚝배기에 걸죽한 강된장이 함께 식탁에 올라왔다. 웬 강된장? 그것을 보… 더보기

그 벗꽃 길, 그리움이 있다

댓글 0 | 조회 3,175 | 2011.10.27
엊그제만 해도 죽은듯이 다소곳하던 헐벗은 벗 나무에 뽀오얀 꽃봉오리들이 툭툭 터져 화사한 꽃을 피워 웃고 있다. 아직은 어려 가녀린 몸매지만 버겁도록 무겁게 꽃짐… 더보기

아름다운 고별

댓글 1 | 조회 3,725 | 2011.09.27
옆집 할머니 ‘엘리자벳’이 갑자기 돌아가셨다."일년 중에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우리들의 추석날. 명절다운 분위기로 조촐하게 잔치가 벌어진 작은… 더보기

‘포우투카와’ 꽃잎 날리던 교정

댓글 0 | 조회 3,194 | 2011.08.24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난 일들 가운데 보람있었던 시간들을 추억하는 것처럼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여러가지 자기 하는 일에 성취감이 곧 보람이겠지만 무엇보다 순… 더보기

차 사랑 할아버지

댓글 0 | 조회 3,171 | 2011.07.26
‘허버트’ 노인이 또 차를 바꿨다. 방궤같이 앙징스럽고 예쁜 신 차다. 그는 언제나 같은 스타일의 차들만 타는 취향임이 틀림없다. 주인을 닮은듯한 아담한 모양이 … 더보기

그 남자의 6. 25

댓글 0 | 조회 3,649 | 2011.06.28
시니어클럽 ‘무지개’에 나오시는 분들 가운데 남자 세 분이 참전용사였음을 이번에 알게 되면서 그 타고나신 천운(天運)이 새삼스럽게 놀랍고 부러웠다. 6. 25가 … 더보기

오월의 그 열기처럼

댓글 0 | 조회 3,054 | 2011.05.25
뜨겁게 달아 오르던 ‘제11대 한인회장’ 후보 세 사람의 열기도 이제 가라 앉았다.그 분들을 지켜보며 진정으로 우리 교민을 대표 할 한 사람을 가리느라 설왕설래 … 더보기

나눔의 기쁨

댓글 0 | 조회 3,366 | 2011.04.28
큼직한 상자에 여러 옷가지들과. 먹을 것이 담긴 봉지들이며. 병들을 차곡차곡 담고. 귀퉁이 빈 공간에는. 치약이며. 비누. 작은 일용품들을 빈틈없이 채워간다. 일… 더보기

호평동에서 온 편지

댓글 0 | 조회 3,727 | 2011.03.23
어린 강아지풀과 노오란 민들레꽃이 얌전하게 말려져 진홍의 카드지 안에서 환하게 나를 반긴다.훌쩍 해를 넘긴 작년. 봄의 소식을 알리며 고국의 땅 한 모퉁이 호평동… 더보기

설 명절에 웬 송편을....

댓글 0 | 조회 3,761 | 2011.02.22
‘젊은이는 희망으로 살고 늙은이는 추억으로 산다던가’ 구정을 맞아 귀성길이 막힌다느니 원활하다느니 수만리 밖에서 나와 무관한 사정을 듣고 보며. 그러나 그 곳에 … 더보기

타다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

댓글 1 | 조회 3,968 | 2011.01.26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 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정확히 70년대의 아주 옛날 노래를 요즈음 새삼스럽게 웅얼거리는 입버릇이 된 것은 어쩐 일일까? 별로… 더보기

2010년 11월에는...

댓글 0 | 조회 3,413 | 2010.12.22
수도 없이 바뀌고 반복되는 세월속에서. 내 인생에 십일월만큼 특별한 달은 또다시 없는 것 같다. 눈부시게 흰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행복하게 웃던 십일월 어느날… 더보기

띵호아! 사랑의 도시락

댓글 0 | 조회 4,439 | 2010.11.24
그들이 알고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중국인들은 대개 칙칙하고 깔끔스럽지가 않다고 생각 해 왔다. 그러기에 화사하고 밝은 인상의 남자를 분명 한국인이라고 단정짓고 “안… 더보기

감사합니다

댓글 0 | 조회 3,660 | 2010.10.28
“또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 수 있게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나이무게가 더해지면서 마치 죽음에서 깨어나듯 다시 시작되는 아침이 늘 새롭고 고마워 저절로 나오는 감사… 더보기

젊음이 흘리고 간 낭만을 줍다

댓글 0 | 조회 3,776 | 2010.09.29
감색 양복에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단추와 띠 장식이며. 거기에 검은차양에 흰 모자까지.... 그 날은 퀸스트리트 거리가. 그들의 멋진 정복의 물결로 그 어느 때 보… 더보기

고목에 피운 무지개꽃을 아시나요?

댓글 0 | 조회 3,838 | 2010.08.25
“푸 -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고국의 향수를 물씬 자아내는 멋드러진 화음에 찐한 감동과 함께 온몸으로 짜릿한 전율이 온다. 곱고 화사한 한… 더보기

고국의 가을 속으로 달리다(Ⅲ)

댓글 0 | 조회 3,887 | 2010.07.28
조(鳥)도를 구경하고 다시 ‘진도’로 돌아왔을 때. ‘진도’의 자랑꺼리로 너무도 유명한 토속주 ‘홍주’를 한병 샀다. 조선시대 ‘지초주(芝草酒)’라 하여 최고 진… 더보기

고국의 가을 속으로 달리다(Ⅱ)

댓글 0 | 조회 3,363 | 2010.06.22
진도대교 앞. 자그마한 모텔에 여장을 풀었다. 목포, 강진, 두륜산을 거쳐 숨가쁘게 달려온 하루였다. 예향의 도시답게 밤바람에 실려 온 묵향이 창 틈으로 스며드는… 더보기

고국의 가을 속으로 달리다(Ⅰ)

댓글 1 | 조회 3,736 | 2010.05.25
낙엽 구르는 바람 소리에 잠을 잃은밤, 고국은 지금 꽃 잔치로 한창 법석을 떠는 계절이잖은가, 하지만 이 밤. 나는 지난 가을 그 곳에서 보낸 시간들 속에서 특별… 더보기

여기는 지금 해 질 무렵의 오클랜드 시티

댓글 0 | 조회 4,037 | 2010.04.27
무공해 초록 나라에 사는 내가 부러워 배 아파 죽겠다는 친구, 당신에게 또 충격을 드려 미안합니다. 주체할 수 없는 이 감동을 혼자 하기엔 가슴이 터질 것 같아 … 더보기

부자(富子)가 싫다는 사람도 있네

댓글 0 | 조회 3,831 | 2010.03.23
"돈은 역 효과를 낳는다. 행복이 오는 것을 막는다." 부(富)가 불행의 근원이라며 억만장자 전 재산을 기부한 사람이 있다. 마흔 일곱 살의 오스트리아 남자, 죽… 더보기

마음밭에 심기운 꽃

댓글 0 | 조회 3,401 | 2010.02.23
산자와 죽은자가 함께 동거한다는 부산의 어느 언덕바지, 일제 강점기 때 묘소였던 자리라던가, 그런 그대로 옹기 종기 집들이 생기고 동네가 되었다. 작은 뜰 한 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