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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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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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아하는 화가의 전시전이 있어 다녀왔다. 화가의 이름은 들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로, 대표작으로는 <12도궁: Zodiac>이나 <백일몽: Reverie> 등이 있다. 뉴질랜드에 살면서 오클랜드 미술관에 들락거리는 것을 밥 먹듯 하던 내게 이런 미술 전시회는 조금 비싼 돈을 주고서라도 볼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특히 내가 가장 애호하는 화가라면야.
 
전시회 위치가 예술의 전당이라는 것만 머릿속에 담아놓고 무작정 출발했다. 아침부터 비가 오리란 것을 알고 있었기에 믿음직한 우산을 칼처럼 옆에 차고, 잔뜩 부풀어오른 마음으로. 쾌적한 지하철에서 한 시간 가량 버틴 후 나온 바깥은 여름이 그렇듯 후덥지근하고 더웠다. 팔다리까지 축축 늘어질 정도로. 거기에 때마침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니 금상첨화.

나는 속으로 욕설을 중얼거리면서 우산을 폈다. 

아무리 우산이 있다곤 해도 바닥에 고인 웅덩이까지 그것이 막아주진 않는 법이라, 발 아래를 잘 살피지 않고 걷기 일쑤인 내 신발은 금방 흠뻑 젖고 말았다. 양말을 신고 신을 신은 채 발을 적셔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그건 정말 최악의 기분 중 하나다. 소름이 찌르르 끼치는 것을 느끼며 나는 계속해서 무작정 걸었다. 중간에 길을 잃을 뻔도 했지만, 마침 앞에 가는 사람이 있어 슬금슬금 뒤를 밟아 따라갔다 (내성적인 내 성격에 차마 말을 걸 엄두는 나지 않았다). 긴 생머리에 검정 우산을 들고 있었다는 것만이 기억난다.

우연찮게도, 그 사람 또한 나와 같은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티켓을 노린 격한 경쟁심에 시달리며 서둘러 올라갔다 (전시관은 3층이었다).

다행히 티켓을 가장 먼저 산 것은 나였고, 가장 먼저 입장한 것도 나였다. 그런 사소한 것에서조차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에 미묘함 또한 느끼며 입장했다.

전시장 내부는 어두웠고, 작품을 눈에 띄게 하기 위해 작은 조명들이 하나하나 위에만 켜져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작품 한 점 한 점 모두의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꺼낸 순간, 뒤에서 낭랑하지만 단호한 목소리가 울렸다.

“죄송하지만 사진 촬영은 안 되세요.”

전시관 안내인은 친절하게 웃는 얼굴로, 그러나 확실히 칼 같은 표정으로 내 촬영 시도를 가로막았다. 쳇, 좋다 말았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사랑해 마지 않던 그림들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는 기쁨은 억누르기 어려웠다. 비록 조명 상태가 좋지 않아 색이 바래 보이기는 했어도 항상 인터넷이나 책을 통해서만 보던 그림이, 실제로 내 앞에 있는 것이다! 멋진 노래를 라이브로 들었을 때처럼, 그 감명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작품 하나 하나를 볼 때마다 아낌없이 감탄사를 터뜨렸지만, 특히 나를 벅차게 한 것은 화가의 습작 스케치들이었다. 완성작 이전의, 작가가 거쳤을 모든 소소하고 예술적인 고민들과 아이디어의 시도들. 무하의 영감을 돕기 위해 옷을 벗고 포즈를 취한 모델들의 흑백 사진이 인상 깊었는데, 나는 무하 본인도 이따금씩 스스로의 작품 모델 역할을 했다는 데에 조금 놀랐다. 이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떤 작품들에선 그저 감탄 밖에 나오지 않았고 - 그 어마어마한 디테일! 정성 들여 그림에 직접 씌워진 금박과 은박! 컴퓨터 등의 기구도 없던 시절에 손으로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완벽에 가까운 좌우 대칭의 패턴들! - 어떤 작품들에선 신기함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물론 무하의 작품들에 아름다움, 미에의 집착 외에 내가 별달리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은 베어 있지 않았지만 그것도 개인마다 다른 것이 아닐까. 마지막에 전시장을 나오면서 든 생각은 그런 것이었다.

전시장을 나오니, 또 비가 추적추적. 나는 끙, 하는 소릴 내며 다시 우산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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