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끝자락에 도착한 한국은 매우 후덥지근하고 더웠다.
입국 심사를 마친 후 가방을 찾기 위해 걸어가면서 가장 먼저 느낀 감상은 그것이었다. 생각보다 더 덥네. 하긴, 한국에 마지막으로 왔던 것이 2년쯤 전이었으니 한국의 기후에 대한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해도 무리는 아니었으리라. 윗입술 위, 이마, 콧잔등에 자꾸만 맺히는 엷은 땀을 닦으며 걸어갔다. 전화기의 통화 기능은 물론 먹통이었지만 대신 와이파이는 된다는 것에 과연 세계 최강 인터넷 국가, 라고 감탄하면서.
한참을 기다린 끝에 가방을 모두 찾은 후 - 내 몸통의 두 배쯤 되는 짙은 보라색 수트 케이스다. 브랜드는 모르지만, 아마도 이 색깔을 영어론 가지색(aubergine)이라고 하지 싶다 - 카트에 담고 걸어갔다. 인천 공항의 카트는 뉴질랜드 공항의 카트와는 다르게 손잡이를 아래로 꺾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아서 꽤나 다루기 힘들다. 혼자서 그렇게 밀고 당기고 씨름하며 나와보니, 아빠가 나와 계셨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깜짝 놀랐다.
“어? 아빠! 여기서 뭐해? 아무도 안 나온댔는데?”
그 말에 멋쩍게 웃는 아버지. 나는 눈을 굴렸다. 어이구, 그럼 그렇지.
카트는 아빠에게 맡기고, 나는 한동안 공항을 돌아다녔다. 공항은 내가 좋아하는 장소들 중 하나다. 공항과 연계된 느낌 때문만이 아니라 - 이제 곧 먼 곳으로, 아마도 영원히, 떠난다는 그 기대감과 두려움이 섞인 긴장 - 공항 건물들 그 자체 때문이다. 안에 무수히 자리 잡은 가게들 하며 최대한 여행객들의 편의를 위해 설계된 시설들까지.
특히 인천 공항은 편의성만이 아니라 세련됨, 화려함까지도 극에 달한 아주 우아한 장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대단한 성과이다. 온갖 종류의 사람들로 극성스러우리만치 북적거리면서도 그 특유의 분위기를 유지해내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친절한 직원들, 끝이 안 보이는 타일 바닥, 대리석 건물에서 나는 차가운 먼지와 공기 냄새에 나는 상쾌함을 느꼈다. 그것은 아마도 비행기에서 느꼈던 피로감의 해소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아, 이제야 하늘과 땅 사이에 뜬 어중간한 부유감에서 해방되었구나, 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적 불안정 상태를 나는 매우 싫어한다. 그런 면에선 나 또한 여러 모로‘극단적이고’‘화끈한’한국 사람이라고 해도 옳으리라.
세계 최고의 공항인가 하는 상을 여러 번 받은 곳답게, 인천 국제 공항은 과연 아름다웠다. 아마도 조금 더 집에서 거리가 가까웠다면 여가 시간을 떼울 곳으로는 단연코 이 곳만을 고집하지 않았을까. 그도 그럴 것이, 온갖 종류의 상점들 덕분에 이미 공항은 공항뿐만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쇼핑몰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뉴질랜드의 웨스트필드도 이것에는 필적하지 못할 것이다.
공항에서 더 머물면서 물건들도 구경하고, 쇼핑도 하고 싶었건만 더운 날씨와 기다림에 (내가 예상보다 늦게 나왔으므로) 짜증이 날 대로 난 아빠는 곧장 가자며 나를 이끌었다.
“왜 이렇게 서둘러? 무슨 일 있어?”
“작은 집 (작은 아빠네를 우린 이렇게 부른다. 작은 집, 큰집)에 다들 모여 계셔. 기다리고 있으니까 빨리 가자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잘 계시지.”
“작은 집 식구들은?”
“직접 가서 봐.”
그렇게 바삐 가야 해서 안타까웠지만, 현실은 예의 그런 것이니까, 라고 중얼거리면서 나오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나를 향해 눈을 굴리는 아빠를 보자 새삼스레 아, 한국이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단 것은 논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