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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가도 즐거운 장소 중엔 영화관이 있다.
동네의 비교적 작은 영화관도, 시골 구석의 박물관 같은 시네마도, 최신형 기계들과 대형 스크린을 갖춘 번화가의 영화관도 모두 좋아한다. 영화관들에는 각기 고유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위치와 규모에 상관 없이. 오히려 그런 점들이야말로 이 엔터테인먼트 센터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징에 부합되기 때문이리라.
다른 사람과 가든, 혼자서 들어서든 영화관은 언제나 반갑다. 심지어는 혼자일 때 더욱 마음 놓고 편하게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과 함께 오면 무슨 영화를 볼지, 팝콘과 콜라를 사야 할지 아니면 아이스크림을 사는 게 더 나을지를 가지고 다투게 되는 둥의 사소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영화 외에 신경 써야 할 존재가 하나 더 늘었다는 부담감 때문이다. 혼자가 아닐 때면, 눈 앞에서 움직이는 스크린 속 존재들에 집중하면서 또 동시에 그 집중력을 쪼개어 옆의 사람을 곁눈질 하게 된다. 과연 이 사람도 영화를 즐기고 있는가, 나만큼 잘 보고 있는가.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는가. 나는 저 배우가 마음에 드는데, 이 사람도 나와 똑같이 저 배우에게 ‘꽂혔을까.’ 왠지 모르게 이런 점들이 걸려서 안절부절 못 하게 된다. 그리고 극장을 나오게 되면 꼭 정말 재미 있었어, 난 저 캐릭터가 상당히 좋던데, 너는 어때? 라고 묻게 되고, 혹여 나와 다른 답이 나오면 이해가 가지 않아 갸우뚱거린다.
일종의 불안증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그만큼 난 영화를 볼 때면 집중하고, 빠져든다.
주로 보는 장르는 물론 블록버스터 액션물이다. 종종 디즈니나 드림웍스 등의 만화도 끼어들고 (그건 주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보러 가는 편이지만, 혼자서도 자주 보곤 한다). 좋아하는 책 기반의 영화라면 특히 꼭 보러 가는 편인데, 보고 나서는 반드시 이 점이 고증이 틀렸느니, 저 배우랑 이 캐릭터는 영 싱크로율이 안 맞느니 하며 입방아를 찧는다.
반대로, 한 번 마음에 본 영화는 쉽사리 잊지를 못한다. 그래서 극장에 몇 번이고 보러 가게 된다. 이 점에 대해 주변인들은 혀를 내두른 바 있는데, 하긴 그런 것도 이해는 간다. 세상에 누가 <인셉션>을 일곱 번 (일반 시네마에서 네 번, 아이맥스에서 세 번), <트랜스포머>를 다섯 번, <호빗>을 네 번이나 볼까 (그것도 두 번은 3D로). 그 외에도 두세 번만 본 영화는 매우 많다. 혹자는 나의 이런 버릇을 두고 ‘차라리 그 돈이면 DVD 나올 때까지 기다려서 사고 말지’라고 빈정거리기도 했지만, 그 말엔 나도 정중하게 이의를 제기하고픈 마음이 있다. DVD를 구입해 집에서 보는 것과, 은막에 영사기로 투사되는 필름을 보는 것과는 크나큰 차이가 있다. 집의 편안함에서 동떨어진 낯설고 팝콘 냄새 섞인 공기의 스릴과, 조금은 딱딱한 좌석의 긴장감. 이따금씩 앞 좌석에선 아기가 울고 뒷좌석에선 다른 관람객이 발로 등받이를 걷어차대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그 두근거림이 DVD와 홈 시어터엔 없는 것이다.
삶보다 큰, 또는 실물보다도 더 커다란 bigger than life 영웅들의 모습이.
가끔씩 볼 영화가 밀리고 시간은 남아돌 때면 ‘극장 릴레이’를 감행하곤 한다. 하루에 될 수 있는 한 많은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것인데, 보통 세 편이면 한나절이 순식간에 가버린다. 영화를 볼 때면 거의 지치지 않는 집중력과 체력을 자랑하는 나이기에 그 정도는 문제없이 소화할 수 있다. 물론 그 격렬한(?) 여가 활동을 함께 즐겨줄 사람은 없을 테니 혼자서라도.
은막의 마력이 내게 끼치는 영향, 이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