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사람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어떤 플레이버(flavour) 보다도 단박에 자신을 사로잡는, 무슨 맛을 제일 좋아하세요? 라고 물어보면 제일 먼저 떠올라 바로 대답으로 나오는 그 것. 슈퍼마켓에라도 가게 되면 혹시 그 향이 들어간 음료나 간식은 없는지 늘 찾게 되고, 그리고 혹시라도 발견하게 되면 매우 기쁘고, 굳이 살 필요가 없더라도 한참을 서서 바라보게 되는 것.
나한테도 그런 약점 같은 향이 있다. 바로 엘더플라워(elderflower)다.
한글로는 딱총나무 꽃이라고 하는 것 같지만, 그 이름은 그다지 예쁘지도 않을 뿐더러 영문 명칭에 더 익숙해진 내게는 엘더플라워라는 이름이 훨씬 편하다. 아무래도 ‘딱총나무’와 ‘엘더플라워’는 천지차이니까. 하지만 왜 굳이 이 꽃이 피는 나무를 딱총나무라고 표현했는지는 이해가 간다.
엘더플라워는 아주 작고 새하얀 꽃이 무더기로 피는데, 이 꽃을 따서 시럽을
만들거나 와인을 담근다고 한다. 제철에 꽃을 따서 깨끗이 씻은 후, 설탕과 물과 기타 향료들을 섞어 푹 담과 두는 것이다. 그렇게 두면 향이 액체로 옮겨가 진한 음료가 완성된다. 주로 여름에 많이 마신다고 하던데, 아마도 이 꽃이 주로 여름에 피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그렇지 않아도 엘더플라워 특유의 상큼하고 꽃답지 않은 향은 겨울보단 더운 날씨에 더 잘 어울리지만.
새콤한 향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 내가 왜 유독 이 향에 집착하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언젠가 읽었던 단편 소설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그 소설의 주인공은 애인과, 그리고 여러 명의 아이들과 함께 동거하는데, 어느 날 그는 식구들을 이끌고 장을 보러 갔다가 문득 엘더플라워 시럽을 보고 우뚝 멈춰서 버린다. 그것이 상기시키는 어린 시절의 달고 쓴 추억과, 여전히 엘더플라워 향이 나는 주스를 마시는 현재의 행복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을 사려고 손을 뻗지만, 키가 작은 탓에 닿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새 뒤에서 살며시 나타난 애인이 그것을 대신 집어 들어 카트에 넣어주고 미소를 보낸다 (이 소설의 제목과 작가의 이름은 안타깝게도 기억해 낼 수 없었다).
사실 그 전까진 엘더플라워라는 것의 존재조차 몰랐던 내가, 이 소설을 읽고 받은 충격은 꽤 신선한 것이었다. 세상에, 꽃을 먹는단 말이에요? 그것도 음료수로 만들어서? 물론 우리나라에도 화전처럼 꽃을 식용하는 문화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로맨틱한 저의가 내포된 꽃 음료라니, 당장이라도 마셔보고 싶었다. 어린 시절의 추억과 지금의 애정을 이어주는 고리! 꽃을 통째로 먹는 것과는 다른, 오로지 순수한 향만을 뽑아내 즐기는 것! 달콤한 향수를 마시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 낭만적이지 않은가. 게다가, 꽃은 일반적으로 먹는 식용품이 아닌 만큼 더더욱 시도해 보고 싶었다.
그날 부로 열심히 엘더플라워 향이 나는 시럽을 찾아보았건만, 별 소득은 없었다. 언제나 충실한 구글에게 물어본 결과로는 뉴질랜드에서도 그것을 판매한다고 했었지만, 찾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주류업소에도 가보고, 슈퍼마켓에도 가 보았지만 없었다. 나는 무척 실망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발견은 의외의 장소에서 찾아오는 법. 처음으로 내가 엘더플라워 시럽을 발견한 건 다름아닌 시티의 수입품 전문 업체였다. 비록 300밀리리터 남짓한 작은 용량에 이십 달러를 호가하는 고가의 물건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기꺼이 구입했다. 그리고 집으로 가져와 물에 타서 마셔보았다. 생각했던 것보단 덜 달콤했지만, 그런 경험이 없는 나조차 아련한 추억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익숙해지는 것, 그래서 늘 똑같은 것만 고집하게 되는 것. 엘더(elder)라는 말답게, 엘더플라워는 지속성의 맛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