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연금술사>의 작가인 아라카와 히로무는 자신의 단행본에서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국립 도서관을 가지고 싶다고 말했다. “책! 원 없이 읽어보자!”라고 외치는 귀여운 젖소 그림도 덧붙여서. 그리고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에서 벨의 해피 엔딩보다 야수의 궁전에 있던 도서관이 더 탐났음을 부정할 수 없는 나 또한 이 만화가의 소원에 깊이 공감하는 바이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들 중 하나가 책이다. 보기만 해도 즐거워지는 장소 중 하나도 도서관이나 서점이고, 돈이 생겼을 경우 사고 싶은 것 목록에 꼭 들어가는 것도 책이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인생을 살 만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책이라고 하겠다.
글을 쓰는 이에게라면 당연하겠지만, 책은 중요하다. 물론 문학도이거나 애서가가 아니더라도 책이 줄 수 있는 혜택들과 지식들을 무시할 순 없을 것이다. 단순히 정보뿐만이 아니라, 존재하고 존재했었고 존재하지 않는 무수한 이들의 인생을, 또는 그들 삶의 몇 자락 나날들을 대신 살아볼 수 있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특히 나처럼 바깥을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책은 없이 살래야 그럴 순 없는 필수품이다.
나는 이따금씩 책을 펼친 채 거기에 얼굴을 묻어 큼큼거리고 냄새를 맡곤 한다. 특이하지만, 나만 그러는 건 아니리라 믿는다 (심지어 외국에는 책 냄새가 나는 향수도 있다!). 겹겹이 쌓인 종이와 잉크, 그리고 그것이 또 한데 묶여 하나의 서적으로 압축되어 보관되는 동안 ‘발효’되는 냄새. 정말 발효라는 말 이상으로 적절한 표현은 없지 싶다. 공립 도서관 같은 곳에서 간혹 발견할 수 있는 누렇게 뜬 페이지에서 나는 쾌쾌한 냄새도, 다른 사람들은 질색하지만 나는 좋아한다. 늙은 책에겐 늙은 책 나름대로의 향기가 있는 법이다.
그와는 반대로 새 책에선 상쾌하지만 어딘가 빈 듯한 냄새가 난다. 으레 향수는 세 가지 층의 향기가 난다고 한다. 그 중 세 번째, 향기의 중심인 핵심 향이야말로 향수의 본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하는데, 새 책에선 그 핵심이 빠진 듯한 느낌이 풍긴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순수한 종이와 잉크의 냄새는 충분히 만족감을 주지만.
페이퍼백보다는 하드커버를 선호하는 편이라 되도록이면 살 때마다 후자를 사려고 하는데 가슴 아프게도 하드커버는 평범한 책보다 값이 훨씬 비싸다. 페이퍼백이 20달러 남짓할 때 똑 같은 책인데도 두툼한 하드커버는 40불이 훌쩍 넘어가는 식으로. 나 같이 유독 하드커버를 고집하는 매니아에겐 억울할 지경이다. 어느 정도의 가격 인상이야 물론 어쩔 수 없다 싶지만, 가끔 이건 정말 너무 한다 싶을 정도로 폭리를 취하는 사람들이 있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사기는 하면서도.
내가 하드커버를 고집하는 이유는 바로 그 내구성이다. 단순한 종이로 이루어진 페이퍼백보다 훨씬 튼튼하고 단단한 그 견고함은 더없이 믿음직스럽다. 한 손으로 들고 다니며 읽기엔 조금 무겁다 싶은 그 묵직함도 든든하게만 느껴질 정도로 (두꺼운 하드커버 책에 발등을 찧었거나, 그 모서리에 맞아본 사람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 것이다).
언젠가 지인에게서 이미 갖고 있던 소설의 하드커버 버전을 선물 받고 뛸 듯이 기뻐했던 적이 있다. 선물도 선물이었지만, 그 때 그가 책과 함께 써서 보낸 편지의 내용이 더 기억에 남아 있다. [하드커버 책엔 뭔가 특별함이 있는 것 같아…… ‘오랫동안 존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느낌.] 동감한다. 하드커버 책에는 어딘가, 매우 의지가 되는 영속성이 있다.
글을 쓰다가 생각난 김에 위의 책을 꺼내 냄새를 맡아보았다. 오래된 책만이 풍길 수 있는, 따뜻하고 묵은 냄새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