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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깥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즐기지 않는다. 내향성인 것이다. 여러모로 훌륭한 히키코모리의 기질을 타고 났다며 빈정거릴 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하고 싶은 것을 혼자 하는 편을 선호한다.
그런 면에선 난 어쩌면 작가의 클리셰적인 소양을 한 가지쯤은 갖추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성향이 그렇다 보니, 내가 돌아다니는 장소 또한 굉장히 한정되어 있다. 집. 학교. 때로는 영화관과 서점들, DVD와 음악 CD 판매점. 웨어하우스. 카운트다운. 열 손가락에 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자주 가는 곳들이 정해져 있는 만큼 목적지로 가기 위해 사용하는 길 또한 늘 똑같다. 그렇기에 나는 오클랜드에서 십 년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퀸 스트리트 너머를 가 본 적이 없다.
길을 잃는 게 무서워서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훨씬 더 단순하다. 나는 낯선 것을 싫어하는 것이다. 늘 안전하고 편안한 울타리 내에서만 양처럼 머물려 한다. 속으로는 늘 일반성을 거스르고 거부하는 인간을 지양하고는 있지만 낯선 물은 무섭다. 뼈아픈 모순이다.
익숙함. 나는 익숙하다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모험이 나를 얼마나 불안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장황설은 잊어버리고서라도, 어찌되었건 나는 외출을 자주 하지 않고, 한다 해도 아주 폭 좁은 범위 내에서만 ‘출몰한다’.
익숙한 길을 걸을 때마다 나를 놀라게 하는 건, 늘 똑 같은 루트를 이용하는데도 그곳에서 마주치는 면식인들이 지극히 적다는 사실이다. 물론 내가 사람의 얼굴을 외우고 이름을 기억하는 데에 재주가 없단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그런 것을 고려하더라도 아는 사람과 마주친 기억이 신기하리만치 적다. 도시는 그렇다. 모두가 바쁘고, 인도 위를 사람들이 썰물과 밀물처럼 왔다 갔다 한다. 그리고 나도 그 파도에 자연스럽게 휩쓸려 일부가 되고 하나가 된다.
거의 매일 나와 같은 길을, 같은 시간대에 쓰는 사람들도 많을 테지만, 만약 있다 해도 우리는 서로를 알지 못하리라. 얼굴을 보았어도 알아보지 못하고 이름과 연결시키지 못할 테지. 익명성과 무관심이 합쳐지면 놀라운 효과를 발하는 법이니까.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무심코 흠칫 전율하고 만다. 우리는 대체, 어디까지 무심해질 수 있는 걸까.
이런 기묘한 이야기는 차치하고, 얼마 전 내가 발견한 놀라운 것에 대해 말하고 싶다.
평소 나는 방과후 퀸 스트리트로 내려와 반드시 큰 길가만을 걷곤 했다. 이유는 상기한 대로, 그곳이 익숙하고 친숙해서였다. 도시 내에서 가장 바글거리는 그 거리 외의 다른 길은 나는 알지도 못했고, 별로 사용하고 싶단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무슨 변덕에서인지 나는 생각보다 일찍 돌아서는 바람에 퀸 스트리트가 아닌 하이 스트리트로 들어서게 되었다. 어쩌면 딴 생각을 하느라 엉뚱한 곳으로 들어섰을 가능성도 부정할 순 없겠다 (아니, 기실 꽤 높을 것이다). 어쨌든, 정신을 차려보니 생뚱맞은 거리에 서 있었다.
곧바로 공황 상태가 일어날 뻔 했지만, 어찌되었건 이곳도 퀸 스트리트의 바로 위, 쭉 가면 아는 길이 나오리라 믿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던 중 알게 된 것이다. 사실 이 거리에 얼마나 멋진 가게들이 많은지를! 특히, 중심가의 대형 서점 보더스가 닫은 이후 불만스럽던 내게, 하이 스트리트의 다양한 책을 취급하고 있는 어느 서점은 유레카를 외치고 싶어질 정도였다. 그 외에도 맛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와 쥬얼리 판매점 등, 이곳은 신선한 충격의 보고였다. 마치 그 존재를 모르고 지나쳤던 보물 상자처럼.
지금은, 모르는 길이라도 조금은 자신감을 품고 한 걸음 내디딜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을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