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는 아메리카 대륙을 찾은 컬럼버스 일행에 의해 유럽으로 처음 전파되었고, 그 후 동·서양의 무역경로를 통해서 한국에 들어왔다. 외국에서 들어 온 고추는 한국의 김치, 장류 등과 어우러지면서 이제 없어서는 아니 되는 전통 향신료로 자리를 잡았다. 혹자는 우리만 고추의 매운 맛을 즐기는 줄 알고 있지만 세계 곳곳에서 우리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매운 맛에 열광한다.
고추의 매운 성분 캡사이시노이드(Capsaicinoids)는 우리 몸에서 감각기관을 자극하게 되고, 이 자극으로 뇌에서는 흥분전달물질을 만들게 한다. 이 물질의 분비로 우리는 상쾌한 감정을 맛보게 된다. 새벽 달리기를 할 때 느끼게 되는 생쾌함,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웠을 때 느끼는 기분을 고추의 매운 맛이 만들어 낸다. 그래서 우리는 매워 매워 하면서 자꾸만 매운 고추를 찾게 된다.
한국의 여름철 장마는 고추를 재배하는 데 불리한 조건이다. 장마철 물 빠짐이 좋지 않은 고추밭에서는 병 발생이 흔하다. 또한 비 내리는 동안에 딴 고추는 말리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예전에 고추가 흉년이 든 해는 비싼 고춧가루로 인해 김치가 금치 대접을 받기도 했으며, 시중에는 가짜 고춧가루가 유통되는 웃지못할 사례도 생겼다. 그러면 김치는 언제부터 이렇게 붉어지게 되었는가?
1990년대 중국에서 값싼 고추가 수입되면서 음식점의 김치는 시뻘게 졌다. 중국산 고추는 우리 고추 보다 더 붉었다. 고추가 건조되는 동안의 기상조건이 우리 보다 유리한 결과로, 음식에 붉은 빛깔을 내는 되는 그만이었다. 그래서 고추 방앗간에서 중국산 고추와 우리 고추를 섞어서 더 좋은 색깔을 내게 되었다. 이때부터 우리의 음식은 더 먹음직 스런 붉은 빛깔을 내게 되었고, 또한 더 매워졌다. 게다가 현대인의 스트레스로 보다 화끈한 음식을 찾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가공업체에서는 앞다투어 더 매운맛으로 판매전략을 잡아가게 되었다.
고추는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농민들에게는 귀중한 환금작물이다. 좁은 면적에서 고추를 재배하여 비교적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일반 서민들은 어느 음식재료 보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고추를 식탁에 올릴 수 있다. 이 고추의 매운 맛 덕분에 어려운 일상에서 한끼의 식사를 즐거운 기분으로 마친다. 지금 당신이 매운 맛에 푹 빠져 있다면 아마도 당신은 서민임에 틀림이 없으리라.
고추가 매운 성분을 만들는 것은 자신의 씨앗을 온전하게 다음 세대로 전파하기 위해서다. 고추의 씨앗을 전파하는 데 유리한 새들은 고추를 먹을 수 있으나, 쥐 같은 설치류 동물은 이 매운 맛으로 먹지 않는다. 고추의 원산지는 남아메리카 볼리비아 산악지대인데, 고추가 북아메리카 멕시코 지역으로 옮겨지는 데 새들이 큰 역할을 했다. 새가 고추를 먹으면 고추씨는 배설물과 함께 나무 밑으로 떨어지고, 이 것이 다시 발아하면서 새로운 고추가 자란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고추는 대륙을 횡단하였다. 설치류 동물은 매운 맛 때문에 고추를 먹을 수 없는 데, 포유류 인간은 이 매운 맛에서 짜릿한 쾌감을 느낀다.
우리는 이제 고추에 매운 맛이 빠져 있지만, 매운 맛이 지나치면 다른 맛을 느낄 겨를이 없다. 우리 선인들은 고추의 매운 맛은 사람의 성격을 변하게 만든다고 경계해 왔다. 그리고 사람마다 모두 매운 맛을 탐하는 게 아니다. 우리 집에서도 두 사람은 매운 맛에 빠져 있지만, 다른 두 사람은 순한매운 맛을 찾는다. 매운 맛이 홍수를 이루는 세상이지만, 좀 더 다양한 매운 맛을 즐기는 게 어떨는지?
고춧가루는 콩나물국과 낙지볶음에 잘 어울린다. 김밥에 고춧가루를 뿌려 제공하는 음식점을 알고 있다. 처음 느끼는 선입관 보다는 상쾌한 맛이 난다. 고춧가루도 후추가루처럼 요리가 끝난 음식에 뿌려서 사용해 보라. 보다 적은 양의 고춧가루로 상큼한 매운 맛을 느끼리라. 고추장에서는 고춧가루가 발효되어 보다 깊은 맛을 낸다. 또한 고추는 붉은 풋과일로 즐기는 게 최상이다. 고추는 매운 맛과 함께 당분이 높아 달고 매운 맛이 가히 일품이다. 게다가 붉은 풋고추는 비타민C의 보고다.
고추의 매운 맛은 우리 음식문화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러나 개인의 매운 맛 취향은 사뭇 다르다. 그러니 개인 취향에 맞도록 즐겨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