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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 산하
복사꽃 지는 어느 봄날
강가에서 모닥불을 피워 밥을 지었다.
쌀이 익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저녁노을 아래 밥이 뜸 들어갈 무렵
강 건너 논으로 물이 천천히 들어가고 있었다.
문득 네팔의 한 화장터가 떠올랐다.
‘퍽!’
‘퍽!’
여기저기 불길 속으로 머리들이 터졌다.
사방으로 흩어진 뇌수를 개들이 핥아 먹었고
아이들은 붉은 잿더미를 파헤쳐 금붙이를 찾았다.
인간이 재로 바뀌는 건 두 시간이면 충분하지만
가난한 집의 시신들은 장작 살 돈이 부족해
절반만 태운 채 강물에 버려지기도 했다.
그들은 언제나 머리를 가장 먼저 불태운 다음
마지막으로 두 발을 태웠다.
나는 한동안 생각을 지탱한 머리와
세상을 지탱한 발을 비교하며
삶의 무게를 저울질하다 재처럼 풀썩이고 말았다.
인간이 어떤 것의 마지막에 이른다는 것
그 지점에 도달해서야 비로소
먼지의 무게를 재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것
밥이 뜸 들어가는 저녁마다 난 여전히
시를 짓듯 죄를 지었고
죄를 짓듯 시를 지었다.
오늘따라 논물이 강물보다 더욱 깊어가는 것도
단지 먼 길을 돌아온 세월 탓만은 아니리라.
♣ 이 산하 : 시집으로 <<천둥 같은 그리움으로>, <<불심검문시대>>, <<한라산>>. 소설 <<양철북>>, 산사기행집<<적멸보궁 가는 길>>, <<피었으므로 진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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