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없다!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송하연
새움터
동진
이동온
멜리사 리
조병철
정윤성
김지향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시간이 없다!

0 개 2,424 코리아포스트
일본의 거장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은 자신이 꾸었던 꿈을 소재로 '꿈(こんな 夢を 見た)'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8편의 단편 영화로 이루어진 '꿈'은 저마다 인상적인데,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 반추되는 것은 빈센트 반 고흐 이야기다.

반 고흐의 그림 전시장에 한 남자가 나타난다. 그는 그림 앞을 왔다갔다 하다가 갑자기 화폭 속으로 쑥 들어간다(나는 움찔했고), 그림은 실사가 되어 움직인다(구로자와의 천재성에 등줄기가 오싹했다). 아를 지방의 돌 다리 위로 마차가 지나가고, 다리 아래에서는 빨래하는 아낙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다.

“반 고흐라는 사람을 만나려면---?”

“다리 건너 들녘으로 가보슈.”

‘고흐는 미쳤어. 조심해야 될거유’라며 깔깔거리는 아낙들을 뒤로 하고 남자는 고흐를 찾아 이곳저곳을 헤맨다. 마침내 남자는 고흐를 발견한다. 고흐는 황금빛이 실크 타래처럼 풀어져 내리는 들판에 서서 안절부절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서둘러야 해! 시간이 없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은 조금 밖에 안 남았어.”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간은 짧고, 중천에서 미끄러져 내려 산 밑으로 툭 빠져 버리는 시간은 더없이 짧다는 것을 고흐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성난 망아지처럼 들판을 겅중거렸다. 성스러운 태양의 황금빛이 너무 빨리 사그라져서 화가 난 고흐, 잡아 둘 수도 없는 태양 때문에 하늘에 대고 핏대를 올리는 고흐. 그가 화폭에 태양의 가닥들을 꿈틀꿈틀 잡아 놓은 것은 다름 아닌 가장 좋은 시간들, 꿈 같은 시간들을 끈적한 물감 속에라도 가둬 두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인간의 평균 수명이 90이 될 날도 멀지 않았다지만, 90세를 산들 여한없이 '충분한 시간'일까? 2백살을 살아도 시간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생명의 유한성은 항상 부족함과 아쉬움을 느끼게 하므로. 그렇다고 알 수도 없는 억겁의 세월 동안 영생한다면? 하루살이가 백년을 사는 것 만큼이나 우리의 존재가치는 무의미해질 것이다.

 
지난 주말, U씨는 정원에 핀 '상사화(相思花)'를 꺾어 손수 꽃다발을 만들어 내 코 밑에 들이 밀었다. 잎이 다 지고 난 다음 대궁이 올라오고 외롭게 꽃이 피어난다는 상사화. 상사화의 향기는 달콤 쌉싸름하다. 벌 나비를 유혹하기 위해 달큰한 향내를 피워야겠지만, 사랑의 쓸쓸함을, 인생의 쓴 맛을 아는 터라 상사화는 쓴 내음을 어쩌지 못하고 게워내고 있다. 꽃을 뜯어 먹어보진 않았다. 달콤 쌉싸름한 것은 미각이지 후각이 아니지 않냐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이들에겐 이렇게 어쭙잖은 변명을 드리고 싶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인체의 오감이 서로 합쳐져서 공감각적으로 변해가는 것이라고. 언제부터인가 코로도 맛이, 맛으로도 슬픔이, 눈으로도 소리가 느껴지고, 귀로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때는 오감(五感)의 고유한 역할이 함께 뭉뚱그려져 내 몸의 기(氣)와 변죽이 맞아 한꺼번에 폭발해버릴 때도 있다.

우주의 섭리와 기가 한꺼번에 느껴지는 그 시간에, 고흐는 귀를 잘랐다. 고흐가 귀를 자른 사건에 대해선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본질로 들어가면 가해자는 '시간'이라고 나는 심증을 굳힌다. 고흐는 그림에 자신의 생명줄을 걸어놓고 후회할 시간 조차도 아까워 붓질만 해댔다. 어쩌다가 생명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아앙-, 시간이 없다!' 울었다.

상사화를 식탁에서 거실로, 화장실로 옮겨 놓으면서 나는 조바심을 냈다. 상사화가 향기를 피우는 시간은 너무 짧아서, 태양이 이즈러질까봐 안절부절 못하는 고흐처럼. 3,4일만에 상사화는 시들어 갔다. 물을 매일 갈아주었는데도 너무 빨리---한 여름밤의 꿈처럼 사라져 버린 상사화, 그 향기---.

고흐는 살아 생전 800여편의 유화와 700점 이상의 데생을 그렸다. 그러나 살아 생전, 단 한편의 그림만이(ㅠㅠ) 4백 프랑에 팔렸다. 그림은 맘대로 되지 않고, 기왕 그린 그림은 창고에 처박혀 있고, 가난과 절망은 찰거머리처럼 늘어 붙고, 여자들은 속을 썩이다가 떠나고, 시간은 고문관처럼 고흐를 옥죄어 왔다. 그래도 고흐는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동생 테오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겨울이 지독하게 추우면 여름이 오든 말든 상관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냉혹한 날씨는 결국 끝나게 되어 있고 화창한 아침이 다시 찾아오면 바람이 바뀌면서 해빙기가 올 것이다.>

살기가 폭폭해서 한숨이 절로 쉬어진다는 요즘. 어렵다 어렵다 한들 고흐만 하겠는가? 희망을 잃고 절망에 빠져 있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다!” 태양의 성스러운 황금색은 잠시 후에 사라지므로.

절망과 후회의 시간 마저 아까워하던 고흐는 37세의 어느날 ‘까마귀 나는 밀밭’에서 권총으로 자신의 심장을 쏘았다. 심장박동도 시간도 태양도 모두 멈췄다!

ⓒ 뉴질랜드 코리아포스트(http://www.koreapost.co.nz),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unner's High

댓글 1 | 조회 2,543 | 2009.02.10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겨울날에는 먹을 것이 귀하기 마련이다. 과일도 야채도 해산물도---. 그래서 동물들은 겨울이 오기 전에 잔뜩 먹고 새로운 먹거리가 돋아나는 … 더보기

Angry Birds

댓글 4 | 조회 2,541 | 2012.04.24
시인 타고르는 한국을 ‘동방의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 칭송하였다. 한국이 정적으로 묘사돼 못마땅해 하는 이도 있지만, 떠오르는 해처럼 동방… 더보기

[379] 샴 트윈(Siamese Twin)의 비극

댓글 0 | 조회 2,531 | 2008.04.22
아주 오래 전에, 그러니까 한 20년쯤이나 되었을까, 나는 신문을 읽다가 쇠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충격에 빠졌다. 1811년, 당시 태국의 이름은 '샴(sia… 더보기

이방인

댓글 1 | 조회 2,522 | 2009.10.27
카뮈의 '이방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주인공 뫼르소는 동료의 싸움에 휘말려 불량배 한 명을 사살하게 된다. 뫼르소는 법정에서 '태양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 더보기

[346] 천국을 한 병씩 나눠 드립니다

댓글 1 | 조회 2,515 | 2006.12.11
시인 바이런이 말했던가. ‘와인과 모짜르트와 책이 있는 곳이 천국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세계적 와인 수출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이곳 뉴질랜드가 천국임에 틀림없다.우… 더보기

[359] 언 발에 오줌 누기

댓글 1 | 조회 2,510 | 2007.06.25
중국에서 온 이웃집 새댁이 햇살이 내리 쬐는 벽에 몸을 기대고 하염없이 서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웃으며 햇살이 따뜻하다고 말했다. 사연인즉 전기요금… 더보기

베짱이에 관한 오해

댓글 1 | 조회 2,488 | 2009.07.15
뉴질랜드 경제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6월 26일, 정부 발표에 따르면 올 일분기(3월31까지) 실업률이 5%에 육박했다.국내 총생산(GDP)도 전 분기 대비 … 더보기

[369] 영혼의 지팡이(Ⅰ)-마두금 연주를 듣다

댓글 0 | 조회 2,481 | 2007.11.27
거짓말처럼, 어미 낙타의 눈에서는 닭똥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리고 아기 낙타를 품에 들이고 젖을 물렸다. 며칠 전, 어미 낙타는 새끼를 낳았었다. 오랜 시… 더보기

Ball Boy

댓글 1 | 조회 2,477 | 2009.11.10
봄인데 전혀 봄날 같지 않은 날씨군요. 식구들이 온돌 매트에 등 바닥을 붙이고 좀처럼 일어나지를 않네요. 따끈한 생강차에 꿀을 한 술씩 타 먹인 후 등 떠밀어서 … 더보기

[343] 식물의 사생활(2)---넌 어느 별에서 왔니?

댓글 1 | 조회 2,452 | 2006.10.24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ET를 떠올려본다. 눈이 얼굴의 전체를 차지할 만큼 크고 주름투성이인 ET가 긴 손가락을 내밀어 인간의 손가락과 조우하는 순간, 지구인들은… 더보기

[373] 무진기행(霧津紀行)

댓글 0 | 조회 2,426 | 2008.01.30
무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Ⅰ. 스무살 무렵,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을 만났다. 주인공 윤희중, 그는 산업화가 막 시작된 1960년대의 전형적 인물이다. … 더보기
Now

현재 시간이 없다!

댓글 0 | 조회 2,425 | 2009.03.10
일본의 거장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은 자신이 꾸었던 꿈을 소재로 '꿈(こんな 夢を 見た)'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8편의 단편 영화로 이루어진 '꿈'은 저마다 인상… 더보기

[377] 나는 걷는다

댓글 1 | 조회 2,407 | 2008.03.26
기차가 얼마나 게으름을 피웠던지,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할머니는 보따리를 이고 들고 앞장섰고, 나는 무섬증에 솜털이 보소송 일어나서 그 뒤를 … 더보기

당신을 희망의 메신저로 임명합니다

댓글 3 | 조회 2,403 | 2012.06.12
---- 코리아 포스트 창간 20주년에 부쳐 지구 밖 6천Km 상공에서 찍은 우주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지구는 진애(塵埃)에 불과했지요. 마치 햇살 좋은 날… 더보기

[374] 남 섬에서 만난 세 남자

댓글 0 | 조회 2,397 | 2008.08.13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머리카락, 호방한 웃음, 그가 오른 산 만큼이나 우뚝한 콧날---뉴질랜드 지폐 5달러짜리에 인쇄된 남자, 에드먼드 힐러리경이다. 그는 1953… 더보기

측은지심이 으뜸

댓글 0 | 조회 2,392 | 2008.11.25
나의 친정 엄마는 '불쌍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교통 사고로 아들을 앞세워 보낸 외삼촌도 불쌍해 죽겠고, 천식으로 꼼짝 못하고 누워 있는데 개미새끼 한 마… 더보기

산골짜기 불빛

댓글 0 | 조회 2,378 | 2008.12.23
나는 지리산 골짜기로 토꼈습니다. 비속어를 사용해 죄송하지만 가끔은 비속어 한 마디에 내 영혼이 카페인이라도 들이킨 듯 반짝 빛납니다. 내 방 앞을 흐르는 강물은… 더보기

[368] 하버브리지

댓글 0 | 조회 2,365 | 2007.11.12
오클랜드 하버브리지의 안전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2006 베카 엔지니어링의 보고서는 클립온(바깥 상하행 2개 차선)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Transit … 더보기

[348] 향기(香氣)를 찾아서 - 기억(Ⅰ)

댓글 1 | 조회 2,363 | 2007.01.15
향기는 언제나 내 주변에 가득하다. 바람 따라 허공의 이곳 저곳을 떠돌기도 하고 가라앉아 있기도 하다가 소용돌이 치다가 내 코 속으로 기어드는 것이다. 우연히, … 더보기

[363] 아! 버나드 쇼

댓글 0 | 조회 2,362 | 2007.08.28
간절한 소원이 하나 있다. 아일랜드 태생의 작가인 죠지 버나드 쇼를 꼭 한 번 만나는 일이다. 깡마른 몸에 희고 긴 수염, 지팡이가 트래이드 마크인 쇼. 형형한 … 더보기

누가 더 똑똑할까?

댓글 5 | 조회 2,361 | 2011.09.13
내 친구 농장에는 염소가 두 마리 있다. 수놈은 염식이, 암놈은 염순이다. “염식아, 염순아아---!”여기저기 둘러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들판. 퍼져나가는 친… 더보기

[382] 행복한 밥상을 위한 투쟁 (Ⅲ)

댓글 0 | 조회 2,356 | 2008.06.10
세계 제3차 대전은 식량 전쟁이다. 대한민국은 그 전쟁 중에 이미 핵폭탄을 두어 방 맞았다. 미국산 쇠고기로 한방 맞고, 5월 1일, 미국산 유전자 변형(GM)옥… 더보기

좋은 일, 나쁜 일, 이상한 일

댓글 0 | 조회 2,349 | 2012.09.25
수십 년 영화를 만들었고, 거장이라 불렸지만 영화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고백했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김기덕 감독도 ‘아리랑’에서 &lsq… 더보기

[376] Sparkling과 100% Pure

댓글 1 | 조회 2,340 | 2008.03.11
한국 관광 홍보 영상 '코리아 스파클링'이 1월 31일, 세계 3대 영상제인 '뉴욕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양방언씨의 모던 한 가야금 연주에 전통과 현대… 더보기

길 위에서 만나다

댓글 0 | 조회 2,335 | 2008.12.10
잘 살고 있어? 헤어진 옛 애인이 전화를 걸어와 괜스레 안부를 물으면 여자는 '그저 그래' 라고 대답하는 샹송이 있다. 슬픔이 촉촉히 베어 있는 음성으로 노래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