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암탉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성태용
명사칼럼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김도형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마이클 킴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조성현
전정훈
Mystery
새움터
멜리사 리
휴람
김준
박기태
Timothy Cho
독자기고

늙은 암탉

1 3,160 왕하지




더운 날씨에 내가 데크에 나가 바람이라도 쏘이고 있으면 우리 집 개는 네다리 쭉 뻗고 잔디밭에 누워 있다가 고개를 슬쩍 들고는 나를 보는 둥 마는 둥 한다. 마치 소가 닭 보듯 이... 내가 ‘이리와~’라고 소리를 지르면 마지못해 슬금슬금 걸어오는데 내 앞에 와서는 ‘왜 불렀어요?’ 용건이 뭐냐고 물어보는 표정이다. ‘앉아~’ 앉으라는 말에 별 볼일이 없다는 듯 개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평소에 들어가지도 않는 개집에 들어가는 것은 귀찮게 말 걸지 말라는 뜻이다. 혼자 조용히 있고 싶단다.

정말 맛있는 거라도 준다면 우리 집 개는 말을 잘 듣는다. 앉으라면 앉고 발을 내 놓으라면 양쪽 발을 다 내 놓고... 내가 술안주로 잘 먹는 양념된 닭 날개라던가, 비계가 잔뜩 붙어있는 돼지고기라던가, 이런 걸 주지도 않을 바에야 말도 시키지 말라고 한다. 내가 모자를 쓰고 운동화를 신으면 그때는 꼬리를 흔든다. 닭장에 가거나 산책을 하거나 좌우간 돌아다니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쫄랑쫄랑 따라 나선다.

닭장에 따라가면 암탉들한테는 으르렁 거리며 쫓아다니고 수탉이 달려오면 도망가기 바쁘다. 작년만 해도 개가 수탉을 이겼었다. 병아리 때부터 괴롭혔으니 개만 보면 수탉은 도망 다니는데 위급할 때는 훨훨 날아 사람 키보다도 높은 철망을 넘어 다닌다. 개가 닭 날개의 능력을 발휘시키는 순간인 것이다.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이 닭들을 보고 감탄을 많이 했었다.

“어쩌면 닭들이 저렇게 착해요, 마당에도 안 오고 텃밭에도 안가고 아래 풀밭에서 얌전하게 풀만 뜯어먹고 있으니... 우리도 닭을 키우고 싶네요.”

“우리 집 개를 훈련시켰어요. 닭들이 오면 쫓아버리라고, 집 근처엔 얼씬도 못해요.”

“어머나~ 개가 아주 똑똑하게 생겼네, 아이고 예뻐라.~”

그렇게 똑똑한 개라고 칭찬도 받았는데 요즘은 수탉만 보면 도망 다니는 개털이 되어 버렸다. 수탉이 커서 암탉들과 짝짓기를 시작하고부터는 암탉의 비명소리만 들어도 머리털을 세우며 쫓아가는데 개는 줄행랑치기 바쁘다.

늙은 흰 닭이 있었다. 붉었던 벼슬은 퇴색되어 쳐지고 눈가에 백태가 끼고 걸음도 제대로 못 걷고 먹이도 삼키지 못한다. 물만 조금씩 먹는데 며칠 안가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러고 보니 황색 닭 2마리도 무척 늙어 있었다. 그동안 수탉이 시원치 않아 몇 년 동안 병아리를 못 깠으니 닭들이 제법 나이가 들었다. 다행이 작년에 겨우 깐 2마리의 병아리 중 한 마리가 수탉이었던 것이다.

늙은 황색 닭 한 마리가 알둥지에서 꼬꼬꼬 거리는 것으로 보아 알을 품는 모양이었다. 다 늙어가지고 알을 품을 수 있을까? 비실거리면서 3주일 동안 알을 품어 병아리를 깔 수 있을까 걱정되기도 하지만 일단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며칠 후 흰 닭은 두 다리를 쭉 뻗고 죽었는데 그 옆에 황색 닭이 물끄러미 쳐다보며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이제 내 차례야,’ 삶을 완전 포기한 모습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싱싱한 편이었는데, 며칠 후 황색 닭도 죽었다. 흰 닭이 묻힌 과일나무 밑에 나란히 묻어 주었다.

알을 품고 있던 또 하나의 늙은 황색 닭은 병아리를 7마리나 깠다. 병아리를 품지 않았으면 이미 죽었을지 모르는데... 똑같이 늙은 황색 닭이 한 마리는 죽고 한 마리는 살았다는 것이다. 적어도 병아리들이 다 자랄 때까지는 살아야 할 의무가 생긴 것이다.

힘이 빠지고 모든 게 귀찮은 건 닭이나 개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는데 나 또한 의욕이 많이 상실되어 있는 느낌이다. 재미있는 글이 써지질 않고 한바탕 웃을 수 있는 그 즐거움이란 없다. 하긴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것 같은 생활 속에서 있는 것 없는 것 다 끄집어내어 많이 짜 내긴 짜냈지, 수채화 물감 짜 내듯이...


▷ 그동안 미숙한 제 글을 보아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리며 새해와 더불어 행복하고 좋은 일만 가득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hey
이글이 마지막 글이라니, 정말 아쉽습니다, 열렬한 애독자 입니다. 그동안의 많은 글들을 모아 책을 만들면 어떨까요? 그동안 수고 많으셨읍니다. 당분간 쉬쉬고 다시 글 쓰시기를 기대합니다.  애독자

[380] 김장을 하시나요?

댓글 0 | 조회 2,891 | 2008.05.13
가을이 깊어 가고 초겨울이 다가오면 '김장 하셨나요?'가 인사말이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주 들을 수 있었던 소리였다. 그러나 이제는 바쁜 … 더보기

[378] 사돈집 사과 먹는 법

댓글 0 | 조회 3,508 | 2008.04.08
사과의 계절이 다가온다. 그런데, 아직도 사과를 깎아서 드십니까? 한국에서 들여진 습관이 잘 바뀌지 않아서 그럴 수 밖에 없다면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떨런지… 더보기

[376] 여름철 과일과 채소

댓글 0 | 조회 4,306 | 2008.03.11
여름은 과일과 열매채소의 계절이다. 기온이 높고 낮 시간이 길며 햇빛이 강렬해서 모든 식물들이 왕성하게 자라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이러한 풍요로운 열매들이 있기… 더보기

[374] 유기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의 이해

댓글 0 | 조회 2,716 | 2008.02.12
여러분은 유기 농산물에 대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요? 배부른 사람들의 사치스런 행각으로 보나요? 아니면, 사보지만 왠지 값이 비싸고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생… 더보기

[372] 한국인이 찾는 순한 매운 맛

댓글 0 | 조회 3,037 | 2008.01.15
해외여행을 다녀와서는 얼큰한 것이 먹고 싶다고 한다. 김치 고추장 매운탕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과연 한국인이 찾는 이 얼큰한 맛은 무엇일까? 누구나 쉽게 짐작이… 더보기

[370] 푸드 마일(Food Miles)

댓글 0 | 조회 3,113 | 2007.12.11
지난해 미국의 대형 유통업체인 월마트에서 유기 농산물 취급을 늘린다고 발표함에 따라 유기 농산물에 대한 논쟁이 뜨거워 졌다. 그래서 시사주간지 타임(Time, 2… 더보기

[368] 서양채소와 향신채 허브

댓글 0 | 조회 3,597 | 2007.11.13
서양채소, 한국채소의 분류는 기준이 모호한 면이 있다. 서양채소는 원산지가 서양으로 주로 서양인들이 즐겨 먹는 채소류로 정의하는 것이 문안할 것이다. 세계 여행이… 더보기

[366] 채소와 과일 색깔로 즐겨라

댓글 0 | 조회 2,690 | 2007.10.09
빨간 사과, 노란 레몬, 자주색 포도 소리만 들어도 입에 침이 고인다. 여태껏 이들 원예 농산물은 비타민과 미네랄의 영양원으로만 강조해 왔었다. 그런데 이제는 섬… 더보기

[364] 원예작물의 품질과 제철

댓글 0 | 조회 2,668 | 2007.09.26
사과, 배, 감 같은 우리에게 낯익은 과일에서부터 브로콜리 비트 같은 낯선 채소까지 넘쳐 나는 마트에서 어떠한 기준으로 쇼핑을 하나요? 이제는 시설재배가 일반화되… 더보기
Now

현재 늙은 암탉

댓글 1 | 조회 3,161 | 2013.01.30
더운 날씨에 내가 데크에 나가 바람이라도 쏘이고 있으면 우리 집 개는 네다리 쭉 뻗고 잔디밭에 누워 있다가 고개를 슬쩍 들고는 나를 보는 둥 마는 둥 한다. 마치… 더보기

새해인데 인사는 드려야지요

댓글 0 | 조회 3,161 | 2013.01.15
뉴질랜드 시골에 살다보니 새해가 되었어도 인사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해가 바뀌고 올해 환갑을 맞는 친구가 몇이 있고 손자를 본 친구가 누군지... 밥들은… 더보기

할아버지 하나 잘 사귀면...

댓글 4 | 조회 3,492 | 2012.12.11
엘렌 할아버지가 배낚시를 가자고 했다. 날씨가 샤워링이라는데 비가 오면 비를 피할 곳도 없는 작은 보트인데 찝찝했다. 어쨌거나 비가 왕창 쏟아지면 감기 걸릴 확률… 더보기

그림속의 레즈비언

댓글 2 | 조회 3,310 | 2012.11.28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찾아오는 여자가 있다. 초롱초롱한 눈가에 흰 분칠을 하고 머리를 곱게 빗어 넘기고 야들야들한 몸매에 나를 만나면 몸 둘 곳을 모르고 … 더보기

걸어서 중국집까지....

댓글 0 | 조회 3,585 | 2012.11.13
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큰 딸이 대학교 전체수석에다가 교사자격증까지 땄다고 한다. “야 대단하군, 정말 자네를 안 닮았어. 우리 딸내미도 수석이지...… 더보기

양고기와 아보카도

댓글 2 | 조회 4,250 | 2012.10.24
어느 날 우리 집 길목에 앞집 양 한마리가 돌담을 넘어 길가에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우두머리 양이 돌담을 넘자 다른 양들도 따라 돌담을 넘어 풀을 뜯어먹었다. … 더보기

말 많은 동네...

댓글 1 | 조회 3,572 | 2012.10.09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길목의 작은 집 하나는 몇 년 사이에 집주인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 맨 처음 노부부가 1헥타르 정도의 땅을 사서 게라지 하우스 같은 작은 집… 더보기

뒤집기 한판

댓글 0 | 조회 2,715 | 2012.09.25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했었는데 잘 퇴원했다고 여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오빠, 원무부장님도 병실에 다녀가시고 의사들도 참 잘해줬어요. 그리고 병원비가 조… 더보기

괜히 왔다간다

댓글 2 | 조회 4,463 | 2012.09.12
“뉴질랜드에 사는 둘째며느리인데요. 우리 어머니 좀 바꿔주세요.” 아내가 한국의 경로당으로 전화를 하니까 전화를 받은 할머니는 어머니가 다리… 더보기

그해 겨울은 정말 추웠지

댓글 1 | 조회 3,118 | 2012.08.28
내가 설계실 기사로 있을 때 신입직원이 들어왔는데 입사하자마자 직책이 대리였다. 경력자도 아니고 실력자도 아닌데 오자마자 대리라니 기가 찼다. 들리는 얘기로는 고… 더보기

두목의 형님

댓글 1 | 조회 3,263 | 2012.08.14
쉬는 날이라고는 일요일뿐인 아내는 성당에 다녀온 후 냉장고 청소며 집안청소를 하느라고 부산을 떤다. 아, 내가 좀 도와주어야 하는데... 청소를 하고 싶은 마음은… 더보기

전쟁과 평화

댓글 0 | 조회 3,183 | 2012.07.24
어느덧 햇병아리들이 자라서 큰 닭이 됐는데 수탉이 2마리였다. 꽁지도 제법 그럴듯하게 커지자 수탉이라고 암탉들을 곁눈질 하는데 수탉들은 서로 마주치기만 하면 눈에… 더보기

그래도 약속은 지켜야한다

댓글 1 | 조회 3,322 | 2012.07.10
몇 년 전, 딸내미가 건축회사에 다닐 때 급료를 받으면 다 써버린다고 아내는 항상 걱정을 하였다. “여보 쟤도 이제 돈을 좀 모아야 되는데 월급 받는 … 더보기

진작 내 쫓을 것을...

댓글 1 | 조회 3,815 | 2012.06.26
“당신 어쩌면 그럴 수가 있어? 나한테 말 한마디 없이...” 조카들의 학비를 한번 씩 내준 것을 안 아내가 눈을 흘기며 따지고 들었다. &… 더보기

스무 살 처녀귀신

댓글 0 | 조회 4,246 | 2012.06.12
코리아 포스트가 벌써 스무 살 청년이 되었다. 뉴질랜드라는 타국에서 이렇게 잘 자랐으니 여간 대견스러운 게 아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내가 뉴질랜… 더보기

잉꼬부부

댓글 4 | 조회 4,289 | 2012.05.22
아내가 일하는 가게에 수많은 단골손님 중 키위커플이 있는데 그 커플은 항상 같이 붙어 다니는 잉꼬부부라 하였다. 그 부부의 이름은 마이클과 메리인데 바닷가에 살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