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6] 아버지와 만년필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성태용
명사칼럼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김도형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마이클 킴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조성현
전정훈
Mystery
새움터
멜리사 리
휴람
김준
박기태
Timothy Cho
독자기고

[366] 아버지와 만년필

0 개 4,008 KoreaTimes
  '있을 때 잘 해'라는 드라마도 나오고 노래도 나왔다.

  미국계 회사원인 큰 애는 여유가 있는데 E회사에 다니는 둘째는 "싫컷 잠 좀 자 봤으면-"이 소원일 정도란다. 한국의 저녁 9시쯤 전화해도 회사에 있는 경우가 많으니 "왜 자주 전화 안 하느냐?" "맘 놓고 밥 먹을 시간도 없는데 어떻게 자주 전화해요?"하고 늘 싸운다.

  회사에서 제법 인정 받아 상품기획과 해외업무를 맡아 걸핏하면 영국, 독일, 홍콩, 중국으
로 출장 다니고 전국을 활개치고 다니니 아빠가 선망했던 바로 그런 생활이었다.

  그런데 이번 추석 때였다. 몇 일 전부터 계획도 얘기하고 '선물 뭐 해 드릴까요?' 신나서 연락할 텐데 추석 당일에야 힘 없는 소리로 전화가 왔다. "너 어떻게 된 거야? 아프칸에서 왔냐, 왜 이렇게 힘이 없어?" "휴가 시작 후 이틀을 잠만 잤어요. 바빠서 요번엔 용돈만 조금 보냈어요. 죄송해요."  영국, 홍콩 다녀오자마자 부산가서 프리젠테이션하고는 녹초가 되었단다. "넌 내 딸이 아니고 회사 딸 같다. 그러다 국제 미아 되는 것 아니냐"고 퉁명스럽게 얘기했는데 오늘 아침에야 "아빠가 이해 못하면 누가 이해해 주겠느냐?"로 끝을 맺는 긴 메일이 왔다. 처음엔 '연약한 막내가 글로벌 시대의 주인공답게 세계를 누비고 다닌다는 사실'만으로도 대견했고, 별로 내세울 게 없었던 나로서는 틈만 나면 자랑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달나라만큼이나 멀리 떨어진 것 같고 자꾸만 허전한 생각이 든다.
  
  80년대 후반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내 만년필을 잠깐 쓰시더니 "참 좋구나."하신다.  서독에 갔을 때 샀었는데 메모가 일상화된 내게는 중요한 것이었지만 "아버지 쓰세요."했더니 그래도 되겠냐면서 얼른 가져 가신다. 평소 물건에 대한 욕심이 거의 없으셨는데 그 날은 이상하게 무척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얼마 후 아버지는 여행 중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셨고 그대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러니 그 만년필이 마지막 선물이 된 셈이다. 나는 철이 든 후로 아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항상 여유가 없으면서도 형제들 뒷바라지 하시거나 친구들 빚 보증서시는 일 등이 잦았다. 그래서 늘 가난하게 살면서 어머니를 너무 고생시켰고 나도 학창시절부터 자수성가 하다시피 했다.

  수 없이 한숨과 눈물로 지새던 어머니를 보면서 굳게 결심을 한 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살아가면서 절대로 빚을 지지도 않고, 빚을 주지도 않겠다. 둘째로 나 자신과 가족을 돌보지 못한 채 남을 먼저 돕지는 않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아버지 나이에 가까워 갈수록 위의 두 가지는 흔들리기도 하고 약간씩 변하기도 했지만 비교적 관리를 잘 한 셈이다. 그리고는 돌아가실 때까지 아버지께 별로 잘 대해 드리지 못했다. 말년에 집 한 채 변변히 갖지 못했던 아버지를 볼 때마다 답답하기도 하고 미움도 쉽게 가시지를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떠오를 때마다 늘 가슴속 한 곳에 못이 박히는 아픔을 느낀다. 그 하찮은 만년필-그것도 쓰던 것을 받고서 그렇게 기뻐하셨던 아버지, 그 때쯤은 그래도 먹고 살만 했고 그 보다는 훨씬 값진 선물들을 해 드릴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조금만 더 내 생활에 안정을 기한 뒤에 아버님을 편히 모셔야겠다'는 어리석은 의식이 깔려 있었기 때문인데 '미리 알았더라면'하는 아쉬움이 여지없이 남는다.

  가끔씩 텅 빈 애들 방에 들어가 둘러 보기도 하고 침대에 누워 보기도 한다. "아빠, 저 없어도 이방 치우거나 다른 사람이 쓰면 안 돼요. 오클랜드에 이런 멋진 내방이 있다는 게 큰 위안이 되어요."라던 말 때문에 아무리 어려워도 애들 방을 없애지는 못한다. 지난 연말에는 두 녀석이 나란히 휴가를 내어 모처럼 온 식구가 모여 가족 사진도 찍고, Pokeno 근처의 2번 국도에 있는 'HOTEL DUVIN'의 불란서식 레스토랑을 찾아 가기도 했다. 뉴질랜드 촌놈들이 이제 척척 와인도 시키고 음식도 그럴듯하게 주문하는 걸 보고 한편으론 엄마 닮아 다행이구나 싶기도 했다. 나는 아직도 서양 식당에 가면 주눅 들기만 하는데.

  한국의 두 배쯤 커 보이는 추석 보름달을 보면서 또 아버지 생각이 났다. 만년필 하나를 놓고 그렇게 기뻐하셨던 아버지께 왜 그럴듯한 양복하나 때 맞춰 해 드리지 못했을까! 하지만 드라마 속의 이야기처럼 아버지는 결코 기다려 주시지 않았다.  

  한편으로 애들이 보고 싶다. 이럴 줄 '미리 알았더라면' 그냥 오클랜드에서 살게 할 것을!

  그렇지만 '미리 알았으면'이라는 가정은 모두 신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리고 애들에게 더 자주 전화 안 한다고, 메일 안 보낸다고 섭섭한 마음이 들 때면 아버지가 생각나면서 스스로 움츠러 든다. "넌 아버지께 그렇게도 섭섭하게 해 드렸으면서?"

[371] 초록마을에서 희망을 본다

댓글 0 | 조회 4,157 | 2007.12.20
희망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평범한 곳에서 찾는 소박한 소망일 뿐이다. 지난 11월 9일 아침 TV3에서는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이 'Rachaelray'라… 더보기

[370] 그린 크리스마스(Green Christmas)

댓글 0 | 조회 3,709 | 2007.12.11
이민 와서 제일 속상한 것 중의 하나가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커녕 한 여름에 맞는 크리스마스는 이질감을 더해 주거나… 더보기

[369] 그림이 좋아야 한다

댓글 0 | 조회 3,600 | 2007.11.27
멋진 광경이나 사랑하는 연인들의 모습을 보면 흔히 "그림이 좋다"고들 말한다. <주한미국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 몇 차례 초대 받아 간 적이 있었다. 한 번… 더보기

[368] 바람난 물개들

댓글 0 | 조회 4,268 | 2007.11.12
바람난 물개들은 수영에는 관심이 없다. 한국 사람들은 어디서나 모임을 잘 만든다. 출신지나 출신학교에 따라, 동호인끼리 등. 나 역시 여러 모임에 속해 있었고 특… 더보기

[367] 왜 우리는 튀어야만 하는가

댓글 0 | 조회 3,724 | 2007.10.24
튀기 위해 뛰는 사람들-이는 여지 없이 한국인들이다. 지난 주 교민지들은 '노스쇼어타임즈 여론광장'에 한국인에 대한 온갖 비하성 발언이 계속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더보기

현재 [366] 아버지와 만년필

댓글 0 | 조회 4,009 | 2007.10.09
'있을 때 잘 해'라는 드라마도 나오고 노래도 나왔다. 미국계 회사원인 큰 애는 여유가 있는데 E회사에 다니는 둘째는 "싫컷 잠 좀 자 봤으면-"이 소원일 정도란… 더보기

[365] 민중의 지팡이

댓글 0 | 조회 3,689 | 2007.09.25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 노릇을 못하면 '민중의 곰팡이'가 되기 쉽다. <다운타운의 '웨스트필드 쇼핑센터'에는 공식 출입문이 여섯개 있다. 그중 서쪽으로 나… 더보기

[364] 병천순대

댓글 0 | 조회 4,133 | 2007.09.11
WHO(세계보건기구)가 2007년 5월 18일 발표한 '세계보건통계 2007'에서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78.5세(남75세, 여82세)로 나타나 세계 194개국 가… 더보기

[363] 여자와 뉴질랜드

댓글 0 | 조회 4,173 | 2007.08.27
여자는 그 이름만으로도 아름답다. 누군가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고 설파했다. 또 누군가는 말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은 개구리 뛰는 방향과 여자의 마… 더보기

[362] 아픔은 슬픔을 낳고

댓글 0 | 조회 3,832 | 2007.08.14
- 큐미오의 미스터리 - 이민와서 제일 만나지 말아야 할 상대는 질병이다. <작년 3월 어깨와 팔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큐미오의 F라는 중국인이 침을 잘 놓… 더보기

[361] 현지화는 괴로워

댓글 0 | 조회 3,535 | 2007.07.24
모두들 현지화를 부르짖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다. 1620년 영국과 네덜란드를 떠난 102 명의 Puritan(청교도)들은 Mayflower호를 타고 66일간의 긴… 더보기

[360] 적성(適性)과 적응(適應) 그리고 조화(調和)

댓글 0 | 조회 3,307 | 2007.07.09
IQ가 사람마다 다르듯 적성(適性:Aptitude) 또한 천차만별이다. 그렇게 사뭇 다른 사람들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사회를 만든다. 나는 살아 오면서 비교적 재… 더보기

[359] 조용한 아침의 나라

댓글 0 | 조회 3,600 | 2007.06.25
학창 시절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요, '조용한 아침의 나라'였다"고 배웠다. 그런데 지금 보면 예의지국은 모르겠으나 조용한 나라는 결코 아니었던 것 같다.… 더보기

[358] 돈이 많다고 다 부자는 아니다

댓글 0 | 조회 3,437 | 2007.06.12
돈이 너무 없어도 불쌍하지만, 돈이 있는데도 쓸 줄 모르는 사람 또한 불쌍하다. < 20대 초반에 논산에서 단 돈 5천원으로 상경한 P라는 친구가 있었다. … 더보기

[357] 정(情)과 의리(義理)

댓글 0 | 조회 3,639 | 2007.05.23
한국인의 특장점은 '정(情)과 의리(義理)' 였다. 현지화에 방해 되고 알량한 영어나마 퇴보할까봐 한국 TV를 전혀 보지 않았었는데 최근에는 한국인의 정서와 정체… 더보기

[356] ‘키다리 아저씨’의 긴 다리

댓글 0 | 조회 3,180 | 2007.05.08
긴다리는 저력이었다. '진 웹스터(Jean Webster)’ 의 ‘키다리 아저씨Daddy-Long-Legs)’ 는 1912년 작품이다. 그녀가 30대 중반에 쓴 … 더보기

[355] 이런 분 어디 계세요?

댓글 0 | 조회 2,765 | 2007.04.24
한인회장을 처음 맡은 것은 2002년 9월이었다. 당시 한인회는 혼미를 거듭했고 한인회장 또한 개인사정으로 일선에서 떠난 ‘보궐상태’ 였다. 어려운 시절 아무도 … 더보기

[354] '오클랜드에 살으리랏다'

댓글 0 | 조회 3,022 | 2007.04.11
배위에서 보는 오클랜드의 야경은 진정 아름다웠다. 지난 3월 모 법률회사가 주관하는 선상 파티에 초대 받아 간 적이 있다. 서울에서는 잠실 선착장에서 멀지 않은 … 더보기

[353] 지와 사랑

댓글 0 | 조회 3,113 | 2007.03.27
요즈음은 ‘지와 사랑’이 아쉽다. ‘헤르만 헤세(Herman Hesse)의 대표작이라할 ‘지와 사랑’을 한글로 만 써 놓으면 인터넷 세대들은 ‘G씨와의 사랑’으로… 더보기

[352] 신 뢰

댓글 0 | 조회 3,228 | 2007.03.12
민주사회에서 신의와 신뢰는 중요하고 꼭 필요한 덕목이다. 이재철 목사는 “왜 많은 집에 KAL 담요가 있습니까? 이는 절도행위입니다.”하고 탄식했다. 언제부턴가 … 더보기

[351] 비교는 상처를 부른다

댓글 0 | 조회 3,169 | 2007.02.26
21세기는 희망의 시대가 될 것이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의 미개척 분야, 불확실성의 문제들이 새천년초에는 해결 되거나 업그레이드 되리라 예측하고 기대했… 더보기

[350] 드라마와 현실은 다르다

댓글 0 | 조회 3,317 | 2007.02.13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마찬가지이다. 선진국이라해서 행복만 가득찬 것도, 못 사는 나라라고 해서 불행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세계 최강이요, 선진국 중의 선두… 더보기

[349] 조개 줍는 아이들

댓글 0 | 조회 9,541 | 2007.01.30
‘조개 줍는 아이들’- 내가 가장 아끼는 책 중의 하나이다. 책은 때때로 친구이자 스승이자 독자의 분신이 되기도 한다. 사람마다 취미가 있고 독서라는 항목은 많은… 더보기

[348] 모란꽃 피는 언덕

댓글 0 | 조회 3,205 | 2007.01.15
모란은 소담스럽고 귀티가 나지만 안타깝게도 향기가 없다. 2007년 새해가 되었다. 교민지들이나 한국 메스컴에서 ‘황금돼지해’라고 떠들썩하다. 으례 연초가 되면 … 더보기

[347] 씁쓸한 교민간담회

댓글 0 | 조회 3,295 | 2006.12.22
노무현 대통령과의 교민간담회는 뒷맛이 씁쓸했다. 특별한 이슈나 현안문제가 없어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국가 원수의 국빈 방문이었기에 관심들이 많았다. 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