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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를 배우면서 가장 늦게 감을 잡은 부분이 바로 ‘숏게임’이었다. 드라이버로 시원하게 치는 티샷이나 페어웨이에서의 아이언 샷은 비교적 익숙해졌지만, 막상 그린 근처에 와서 20~30미터 앞을 보고 칩샷이나 피치샷을 할 때는 긴장이 먼저 앞섰다. 볼은 생각처럼 굴러가지 않았고, 방향도 높이도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숏게임은 기술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자세’였다. 낮은 자세, 낮은 시선, 낮은 중심. 그리고 마음까지 낮춰야 제대로 된 샷이 나왔다. 스윙을 작게 하고, 힘을 빼고,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어드레스에 들어간다. 조심스럽게, 하지만 흔들림 없이. 그렇게 치는 한 타가 승부를 좌우한다. 그게 바로 숏게임의 묘미이자, 골프의 진짜 실력이다.
골프가 인생과 닮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숏게임이야말로 겸손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멀리 보내는 티샷을 잘해도, 결국 승패는 1~2미터 퍼팅에서 갈린다. 그리고 그 퍼팅은 대부분 겸손하게 자세를 낮춘 사람에게 미소를 준다. 허리를 굽히고, 눈높이를 낮추고, 욕심을 덜어내야만 볼은 홀컵으로 굴러간다.
인생도 그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젊은 시절, 드라이버처럼 멀리 나가고 싶어 안달난다. 더 많이 벌고, 더 높이 오르고, 더 큰 목표를 향해 스윙을 휘두른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삶의 진짜 성패는 ‘멀리’가 아닌 ‘가까이에서’ 결정된다는 걸 알게 된다. 인간관계, 가족, 건강, 그리고 마음의 평온. 모두 가까운 곳에 있고, 그것들은 섬세한 손길과 겸손한 마음이 없으면 다가오지 않는다.
숏게임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실수를 인정하는 태도다. 어프로치가 길었으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벙커에 빠졌다면 더 차분히 다음 샷을 준비해야 한다. 변명이나 핑계를 댈 시간에 더 낮은 자세로 다음 한 타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골프의 예의이자 겸손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 실수를 한다. 하지만 그 실수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 자존심을 내세우기보다는, 스스로를 낮추고 배워가는 자세가 결국 더 큰 성장을 만든다.
나는 뉴질랜드로 이민 와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언어도 부족했고, 문화도 낯설었으며, 가진 것도 없었다. 하지만 낮은 자세로 배우고, 묵묵히 일하면서 하나하나 쌓아왔다. 처음엔 허리를 굽히는 일이 부끄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것이 겸손이 아니라 강한 마음에서 나오는 자세라는 걸 알게 되었다. 숏게임이 그린을 지배하듯, 겸손은 인생의 균형을 잡아주는 기술이었다.
골프 라운드를 마치고 클럽을 정리할 때, 오늘 나의 드라이버 샷보다는 숏게임이 더 마음에 남는다. 그것은 내가 얼마나 겸손하게 나를 낮출 수 있었는지를 말해주는 지표였다. 그리고 삶도 그렇다. 사람들은 당신의 큰 성공보다, 작은 순간의 배려와 겸손을 더 오래 기억한다.
결국 삶은 긴 라운드이고, 우리는 매일의 숏게임을 살아가고 있다. 자세를 낮추는 법, 마음을 낮추는 법, 시선을 낮추는 법. 그 안에 인생의 지혜가 담겨 있다. 오늘도 나는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낮은 자세로 내 삶의 어프로치를 준비한다. 그리고 그렇게, 인생이라는 그린 위에서 조금씩 중심을 잡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