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와서 한 달이 지난 후, 머리를 잘랐다. 2년만이었다. 목까지 오지도 않도록, 귀 아래에서 찰랑거리도록 단칼(가위?)에 싹둑.
내 잘린 머리를 두고 많은 질문들과 더러는 불만 섞인 애환들이 오갔다는 건 차치하고, 일단 나는 너무나도 시원해진 느낌에 바보 같이 몇 번이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목으로 불어 드는 머리카락을 만끽했다. 긴 머리는 묶어도 어느 정도의 무게는 느껴지고, 무엇보다도 손질이라도 할라 치면 여러모로 과정이 복잡한 반면에, 이 짧은 보브 컷은 (미용실 아줌마는 그렇게 불렀다. 어렴풋이 난 40년대쯤에 유행했던 보브 컷(bob cut)이란 용어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냥 빗질만 하면 준비 완료인 것이다. 획기적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물론 전에도 나는 머리를 자르고 숱을 쳤지만, 이렇게까지 짧게 자른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재작년 겨울, 한국에 왔을 때 잘랐던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하긴, 그때도 내 반응과 주변인들의 반응은 비슷했더랬다. 자유를 외치며 기뻐하는 나와 비평 섞인 평가를 늘어놓는 사람들.
내 머리인데, 왜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난 마냥 좋았고, 지금도 좋다. 머리를 감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대폭 줄어들었다는 것도 당연히 장점이다. 머리의 구속이 이렇게나 클 줄이야.
물론 지금도 불편한 점이 없지는 않다. 우선 머리를 자른 것뿐만이 아니라 스트레이트 펌이란 것을 했기 때문에 머리를 감은 후 그냥 말리는 게 아니라 특별히 손질을 해줘야 한단다. 드라이기로 말리면서 빗질을 하는 대신 손으로 부풀리듯 털어내야 하고, 끝이 동그랗게 안으로 말리도록 조금 젖은 상태에서 브러쉬로 돌려줘야 한다.
당연히 그런 일련의 행동이 귀찮았던 난 물었다. “그냥 말리면 안 되나요?” 그리고 정색하는 아줌마의 얼굴에 겁을 먹었다.
“절대 안 되죠! 그럼 이 예쁜 머리 다 망가져요.”
장인 정신이란 걸까. 확실히 머리는 예쁘게 되었지만, 손 많이 가는 아름다움보단 개털 같아도 편한 것을 선호하는 내겐 그야말로 쥐약이었다. 뭐, 시키신 대로 하고는 있다만.
재작년에 자른 머리는 그야말로 한 번도 염색이나 펌 따위 하지 않은 천연이었던 지라, 난 특별히 부탁해서 길게 잘린 머리카락 뭉치를 기부했었다. 투병 등의 이유로 머리카락을 잃은 아동들에게 무료로 고급 인모 가발을 제작해 선물하는 곳이라고 했는데, 지금쯤 내겐 쓸모 없어진 내 일부가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뿌듯해진다. 이번에도 기부할 걸 그랬나 싶지만, 사실 이번 머리는 그렇게 길지 않았으므로 별로 소용 없었으리라.
이것보다도 더 짧게 잘랐던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아홉 살 때, 거의 엉덩이 아래까지(!) 머리카락을 길렀었던 나는 어느 여름날, 할머니와 엄마 손에 이끌려 미용실에서 남자처럼 머리를 짧게 깎았다. 보브 컷도 아니고, 그야말로 사내 아이처럼 깡똥하게 자른 것이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르고 머리를 자르는 내내, 잘린 후에도 눈만 멀뚱멀뚱하게 뜨고 있었다.
집에 돌아왔을 땐 예상치 못한 대파란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 머리를 본 할아버지와 아빠가 사이 좋게 충격과 공포를 금치 못하신 것이다. 아빠는 입을 꾹 다물고 불만스러운 눈초리만 쏘아 보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할아버진 달랐다. 그야말로 노발대발하셨다.
“계집애 머리가 이게 뭐야! 왜 멀쩡한 딸내밀 사내놈으로 만들어 놨어?”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 같다)
할아버지의 분노는 한동안 가라앉지 않았고, 아무 것도 몰랐던 난 남자아이들과 어울려 뛰어 놀기에 더 편해졌다며 친애하는 조부님의 속을 더욱 뒤집어 놓았다.
머리카락, 내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닌 것도 같은 것. 정말 알쏭달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