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한 해를 마무리하는
끝자락에 서서. 지나 온 나날들을 뒤돌아 봅니다.
내게 주어진 일년동안의 과제를 마치고,
추수를 끝낸 느긋한 농부의 마음으로
새해 맞을 채비를 합니다. 더러는 거친 자갈밭도 있었지만,
여기까지 무사히 왔으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뜨락에 풀꽃들이 지나가는 바람에 살랑거리네요. 뿌우옇게 촛점 흐려진 동공(瞳孔)이지만
자연의 신비함을 보고 느끼는 심미안(審美眼)만은 아직도 놓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이미 닫혀버린 한쪽 귀의 난청(難聽)에도, 아직 남아있는 한 쪽으로 절반이나마
듣고 사는 세상이 그래도 감사합니다.
그저 평범한 매일의 일상들이 어느 날 갑자기 흐트러질까 두려워지는
나이 무게만큼의 불편함을 경험하면서도 잘 견뎌낸 스스로가 대견하네요. 감사합니다.
비록 가진 것 넉넉지 않아도 내려다 보며 사는 마음이 부자인 내 삶을.
청빈(淸貧)으로 알아주는 이웃들이 감사합니다.
날로 건조해져 가는 인격을 촉촉히 적셔주는 단 비 같은 친구들.
내 옹색한 웃음에도 따뜻한 사랑을 큰 보답으로 보내오는 그들이 감사합니다.
있는 것 만큼만 행복 누리고 산다는 소박하게 허욕없는 내 아이들.
나보다 먼저 철이 든 것 같은 옳 곧은 처세가 마음 든든하네요. 감사합니다.
우편함에 꽂힌 하얀 사각봉투에 육필로 쓴 내 이름 석자.
절절한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누군가의 애틋한 정에 가슴이 뜨거워지네요. 감사합니다.
양지바른 창가에 앉아 새들의 지저귐을 반주삼아 크리스마스 캐롤송을 들을 수 있으니.
따끈한 차 한잔에. 12월의 여유가 마냥 행복하군요. 감사합니다.
내년 12월에도 오늘같은 감사함을 전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기대하는 것만큼 노력하면 또 이루어지겠지요. 감사합니다.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
교민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