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묵 사려∼∼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송하연
새움터
동진
이동온
멜리사 리
조병철
정윤성
김지향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메밀묵 사려∼∼

0 개 3,782 코리아포스트
동지가 지나 열흘쯤 되면 그 짧던 해도 노루꼬리만큼 길어진다고 했다. 엊그제 입춘도 지난 모양이니 낮이 제법 길어지고 계절은 벌써 봄으로 접어든 것 같다. 하지만 깊은 고요속에서 무딘 청각을 통해 목련꽃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그 교교한 밤. "메밀묵 사려~~" 문득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에 반짝 정신이 들어 잠은 더 멀리 도망가고 환청속에서 헤매게 된다. "찹쌀떡~~" 겨울밤 아름다운 정취로 떠오르는 나 어렸을 적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따끈한 아름목자리 요밑에 발묻고 둘러앉아 매일 무슨 이야기가 그리도 재미 있었을까? 그때는...

"시집살이 개집살이 앞 밭에는 당추심고 뒷밭에는 고추심어...." 엄마의 조용한 넋두리 노래가 시작되면
"고추 당추 맵다해도 시집살이 더 맵더라.
나무잎이 푸르대야 시어머니보다 더 푸르랴
시누이 하나 뾰족새요 남편하나 미련새요....
우리는 깔깔거리며 합창을 해 버린다.

"시아버님 따뜻한 눈길하나 믿고 살았는데 왜 그리도 빨리 가 버렸는지 (외나무다리 어렵대야 시아버지같이 어려우랴) 이 대목에서 늘상 가사를 바꿔 만들어 부르시던 어머니였다. 할머니 시집살이 설움받던 어머니의 이야기가 아주 옛날 남의 이야기처럼 구수하고 재미있어서 철없이 깔깔거리고 좋아했던 시절. 힘든 세월 참을 "忍"자로 살아내고 자식들 요만큼 오순도순 길러 낸 것을 보람으로 우리들 앞에 서슴없이 이야기 할 수 있었던 어머니의 마음을 그때는 재미로만 들었지만 이젠 깊은 공감으로 그 고통을 마음 아퍼한다(어른이 되어서야 어른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이치를 어쩌리)

"이제 그만들 자거라" 밤이 이슥해서 일어서시는 엄마의 치마꼬리를 누군가가 잡고 늘어지면 엄마는 벌써 속으로 짐작하는게 있게 마련이다. "메밀묵 사려~~" 좁은 골목을 돌아나와 저쪽으로 사라지는 소리가 몇번 지나갔고 영낙없이 집앞에서 다시 외쳐대는 큰 소리에 동작빠른 오빠는 벌써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엉덩이가 들썩인다. 그 때마다 내 눈치를 살피던 어머니, 육남매 중 유달리 먹성이 신통찮은 내게 묻는 신호였기에 오빠는 내게 싸인을 보내며 어느새 대문을 박차고 나가 메밀묵 장수를 잡아둔다. 김장김치 송송 썰어 넣고 참기름 양념에 버무린 구수한 메밀묵을 먹던 신나는 그 밤들. 밤참에 찬 것 먹고 탈날세라 더운물 끓여 토렴해서 무쳐주시던 어머니의 따뜻한 정성을 이 밤 눈물을 흘리며 그리워하고 있는 늙은 딸자식. "찹쌀떡~~" "메밀묵 사려~~" 지금도 어디선가 들려 올 듯 하지만 창문을 스치는 풀잎들의 소란일 뿐 문득 출출해진 뱃속에 허기만 더할 뿐 입속엔 쓴 군침만 돈다.

땔랑땔랑 두부장수의 요령소리를 들으며 어렴풋이 잠이 깨는 아침도 많았다. "두부 사려어~~" "콩나물 사려어~~" 피난시절에 듣던 부산에서의 "재첩국 사-이-소~~"도 아침을 여는 그 시절의 정서가 아니었던가 싶다. 그런것도 없었다면 피난살이가 너무나 따분하고 고통스럽기만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낮의 엿장수 가위소리는 철거덕 철거덕 둔탁한 소리지만 개구쟁이들을 끌어내는 멋진 신호탄이었다. "떨어진 고무신짝. 빈병들... 아버지가 마시다가 남긴 술이 쬐금 들어 있으면 더 좋아요...." 철거덕 철거덕" 온갖 넉살로 고물을 줏어 섬기는 엿장수가락은 징그럽도록 재미가 있었다. 누군가가 아직 신을만한 어른 고무신을 들고 나갔을 때다." 으흠 이놈봐라 엿이 그렇게 먹고 싶더냐? 아버지 신는 신을 들고 나왔네" 한바탕 눈을 부라리고 너스레로 어르고 나더니 잔뜩 겁을 먹고 서있는 아이에게 철거덕 엿을 한동강 끊어 손에 쥐어 주고 고무신도 다시 들려주던 생각이 떠오른다. 엿장수에게도 그럴듯한 낭만이 있고 인심이란게 있었던 세월이었다.

아침 시작부터 밤까지 하루의 생활 풍경이 생생하게 묘사된 반세기 저쪽 우리네 삶이었다.

얼마전 한국에서 초청되어 온 "프리모 칸단테"의 공연 중에 한 획을 장식한 "메밀묵 사려~~"를 들으면서 잊혀졌던 옛날 생활 모습이 멋진 해학으로 돌아왔음에 너무나도 깊은 감동을 받았다. 두부장수, 엿장수 그리고 메밀묵 장수까지 그 현실감나는 익살을 음악 속에 생동감있게 담아 낸것을 보면서 쿵쾅쿵쾅 가슴 뛰는 흥분 속에 몸이 떨렸다.(여기가 지금 어디야?---)

폭우 쏟아지는 어두운 빗길, 불안으로 몇번이나 망서리다가 갔던 것인데 그런 멋진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더니 음악 속에 살아남은 "메밀묵 사려~~" 팔아도 팔아도 다 팔리지 않는 영원한
메밀묵 장수. 한국의 낭만이여.

ⓒ 뉴질랜드 코리아포스트(http://www.koreapost.co.nz),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371] 예술처럼 늙고 싶다

댓글 0 | 조회 2,903 | 2007.12.20
"이제 늙고 볼품없어 제대로 보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옷인들 신경 써서 입으면 뭘하나 츄리닝이나 걸치고 헐렁하게 살아야지" 그 누구보다 자기 관리에 충실해서 한결같… 더보기

[373] 그 나무님!

댓글 0 | 조회 2,882 | 2008.01.30
티티랑이 언덕길 위에 우뚝 서 있는 기품있게 잘 생긴 한 그루의 고목. 아무리 나무가 잘 자라주는 이 나라라고 해도 백 년은 훌쩍 넘었음직한 위용을 갖추어 지체 … 더보기

[375] 짧은 만남, 긴 행복

댓글 0 | 조회 3,065 | 2008.02.26
금년(2008년) 설에 내 가족모임은 멋지게 끝이 났다. 이제 모두 제 자리로 돌아가 본래의 일상으로 살아간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듯.... 참 멀고도 먼 길… 더보기

[377] 우리동네 시장 풍경

댓글 0 | 조회 3,531 | 2008.03.26
화요일 아침, 다른 때 같으면 잠자리에서 게으름을 피우며 딩굴고 있을 시간이지만 벌떡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바지런을 떤다. 나이를 잊고 살자는 착각 속에 아직 여… 더보기

[379] 이 가을에는.....

댓글 0 | 조회 3,031 | 2008.04.23
강산이 변한다는 십 년 세월에도 나를 잊지 않고 찾아 주는 고국의 친구들, "지금 꽃철이 한참인데 놀러 오지 않고 거기서 뭘 하느냐?"는 화사한 유혹이 번거롭다 … 더보기

[381] 멋쟁이 멋쟁이! (황혼에 피는 아름다운 꽃이어라)

댓글 0 | 조회 2,874 | 2008.05.28
요즈음같이 살벌하고 각박한 세상에 한줄기 밝은 빛으로 모든 사람들 가슴속에 훈훈한 감동을 심어준 아름다운 이야기 하나. 지난 4월 어느날, 아침 방송 뉴스시간에 … 더보기

[383] 일탈(逸脫)의 쾌감

댓글 0 | 조회 2,943 | 2008.06.25
길고 긴 여름 가뭄에 늦더위가 기승이더니 모처럼 귀한 비가 밤새 제법 많이 내린 어느 날이다. 메말랐던 세상이 한껏 물끼를 머금고 생동감으로 넘치는데 그쳤는가 했… 더보기

"DOULOS"의 사람들

댓글 0 | 조회 3,181 | 2008.08.13
그 날은 왜 그리도 비바람이 사나웠는지? 춥고 음산했다. 그 폭풍우 속을 해상에 나간다는게 잠시지만 고생을 각오해야겠기에 두툼한 옷으로 무장을 했다. 이 년이라는… 더보기

나나니 춤

댓글 0 | 조회 3,442 | 2008.08.27
삼십년만의 큰 태풍이란다. 홍수에 집이 잠기고 고목이 뿌리째 뽑혀 벌렁 누운 모습도 보게 되는 그런 특별한 겨울이다. 이 나라가 태풍의 소용돌이에 깊숙이 갇혀 버… 더보기

봄이 오는 소리

댓글 1 | 조회 3,224 | 2008.09.24
연일 쏟아지는 비속에서 그토록 안달하며 재촉을 했던가? 연두빛 봄이 찢긴 햇살사이를 비집고 성큼 성큼 한달음으로 다가들고 있다. 양지녘에 앉은뱅이 보랏빛 작은꽃이… 더보기

쌀밥에 뉘

댓글 0 | 조회 3,032 | 2008.10.30
주차장 옆, 시커먼 고목나무 팔 벌린 가쟁이에 장난치듯 길다란 밧줄을 던지고 있는 노인, 사람 키를 훨씬 넘는 위치에 여러 차례 던져 보지만 잘 걸리지 않는다. … 더보기

양귀비꽃 하루

댓글 0 | 조회 2,813 | 2008.11.26
찌프린 하늘이 회색으로 어둡다. 그 침침함 속에 문득 시야를 밝혀 오는 화사한 다홍색 물결, 두리번거리는 낯선이의 발길을 유혹하는 곳은 잘 정돈된 넓직한 파크였다… 더보기

나의 기쁨조 사람들

댓글 0 | 조회 3,203 | 2008.12.23
이 해도 마지막 달,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지난날들을 돌이켜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살다보면 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여러 가지 기복의 감정들을 경험하게 되지만 될… 더보기

검은 진주 가족의 아름다운 삶

댓글 0 | 조회 3,158 | 2009.01.28
딸 다섯에 막내로 아들 하나, 그 아들을 얻으려고 줄줄이 딸을 낳았을까? 여덟식구 대 가족이 한줄 긴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앉을 자리가 없는 … 더보기

어둠속의 아이들

댓글 0 | 조회 3,647 | 2009.02.24
길을 걸어가는데 열살안쪽 검은 애들 서너명이 거칠게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 중 한 애가 갑자기 내 앞을 가로막고 서더니 "빼롱--" 하고 혀를 쏙 내밀며 놀리질… 더보기

희망을 주는 사람들

댓글 0 | 조회 3,103 | 2009.03.24
이른아침 산책길에서 만난 이름모를 진보라색 작은 꽃무더기, 그 보라색 꽃을 보면서 문득 가을이 느껴졌다. 그지없이 센치하고 공허해지는 가을을.... 그리고보니 피… 더보기

왕 밤 줏으러 갔다네

댓글 0 | 조회 3,458 | 2009.04.28
무엇을 그리도 두려워해서일까? 그 누구도 침범 못하게 단란한 가시로 무장을 하고 의좋게 달라붙어 꼭꼭 숨은 삼형제일까 삼자매일까? 윤끼 자르르한 갈색으로 매끈하지… 더보기

꿈나무 동산

댓글 0 | 조회 2,954 | 2009.05.26
거기는 활기차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어린 꿈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찬 아름다운 꽃동산이었다. 영어가 아닌 우리말로 맘껏 소리치고 노해라고 공부하면서 조국의 문화를 익… 더보기

사람 구경

댓글 0 | 조회 3,166 | 2009.06.23
온갖 새들이 지저귀는 아름다운 합창의 향연이 한바탕 끝난 한나절, 유리창에 부디치는 소슬한 바람소리뿐. 인적없는 절간같이 고요만이 남는다. 이럴때 아늑하고 마냥 … 더보기

투표하러 가던 날

댓글 0 | 조회 2,772 | 2009.07.28
오늘은 아침부터 참 기분이 좋다. 어린애처럼 마음이 둥둥떠서 괜스레 콧노래도 흥얼거리고 사뿐사뿐 몸도 가볍다. "투표하러 가는 날". 이 나라에 와서 처음도 아닌… 더보기

현재 메밀묵 사려∼∼

댓글 0 | 조회 3,783 | 2009.08.25
동지가 지나 열흘쯤 되면 그 짧던 해도 노루꼬리만큼 길어진다고 했다. 엊그제 입춘도 지난 모양이니 낮이 제법 길어지고 계절은 벌써 봄으로 접어든 것 같다. 하지만… 더보기

딸이 좋아

댓글 0 | 조회 3,581 | 2009.09.22
딸하나, 또하나! 이 딸딸이 엄마를 한없이 부러워하는 고국의 친구들. 딸 덕에 자연 좋은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내가 배 아프게 부럽단다. 허기사 내 힘으로는 죽었… 더보기

서울 일기

댓글 0 | 조회 3,288 | 2009.10.27
9월 00일"여보시요 안녕하슈?" "누구?" 어_엉 내가 먼저 하려던 참인데 ...어쩌구.." 그녀 특유의 멘트가 길다. "긴 얘긴 만나서 하자구 이여자야" "어… 더보기

“A”시에서

댓글 0 | 조회 3,713 | 2009.11.25
내가 살던 A시가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였던가 새삼 놀랜다. 시 중심부인 중앙동에서 바라 보이는 시청 양옆 너른 보도엔 중년에 이른 나무들이 갈색 고운 빛으로 질서… 더보기

실수야 떠나라

댓글 0 | 조회 3,379 | 2009.12.22
12월 마지막 달, 싫어도 또 하나 나이를 보태야 한다. 세월따라 달라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게 두렵다. 이제 기억력도 전같지 않은데 곧잘 건망증까지, 몇년전에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