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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지면 수시로 잠이 오고 또 수시로 잠이 깬다. 남들이 다 자는 한밤중에 도깨비처럼 깨어 거실을 어슬렁거리고 남들이 TV를 보는 시간에는 혼자서 꾸벅거리고 한밤중에는 아무리 자려고 해도 눈만 말똥말똥해진다. 그러다 보니 오밤중에 TV앞에 앉아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옛날처럼 TV가 공중파 3사만 있는 것이 아니고 약 백 여 개 이상의 채널들이 있다 보니 잠이 깨면 먼저 하는 일이 TV를 켜는 일이다. 그들 TV는 아주 옛날에 했던 프로들을 재방영하기 일쑤다.
어느날, 그날도 초저녁에는 졸다가 아내가 자러 들어가는 시간에 깨어 거실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 TV를 켰다가 깜짝 놀랐다. 옛날 아주 옛날, 내가 연출했던 드라마가 방송되는 것이 아닌가. 새삼스러워하며 그 프로를 보던 나는 시간이 갈수록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다. 그 드라마가 방송될 시기에는 잘 만든 작품이라는 이유로 상도 받고 도하 신문에서 칭찬도 받았는데 지금 보니 왜 그렇게 촌스럽고 억지스러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부끄러워하면서도 끝까지 보고 나면 자괴감만 든다.
명작이라면 한 시대를 뛰어넘어야 하거늘 고작 몇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촌스러워진다면 이건 분명 졸작이다. 그런데 그때는 왜 그리 호들갑을 떨었을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는가. 이튿날 그 프로로 해서 받은 상패를 찾아 어루만져보기도 하고 당시 신문기사도 찾아본다. 그리고 연출했던 콘티대본도 찾아 당시의 연출현장을 회상하기도 한다. 그때는 분명 자부심과 자신감으로 연기자들을 닦달하며 열정적으로 한 치의 의심의 여지도 없이 한 장면, 한 장면을 연출했는데….,
지금은 왜 그리 촌스러울까? 한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 살갗을 몇 번씩 벗겨가면서 찍은 한 편의 드라마, 폭설이 쏟아지는 설악산에서 그럴듯한 장면 하나를 얻기 위해 산악인까지 동원하여 위험을 무릎쓰고 산에 올랐다가 눈사태를 만나 조난당할 뻔한 일 등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젊었을 때 나는 방송 후 제일 허무했다. 내가 만든 한 작품, 한 작품이 공중으로 사라지고 컷(cut) 하나가 분해되어 버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라지는구나. 내 분신들이 조각조각 찢어져 공중으로 흩어지는구나.’ 하며 고개를 숙이고 안타까워 했다. 책처럼 길이 남아 보전되지도, 영화처럼 소장되지도 않고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사라질 뿐이라는 허망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방송 후 나는 곧잘 베란다에 나와 담배 한 대를 피워물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장탄식을 하곤 했다. 그 허무를 달래려고 방송 후 몇 날 며칠을 두고 몸살을 앓듯 술을 마시기도 했다. 그런데 수년이 지난 후, 유령처럼 살아 한밤중에 나를 곤혹스럽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외출을 하려는데 마누라가 그랬다. “여보, 그 바지 이상하다.” “왜, 어디가?” 어디가 어째서가 아니라 이상하다. 옛날처럼 몸에 붙지가 않는다. 어쩐지 촌스러워 보인다. “며칠 전에 딸아이가 사준 바지 입어봐.” 나는 바지를 바꿔 입었다. 아내는 찬찬히 훑어보더니 “그래 이 바지가 좋다.” 라고 하는 것이다. 별 생각 없이 바지를 바꾸어 입었지만 옛날에는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왜 지금은 어색한가.
시대가 지난 옷이라지만 그런대로 입을 만한데도 자꾸 촌스러워지는 것은 그 시대가 아니기 때문일까? 그래 방송도 그럴 것이다. 드라마가 인류의 영원한 소재인 사랑이나 이별, 혹은 죽음 같은 소재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그런 것들로 시청률을 올리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만 그 소재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방식이 조금씩 다르게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시대가 지난 옷은 그런대로 괜찮은데도 자꾸 촌스러워지는 것은 그 시대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시대는 그 시대의 모랄이 설득력이 있고, 지금은 지금의 모랄이 있기 때문일 것이며, 패션(fashion)처럼 그 시대는 그 시대가 지배하는 미적 시선이 있고 지금은 지금을 관통하는 미적美的 개념이 있을 것이다. 관점이나 개념은 시대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해도 지켜야 할 것은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그것이 올바른 사회일 것이다. 과거에 지탄받던 불륜이나 부정이 지금 와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정당화된다면 방송은 사회의 공기公器가 아니다. 유행은 시대에 따라 변하지만 지켜야 할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게 문화의 존재 이유이고 방송의 역할일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시대가 변하는 것을 인정하는 성숙함도 있어야 한다. 과거만이 옳다고 고집하면 그는 고여 있는 사람이며 도태되는 사람일 것이다. 변화를 수용하고 이해해야 한다. 지금도 옳고 먼 미래에도 옳은 드라마를 한 번 만들고 싶다는 가망없는 생각으로 과거를 반성하며 종종 밤을 새운다.
■ 장 기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