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함이 지나친 남편과 달리 나는 행동을 먼저 해버리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 직감대로 움직이는 경우가 태반이지요. 때로는 착각을 직감으로 오인하여 일을 그르칠 때도 있습니다만 대부분 직감에 충실할 때 일을 제대로 잘 해결해 나가는 편입니다.
짧은 순간 꽃의 특성을 잘 살리면서 전체적인 조화를 맞추는 작업인 꽃꽂이를 오랫동안 해오면서 발달한 직감일 수도 있겠지만, 삶의 경험을 통한 통찰의 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직감과 통찰을 얻기에 참 오랜 시간을 소모했었던 거 같은데,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중년들보다 오히려 직감이 더 발달한 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어제는 세 딸들과 함께 쇼핑을 했습니다. 다음 주 수요일이 둘째 생일이라서 생일 선물도 사줄 겸 모처럼만에 네 모녀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는 마음에서였습니다. 맛있는 초콜릿 전문점에 가서 브런치를 먹고 나서 가방도 사고 옷도 사고 이런저런 악서세리들도 사면서 늦은 점심까지 먹고 나서 집으로 왔습니다.
요즘 세 딸들과 이런 시간을 자주 갖게 되는데, 그 이유는 이 순간의 행복을 지금 누려야할 것만 같아서입니다. 내일 일은 난 모른다는 노래 가사도 있듯이 하루하루 그 순간의 행복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게 매 순간의 직관에 따르는 일로도 여겨지거든요.
세 딸들과 수다를 떨면서 걷고 있는데, 막내가 본의 아니게 $10을 기부하게 된 이야기를 했습니다. 기부함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막내한테 다가왔답니다. 지갑 안에 동전이 있을 줄로 알고 지갑을 열었는데, 아쉽게도 동전은 하나도 없고 $10짜리 지폐만 있었답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돈이 달랑 그 $10 뿐이었는데, 그 돈을 기부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한순간 고민이 되었답니다. 하지만 두 눈 딱 감고 그냥 그 돈을 기부함에 넣었는데,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들으면서 얼마나 흐뭇하던지, 아주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직감적으로 돈의 흐름을 잘 알고 좋은 일에 써버리게 된 것이니까요.
나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바다로 가려 했었던 첫 생각이 많은 생각을 하는 과정을 통하여 변질이 되어 산으로 향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막내와 비슷한 일들이 나한테도 있었는데, 처음 생각과 달리 결국 기부를 못하고 그냥 지나친 적이 있었습니다. 거리의 거지가 불쌍해서 동전을 주려고 했었는데, 동전은 없고 지폐만 있고, 거지한테 가는 내내 고민을 하다가 거지 앞을 그냥 스쳐 지나가게 되었고, 다시 돌아서 거지에게 돌아가 주려니 오히려 민망하여 그냥 가버렸던 일들이 있었는데, 두고두고 후회스러웠었거든요. 거지가 나에게 주는 선(善)의 기회를 놓쳐버리고 만 것이었지요.
생각의 창조가 바로 행동인데, 가끔은 거꾸로 행동을 먼저 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그 행동이 선(善)을 향한 행동이라면 말이죠.
심사숙고하는 남편이지만, 나의 즉흥적인 행동이 일으키는 실수를 나무라지 않습니다. 실수가 있어야 발전이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겠지만, 직관적으로 행동하여 위기를 모면한 적도, 아무런 생각 없이 한 행동으로 기분이 좋아진 적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 정답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은 것이죠. 생각을 행동으로 못 옮기는 것도, 행동이 먼저 앞서버리는 것도 다 괜찮다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생각이 너무 많아 제대로 결정을 하지 못하는 분은 자신의 우유부단함을 속상해 하지 마세요. 생각하지 않고 행동을 먼저 하는 분 역시 자신의 경솔함을 탓하지 마세요. 우유부단함으로 제대로 결정을 짓지 못하여 하고 싶은 일을 놓치는 것이나 경솔하여 실수를 자주 하는 것이나 모두 다 자신의 성장을 위한 과정일 뿐이니까요.
세상의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지혜를 주기 위한 도구들일 뿐입니다. 그러니 그 모든 도구들이 주는 교훈을 놓치지 말고 그 안에서 지혜를 얻어 가면서, 그냥 자신을 많이 아끼고 사랑하면서 사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