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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3/2012. 17:13 김영나 (202.♡.85.222)
여우난골에서 온 편지
인간의 삶과 기후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래서일까? 빙하가 녹아내리고 북극곰들은 익사하고, 우리네 삶도 살얼음판을 걷는 듯 아슬아슬하다.
얼마 전 한국에서 20년지기 친구들을 만났다. ㄱ의 남편 A는 금융회사에 다니고 있다. A는 꽤 유능하고 성실해서 뉴욕 싱가폴 등 해외지점장 근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A가 다니는 회사가 글로벌 회사에 흡수, 합병되었다. A는 양 날갯죽지가 꺾인 꼴이 되었다. 오랜 해외 근무 끝에 돌아와 회사로부터 큰 보상을 기대했지만, 승진은커녕 한직으로 물러나 글로벌 회사 출신들의 눈치를 봐야만 했다. 설상가상 A의 부하 직원이 횡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A는 책임자로서 사직을 해야 할지 어떨지 좌불안석이다. 차라리 지난 해 명예퇴직을 해버릴 걸, 일년이라도 더 버텨보려다 불명예퇴직하게 생겼으니 후회막급이다. 친구 ㄱ의 입에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지난 해, 한국 유수의 공기업에서 명퇴자 지원을 받았는데 6천명이 몰리는 사례가 발생했다. 또 다른 친구 ㄴ의 남편이 그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명퇴를 신청하면 퇴직금도 더 얹어 주고 그래서 신청할까 어쩔까 고민하다가 신청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장 회사를 그만두면 뭘 해먹고 살아야 할지, 또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난감해서다. 해뜨면 출근하고 해지면 퇴근하는 직장이 있다는 것이 소시민에게는 여간 행복하고 위안이 되는 일이 아니던가. 그래서 당장은 버티고 있지만 시한부 통보를 받은 환자가 산소 호흡기 꼽고 있는 꼴이라고.
1990년대 중반, 비교적 쉽게 뉴질랜드로 삶의 터전을 옮겨온 이민 선배들 중에는 명퇴자들이 많았다. 그때만 해도 가장이 직장을 잃었다는 사실이 절망적이고 창피한 일이기도 해서, 퇴직을 하고도 아침마다 양복을 차려입고 어디론가 출근을 하곤 했다. 회사는 명퇴자들이 모여 소일거리라도 하라고 조그만 사무실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그 사무실에 모인 명퇴자들은 자신의 사물함에 양복을 벗어놓고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산을 오르거나, 하루종일 사무실에서 바둑을 두다가 퇴근을 했다. 그러다가 뉴질랜드로 이민이나 가볼까, 디아스포라 행렬에 동참하게 된 것. 그때만 해도 ‘명예퇴직’이라는 말에 걸맞는 대우를 해주면서 회사에서 밀어냈는데, 요즘은 유효기간이 지난 물건 폐기처분 하 듯 인재들을 내팽개친다.
ㄷ의 남편은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밀어내려는 회사와 줄다리기 시합을 하고 있다. 큰 회사와 일개 개인이 맞짱뜬다면 누가 이길 것인지는 안봐도 뻔하다. 하지만 ㄷ의 남편은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고 그만 두더라도 두겠다며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고. 아들이 쫓겨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버티는 꼴을 바라보는 팔순 노모는, 잘 자고 있는데 생이빨 뽑는 격이라며, 식사도 잘 못한다고 한다.
청춘의 나날을 밤을 지새며 회사를 위해서 일해왔는데 꼭 저렇게 떠밀어내야 하는지, 과정은 좀 안좋았더라도 끝은 좋게 맺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것이 인간의 도리이자 기업의 양심이 아닌가, 나와 내 친구들은 성토했다.
얼마 전까지 유력 일간지 기자였던 선배 직함이 갑자기 논설위원으로 바뀌었다. 논설위원이면 직책이 높아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장에서 발로 뛰는 일이 생명인 기자로서 생명이 끝나고 뒷방에 물러앉은 셈. 천재라고 불리던 그 선배는 생명의 용트림을 멈추고 가끔 딸꾹질이나 해대며 죽은 말들을 자판에 두드리고 있다. 캠퍼스 커플이었던 그의 아내는 남편의 실직에 대비해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한국의 6,70대가 격동의 세월을 거쳐오면서 가난을 벗어난 세대라면, 4,50대는 민주화를 꽃피우고 경제 도약을 이룩한 세대다. 그러나 발빠르게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는 한국은 감탄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너무 일찍 인재들을 퇴물취급하며 내쫓는다. 은퇴 준비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말이 나오고 입사해서 얼마 지나지 않으면 벌써 퇴직을 염려해야 한다. 나이 앞에 ‘4’자가 붙기 시작하면 일단 눈치보기 바쁘다. 한 사회가 건강해지고 균형 잡힌 발전을 이루려면 앞선 세대들의 연륜과 경륜, 실력을 존중해주고 잘 활용해야 함은 당연지사인데, 지난 것들은 모두 필요없다는 사회 분위기는 심히 염려스럽다.
나와 내 친구들은 분위기 좋고 커피 맛도 훌륭한 카페의 소파에 푹 파묻혀 있었다. 그러나 왠지 살얼음판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떨쳐낼 수 없었다.
격동의 40~50대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안타깝네요...살아갈수록 돈 들어갈 일은 더 많아지니...더욱이 요즘 뉴질 교민들 경기가 안 좋다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저는 지방에 살고 키위들을 상대해서 그런지 경기를 좀 덜 타고 있습니다.
명퇴는 아니지만, 우리 30대도 먹고 살긴 팍팍합니다...암튼 교민들의 살림이 더 나아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