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슬픔이 흐르는 강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성태용
명사칼럼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김도형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마이클 킴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조성현
전정훈
Mystery
새움터
멜리사 리
휴람
김준
박기태
Timothy Cho
독자기고

깊은 슬픔이 흐르는 강

0 개 892 명사칼럼

14128ff6a72c3507f1c358ea4174432d_1700008168_2639.png
▲ 경남 합천 황강. 사진 합천군청 누리집


사람의 정성이 나무와 쇠를 감동시킨 곳


영남지방 낙동강의 지류 가운데 경남에서 가장 긴 강은 남강과 황강이다. 남강은 진주 촉석루를 품으면서 임진왜란 때의 진주성 전투와 논개 스토리를 남겼다. 황강은 덕유산에서 발원하여 거창 수승대 앞을 지나 합천댐에서 잠깐 머물렀다가 다시 합천 읍내를 휘감아 흐른다. 모래톱이 아름다운 강변 맞은 편 절벽의 대야성(大耶城)과 연호사(烟湖寺) 그리고 함벽루(涵碧樓)에는 많은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있다.


대야성 전투는 삼국시대로 거슬려 올라간다. 신라와 백제가 황강을 국경선 삼아 대치하던 군사요충지에서 큰 전투가 벌어졌다. 몇 천명이 전사하고 1천명의 포로가 나올만큼 당시로서는 어머어마한 규모였다. 대야주 도독 부인은 뒷날 태종무열왕이 된 김춘추(金春秋 603~661)의 딸 고타소(古陀炤)였다. 김춘추의 딸은 남편인 김품석과 함께 그 전투에서 산화(散花)했다. 서라벌에 있던 아버지는 그 소식을 듣고 정신나간 사람처럼 하루종일 기둥에 기댄 채로 서 있었으며 그 앞을 다른 가족이 지나가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슬퍼했다고 한다.


14128ff6a72c3507f1c358ea4174432d_1700008257_8149.png
▲ 황소와 농부. 사진 영화 <워낭소리>


전사자 영혼의 명복을 빌고 또 지역사회에 남은 가족과 주민을 위로하기 위한 사찰이 세워졌다. 대야성과 강물로 이어진 곳이다. 풍수가들은 누런 소가 강물을 마시는 자리라고 했다. 그래서 산 이름도 황우산(黃牛山)이다. 황우는 부처님의 성씨인 ‘고타마’에서 왔을 것이다. 인도말 고타마는 ‘훌륭한 소’라는 뜻이다. 한문으로 옮기면 그대로 황우(黃牛)가 된다. 전쟁 후 핏빛으로 물든 강물을 정화하여 맑은 물로 바꾸는 역할을 맡긴 것이다. 창건주 와우(臥牛)대사 법명도 그 의미의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누런 소가 강물을 마시는 자리’는 전쟁 트라우마로 인하여 생긴 마음의 상처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성지가 된 것이다.


남명 조식(南冥 曹植 1501~1572) 선생은 그런 황강의 역사를 시로 남겼다.

길가 풀은 이름없이 죽어가고(路草無名死)

산의 구름은 제멋대로 일어난다(山雲恣意生)

강은 무한의 한(恨)을 흘러 보내며(江流無限恨)

돌과는 서로 다투지 않는구나(不與石頭爭)


14128ff6a72c3507f1c358ea4174432d_1700008283_8889.png
▲ 황강의 합벽루. 사진 합천군청 누리집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서 강물은 맑음을 되찾았고 산과 들은 본래 모습을 찾아가기 마련이다. 아침이면 물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煙) 한낮에는 햇볕에 반짝이는 흰 모래밭 너머 정양호(湖)가 한 눈에 들어오는 풍광을 자랑하는 연호사(烟湖寺) 동쪽 곁에 새로운 누각이 ‘절처럼’ 들어왔다. 함벽루(涵碧樓)는 1321년(고려 충숙왕 8년) 합주(陜州)의 행정책임자(知州事 군수)인 김영돈(金永暾 1285~1348)이 건립했다. 함벽(涵碧)은 ‘푸른 빛으로 적신다’는 뜻이다. 이름이 주는 낭만적 분위기와 달리 현실은 물가에 있는 나무로 만든 집인지라 습기와 홍수 때문에 연호사와 더불어 수차례에 걸쳐 수리에 수리를 거듭한지라 오늘까지 남아있을 수 있었다.


현재의 건물은 ‘함벽루 기(記)’에 의하면 1680년 합천 군수 조지항(趙持恒)이 중창한 것이다. 동시에 연호사도 함께 수리했다는 기록까지 남겼다. 함벽루가 너무 퇴락하여 중수코자 하였으나 재정의 어려움 때문에 그 고민이 밤낮으로 끊어지지 않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그 해 여름홍수에 뜻밖에 기둥과 대들보가 될 만한 재목 100여개가 떠내려 왔다. 못을 주조할 수 있는 쇳가루도 모래톱에 함께 쌓였다. 범람한 물은 사금은 아니지만 꼭 필요했던 사철(沙鐵)까지 가져 온 셈이다. 홍수는 집을 떠내려 가게도 하지만 집을 만들 수 있는 나무를 싣고 오기도 하는 두 얼굴이었다. 송시열(宋時烈 1607~1689) 선생은 이를 두고서 ‘사람의 정성이 나무와 쇠를 감동시킨 결과’라고 했다. 남은 재목과 여력으로 함벽루 서편 연호사까지 중수할 수 있었다. 이렇게 불가의 사찰과 유림의 누각은 다시금 조화를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14128ff6a72c3507f1c358ea4174432d_1700008329_3339.png
▲ 황강가 함벽루. 사진 합천군청 누리집


함벽루는 대야산성 절벽 강기슭에 위치하며 황강과 늪지인 정양호를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 때문에 시인과 묵객들이 풍류를 즐기기 위해 자주 찾았다. 전국의 많은 누각이 있지만 추녀 끝의 낙숫물이 바로 강물로 떨어지는 곳은 남한에서 유일하다고 한다. 특히 그 소리를 듣고자 비오는 날이면 많은 이들이 찾아왔다. 뒷날 강물의 흐름이 다소 바뀌고 떠내려간 축대를 거듭 쌓으면서도 그 의미를 살리기 위해 중수할 때마다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를 지키고자 부단한 노력이 뒤따랐을 것이다.


앞면 3칸 측면 2칸 대들보 5량인 별로 크지도 않는 넓이의 누각 안에 빼곡이 걸려 있는 현판들이 하도 많은지라 하나하나 세어보니 족히 스무개가 넘었다. 아마 여러 가지 이유로 수없이 내걸리고 또 수없이 내려지면서 교체에 교체를 거듭했을 것이다. 현재 남은 것이 이 정도이니 가히 누각의 명성과 주변 경관의 뛰어남을 짐작할 만하다. 퇴계 이황(1502~1571)과 남명 조식 선생 글도 보인다. 지역선비들도 질세라 이름자를 빠뜨리지 않았다.


시월의 긴 연휴를 맞아 오랜만에 연호사를 찾았다. 대야성 연호사 함벽루 수심당 불교문화전수관 일주문으로 이어지는 강변의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대야(신라) 합주(고려) 합천(조선)으로 지명도 함께 이어졌다. 도량 인근에는 지역유지들의 공덕을 기록한 비석을 모은 ‘비림’과 함께 합천 이씨 재실인 ‘공암정(孔巖亭)’ 그리고 ‘황벽루보존유림계’와 ‘대동계’ 비석, 강석정 시인의 황강시비, 활터인 죽죽정, 대야성 전투 때 활약한 충신 죽죽(竹竹)의 비각 등이 거리를 두고서 자리를 잡았다. 지자체와 지역주민 그리고 사찰이 함께 힘을 합해 가꾸는 살아있는 역사문화지구의 현장이라 하겠다. 사족을 보탠다면 합천군수를 지낸 강석정 시인은 ‘연호사지(烟湖寺誌)’(조계종출판사 2017)저자이며 성철(性徹 1912~1993) 스님은 합천 이씨가문 출신이다.


14128ff6a72c3507f1c358ea4174432d_1700008378_7462.png
▲ 황강가 연호사. 사진 합천군청 누리집


연호사에는 강원(講院)에서 함께 공부했던 도반 J스님의 원력(願力)에 의하여 함벽루 동편에 수심당 불교문화전수관 일주문을 지으면서 비로소 사격을 제대로 갖추게 되었다. 황강이 내려다보이는 안심당(安心堂)에서 차를 나누며 옛 기억을 더듬었다. 1980년대 연호사는 1박2일 예비군 훈련을 받기 위해 1년에 한두 번 정도 지역의 학인승려들이 와서 하룻밤 묵던 곳이다. 어느 해에는 심한 가뭄으로 얕아진 강물에 바지를 걷어올리고서 건넛편 군부대 훈련장까지 걸어갔던 기억 등을 이야기하며 함께 웃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어느 새 지난 일을 추억하는 구시대의 인물이 되었다는 말에 또 웃었다.


■ 글 원철 스님(불교문화연구소장)

* 출처 : 한겨레신문



도박피해 인식주간(Gambling Harm Awareness Week)

댓글 0 | 조회 576 | 2024.09.10
뉴질랜드의 도박피해 인식주간(Gambling Harm Awareness Week)은 매년 도박으로 인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개최됩니다.… 더보기

나는 무엇에 쓰일 것인가?

댓글 0 | 조회 577 | 2024.09.10
공주 학림사‘이뭣고’화두 참선공주시 계룡산 자락에 핀연꽃 같은 명당에 자리 잡은학림사는 백일 용맹정진의 오등선원과시민선원이 있는 수행도량이다.템플스테이 참가자가 … 더보기

사랑한다 말 못하고 가을비가 내린다고 말했습니다

댓글 0 | 조회 639 | 2024.09.10
시인 나 태주사랑한다는 말은 접어두고서꽃이 예쁘다느니 하늘이 파랗다느니그리고 오늘은 가을비가 내린다고 말했습니다사랑한다는 말은 접어두고서이 가을에 어디론가 떠나고… 더보기

너 자신, 너의 학습과정을 알라!!

댓글 0 | 조회 649 | 2024.09.10
A는 소위 말하는 잘나가는 학생이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것은 물론이고 오케스트라에서도 중책을 맡았고 학생회 임원이기도 했으니까요. 왠만큼 좋은 머리와 성품이 아… 더보기

비행기 밥 주는 이모

댓글 0 | 조회 1,112 | 2024.09.10
소년이었을 때,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Boys, be ambitious!)” 이것을 영어로 외우고 다녔다.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영어를 시작했는데 아직 야망(… 더보기

부동산 구입, 타이밍이 중요하다.

댓글 0 | 조회 1,883 | 2024.09.09
최근 몇주간 주택시장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옥션 낙찰률이 지난 10년간 최저라는 기사도 들려 오기도 하고 이자율 인하 소식을 전하는 기사도 여기저기 보인다. 부… 더보기

26. 여러분의 식습관이 자손의 운명을 결정한다: 후성유전학 (Epigenetic…

댓글 0 | 조회 1,039 | 2024.09.07
이제 후성유전학 또는 후생유전학에 대해 언급할 때가 된 것 같다.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말해 온 식사와 식습관 개선이 건강과 심성과 영성에 영향을 주고, 근본적인 … 더보기

코로나, 독감 그리고 엠폭스

댓글 0 | 조회 1,094 | 2024.09.07
감염병(感染病, infectious diseases)이란 바이러스, 세균, 기생충 등의 병원체가 인간이나 동물의 몸 안에서 증식하여 다수에게 감염되는 질환을 말한… 더보기

25. 식중독을 해결하는 신비한 검은 가루

댓글 0 | 조회 1,387 | 2024.09.02
식중독이나 잘못된 독성 물질을 마셨을 경우 어떻게 할까? 독성 물질을 마셨을 때는 위세척을 하거나 중화제를 먹기도 한다. 그러나 흡입된 물질이 무엇인지를 모를 때… 더보기

재산분할법에서는 언제 법적으로 ‘부부’가 되는가

댓글 0 | 조회 1,489 | 2024.08.28
저번화에서는 ‘부부관계’ 및 재산분할의 기본 원칙들을 거시적으로 다루었었는데요, 이번 칼럼에서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재산분할 법이 적용되는지, 즉 ‘부부관계’의 시… 더보기

아기 엄마의 새벽기도

댓글 0 | 조회 774 | 2024.08.28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아직 듬성듬성한새벽기도실에앳돼 보이는 아기 엄마가잠든 아기를 업고무릎 꿇고 기도한다작게 우는 소리도 들린다이 세상에 저처럼간절한 모습이 있을… 더보기

화병이라고 느끼시나요?

댓글 0 | 조회 715 | 2024.08.28
자연계의 음과 양이 서로 긴밀하게 연관을 맺고 있는 것처럼, 사람의 몸과 마음 역시 서로 다른 듯하지만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이치에 근거하여 한의학에서… 더보기

낮게 더 낮게 흐르는 물처럼

댓글 0 | 조회 501 | 2024.08.28
인도네시아 방송인 압디와 그의 친구 친티아의 수원사 템플스테이그 시작은 높은 산 깊은 샘이지만 물은더 높은 곳으로 오르지 않고 낮은 곳을 향해 흐른다.그렇게 샘은… 더보기

24. 균형잡힌 것은 건강하고 아름답다 (2)

댓글 0 | 조회 538 | 2024.08.28
지난번의 글에서는 장내 미생물의 균형과 영양의 균형에 대해 다루었다. 영양 공급과 흡수에 있어서 균형이 매우 중요하다. 특정 성분만 과다하게 공급하여도 결국은 부… 더보기

종치기 니콜라이씨

댓글 0 | 조회 787 | 2024.08.28
며칠전 잘 알고지내는 어르신 한분께서 이런 글을 카톡방에 올리셨습니다. 평소 간간히 좋은 글을 단체 카톡방에 올려주셔서 머리속에 반짝! 불이 켜지게 하시는 분인데… 더보기

어떤 인연

댓글 0 | 조회 865 | 2024.08.27
촘촘한 연립주택 단지안, 새까만 쎄단이 경사진 거친 길을 천천히 올라오고 있다.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고급 자가용에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햇볕을 … 더보기

누수 예방과 탐지: 가정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방법

댓글 0 | 조회 1,104 | 2024.08.27
안녕하세요, 넥서스 플러밍의 김도형입니다. 요즘 물가가 많이 오른 것을 체감하고 계시죠? 식료품비는 물론이고 수도료와 전기료까지 급등하여 우리의 삶에 상당한 부담… 더보기

방을 얻다

댓글 0 | 조회 689 | 2024.08.27
시인 나 희덕담양이나 창평 어디쯤 방을 얻어다람쥐처럼 드나들고 싶어서고즈넉한 마을만 보면 들어가 기웃거렸다지실마을 어느 집을 지나다오래된 한옥 한 채와 새로 지은… 더보기

직장 내 성희롱

댓글 0 | 조회 1,135 | 2024.08.27
일반적으로 성적인 성격을 가지는 말투 또는 행동으로 상대방에게 성적 수치심, 굴욕감을 주거나 고용상에 있어서 각종 불이익을 주는 등의 행위를 성희롱이라고 합니다.… 더보기

급한 사람, 생각 많은 사람, 욕심 많은 사람

댓글 0 | 조회 846 | 2024.08.27
병의 기본은 수승화강(水昇火降)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화기는 위로 오르는 속성이 있습니다. 불이라는 게 항상 위로 올라가면서 타잖습니까? 마음에서 몸에서 불이 … 더보기

나는 왕이로소이다

댓글 0 | 조회 669 | 2024.08.27
2005년 2월 14일, 유튜브닷컴(youtube.com)이 출발했다. 이제 약관(弱冠)의 나이, 20년이다. 이 유튜브가 세상을 바꾸어 놓고 있다. 오락물뿐만 … 더보기

코로나19 재유행

댓글 0 | 조회 3,220 | 2024.08.23
보건복지부 질병관리청(Korea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Agency)에 따르면, 8월 둘째 주 코로나19 입원 환자는 1357명으… 더보기

23. 균형잡힌 것은 건강하고 아름답다

댓글 0 | 조회 695 | 2024.08.23
사람은 균형잡힌 삶을 살도록 설계되어 있는 듯하다. 이 균형이 깨어질 때가 문제의 시작점이 된다. 우리의 장건강, 식사, 식습관, 생활습관 등을 이런 관점에서 재… 더보기

뉴질랜드 의대 진학 A to Z

댓글 0 | 조회 1,459 | 2024.08.23
지난 주 오클랜드 대학교는 Biomedical Science와 Health Science 학생들을 대상으로 MMI 인터뷰에 대한 초청 레터를 발송하였다. 많은 학… 더보기

22. 의사들이 히포크라테스에게서 진정으로 배운다면 얼마나 좋을까

댓글 0 | 조회 941 | 2024.08.20
히포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은 의학 관련 정의를 내놓았다. 히포크라테스의 명언이라고도 하다.1. 음식이 곧 약이고, 약이 곧 음식이다. 음식으로 고칠 수 없는 질병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