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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에 처음 방문했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름다운 자연이나 상쾌한 공기가 아니었다. 길에서나 쇼핑 장에서 또는 모임 장소에서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마주칠 때도 씩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키위 레이디들의 해맑은 표정이었다. 특히 아침에는 ‘Good morning’과 함께 웃어줄 때 낯선 이방인으로서 안도감과 함께 행복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충만감을 느끼기도 했다.

웃음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 생각한다. 웃음은 신이 인간에게만 내린 축복이라고 한다. 우리는 행복하니까 웃는 게 아니라 웃다 보니까 행복해지는 게 아닐까? 웃음에는 물질적인 소비가 필요 없고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지 않는다. 우리는 웃는 얼굴과 웃음을 유발하는 간단한 말 한마디로 상대방을 웃기게 할 수 있고 자기 자신도 웃게 된다. 그래서 서로가 행복한 순간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웃음을 유발하는 요소로는 유머(Humor), 위트(Wit), 조크(Joke), 해학(諧謔). 풍자(諷刺)의 다섯 가지를 열거할 수 있다. 이들은 서로가 비슷하면서도 약간 씩 다른 방법을 띠고 있다. 웃음에도 연습이 필요한 만큼 사람에 따라, TPO(Time, Place, Occasion) 즉 때와 장소, 그리고 경우에 따라 적절히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웃음을 실천하는 미학이 되는 것이다.
유머는 따뜻한 마음에서 나온다. 상대를 웃기려 하기보다 함께 웃으려는 여유가 있을 때 자연스럽게 발산된다. 작은 실수도 웃음으로 승화시키면 마음이 넉넉해지고, 인간미가 묻어나오는 법이다. 위트는 순간의 통찰에서 태어난다. 지식을 재치로 바꾸는 힘, 말 속에 빛을 담는 감각이 바로 위트인 것이다. 상대의 말을 살짝 되받으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행동도 위트의 표현이다. 한편, 조크는 이야기를 통해 웃음을 나누는 예술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이때는 분위기와 타이밍이 중요하다. 상대를 불편하게 하는 조크는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해학은 인생을 꿰뚫는 따뜻한 통찰이다. 슬픔 속에서도 미소를 찾는 여유, 그 속에 인생의 지혜가 숨어 있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 ‘웃음 미학’은 바로 이 해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풍자는 웃음을 통해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라 할 수 있다. 비판이 아니라 성찰의 미소로 마무리하게 될 때, 풍자는 아름다운 힘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조그마한 것들을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더욱 살맛 나게 가꾸어 나갈 수 있다. 하루 한 번 거울 앞에서 미소 짓기, 신문에서 재미있는 제목 하나 찾아보기, 누군가에게 먼저 웃으며 인사하기 등, 이 작은 습관들이 모여 인간 사회가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이리라.
자기의 지식이나 경험, 사상을 남에게 전달할 때 그 내용의 가치보다는 전달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같은 내용이라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면 이해가 빨라지고 듣는 사람도 행복하게 된다. 저명한 대학교수가 어려운 내용을 어렵게 강의한다면 학생들은 강의가 지루하고 기억에 남는 내용도 없어 시간 낭비가 될 수 있다. 반면 어려운 내용이라도 비유를 들어가며 쉽게 풀어 강의하면 훨씬 유용한 강의가 되는 것이다. 한국이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종업원들의 자질 향상을 통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교육훈련 실시를 일반화하게 되었다. 수강생들은 모두가 소정의 학교 교육을 이수했고 군대까지 마친 성인들이다. 이들을 재교육시키는데 회사에서는 상당한 예산과 시간을 투입했고 근무 시간까지 희생하면서 집행하였기에 교육의 성과를 올리는 게 우선 과제였다. 그래서 강사가 수강생을 얼마나 집중시켜 재미있게 강의를 진행했느냐를 평가한다. 어떤 강의는 수강생이 대부분 졸고 있는 경우도 많다. 교육이 끝나고 수강생의 소감문도 받는데 이때 강사의 평가도 나온다. 물론 평가가 안 좋은 강사는 그 다음부터 강사에서 제외된다. 그래서 기업체 강사는 대학교수보다 훨씬 심각성을 띠고 강의에 몰입하게 되고 주된 포인트는 얼마나 재미있게 강의를 이끌어 가느냐에 대해 열중한다. 강사로서는 나이 든 수강생보다는 젊은 여성들 수강생은 훨씬 반응이 빠르고 민감해 재미있는 강의를 이끌어 갈 수 있다.
패키지로 단체 여행을 할 때 여행지의 볼거리도 중요 하지만 일행들과 얼마나 웃음을 교환했느냐가 여행의 가치를 좌우한다. 무미건조한 사람들과의 여행은 따분하고 지루할 뿐이다. 특히 외국인들 틈에 끼어 패키지를 진행할 땐 먹는 음식도 다를뿐더러 말이 통하지 않아 고통스러운 경우가 많다. 가이드는 그 분야의 전문가라 재미있는 말투로 일행을 인도하는데 외국인들은 배꼽이 빠지도록 웃고 있으나 혼자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땐 차라리 고문당하는 기분이 든다. 나는 이런 때 가만히 당하고 있으면 병신으로 취급받기 쉽다는 생각이 들어 가이드한테 마이크를 달라고 해 나의 조크를 들려주겠다고 제안한다. 나는 TPO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몇 가지 아이템을 가지고 있었다. 동물농장을 방문할 때, 사진을 찍을 때, 레스토랑에서 식사할 때 등을 고려해 그때그때 활용할 아이템을 개발해서 기억하고 있다가 시의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다. 나의 영어 표현 능력이 그들과 대등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의 조크에 깔깔대고 웃는 모습에 나의 위축된 존재가 회복되면서 나머지 여행을 한껏 즐겁게 마무리할 수 있게 된다. 1997년 5월에 교민 산업시찰단이 기스본을 2박3일 여행한 일이 있다. 기스본은 한국의 한솔포램에서 종이 원료 확보를 위해 산림 투자를 했으며 기스본 시청의 초대로 산업시찰도 이루어진 것이다. 시찰이 끝나고 오클랜드로 돌아오는데 오후 6시에 기스본을 출발한 버스는 다음 날 새벽 4시에 도착하는 장거리 여행이었다. 그러나 일행들은 벌써 도착했느냐고 푸념(?)을 늘어놓으며 투덜댔다. 좀 더 버스 운행 시간을 늘렸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버스 안에서 일행들이 각자 지니고 있던 조크 보따리를 풀어 놓는 데 거기에 취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도착해버린 것이다. 남을 웃기며 자기 자신도 웃으면서 세상을 밝히는 사람은 행복의 전도사로서 돈으로 평가할 수 없는 귀중한 자산의 소유자이다. 우리 모두 이러한 자산의 소유자가 되어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