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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말하는 것
‘손 없는 처녀’ 이야기는 위에 소개한 두 이야기뿐 아니라 전 유럽과 동양권, 중앙아프리카, 북미, 라틴 아메리카 등 전 세계에 걸쳐 전해진다. 이렇게 광포설화라는 것만 봐도 이 이야기가 얼마나 보편적이며 그 안에 많은 이들의 마음이 녹아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손 없는 처녀’ 이야기에서 ‘손’이 갖는 상징은 아주 중요하고 포괄적이다. ‘손’이라는 것은 소통, 생산, 재생, 변신, 회복, 의지, 생명, 기도, 희망 등과 같다.
그래서 손이 절단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죽음과도 같다. 그것은 결국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을 뜻한다.
예전 삼종지도三從之道에 보면 여자는 시집가기 전에는 아버지를, 시집을 가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따라야 하는 것이 도리라고 하였다. 여성 스스로의 주체적인 삶이 아니라 남성적 세계와 질서 안에서 자신의 의지나 생각과 상관없이 오직 그 안에 종속된 상태로 평생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독일 이야기에서 역시 아버지가 손을 자르고자 할 때 “사랑하는 아버지, 해야 할 일을 하세요. 저는 아버지의 딸입니다.” 라고 말하는 부분이 언제든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고통을 주는 아버지를 그래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완전히 아버지 안에 종속되어 길들여졌음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다만 두 이야기를 비교해 볼 때 한국의 이야기는 우리 특유의 문화를 더 많이 담고 있다. 예를 들면 아버지, 남편, 아들로 이어지는 남성들의 위치와 영향력이 조금 다르고 딸, 아내, 어머니로서 가지는 여성의 태도가 독일의 이야기에서보다 조금 더 수동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한국 이야기에서 쥐를 가지고 음해하는 계모와 그로 인해 아버지로부터 죽임을 당할 뻔한 부분에서 우리가 정조 관념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도 엿보인다.
또 한국만의 가족주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점도 분명히 있다. 계모를 악독하게 그려 가정 안에서 배제하는 부분도 그중 하나인데 ‘손 없는 처녀’ 류의 이야기 중 우리나라 이야기에서만 유독 계모가 등장한다. 아들이 계모를 징치하는 부분에서 아들이 가지는 영향력도 매우 다른 부분이다.
정승 아들의 어머니, 즉 시어머니가 내쫓는 부분 역시 우리나라의 고부갈등이 연상된다. 하지만 여기에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은 시어머니도 가부장제 안에서 길들여진 사고를 갖고 있다는 것인데 시어머니가 처녀를 내쫓는 이유가 바로 정승 집안이 가져야 할 위신威信에 손상이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 위신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다. 바로 계모가 정승에게 위신을 내세워 딸의 손목을 자르고 죽음으로 몰아가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버지의 위신과 딸의 정조는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며, 우리나라가 얼마나 체면과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 그리고 남의 이목을 중시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송영림 소설가, 희곡작가, 아동문학가
■ 자료제공: 인간과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