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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계 맺기와 지속에 대한 이야기
우연히 TV에서 교통사고로 약 2년 간 의식조차 없던 남편이 어느 날 깨어나긴 했으나 아기가 되어버린 한 부부의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때로 아내의 든든한 버팀목처럼, 때로 일 잘하는 머슴처럼 아내를 사랑하고 지켜주던 남편은 이제 완전히 어린 아이가 되어 있었지만 아내는 그렇게라도 곁에 있어주는 남편에 대해 감사한 마음으로 한없는 사랑을 베풀며 늘 웃음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남편이 하던 몫의 거칠고 힘든 일들을 그 사랑의 힘으로 남편 대신 해내고 있었다.
오늘 우연히 보게 된 TV에서도, 시각장애인 아내와 함께 몽골에서 마라톤을 하며 다른 이들을 돕는 부부의 이야기가 나왔다. 베체트병으로 10년 동안 서서히 눈이 보이지 않게 된 아내에게 자신이 손과 발 그리고 눈이 되어줄 수 있음에 감사하며 늘 한결같은 희망과 웃음을 주는 남편의 사랑은 아내가 비장애인도 해내기 어려운 그 일을 해낼 수 있게 하는 힘이었다.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아내의 말은 인간의 한계가 무한함을 알았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 무한함은 그들의 사랑의 힘에서 나오는 것일 터이다. 아내의 남편에게 보내는 사랑과 감사의 표현 그리고 그것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나 역시도 그들과 함께 따뜻한 눈물을 훔치지 않을 수 없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활동이며 영혼의 힘’ 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단지 올바른 대상을 찾아내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저절로 될 것이라 믿지만, 그것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면서도 기술은 배우지 않고 올바른 대상만을 고르면서 그 대상만 찾아내면 아름답게 그릴 수 있을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태도와 같다고 비유했다.
또 그는 성숙하지 못한 사랑은 ‘그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는 것이지만, 성숙한 사랑은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사랑의 능동적 성격에 대해 사랑은 본래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며, 주는 것은 잠재적 능력의 최고 표현이고 주는 행위 자체에서 힘, 부(富), 능력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주는 사랑에서 고양된 생명력과 잠재력을 경험하고 매우 큰 환희를 느끼며, 넘쳐흐르고 소비하고 생동하는 즐거운 사람으로서의 자신을 경험한다고 했다.
결국 주는 것은 박탈당하는 것이 아니라, 주는 행위에는 주는 사람의 활동성이 표현되기 때문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즐겁고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부자라고 단언한다.
<다음호에 계속>
송영림 소설가, 희곡작가, 아동문학가
■ 자료제공: 인간과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