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이야기 3 - 어린 바보 이바누슈카(러시아)
이바누슈카에게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심리적 문제는 그림자 투사에 관한 것이다. 융 심리학에서 그림자란 우리가 외면하거나 무의식 속에 숨겨온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의미한다. 그림자를 인정하고 받아들여 심리적인 불균형을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하고, 그림자와의 대면을 통해 자기 안의 모순과 갈등을 극복하고 온전한 자신을 되찾아야 한다.
자신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모두 감싸 안은 후에야 자기완성을 이룰 수 있으며, 이것은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방법이자 개인은 물론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의식적으로 그림자 작업을 하지 않으면 그림자를 남에게 투사하게 된다. 이것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한다는 뜻이다.
인간 역사의 어두운 장은 타인에게 자신의 그림자를 전가할 때 펼쳐진다. 남자는 여자에게, 백인은 흑인에게, 전쟁이나 청소년들의 집단따돌림 문제, 개인 간의 싸움 역시 그림자 작업과 깊은 관련이 있다. 누군가가 자신의 그림자를 투사해 올 경우 싸움에 대응하지 말고 그냥 지나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타인의 그림자가 노출된 곳에서 대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천재적인 능력이다. 세상 그 누구도 타인에게 자기 그림자를 내려놓을 권리가 없다.
집안에서 막내는 보통 가장 미숙하고 경험이 없으며 늦게 터득하는 사람이다. 또 물리적인 힘이나 권위적인 부분에서도 약자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를 그림자 투사에 대입해 볼 때 딱 맞아떨어지는 데가 있다.
형들이 자신의 그림자 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그것을 가장 약자인 막내에게 투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림자 투사는 주변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어떤 집은 그 집안에서 가장 착한 큰아들이 그림자 투사의 대상이고, 어떤 직장에서는 가장 말없고 잘 참는 사람이 그림자 투사의 대상이다.
정작 나도 심신이 힘들고 부정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도화선처럼 타들어가던 그것을 나의 어머니에게 폭발시키는 경우가 있다. 내가 어떤 모습을 보여도 어머니는 늘 나를 한결같이 사랑하니까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이론도 알고, 금방 뉘우치고 사과할 것을 종종 반복하여 어머니를 향해 투사하곤 하니 나 역시도 그림자 작업을 한참이나 해야 할 어리석은 인물이다.
이바누슈카는 마지막에 형들을 골탕먹이면서 끝나는데 과연 그가 정말 바보였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결국 그는 형들의 그림자 투사를 다 받아내며 지나가도록 내버려둔 천재였고, 탐욕에 눈먼 형들이 스스로 파멸해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그 결과 역시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다.
<다음호에 계속>
송영림 소설가, 희곡작가, 아동문학가
■ 자료제공: 인간과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