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향의 연금술, 발효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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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과 향의 연금술, 발효의 비밀

0 개 1,770 피터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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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볶거나 갈 때 그 향은 정말 강렬하다. 제과점에서 빵을 굽는 냄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향은 막 만들었을 때만 유효하고 시간이 지나면 금방 사라져 버린다는 단점이 있다. 두부도 끓여서 막 만들 때는 맛이 있다. 그러나 이 맛도 금방 사라진다. 그래서 공장에서 대량 생산한 두부는 맛이 뛰어나기가 힘들다. 세균과 효모 등의 효소를 이용하여 오랜 시간을 거쳐서 만들어지는 발효와는 다르게 가열을 통해서 급속히 만들어진 향의 특징은 금방 사라지거나 변하기 쉽다는 것이다.

 

이처럼 향은 기본적으로 사라지고, 신선한 느낌은 산화와 함께 없어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묵은지, 된장, 와인, 위스키 같은 것은 숙성이 되어야 맛이 있다고 한다. 식품은 오래 두면 변하기 마련인데 어떤 이유일까? 발효와 부패는 기본적으로 박테리아의 작용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제대로 조건을 잘 갖춰서 발효되면 우리에게 이롭지만 잘못해서 부패로 진행되면 해로운 물질이 된다. 공기 중의 산소에 노출되어 산패가 심해지거나, 수분이 증발해서 말라 버리고, 휘발성 성분이 증발해서 향기가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심지어 원치 않는 미생물에 오염되어 부패가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면 맛이 좋아지기는커녕 식품으로서 가치를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숙성하면 맛이 좋아지는 식품도 모든 조건을 제대로 갖출 때만 가능한 것이지 저절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깊은 맛을 내는 음식 중에는 발효된 음식이거나 발효된 재료를 가지고 만드는 음식이 많다. 된장의 경우를 보면 삶아 놓은 콩은 그저 가볍게 느껴지는 구수한 맛이 전부지만 발효를 거쳐서 된장이 되고 나면 구수한 정도가 아주 깊어지면서 다양한 맛이 더해지게 된다. 특히 발효 과정을 거치면서 단백질 흡수율은 높아진다. 콩을 생으로 먹으면 단백질 흡수율이 50% 정도지만, 된장이나 청국장으로 먹으면 흡수율이 95%까지 올라간다.

 

발효식품은 미생물들이 오랜 시간을 거쳐 만들어 낸 작품이며 앞으로도 인간의 삶에 소중한 식품 자원이다. 발효는 미생물의 작용으로 일어나는 생화학적인 과정이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야 목적하는 산물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시간이 응축된 기다림의 창조물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침으로써 오묘한 맛과 향이 창조되어 우리의 미각과 건강 그리고 차별화된 식문화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중독성이 강한 김치, 된장 그리고 포도주, 식초를 끊기란 정말 어렵다. 포도주와 식초의 역사는 기원전 1만년으로 추정하고 맥주와 치즈는 기원전 5000년 전, 이집트의 발효 빵은 기원전 4000년 정도로 추정하기도 한다. 우리가 세균의 존재를 안 것은 1590년대 현미경이 발견된 이후 부터이니 사실 미생물의 존재도 모르던 수천년 전부터 효모를 이용해서 술을 빚고 빵을 구웠던 셈이다. 미생물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음식향기의 대부분은 발효(Fermentation)에 의한 것이다. 발효음식의 공통점은 미생물에 존재하는 효소가 큰 분자를 작은 분자로 분해하면서 맛과 향 물질이 만들어지고 수퍼푸드가 된다는 것이다. 

 

와인 숙성 과정에서도 전체적으로는 향의 손실이 일어나지만 부분적으로는 숙성된 향이 증가하여 품위를 높이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만 숙성을 하는 것이지 아무 와인이나 숙성하지 않는다. 숙성은 고농도 알코올 발효가 일어나고, 타닌 성분이 많고, 품종 특성이 약한 와인이 적당하다. 사실 비싼 오크 통에 담는 이유는 숙성과정에서 생기는 향의 손실을 오크 나무의 향으로 보상하기 위한 것이다. 

 

숙성 중 가장 크게 변하는 맛은 레드 와인의 쓴맛과 떫은맛 감소이다. 맛이 부드러워지는 것이다. 페놀 화합물은 색소와 타닌 성 물질을 구성하면서 포도의 풍미와 바디감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모든 식품이 이러한 과정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이러한 숙성 조건을 갖춘 것도 아니다. 그러니 막연히 숙성을 오래할수록 좋을 것이라는 기대는 잘못된 오해다.

 

근래에 발효식품의 가치는 발효에 관여한 미생물들이 프로바이오틱이란 이름으로 우리 인체 내장속에서 장 건강을 향상시킬 뿐 아니라 소화를 개선하고, 염증을 약화시키며, 면역력을 높이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또한 발효의 힘은 바이오테크놀로지와 접목되어 옥수수에서 에너지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환경을 정화하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마법, 발효는 사실 작은 미생물들이 살아가는 생명현상이다. 이들의 생명활동이 우리에게는 와인이 되고 된장이 되고 바이오 에너지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미래엔 지구 환경문제나 식량문제와 같은 중대한 문제를 해결해내는 주역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발효 과정과 비슷한 듯하다. 사람들과의 교류 등을 통해서 자신을 성장시키고 내면을 담금질하는 발효 과정을 거쳐 성숙한 인간으로 만들어져 간다. 기다림의 시간을 거쳐서 발효가 잘 되면 ‘진국’의 깊은 맛을 내는 이로운 음식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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