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대를 저글링하다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송하연
새움터
동진
이동온
멜리사 리
조병철
정윤성
김지향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오십대를 저글링하다

0 개 1,478 수필기행

‘KBS 전국노래자랑’은 남편과 내가 즐겨보는 TV프로그램이다. 출연자의 노래가 시작되면 화면 아래에는 그 사람의 이름과 나이, 그리고 직업이 간략히 소개된다. 남편은 자기 또래의 사내가 나오면 무슨 놀라운 걸 발견했다는 듯이 나에게 묻곤 한다.

 

 “나도 저 사람만큼 늙어 보이나?”

 

그의 목소리는 돌을 매달아 놓은 듯 무겁다. 나는 얼른, 그 정도는 아니라며 얼버무린다. 그의 눈가에 잡힌 오단 장식 주름과 입가에 패인 팔자주름, 그리고 이마를 박차고 올라가는 M자형 탈모를 보면서도 대답은 그렇게 한다.

 

얼굴에 마음이 쓰이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어느 새 증명사진을 찍는 게 부담스럽다. 사진으로 보는 내 얼굴이 아무리 봐도 낯설다. 내가 아닌 것 같다고, 사진이 잘못 나왔다고 투덜대면, 사진은 나에게 ‘이보다 더 확실하게 당신을 증명해 줄 사진은 없다’며 냉정하게 말한다. 사진를 봐도 기가 죽고, 거울 앞에서도 한풀 꺽이는 나이, 그것이 중년이다.

 

우리 부부의 나이를 합하여 백 살을 넘긴 지도 한참 지났다. 서서히 ‘발광 다이오드형’으로 변해가는 중이다. 전류를 흘리면 빛은 내지만 쉽게 뜨거워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불을 끄고 누워서 생각하는 게, ‘아이들 결혼시키고 늙어서 먹고 살려면 얼마쯤 있어야 할까, 그런데 앞으로 얼마를 더 벌 수 있을까’이니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

 

이렇게 된 데는 남편 친구들의 영향이 크다. 그의 중학교 동창 모임 여덟 사람 중 네 사람이 일이 년 사이에 현직에서 물러났고, 한 친구는 몇 달째 ‘빨대부장’으로 버티고 있다. 물이 턱까지 차올라도 헐떡거리며 버티고, 물이 코에까지 차오르면 빨대를 물고 버티는 부장, 즉 아무런 보직 없이 버티는 부장을 말한다. 평생 뼈 빠지게 일해 처자식 먹여 살리고, 거우 집 한 채 장만해 놓고 돌아서니 어느 새 퇴직할 때가 되었더라는 빨대부장의 말에 나는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부쩍 늘어난 흰머리와 눈 밑에 생긴 다크써클, 그리고 푹 들어간 양쪽 볼이 그를 십년쯤 더 늙어보이게 했다. 몸만 성하면 다 살아가게 되어 있다는 말로 한 친구가 그를 위로했고, 다들 맞는 말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남편 친구들은 이십 년 가까이 회비를 모아왔다. 오십대가 되면 그 돈으로 해외여행도 가고, 고향에 촌집을 한 채 사서 더 자주 모이자고 했다. 그런데 그 꿈도 이젠 접을 수밖에 없다. 당장 애들 학비와 생활비가 부족한 집들을 위해, 그동안 모은 회비를 나눠 갖기로 하고 그날 모인 것이다. “자라면서도 배불리 먹지 못했는데 오십대가 되어 다시 밥걱정을 하다니…” 목이 메여 더 말을 잇지 못하는 친구의 어깨를 두드리며 남편도 눈시울을 붉혔다. 나는 탁자 위에 모인 빈 소주병을 한 줄로 세웠다가 다시 두 줄로 세우기를 반복했다. 그들의 눈물 그렁그렁한 얼굴을 차마 볼 수 없어서였다.

 

전(前) 코카콜라 회장 더글러스 테프트는, 인생은 다섯 개의 공을 공중으로 던져 올려야 하는 저글링(juggling)과 같다고 했다. 그 다섯 개의 공이란 일, 건강, 가족, 친구, 자신의 영혼이며, 그중‘일’이라는 공만 고무로 되어 있을 뿐 나머지 공들은 모두 유리로 되어 있다고 했다. 일은 고무공이라 땅에 떨어뜨려도 다시 튀어 오르지만, 나머지 공들은 떨어뜨리는 순간, 깨어지기 때문에 일보다 더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는 의미다. 삶에 있어서 오십대는 그동안 일에만 쏠려있던 관심을 자신의 건강이나 가족, 친구 그리고 자신의 영혼에게 골고루 나누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남편 친구들에게도 이번의 아픔이 그들의 삶을 재구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요즘 들어 엉성해진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머리숱이 줄더니 머리 밑이 엉성, 종합진단을 받아보니 뼈도 엉성, 이젠 기억력마저 엉성해졌다. 남편과의 사이마저 그리 될까 봐 두렵다. 무더운 여름밤 어둠 속에서‘앵’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즉시 나와 함게 모기를 잡을 사람, 묵은 김장 김치를 같이 쭉쭉 찢어 먹을 사람, 그리고 내가 아프면 나를 들쳐 업고 병원까지 뛰어갈 사람이 아닌가. 나는 오십대에 남편을 재발견한 것이다.

 

오십대에 들어 달라진 점이라면, 사람을 만나는 게 확실히 편안해 졌다는 것이다. 내 몸에 쓸데없이 들어가 있는 힘을 뺐기 때문일까. 세상에는 정말 이해 못할 일도 없고, 용서 못할 사람도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사람은 사람과 어울리면서 더욱 사람다워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십대를 두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남다른 세대’라고 하는 이유도 그런 데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축 처져있는 이 사회를 바짝 들어 올리는 바지랑대 역할을 누군가 해야 한다면, 그 일은 오십대가 맡아야 한다고.




사십대와 어떻게 달라야 할지를 나는 고민하고 있다. 사십대까지 내 자신의 목표만을 위해 달려왔다면, 이제부터는 다른 사람을 돌아보고 살펴보면서 살아야 할 것 같다. 그동안 내 상처만 들여다보며 사느라고 남의 상처를 들여다보며 같이 아파한 기억이 별로 없다. 공자는 나이 오십을 가리켜 ‘지천명’ 이라고 했다. 오십대인 나로서는 그 말이‘지천으로 할 일이 깔려있다’는 말로 들린다. 


■ 정 성화: 수필가.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에세이문학등단. 현대수필문학상.

수필 <크레파스가 있었다> 등 2편이 중학교 교과서에 실림. 수필집 <소금쟁이 연가>, <봄은 서커스 트럭을 타고> 등


숲을 바라보며 사는 멋

댓글 0 | 조회 1,008 | 2021.04.13
■ 반 숙자나무는 혼자 섰을 때 아름답다. 나무는 둘이 섰을 때는 더욱 아름답다. 둘과 둘이 어우러져서 피어났을 때 비로서 숲을 이룬다. 숲이 아름다운 것은 서로… 더보기

아버지의 바다

댓글 0 | 조회 1,085 | 2021.03.24
등대 아래 방파제에 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눈앞에서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간다. 파도는 무슨 사연이 저리 많은지 금세 모든 이야기를 다 해줄 듯 다가왔다 사라진다.… 더보기

백일몽

댓글 0 | 조회 1,152 | 2021.03.10
■ 반 숙자과수원 농지를 물색하러 다녔다. 지구는 오염돼 있고 인구 폭발로 마땅한 대지가 없어 고심하다가 너르디넓은 태평양 상공에 몇 필지를 구했다. 우선 여기서… 더보기

오래된 풍경

댓글 0 | 조회 1,001 | 2021.02.23
‘풍경은 자기 안의 상처를 경유하면서 해석된다.’고 하던가. 그럴지도 모른다. 풍경 속에서 떠올리는 것들은 대개 자기 안의 익숙한 어떤 것들이다. 자라면서 독특하… 더보기

피아노

댓글 0 | 조회 1,155 | 2021.02.11
카페 음악 방에 영화음악 ‘피아노’가 올랐다. 영화의 여러 장면이 떠올라 한나절을 음악에 묻혀 지냈다. 그 영화를 본 것은 1993년, 촬영지가 ‘뉴질랜드’라는 … 더보기

돼지고기 반근

댓글 0 | 조회 1,381 | 2021.01.28
대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진 날 밤이었다. 어두운 얼굴로 나가신 아버지는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많은 발자국 소리가 우리 집 대문을 그냥 지나쳐 버렸다. 소금이 … 더보기

나는 가짜다

댓글 0 | 조회 1,166 | 2021.01.12
나는 젊었을 때 제법 많은 레코드를 갖고 있었는데 거의 복사판이었다. 진품은 헤리 베라폰테Herry Berrafonte의 <카네기홀 공연실황> 음반과 … 더보기

그 집 앞

댓글 0 | 조회 1,174 | 2020.12.22
그 집은 강둑 아래 있다. 강 맞은편 들녘에 외따로 서있다. 강둑은 내가 자주 걷는 길이라 대문을 나서면 발길이 곧장 그리로 향한다. 둑 어귀에서 눈에 들어와, … 더보기

그건 내 문제가 아냐

댓글 0 | 조회 1,043 | 2020.12.08
지구가 가속도로 메말라 간다. 화석 연료를 너무 많이 태우고 푸르던 땅을 죄 갈아엎어 생겨난 기후 변화 탓이란다. 어느 곳 할 것 없이 물이 바닥나 아우성이고 아… 더보기

현재 오십대를 저글링하다

댓글 0 | 조회 1,479 | 2020.11.25
‘KBS 전국노래자랑’은 남편과 내가 즐겨보는 TV프로그램이다. 출연자의 노래가 시작되면 화면 아래에는 그 사람의 이름과 나이, 그리고 직업이 간략히 소개된다. … 더보기

나의 사랑하는 생활

댓글 0 | 조회 1,182 | 2020.11.10
나는 우선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지금 돈으로 한 오만 원쯤 생기기도 하는 생활을 사랑한다. 그러면은 그 돈으로 청량리 위생병원에 낡은 몸을 입원시키고 싶… 더보기

오이소박이 (5)

댓글 0 | 조회 1,414 | 2020.10.28
약속한 목요일.부축하듯 입구를 들어서는 두 남자. 손님들이 성글게 차 있는 초저녁부터 문이 여닫힐 때마다 시선을 모으던 한씨아줌마가 달려 나가 맞이한다. 마침 지… 더보기

오이소박이 (4)

댓글 0 | 조회 1,158 | 2020.09.22
한국이 IMF의 직격탄을 맞았을 때 남편은 다니던 자동차부품 생산 공장이 문을 닫게 되면서 실직자가 되었다. 갈피를 못 잡던 남편은 이것저것 알아보며 시도해보았지… 더보기

오이소박이 (3)

댓글 0 | 조회 1,274 | 2020.09.09
진수는 어렸을 때부터 오이소박이를 좋아했다. 갓 버무린 것부터 시작해서 익은 것까지 다 좋아했다. 오이소박이만 있으면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는 녀석이었다. 경… 더보기

오이소박이 (2)

댓글 0 | 조회 1,338 | 2020.08.25
이민 10년차인 한씨아줌마는 남편이 한인교회에서 허드렛일을 봐주며 살아간다고 했다. 이민선배라고 해서 별반 사정이 나아보이지 않았다. 구체적으로는 모르지만, 고향… 더보기

오이소박이 (1)

댓글 0 | 조회 1,266 | 2020.08.11
“배라먹을 짜식!”입안의 담뱃가루를 뱉어내듯, 뱉어낸다. 아리랑식당의 뒤뜰, 울타리 가의 벤치 위에 쏟아지는 오후 3시의 초가을 햇살이 눈부시다. 경애는 주방장 … 더보기

이쁘지도 않은 것이

댓글 0 | 조회 1,634 | 2020.07.28
끝이 보이지 않는 들판이 연둣빛으로 번져 온다. 여기 저기서 논 갈고 밭가는 경운기 소리가 활기차게 들린다. 일철이 온 것이다. 아침부터 뽑는 풀이 겨우 한 이랑… 더보기

댓글 0 | 조회 1,384 | 2020.07.15
“술도 못 먹으면서 무슨 재미로 사시오?” 하는 말을 가끔 듣는다. 그렇기도 하다. 술은 입으로 오고 사랑은 눈으로 오나니 그것이 우리가 늙어 죽기 전에 진리로 … 더보기

서영이

댓글 0 | 조회 1,539 | 2020.06.23
내 일생에는 두 여성이 있다. 하나는 나의 엄마고 하나는 서영이다. 서영이는 나의 엄마가 하느님께 부탁하여 내게 보내주신 귀한 선물이다. 서영이는 나의 딸이요, … 더보기

엄마

댓글 0 | 조회 2,328 | 2020.05.29
마당으로 뛰어내려와 안고 들어갈 텐데 웬일인지 엄마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또 숨었구나!` 방문을 열어봐도 엄마가 없었다. `옳지 그럼 다락에 있지` 발판을 … 더보기

노모의 화장化粧

댓글 0 | 조회 2,272 | 2020.04.24
‘외출할 때 남자는 지갑을 챙기고, 여자는 화장을 한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결혼 생활 수십 년에 이 말이 남녀 특징의 정곡을 찔렀다고 생각한다. 두둑한 지갑… 더보기

코비드 유감

댓글 0 | 조회 3,738 | 2020.04.16
■이 한옥​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다. 먹장구름이 내려앉고 회오리바람이 소나기를 몰고 간다. 공포의 구름, 죽음의 비다. 오가지 말라는 봉쇄령이 내려진 지 달포가 지… 더보기

이웃 3 - 밴트와 마샤

댓글 0 | 조회 1,151 | 2020.03.25
■ 이 한옥밴트가 목에 깁스를 하고 베리와 이야기 중이었다. 우리 집과 베리 집과 밴트 집의 뒷마당 경계점은 앵무새 키아 Kea 한 쌍이 사는 포후투카와 나무와 … 더보기

이웃 2 - 마틴

댓글 0 | 조회 1,257 | 2020.03.10
■ 이 한옥장마가 지나간 후여서 잔디가 발목을 덮을 만큼 우북수북 자랐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 무렵 잔디를 깎으려고 앞마당으로 나왔다. 초겨울 폭풍에 부러진 나뭇… 더보기

이웃 1 - 베리

댓글 0 | 조회 1,293 | 2020.02.25
■ 이 한옥앞마당이 어둠침침하다. 담장 가운데에 우뚝 선 나무가 무성히 자라 아름드리가 되더니 시야를 가리고 전선줄까지 침범한다. 계절을 모르는 상록수다. 뼛속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