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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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1/2006. 10:38
박신영 ()
사는 이야기
외국에 살면서 아이들에게 한국어공부를 시킨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영어공부 따라잡기도 바쁜데, 한글까지 공부할 시간이 없는 듯하고, 꼭 한글을 다 해야하나 하는 생각도 들 수 있다. 아이들조차 이곳 학교에 익숙해지고 영어가 늘면서 왜 한국어를 해야하나 의아해 한다. 우리아들도 한글일기를 쓰라고 하면 이젠 영어일기쓰는 것이 더 쉽다는둥 불평을 한다. 아들 친구는 “영어가 더 좋다”, “한국어는 싫다”는 소리를 영어로 말하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부모는 한글 필요없다, 그냥 영어만 해라 라고 말하기도 했단다. 어쩜 아이에게 그런 소리를 할까 싶다가도, 영어를 잘하면 휠씬 수월하게 이곳에서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은 그 부모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부모는 영어땜에 다들 스트레스를 받으니, 아이들이 영어만 잘하면 그만이지 라고 생각하기 쉬운 것이다.
예전에 내가 만났던 어느 미국교포이야기가 생각난다. 아기때에 미국에 부모따라 이민와서 좋은 미국대학 졸업하고, 취직해 볼까 하고 한국에 왔더니, 실망과 분노만 경험한다고 했다. 왜 그런가 했더니, 이 친구는 생김새는 완전 한국스타일인데(키 작고 얼굴은 평범, 스타일도 평범) 한국어를 전혀 못하고 영어만 유창했다. 하지만 영어밖에 모르는 이 한국인 얼굴의 한국인을 뽑느니 역시 영어밖에 모르는 노랑머리, 파란눈의 백인이 한국땅에서조차 더욱 경쟁력이 있는 것은 누가봐도 자연스러웠다. 미국에서 미국회사에 취직할려고 했더니 역시 자신의 출신배경인 한국어를 전혀 못하고 한국문화도 잘 모르는 이 친구를 어떤 가산점을 주고 뽑을지 난감했던 모양이다. 대신 한국인 얼굴에, 한국어도 하고, 영어도 잘하는 다른 친구를 선택했다고 하니, 누가봐도 현명한 뽑기로 보인다.
이 친구의 부모님도 외국에 이민와서 적응하고 먹고 살기 바빠서 아이들에게 한글교육을 따로 시킬 정도의 여유는 없었다고 하니 누가 누가를 탓할 수도 없어보였다.
이민온지 3년, 4년쯤 지나면 아이들의 한국말이 상당히 어색해지는 모양이다. 내가 만나본 아이들도 한국어 대답이 대체로 “응” 아니면 “아니” 혹은 “몰라”가 대부분이다. 어린 아기들도 아니고 열 살쯤 먹은 아이들이 그런 말투로 어른에게 대답을 한다. 그렇다고 이곳에서는 누가 야단치는 분위기도 아니다. 영어를 하다보니, 그려려니 한다. 이런 아이들은 한글로 쓰기나 읽기를 제대로 하지도 못한다. 심지어 어떤 아이는 ㄱ, ㄴ 구별도 못한다고 한다. 본인의 이름 석자만 한글로 쓸 수 있는 다 큰 아이들도 있다.
이민목적이야 집집마다 다양하겠지만 아이들의 영어교육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영어만 쫓아가느라 한글을 놓친다면 그야말로 소탐대실이다. 긴 안목으로 아이들의 영어교육과 장래를 생각한다면 한국어공부도 반드시 시켜야 한다. 집에서 하기 어렵다면 토요일마다 한글학교라도 보내라고 권하고 싶다. 한글이 별로 늘지도 않고 욕만 배워오고 아이들끼리 놀기만 한다고 불평하는 분도 있지만, 꾸준히 하는 아이들과 전혀 하지 않는 아이들은 차이가 많이 나게 되어있다. 그리고 욕도 한국어를 배우려면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럽게 배울 수 밖에 없다. 영어를 배우다보면 영어욕도 알게되는데 이 부분을 불평하는 부모는 보지 못했다. 반면, 한국에서 갓 이민 온 친구땜에 ‘나쁜 한국말’을 배운다고 불평하는 부모는 종종 볼 수 있다. 우리 아들도 작년에 뉴질랜드에 와서 첫 한국친구(이민3년차)를 사귀었는데, 그 엄마가 자꾸만 내게 불평을 했는데, 그 내용인즉, 자기아들은 ‘거시기’라는 단어를 전혀 몰랐는데 우리아들땜에 집에서 그 말을 쓴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저 웃고 말았지만 그 불평이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되면서 슬슬 부아가 치밀었다. 그 아들의 한국말이 정말로 어눌하고 형편없었는데 우리아들과 같이 놀면서 놀랍게 발전되고 발음도 좋아지고 한문까지 알게 되었는데, 왜 그런 부분은 생각지 못하고 ‘거시기’ ‘바보’ 같은 말에는 그렇게 민감한지....
이런 ‘몰이해’의 원인은, 한국어를 잘아는 부모입장에서는, 한글 비속어 및 그 문화는 정확히 그 뜻을 알고 이해해도, 영어나 영어욕, 그 문화권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키위아이들도 자기들끼리 툭탁거리고 욕하고 bullying이 만연한데도, 한국에서 온 아이들땜에 유독 나쁜 것을 많이 배우고 ‘순진’한 아이들이 ‘치인다’고 생각하는 것은 억지라고 느껴진다. 인간사는 어느 나라든 다 비슷한데 말이다. 아마도 자기 자식은 한국어가 너무 어눌하고 느려서 안쓰러운데, 다른 아이는 너무 유창해서 부러운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들녀석을 야단칠때도 한국말로 야단쳐야 맛이 나지, 영어로 잔소리하자면 내 심정이 완전히 전달된 것 같지도 않고 뭔가 작위적인 느낌이 강하다. 이것이 바로 모국어의 특징이 아닌가 싶다. 누가 나에게 영어로 욕을 한다면, 무시하고 지나갈 수도 있지만, 만약 한글말로 욕을 듣는다면 머리채붙잡고 싸울 것 같다.
집에서는 한국음식만 해 먹이고 외식해도 한국식당에만 가고 한국교회만 다니고 한국비디오만 꼬박꼬박 빌려다 보면서, 백인아이들만 있는 학교에 보내고 싶어하고, 한글책 읽기 쓰기를 공부시키지 않는 것은 무슨 fusion교육인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우리 아이들은 영어, 한국어를 모두 잘했음 좋겠다 그래서 영어로 쓰여진 데이빗 소로우의 책도 읽고 감동받고, 헐리우드 영화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고, 한국어로 날카로운 농담도 할 줄 알고, 이문열 작품도 혼자 읽고 배우면서 이 세상을 아름답게 조화롭게 사는 법을 체득하길 바란다.
스페인어까지 하면 더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