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작가인 시대의 명암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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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작가인 시대의 명암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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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지성의 전위이자 사유의 실험실이며 한 시대의 선구자로 바라보던 시기가 있었다. 물론 어느 시대이건, 어떤 시기이건 이런 작가의 역할은 여전히 필요할 테다. 하지만 이즈음 문화적 추세에 비추어볼 때, 이제 위의 적은 작가에 대한 고색창연한 소명을 앞세우는 태도는 일면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 취급될 수도 있다. 시대를 선도하는 작가, 첨예한 예술적 실험을 추구하는 예술가의 고유한 역할과 소명을 기대하고 있는 독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상과 맞물려, 나도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욕망이 넘쳐나는 시대다.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저 엔터테이너나 인플루언서를 비롯한 수많은 유튜버처럼 작가 역시 독자나 팔로워의 관심과 사랑, 경제적 수익, 인정 욕망에서 전혀 자유롭지 않은 존재일 테다.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다. 누구나 유튜브나 SNS에서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드러내고 자신만의 콘텐츠를 알리는 것처럼 이제 누구나 작가와 시인이 될 수 있는 그런 시대다. 작가에 대한 어떤 환상과 아우라도 존재하지 않는 그런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런 현실은 그 자체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게 아니라, 단지 돌이킬 수 없는 문화적 흐름에 가깝다.


장강명 작가의 <책 한번 써봅시다>(한겨레출판, 2021)는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이 시대 문화(문학)판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저서이다. 이 책에서 장강명 작가는 평소에 책을 펴낸다는 것에 대해 적잖은 거리와 부담을 느끼고 있을 일반인이나 문인 지망생을 대상으로 누구라도 책을 펴낼 수 있게끔 구체적인 노하우와 비결을 제시한다. 이 책의 첫 대목은 ‘책 쓰기는 혁명이다!’라는 문구와 함께 시작된다. 책과 글쓰기, 문학을 둘러싼 이 시대 풍조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글쓰기에 관한 책을 펴낸 저술가 강원국 역시 이즈음 “머지않아 누구나 책을 쓰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누구나 책을 쓰는 시대」가 온다, 한겨레, 2021.12.28)라고 적었다.


그렇다. 이제 마음과 의지만 있으면, 그야말로 누구나 소설가나 시인이 되고, 자신의 책을 펴낼 수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평범한 네티즌이 SNS에 적은 글들을 엮어 책으로 출간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 같은 변화에는 출판과 문학(글쓰기)의 대중화라는 대중민주주의의 흐름이 아로새겨져 있다.


일 년에 약 3,000권에서 3,500권의 시집이 세상에 새롭게 선보인다. 소수의 지인에게만 유통되는  수제본 시집이 아니라 ISBN(International Standard Book Number)이 붙은 시집만 따져도 그렇다. 실제 온라인서점 ‘알라딘’에서 2021년 1월부터 2021년 12월 사이 일 년 동안 출간된 ‘한국시’ 종수는 모두 3,169권에 이른다. 예상보다 엄청난 분량이다. 같은 기간(2021년)에 출간된 ‘한국에세이’를 검색해보니 모두 3,990권이다. 한국어로 번역된 외국 에세이를 제외하더라도, 일년에 약 4,000권의 에세이가 출간된 셈이다. 2021년에 출간된 외국에세이가 404권이니 전체 에세이 출간량의 90%가 한국 에세이에 해당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에세이 열풍이 불면서,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에세이 출간이 활성화되는 추세다. 아무래도 장르의 전통이나 형식이 강력하게 존재하는 시나 소설 쓰기에 비할 때, 자신의 체험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에세이를 쓰거나 에세이집을 출간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선택으로 받아들여지는 면도 있겠다.



이처럼 많은 분량의 책들이 출간된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아무리 성실한 독자나 비평가라도 한 해에 출간되는 문학도서의 5% 정도를 읽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지 싶다.


시집이나 소설집, 에세이를 펴내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 만큼, 출판 인프라와 다양성이 제한적이며 열악했던 이전에 비해 책 발간 종수가 현저하게 증가하고 있는 것은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제 신춘문예나 문예지를 통한 등단제도의 통과 여부는 시집이나 소설집, 에세이집을 출간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절차가 아니다. 등단 여부와 관계없이 평범한 독자가 책을 펴내는 경우도 많다. 사실상 자비 출판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책 출간의 활성화와 대중화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 글은 바로 이 문제에 초점을 두고, 문학책 출간의 대중화 현상을 둘러싼 숨은 질실과 명암을 비평 에세이 형식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문자문화의 종말’, ‘문학의 위기’,‘문학의 죽음’같은 표현이 자주 등장하던 지난 시대를 통과하여, 문학의 영향력이 크게 줄었으며 문학에 어떤 관심도 지니지 못한 사람들이 늘어가는 이 시대에도 외려 문학책 발간은 점점 활성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문학의 죽음 같은 표현은 필자가 등단하던 1987년에도 이미 존재했던 매우 오래된 현상이다. 문학은 늘 위기였다. 이렇게 보면, 문학은 위기와 죽음을 연료로 삼아 생존하는 특이한 장르가 아닐까 싶다. 인간의 사유와 언어가 존재하는 한, 문학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유튜브로 대변되는 동영상 플랫폼과 SNS가 유행하면서, 전통적인 ‘문학의 위기’라는 현상이 새로운 단계로 진입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추세와 연관하여 최근에도 총상금 1억 3천만원에 달하는 ‘목포문학상’(장편소설 1억원, 시·희곡·평론 각 1천만원)이 신설되는 등 기존의 수많은 문학상에 보태 새로운 문학상이 계속 생기고 있으며, 폐간되는 문예지 이상으로 신선한 문학적 감성을 담은 신간 문예지들이 꾸준히 생겨나고 있다. 이처럼 지자체별로 문학상이 운영되고 다양한 문예지가 발간되는 사회, 이렇게 엄청난 종수의 시집과 에세이집이 매년 출간되는 사회가 이 지구별에 또 있는지 의문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나 각 지역의 문화재단에서 지원하는 창작지원금과 도서지원금, 문예지 원고료 지원금, 도서관 상주작가 지원 등도 새로 생기거나 정비되는 등 문인과 문예지 지원을 위한 제도나 인프라도 눈에 뜨일 정도로 개선됐다.


이 문학적 열정과 풍요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런 현상은 이 땅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문학을 사랑하고 존중한다는 걸 알려주는 징표일까. 그래서 바람직하고 흐뭇한 것일까. 이렇게만 해석하는 건 다소 단순한 사고다.


냉철하게 생각하면, 유튜브와 SNS 시대로 상징되는 이 시대 문화현실에서, 어느 사회에서나 문학의 비중과 영향력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문학만이 오롯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한 존중과 의미 부여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문학이 점점 문화의 외곽지대로 밀려나고 있다는 사실, 문학이 폭넓은 교양에 해당하던 이전에 비해 문인들 자신이나 문학 전공 학생, 문학 매니아 사이에서만 향유되는 장르로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적으로 부인할 수는 없을 테다. 2021년 통계에 의하면, 한국인 10명 중에 4명은 일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다. 이런 독서 연관 통계 수치는 계속 감소하고 있다.


요컨대 늘 출판과 문학의 위기가 언급되고 있으며 문학(책) 향유층은 줄어들고 있는 한편으로, 외려 에세이를 위시한 문학과 책 출판은 아연 활성화되고 있으며, 문학상과 문예지 등 문학 제도 역시 굳건하게 유지되거나 새롭게 형성되는 기묘한 정황이다. 어떻게 이런 두 가지 상반된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언급된 현상의 배후에는 바로 ‘모두가 작가인 시대’로 대변되는 책과 쓰기를 둘러싼 인정욕망이 자리하고 있다. 번역가이자 에세이스트인 노지양은 번역에세이집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북라이프, 2018)에서 이렇게 적었다.


“과연 내가 정말 작가가 되고 싶은지 아니면 작가라는 이름을 얻고 싶은지 솔직하게 되돌아보는 시기가 찾아왔다. 나도 혹시 북토크를 하고, ‘네임드’가 되고, 인정과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에고를 채우고 싶은 걸까. 열등감 해결의 마지막 보루라 생각하는 걸까. 하지만 내가 사람들 앞에 나서거나 말하는 것을 그리 즐기지 않으며 관심을 받고 싶어 안달하던 시기도 지났음을 알게 되면서, 진정 글을 쓰고 싶은 이유가 단순한 허영심은 아니라는 결론을 냈다.”



작가와 글쓰기에 대한 진솔한 고민을 담은 고백이다. 이러한 언급을 통해, 글쓰기라는 근본적인 욕망에 대해 사유하는 작가(번역가)의 내면과 만난다. 누구에게나 단 한 번인 인생에서 책 한 권을 남기고 싶다는 바람, 혹은 한 명의 작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은 인간이 지닌 가장 근원적인 욕구, 즉 ‘인정욕망’의 소산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그건 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 이유를 드러내려는 열망이다. 너무나 인간적인 이런 욕망은 기본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그 누구도 이 욕망에서 자유롭지 않으리라. 이청준(1939~2008) 작가는 연작소설의 한 편인 「지배와 해방」 에서 이런 글쓰기와 표현 욕구의 깊은 곳에는 “바깥 세계에 대한 복수심이나 그 현실의 질서를 자기식으로 뒤바꿔놓고 싶은 욕망”, “그가 꿈꾸고 모색해 낸 새로운 질서로 그 세계를 지배하고 싶은 욕망”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요컨대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 글쓰기를 향한 열망에는 상처를 준 이 세상에 자신만의 흔적을 남기겠다는 심리적 동기가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마음의 움직임은 워낙 근원적인 욕망이라서, “나 역시 나를 표현하고픈 욕구는 나이가 들어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직감이 왔고”하는 노지양 번역가(작가)의 표현대로 오랜 세월이 흘러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곰곰이 생각해 볼 것은 한국 사회가 다른 사회에 비해, 글쓰기에 대한 열망, 작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 즉 세상에 자신의 흔적과 존재를 어떤 식으로든지 남기고 싶다는 소망을 강렬하게 자극한다는 사실이다.


드물게 높은 인구 밀도, 부와 계층의 극심한 양극화, 좋은 직장과 열악한 직장을 둘러싼 연봉 및 대우의 커다란 편차, 치열한 경쟁사회 등으로 설명될 수 있는 한국사회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급속한 발전과 압축 근대화를 겪었다. 때로는 앞에서 예로 든 요소가 남다른 경제적 발전과 융성의 견인차가 되기도 했다. 식민지에서 해방된 국가 중에서 한국만큼 경제적으로 발전한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경제적 번영의 과실(果實)과 역동성만큼이나 수많은 패배자와 상처받은 사람이 구조적으로 양산될 수밖에 없다. OECD 국가 중에서 압도적으로 자살률 1위인 한국사회의 짙은 그늘도 바로 이런 양극화와 격차, 치열한 경쟁으로 인한 상처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늘 경쟁, 불안, 상처와 마주하는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든 자신을 표현하고 싶다는 욕망,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 즉 자신의 존재 이유를 이 세상에 새기고 싶다는 열망은 한층 강렬하고 절박할 수밖에 없다. 그건 매우 인간다운 소망이다. 그렇다면 상처받은 자가 자존을 회복하기 위한 유력한 선택이 글쓰기이자 책 내기가 될 수 있으리라. 세상에서 패배하고 상처받은 마음의 결은 글쓰기를 “열등감 해결의 마지막 보루”(노지양)로 생각하는 여지를 간직하고 있을테다. 글쓰기와 책 발간은 다른 예술에 비해, 선천적 재능이나 특별한 도구와 재료 등이 필요하지 않다. 노트북이나 펜, 그리고 뇌에 새겨진 기억과 상상력만 있으면 누구나 가능한 예술이 문학이다.


바로 이런 조건과 상황이 적자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문예지가 출간되고 여러 문학상이 존재하며 엄청난 종수의 시집과 소설, 에세이가 발간되는 ‘욕망의 밑자리’가 아닐까. 최근 글쓰기 책 발간이 커다란 붐을 이루는 것도 바로 그 책의 존재(물질성)가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욕망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쓰니, 다시금 이런 의문이 생기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른바 유튜브 시대에도 불구하고 이전보다 훨씬 많은 종수의 시집과 문학책이 발간되는 현상, 평범한 사람들이 점점 책(문학)에서 멀어지고 있지만 문학상과 문예지 문화는 한층 활성화되거나 굳건히 유지되는 현상에 대한 의문 말이다. 이 의문에 답하는 과정은 결국 ‘모두가 작가인 시대’ 혹은 ‘누구나 작가가 되길 원하는 시대’의 그늘을 응시하는 과정이기도 할 테다.


생각해 보면 글쓰기와 출판의 대중화는 깊은 사유의 힘과 지성의 아름다움을 지닌 책들, 예술적 가치가 탁발한 작품들이 상대적으로 드물어지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런 책이 독자와 대중의 속 깊은 애정과 관심을 얻을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제 나름의 자율성을 지니고 있던 출판과 창작의 과정도 영화 못지않게 상품 기획과 자분의 논리가 촘촘하게 작동하고 있다. 잘 팔리고 대중의 호응을 얻는 책은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거나 의미 깊은 작품이라기보다는 유명인사가 쓴 책이나 화제성 주제를 다룬 경우가 많다. 요컨대 독서시장은 점점 그 작품의 예술성이나 작품성과는 상관없는 논리(예컨대 홍보, 출판전략이나 환금성)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


문학작품의 경우를 보자면, 이제 독자의 커다란 호응을 받는 작품 중에 명실상부한 문제작이나 비범한 상상력을 지닌 작품은 점차 줄어든 상황이다. 간혹 예외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베스트셀러의 경우 예술적 가치나 창의적 상상력보다는 대중의 감성에 호소하고 민감한 화제에 기댄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책과 작품을 읽는 독자들의 선택은 응당 존중받아야 하리라. 그런 현상도 하나의 문화적 징후이며 주목해야 할 추세이다. 독자와 대중의 기호에 부합되는 작품을 쓴다는 건 커다란 노력과 재능의 산물이다. 하지만 출판시장과 문학책이 점점 독자의 선택과 취향에만 맡겨질 때 문화적 다양성과 예술적 가치는 뒷전으로 물러나게 되리라.


딱히 문인 지망생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이 자신이 쓴 책 한 권쯤은 존재하길 원한다. 그건 지극히 정당한 욕망이지만, 이런 욕망이 출판 시장으로 옮겨 오면 나비효과가 인다. 출판 대중화의 이면에는 대체로 깊은 사유와 농익은 안목을 담은 좋은 책이 그 가치와 예술성이 높은 만큼 주목받지 못하며 잘 팔리지도 않는다는 착잡한 진실이 존재한다. 가령 이산하 시인의 에세이 <생은 아물지 않는다>(2020), 최근 타계한 재미 사학자 이정식 교수의 <이정식 자서전>(2020), 20세기 전반의 탁월한 비평가 발터 벤야민의 인생을 다룬 하워드 아일런드·마이클 제닝스의 <발터 벤야민 평전>(2018)은 그 의미와 가치에 부합되는 충분한 논의와 주목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한 칼럼에서 ‘모두가 작가인 시대’의 의미를 분석하며 “나는 사회적 약자의 자기 이야기가 ‘쉬운 책’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발언의 취지에 깊게 공감했다. 모두가 작가인 시대에 과연 좋은 책이란, 좋은 작품이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계속 던질 필요가 있다. 내 감성과 입장을 근원적으로 되돌아보게 만드는 책, 때로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책이 정말 의미 깊은 책일 확률이 높다. 정말 그렇다. 편하고 익숙하게만 다가오는 책은 당신의 시야와 안목을 넓혀주지 못한다.


지금까지 전개한 얘기를 변주해, 나는 작가인 당신을 향해 들려주는 목소리 형식으로 다음과 같이 써보고 싶다.

당신이 작가라면, 당신이 밀도 깊은 문장, 치열한 문제의식, 드넓은 지성의 시야, 통념을 자극하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갖출수록 당신의 작품이 안 팔리고 안 읽힐 가능성이 크다. 당신이 장구한 세월에 걸쳐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엄청난 노력과 자료조사를 수행하더라도, 바로 그 인내의 오랜 시간이 눈에 보이는 성과나 결실, 혹은 인세로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극소수의 독자나 문인, 비평가만이 당신의 작품세계를 마음에 품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보상 없는 그런 고립의 시간을 끝끝내 견딜 수 있는가. 이 시대에 당신이 진정한 의미에서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위의 질문을 통과해야 한다. IT를 비롯한 첨단 문명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우리를 편하게 하지만, 지성, 독서, 문학과 예술의 밀도는 점차 퇴행하고 있는 시대에 당신은 이런 현실을 감내하며 계속 글을 쓸 수 있는가.


이 같은 변화가 내키지 않으면 글을 안 쓰면 된다. 아니면 그냥 그대로 이 현상을 받아들이며 묵묵히 계속 쓸 수밖에 없다. 그게 이 시대 대다수 작가의 운명이다. 모든 현상과 변화에는 양면과 명암이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에 주체가 어떻게 대처하고, 어떻게 생각하는가이다. 혹시라도 당신이 자신의 작품이 의미 있고 예술성이 있는 만큼 (물론 이런 생각 자체가 주관적이다) 독자들에게 폭넓게 수용되고 문인들에게 널리 인정받을 거라는 소망과 기대를 당신을 포함한 작가들이 품지 말기 바란다. 그건 턱없는 환상이다. 예술시장과 독자의 마음은 당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쿨하고 냉철하고 계산적이다. 당신이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바친 노고, 열정, 정성, 고독의 시간이 언제가는 커다란 결실로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을 섣불리 하지 않는 게 당신의 정신건강에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당신은 계속 쓸 수밖에 없을 테다. 그 운명의 표정을 직시하며, 조금씩 조금씩 쓰다 보면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나지막한 응원 소리가 다가올 것이다. 마음 한편에 스민 불안과 희열을 느끼며 그 희미한 길을 천천히 내딛는 게 이 시대 당신(작가)의 운명이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저 지성의 전위이자 사유의 실험실 역할을 하는 작가, 마치 잠수함의 토기처럼 한 시대의 위기와 상처를 먼저 알아채는 작가의 역할이 없어질 수는 없다. 여전히 문학은 실용성과 환금성만이 환원될 수 없는 대표적인 예술이자, 가장 자본의 논리에서 먼 예술이다. 이제 문학이 지성과 예술의 중심으로 대우받던 시대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니 역설적인 의미에서 문학은 끝끝내 세상의 그늘과 상처받은 사람의 마음을 응시해야 한다. 그런 문학의 소임은 여전히 “문학은 배고픈 거지를 구하지 못한다. 그러나 문학은 그 배고픈 거지가 있다는 것을 추문으로 만들고, 그래서 인강을 억누르는 억압의 정체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인간의 자기기만을 날카롭게 고발한다.”고 설파했던 반세기 전 한 비평가의 육성을 이 시대 현실에 비추어 다시 되새기는 과정 어딘가에 존재할 테다. 이런 고민과 사유가 사라진 ‘모두가 작가인 시대’의  문학은 그 현상적인 풍요의 이면에 새로운 문화적 야만과 퇴행을 불러오게 될지도 모른다.


기꺼이 오랜 외로움을 견디며, 어떤 환상도 없이 오롯이 시대의 그늘과 인간의 상처를 응시할 작가인 당신을 기다리면 이 글을 맺는 저기 뚜벅뚜벅 걸어가는 당신의 쓸쓸하면서도 정겨운 뒷모습이 보인다.


* 출처 <문학수첩> 2022년 봄호 


■ 권 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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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자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교수

저서로 <<비정성시를 만나던 푸르스름한 저녁>>, <<낭만적 망명>>, <<비평의 고독>>, <<비평의 매혹>>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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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곡물 대란’, 손 놓은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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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셔터스톡식당 메뉴판의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물가 폭등의 원인은 유가 급등과 더불어 세계를 덮친 곡물 대란이다. 한국의 곡물 자립도는 20%… 더보기

교훈으로 본 학교의 꿈

댓글 0 | 조회 695 | 2022.09.28
한 개인이나 단체 조직이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잘 정리된 정신이 서 있어야 하고 이 정리된 정신은 그 개인이나 단체가 바라고 있는 미래가치를 짐작하게 하고 … 더보기

차별금지법 없는 선진국은 없다!

댓글 0 | 조회 1,060 | 2022.09.14
대개 차별은 중첩적으로 나타나는 게 보통이다. 무기한 고용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는 재중동포 출신 여성노동자는, 여성으로서 그리고 외국인(중국… 더보기

Cockney English - 사투리 영어

댓글 0 | 조회 987 | 2022.08.23
우리가 한국에서 배운 학교 영어는 주로 미국식의 영어이다. 업무관련해 만난 영국 거래처 손님들은 우리가 배우고 말하는 영어는“미국식”이라고 지적을 한 적이 있었다… 더보기

초연결과 고독의 시대

댓글 0 | 조회 1,008 | 2022.08.10
극도로 내향적인 성격 탓인가요? 저는 어릴 때에는 ‘체육’은 너무 불편했습니다. 급우 모두들이 보는 앞에서 뚱뚱한 몸둥이를 움직이는 것도 고역이었지만, 최악은 탈… 더보기

부가가치와 박물관

댓글 0 | 조회 701 | 2022.07.26
한 음식점 주인이 두부와 대구 몇 토막 그리고 함께 넣어 끓일 채소 등 매운탕거리를 $20에 준비했다 치자. 이 주인이 찌게 거리를 잘 다듬고 자기만의 비법을 살… 더보기

야망과 필요와 감동

댓글 0 | 조회 701 | 2022.07.12
글을 쓰려고 컴퓨터를 켜고 ‘새 문서’ 창을 열기만 하면 바로 오래된 한 장면이 떠오른다. 고등학교 때, 학교 가기 싫은 어느 날 시인 문병란 선생님 댁에 놀러 … 더보기

5일장과 세계 물가

댓글 0 | 조회 974 | 2022.06.28
한국의 지방에서는 아직도 떠돌이 시장이 서고 있다고 한다. 시장이라면 필요한 물품을 필요한 때에 알 맞는 값에 언제나 살 수 있는 곳인데 이런 시장이 항상 마련되… 더보기
Now

현재 누구나 작가인 시대의 명암을 생각하며

댓글 0 | 조회 791 | 2022.06.14
작가를 지성의 전위이자 사유의 실험실이며 한 시대의 선구자로 바라보던 시기가 있었다. 물론 어느 시대이건, 어떤 시기이건 이런 작가의 역할은 여전히 필요할 테다.… 더보기

뉴요커 대화에는 왜 감탄과 질문이 많을까? 공감력은 소통의 핵심

댓글 0 | 조회 853 | 2022.05.24
대부분의 불행은 ‘같지 않음’에서 비롯된다. 의사소통,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다르면 불편하다. 갈등하고 대립한다.말하는 사람과 … 더보기

미-중, 남태평양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다

댓글 0 | 조회 1,101 | 2022.05.11
아시아 Focus를 시작하며경제 규모가 커지고 지식과 문화의 교류가 활발해짐에도 국내 미디어를 통해 세계의 여러 사정을 파악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제법 있다. 눈길… 더보기

엉뚱함과 창의성

댓글 0 | 조회 960 | 2022.04.28
영국에서 들은 속담… 한 구두 수리하는 사람이 일 감이 줄어들어 결국 굶어 죽었다는 얘기가 있다. 구두를 한번 고치면 다시 올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잘 고쳐준다는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