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복도 자랑해야 하나?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송하연
새움터
동진
이동온
멜리사 리
조병철
정윤성
김지향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먹을 복도 자랑해야 하나?

0 개 1,320 김지향

동생이 집에 간 후 나는 몸살을 앓았다. 올 한 해의 반을 여행으로 다 보냈으니 몸살이 안 나고 배길 수 있었을까? 어제부터 몸이 조금 괜찮아지고 있음을 느꼈으나, 아침에 일어나니 뱃속이 전쟁을 일으켰다. 커스타드 빵을 먹은 것이 화근이었다. 


막내가 두꺼운 종이를 사각으로 잘라서 콘 모양으로 만든 후 그 위에 쿠킹호일을 싸서 빵 틀들을 여러 개 만들었다. 이스트 발효를 시킨 밀가루 반죽을 그 틀 거죽에 돌돌 감아서 오븐에 구웠다.


안이 콘 모양으로 비어 있는 소라 모양의 빵들이 완성되었다. 표면에 발린 계란 물이 반짝이는 갈색을 띄어 먹음직스럽고 보기 좋았다. 초콜릿을 섞어 만든 카스타드를 빵의 빈 구멍에 채워 넣으니 영락없는 제과점의 소라 빵이었다.


떠나는 이모를 위해 쉬폰케이크을 만들고, 카스타드빵을 만들었는데, 모처럼만에 베이킹을 하더니 발동이 걸렸나 보다. 그 다음 날, 새로운 방법으로 마카롱을 만들어 보겠다고 하더니 그건 실패를 했고, 다시 소라 빵을 만들었다. 


e5cf64971eaaf89a26f15277f61114e5_1690333012_1075.jpg
 

그 빵이 하도 먹음직스러워서 자기 전에 반쪽 먹은 것이 그만 탈이 나고 만 것이다. 아직도 뱃속의 전쟁은 멈추질 않았으나, 그래도 몸살기는 좀 사라진 거 같다. 반 년 동안 그렇게 여행을 다녀 놓고도 이 정도의 몸살로 마무리 지었으니, 나로서는 대단한 성공이다.


비행기와 배 그리고 기차까지 다 타 본 올해의 여행. 갑자기 봇물 터지듯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한 해가 되어 버렸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감히 할 수도 없는 일인데, 자식들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하나씩 천천히 해나가고 있다.


내가 이렇듯 천천히 배워나가는데 비하여 손녀 유은이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몸동작이 크지는 않지만, 계속 움직이고 있으며, 한 가지 놀이에 빠지면 반복적으로 그 동작을 해나간다. 잠 잘 때 말고는 가만히 있는 걸 보지 못했다.


유은이를 가만히 지켜보면 유은이로부터 배울 게 많다. 내가 지금 유은이 반만큼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은이의 에너지가 부러울 따름이다. 8월 한 달 동안 유은이와 함께 지내면서 유은이의 기를 팍팍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어제 웰링턴에 있는 맏사위가 잠시 집에 다녀갔다. 국가고시인 전기기사 자격증 시험에 필요한 코스 하나를 합격했다고 한다. 어제 하루 동안 로어헛과 어퍼헛에 있는 회사 8군데에 들려 이력서를 돌리고, 파미에도 네 군데를 들렸다고 한다.


전국 곳곳마다 다 이력서를 보내고 있는데, 직접 이력서를 들고 가서 대면하는 게 나을 거 같아서인 거 같다. 웰링턴 근처에서 직장을 못 구하면 오클랜드와 해밀턴으로 가서 부딪힐 예정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는 것이 직장 구하기는 더 쉬울 것이다.


마침 해밀턴에 잘 아는 지인이 있어서 그분께 전화를 했다. 사위가 그곳에 잠깐 기거할 수 있는 지의 여부를 묻는 전화였다. 단번에 승낙을 받았다. 언제든지 사위가 들어갈 때 연락만 하면 된다. 고마웠다.


사위의 밝은 표정을 보니 내 마음이 다 환해졌다. 어둡기 전에 웰링턴으로 돌아가는 사위에게 친구가 만들어 놓은 김치를 손에 쥐어 보냈다.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 덕분에 내 삶이 참 풍요로워서 모두에게 감사하기만 하다.



지난 주 일요일에는 내 친구 집에 갔었다. 그 친구의 남편은 커피를 아주 맛있게 잘 내린다. 오랜 세월 커피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한 것 같다. 나에게 커피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보통 전문가가 아니다. 


일요일 점심에 그 집에 놀러 가면 그가 내린 커피를 맛 볼 수가 있다. 나는 그를 바리스타라고 부르고, 그는 나에게 ‘썬데이 커피’ 마시러 오라고 말한다. 영어를 잘 못하는 나지만 언어의 장벽을 맛있는 커피가 무너뜨린다.


지난 주말에는 그 집에 들어서는 순간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땅콩 쿠키를 굽고 있었던 것이다. 오븐 속의 쿠키는 거의 다 되어 가고 있었고, 또 하나의 간식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잠시 사이에 맛있는 커피와 쿠키 그리고 구운 땅콩이 식탁 위로 올라왔다. “와우~” 환상의 콤비가 된 커피 세트. 커피 하나만으로도 완전 그 자체인데....... 


구운 땅콩이 너무 맛있어서 어떻게 만들었느냐고 하니, 올리브유와 소금을 묻혀서 구운 거라고 말했다. 비닐주머니에 땅콩을 넣고 그 안에 올리브유와 소금을 조금 넣고 마구 흔들어 섞는다고 했다. 이렇게 하여 올리브 오일과 소금을 묻힌 땅콩을 160~180도 온도로 10~12분 정도 구우면 된다고 했다.


그때 내가 친구한테 “난 먹을 복이 너무 많아.” 라고 말했다.


“언니가 정말 먹을 복이 참 많아요. 남편이 자주 쿠키를 굽는 건 아니거든요. 오늘 굽자마자 언니가 온 거에요.”


“그러게 말이야. 어딜 가든 항상 듣는 말이야. 내가 먹을 복이 많다는 말은 말이야. 하하.”


먹을 복이 많은 것도 참 큰 복이다. 내가 갖고 있는 복중에 하나인 먹을 복. 그 덕분에 항상 맛있는 음식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뉴질랜드에 여행 온 내 친구마저 한 요리하니, 이 또한 내 복이 아니고 누구 복이란 말인가? 요리 해먹기를 좋아하는 사위 덕분에 함께 사는 내내 맛있는 요리를 마음껏 먹었었는데, 지금은 친구가 그 자리를 채워주고 있으니.......


김장을 설렁설렁 요령껏 잘 담그더니, 산책길에 채집해 온 미나리와 부추로 나물도 무치고, 부침개까지 맛깔스럽게 부치는 친구. 손 큰 나와는 달리 모든 걸 알맞게 조절하여 힘들지 않게 잘도 만들어 냈다.


이곳에 사는 내내 산책을 하면서도 내가 발견하지 못했었던 것을 그녀는 잘도 알아냈다. 지천에 깔려 있는 것이 미나리이며 부추며 민들레였다. 산책 나갔다 하면 커다란 비닐봉투로 하나 가득 나물들을 캐왔다. 


나물 캐는 일도 재미없으면 못한다. 그런데 내 친구는 산책만 가면 눈빛이 달라진다. 반짝반짝 빛이 난다. 손도 재빠르다. 보통 솜씨가 아니다. 비닐 가방 하나가 금방 꽉 찬다. 제법 무거워진 비닐가방을 들고 콧노래를 부르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우렁각시가 따로 없다.


오늘 날씨가 별로 좋지 않다. 새벽부터 바람이 보통 거센 게 아니다. 해는 쨍쨍한데 비도 가끔 뿌리고, 이런 날 밖에 나갔다가는 감기 걸리기 딱 좋은 날씨이다. 친구는 오늘 산책을 포기한 거 같다. 부엌에서 콩 콩 콩 마늘 찧는 소리가 난다. 무국을 끓인다고 하더니만.


지금 내가 이 글을 적고 있는데, 친구가 똑똑 내 방 문을 두드린다. 무국 맛을 보라는 것이다. 뭔가 조금 더 첨가를 해야 할 거 같다고 했다. 친구가 어떻게 만들었건 내 입맛에는 다 맛있지만, 그녀는 자신이 만족하기 전까지 내 조언을 필요로 한다. 하하.


친구 덕분에 지금 나는 맛있는 무국을 맛보러 부엌으로 간다. 간 김에 밥 한술 떠 넣은 국 한 사발에 배추김치를 걸쳐서 한 끼 뚝딱 해치워야겠다. 쌉쌀한 미나리 김치도 빼놓을 수 없겠다. 뱃속의 전쟁도 거의 끝나갈 무렵이니 무국이 시원하게 마지막 정리를 해 줄 것이다.


감사하다. 이 모든 것이 감사하다. 


우리 모두 다 잘 먹고 잘 살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아자 아자 아자!!!

오래도록 젊음을 유지하고 건강하게 죽는 법

댓글 0 | 조회 1,407 | 2020.02.12
선인장 꽃밭을 가꾸기 시작한 지도 한 달 반이 되었다. 하루 만에 뚝딱 만들어진 꽃밭이 나에게 많은 기적을 보여주고 있다. 매일 물을 주면서 잡초들만 뽑아 주라는… 더보기

안전운전 마일리지

댓글 0 | 조회 1,397 | 2020.05.27
청명한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다. 요즘 파미의 하늘은 이렇듯 멋진 가을의 노래를 불러준다.날씨와 상관없이 그동안 내 몸은 대상포진으로 미칠 것 같은 통증에 시달리… 더보기

제 2의 인생

댓글 0 | 조회 1,396 | 2019.08.27
죽어야 산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으면서 살았다. 말 그대로 난 죽음을 통해 새 삶을 얻었다.심장이 멈추면 영혼은 몸을 벗고 새로운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지금 시… 더보기

한 지붕 아래 여러 가구

댓글 0 | 조회 1,393 | 2019.11.27
뉴질랜드 생활 20년 동안 좌충우돌 정신없이 세월을 보내다가 보니, 어느덧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다. 정부의 지원과 세월이 아이들을 키우는데 큰 후원자 역할을 했다… 더보기

나르시시즘의 화신

댓글 0 | 조회 1,391 | 2019.10.22
완연한 봄날이다. 이런 계절엔 여기저기 짝을 지으려 숲 속이 시끄럽고 분주하다.우리도 이번 주말에 조카가 결혼을 하기에, 오클랜드 여행을 다녀올 것이다. 한국에서… 더보기

파격의 미

댓글 0 | 조회 1,386 | 2019.09.10
나는 수필가이다. 하지만 학창시절에 어려워하고 하기 싫어했던 과목 중의 한 과목이 국어였으며, 특히 작문시간이면 고역스럽기 짝이 없었다. 어디 작문뿐이었던가? 고… 더보기

사막에 꽃을 피우는 사람

댓글 0 | 조회 1,382 | 2019.12.20
새로 태어난 올해. 생각보다 바쁜 연말을 보내고 있다. 모든 것이 고마운 한해였는데, 한해를 보내는 마지막 달을 보내면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하루하루가 기적이라… 더보기

줄이고 또 줄여야

댓글 0 | 조회 1,378 | 2022.01.27
오늘 저녁에 손님들을 초대하여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들을 만나면 내 입 꼬리는 자연스레 올라가고 엉터리 영어지만 창피함을 모르고 함께 떠들게 된다. 그들… 더보기

불꽃과도 같은 지금 이 순간

댓글 0 | 조회 1,347 | 2020.11.10
일주일 전에 14년 된 우리 고양이 페로가 식음을 전폐하고 늘어져 있었다. 이틀째가 되니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동물병원에 전화를 하니 그 다음날 오전에 오라고 … 더보기

도깨비와 바늘구멍

댓글 0 | 조회 1,331 | 2020.06.24
2011년에 딱 한 번의 단행본을 출판 했다. 블로그를 통해 인연을 엮어서 함께 이런저런 재미있는 작업을 몇 년간 함께 해왔던 대학 교수이자 ‘새바 크로스오버앙상… 더보기

오랜 지기 친구들

댓글 0 | 조회 1,331 | 2019.12.10
어느덧 파미는 뉴질랜드에서의 내 고향이 되어버렸다. 꽃 피는 산골은 아니지만 거리마다 꽃들이 피어 있는 고요하며 푸근한 도시이다.처음 이곳으로 왔을 때 사귄 친구… 더보기
Now

현재 먹을 복도 자랑해야 하나?

댓글 0 | 조회 1,321 | 2023.07.26
동생이 집에 간 후 나는 몸살을 앓았다. 올 한 해의 반을 여행으로 다 보냈으니 몸살이 안 나고 배길 수 있었을까? 어제부터 몸이 조금 괜찮아지고 있음을 느꼈으나… 더보기

빚지지 말고 빛이 되어 살자

댓글 0 | 조회 1,310 | 2023.05.24
오클랜드에 온 지도 벌써 3주가 지났다. 빛과 같은 속도로 지나갔지만, 무지개를 타고 논 기분이다. 첫 한 주는 둘째네 집에서 지냈고, 그 다음 주부터는 동생 집… 더보기

네가 페스트였다니!

댓글 0 | 조회 1,294 | 2021.03.10
15년 전에 나는 어렸을 때의 내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 언덕 위의 이층집에서 사는 것인데, 딱히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이 집을 산 것은 아니었다.하숙을 치기… 더보기

오징어게임 티셔츠

댓글 0 | 조회 1,288 | 2021.11.09
요즘 나는 ‘오징어게임’ 명함의 로고(○△□)와 오징어게임 문양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 시중에서 판매를 하는 것이 아닌 디자이너인 친구가 만들어 준 티셔… 더보기

고개 숙인 나리

댓글 0 | 조회 1,286 | 2020.01.28
매주 토요일이면 남편은 한 결 같이 꽃들을 사온다. 꽃 할아버지 농장에서 재배 되는 꽃들이라 늘 알뿌리 꽃들이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아버지의 접붙이는 솜씨 덕분에… 더보기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이 사랑이려니

댓글 0 | 조회 1,285 | 2020.07.15
친구의 반려견이 죽었다. 먼저 간 수놈을 따라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떠나는 상황이 닥치니 많이 우울해 보였다.16년 동안 함께 … 더보기

단감과 종교

댓글 0 | 조회 1,271 | 2020.09.08
단감은 내가 매우 좋아하는 과일이다. 자극적이지 않고 달달하면서도 씹을 때의 식감이 좋아서 가을이면 빼 놓지 않고 사는 과일이다. 단순히 감사하는 맛도 단감처럼 … 더보기

독학의 즐거움

댓글 0 | 조회 1,261 | 2019.09.25
“참 좋은 세상이다”돌아가신 할머니처럼 난 요즘 매일 좋은 세상을 찬양하면서 산다. 할머니는 ‘조영순’ 이라는 글자만 읽고 쓸 줄 아셨지만 생활 속에서 독학을 하… 더보기

자식들의 사랑이 다리 되어

댓글 0 | 조회 1,261 | 2020.01.14
새로 태어난 이후로 나는 새로운 인연들을 엮게 되었다. 두 딸들의 짝들과 그들의 부모님과의 소중한 만남이다. 사주에 늦복이 많다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늦복이 … 더보기

아름다운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행

댓글 0 | 조회 1,255 | 2023.07.12
지난 주 토요일 저녁부터 시작 된 웰링턴여행은 오클랜드에서 파미까지 기차여행 연장선이라고 말할 수 있다. 너무나도 편안하고 아름다웠고 즐거우면서도 뿌듯한 여행이었… 더보기

젊음은 지혜를 구하고, 지혜는 젊음을 구하고.......

댓글 0 | 조회 1,235 | 2020.06.09
에어비앤비 손님들은 대부분 예약을 하면서 어떤 이유로 며칠 동안 투숙을 해야 하는지 설명을 한다. 남편이 다 맡아서 하기에 나는 그저 남편을 통하여 그 이유를 알… 더보기

모자라기에 좋아한다

댓글 0 | 조회 1,226 | 2020.12.09
우리 부모님은 딸 넷에 밑으로 아들 둘을 보셨다. 그 중 셋째인 나와 넷째인 내 동생이 집에서 존재감이 제일 적은 자식들이었다.7남매의 장남이신 아버지께서는 홀로… 더보기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댓글 0 | 조회 1,222 | 2021.07.28
둘째 산바라지를 위해 오클랜드에 온 덕분에 오클랜드의 유명한 명소들을 관광하게 되었다. 코리아 포스트 편집장과 사돈들 덕분에 제대로 오클랜드를 여행하게 되었으며,… 더보기

늘 봄은 아니다만

댓글 0 | 조회 1,197 | 2019.11.13
어느덧 벚꽃들도 다 지고, 훈훈한 바람이 목에 둘렀던 목도리를 훌훌 벗어 던지게 했다.길게 느껴졌었던 겨울도 꽃샘추위의 심술바람까지도 따스한 온기에 묻혀 버렸으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