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 지난칼럼 |
이 글을 적기 전까지 많은 생각이 오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칼럼은 우리 모두가 나라는 생각으로 나 자신에게 쓰는 글이기에 거짓 없이 내 가슴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원고 마감 시간을 앞두고 쓰는 글이다.
한 달 전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마침 초음파와 심전도 검사를 하고 스페셜 닥터를 만나 새로운 약 처방을 받았었기에, 몇 주 동안 새로운 약에 적응하느라 좀 힘든 것으로만 여기고 있었다.
그러던 중, 며칠 전에 호흡 곤란으로 응급실에 가게 되었고, 빠른 처방으로 고생을 면했다. 또 폐와 배에 물이 찼었던 것이었지만, 아주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다. 하지만 입원하여 상태를 두고 보면서 심근관류 검사를 하자고 했다. 그 덕분에 병원에 있는 기간이 사흘을 넘기게 되었다.
내려간 혈압을 정상으로 올려놓아야만 검사를 할 수 있는데, 내려간 혈압이 올라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의사는 두 가지 제안을 했다. 병원에 계속 입원해 있으면서 혈압을 올려 놓고 나서 검사를 할 것인지, 아니면 집에 가서 몇 주 쉬다가 다시 입원하여 검사를 할 것인지…….
나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는 큰애에게도 미안했거니와 병원에서 빈둥거리면서 있기는 더욱더 힘이 들어 퇴원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별일도 아닌 것으로 병원에 오래 머물면서 주위 사람들 고생이나 시키고, 지인들 걱정이나 시킬 것 같아서 지인들한테도 선의의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도착하니 썰렁한 기운이 맴돌았다. 난방부터 틀어 놓고, 전복 죽부터 끓였다. 몸살 기가 있어 보이는 큰애를 위해서도 전복 죽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신혼 때 시집살이를 하면서 죽을 하도 많이 끓였었기에, 죽 끓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따끈한 전복 죽을 먹고 나니 새로운 기운이 솟았다. 응급실에 가기 전에 보고 있었던 코미디 영화 한편을 마저 다 보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모처럼만에 중간에 깨지 않고 푹 잤다. 한동안 2시간 이상 누워 있을 수가 없어서 앉아 있다가 자기를 반복했었는데, 밤새 푹 잘 잔 것이다. 인내심이 많은 것인지 미련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느 선까지 참아야 하는지 제대로 가늠하지를 못하여 선을 넘길 때가 가끔 있다.
새벽에 일어나 전복 죽을 끓여서 큰애 도시락을 싸주었더니, 그 덕인지 몸살 기가 싹 사라졌다고 했다. 나 역시 전복 죽 덕분인지 입맛도 많이 좋아졌고, 배도 자주 고팠다. 뱃속에 차 있었던 물이 다 빠지고 나니 헛헛할 수 밖에…….
이번 일로 심장 약은 두 배로 늘어났지만,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인명은 재천이라고 하늘에 맡기는 것이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왜 나왔을까? 하늘의 마음이 곧 내 마음이기 때문이리라.
삶과 죽음이 하나라서 사나 죽으나 모두 다 한 가지지만, 그래도 마음 먹기에 따라서 지금 이 순간 살 수도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의 눈을 가려 놓고 손목을 긋는 시늉을 하고 수돗물을 똑똑 떨어뜨리면 그 소리만 듣고도 사람은 죽는다고 했다. 자신이 곧 죽는다는 생각 때문에 숨이 멈추는 것이었다. 사람이 물질이면서도 물질이 아니기에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느님이 모든 물질은 생성과 소멸의 법칙을 따르지만, 지혜만큼은 영원하다고 했다. 그 지혜는 마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던가?
마음이 어디 물질이던가? 물질인 몸이 비물질인 마음의 영향을 직접 받으면서 살고 있기에, 마음 먹기에 따라서 삶과 죽음의 선도 넘나들 수 있다고 본다. 인생은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꿈이란 낱말에 어디 한가지 뜻만 들어 있던가? 눈 뜨면 사라지는 것도 꿈이요, 소망도 꿈이요, 그 안에 양 극이 함께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나 자신을 살리고 죽이는 나 자신이 있어 행복하다.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준 것 또한 감사하다. 이래저래 이 세상은 살 맛 나는 세상인 것이다.
감사하고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