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로 어떻게든 뭍을 박차고 배의 방향을 겨우겨우 돌려, 우리는 다리를 저는 아저씨와 아일랜드 커플에게로 돌아갔다. 그들은 정말 걱정되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고, 결국 아일랜드 커플이 먼저 출발하게 되었다. 그들이 노를 젓는 모습을 보니, 앞사람이 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뒷사람은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대략” “이론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다리를 저는 아저씨는 할 수 있겠냐고 물어왔고, 우리는 지체 없이 배를 강 위에 띄웠다. 상류의 강 위에는, 벌써 저만치 앞서간 아일랜드 커플과 우리 밖에 보이지 않았다.
다리를 저는 아저씨와 작별을 한 우리는 사진을 찍고 과자를 먹으며 잔잔한 물살을 갈랐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자연경관에 감탄을 했다. 흐린 하늘이 비치는 녹색 강과, 강 옆으로 병풍처럼 서 있는 거친 절벽들. 몇몇 나무들은 꼿꼿이 강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몇몇 나무들은 물을 먹으려다가 목이 꺾어진 듯 절벽 아래로 머리를 향하고 있었다. 강의 아름다운 아침 풍경. 음악은 beach house의 wishes가 적당한, 오로지 노가 강에 박히는 비트만이 고요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리고 적막한 소실 어디선가 물이 세게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얀 색 경계들이 녹색 강 위를 분산시키고 있었다. 갑자기 유속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노에서 손을 놓고 놀이기구를 타듯 소리를 질렀다. 우와아아, 하며 넘실거리는 물결을 즐기려는 찰나, 배는 그대로 뒤집어졌다.
N과 나는 배가 절대 뒤집어지지 않으리라는 까닭모를 믿음이 있었다. 왕가누이 강을 소개하는 팜플릿은 모두 평화로이 노를 젓는 가족들과 연인들을 소개하고 있었고, 강에서 리프팅을 할 때 억지로 배를 뒤집는 한국의 TV프로그램에 익숙해져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배가 뒤집어지고 구명조끼에 의지한 채 둥둥 떠 있을 때, 온몸이 흠뻑 젖어 정신이 없는 와중에 그 믿음은 방심이었음을 깨달았다. 아무 생각 없이 배럴 위에 올려놓았던 우리의 둘의 핸드폰은 이미 사라져버렸고, 그나마 5만 원짜리 방수팩에 넣어놓았던 카메라만이 강 위에 둥실 떠있었다. 지도는 벌써 저만치 흘러가버렸다. 완전히 뒤집어진 배를 붙들고 우리는 잠깐의 정적 뒤에 황당한 표정으로 서로를 향해 웃었다. 저 멀리서 아일랜드 커플이 우리를 향해 뭐라뭐라 외치고 있었고, 우리는 당당하게 엄지를 들어보였다. 그리고 영차, 영차, 하며 온몸을 이용하여 배를 다시 뒤집었다. 다시 배 위에 올라갔다.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우리는 조금 당황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노를 이용해 하이파이브를 하며 강을 따라 앞으로 가는 수밖에는 딱히 방법이 없었다. 강은 계속 흐르고 있었으니. 시간이 계속 흐르듯이.
조금 못 가 다시 강의 유속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둘 다 온 힘을 다해 노를 저었다. 하낫둘하낫둘, 나는 군대 이후로 처음으로 구령을 입 밖으로 내었다. 뱃머리가 강 반대방향으로 가기 시작했다. 어어, 다시 배는 뒤집어졌다. 묶어놓은 배럴과 텐트들을 빼고는 잃을 것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마침내 정신줄을 잃고 웃기 시작했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둘러 배를 다시 제대로 강 위에 올려놓았다. 갑자기 내리는 세찬 비에 몸이 떨려왔다. N과 나는 조그만 뭍에 배를 대었다. 강으로 떨어지는 빗방울들의 소리가 강의 맥박을 억지로 조율하듯 평화를 튕겨내었다. 서로의 손을 꼭 잡고 한 손으로는 젖은 초코바를 먹으며 N과 나는 강을 바라보았다. 이 짓을 5일 더 할 수 있을까.
잠시 후, 배 위의 우리는 덜덜 떨며 애써 수다를 지속하고 있었다. 땅 위의 물과 하늘에서 떨어진 물이 우리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살겠다고 노를 젓는 수밖에 없었다. 강은 계속 흐르니까. 우리는 핸드폰도 없고, 여긴 사람도 없고, 오로지 설 땅이라고는 비에 젓은 손바닥만한 뭍 뿐이었다. 우리가 노를 젓는 것이 아니었다. 생존이 노를 젓고 있는 것이었다.
다시 급류가 나왔다. 비교적 넓은 강에서의 급류였기에 우리는 유속이 비교적 약한 곳으로 피해가기로 결정했다. 없는 요령으로 어떻게든 노를 저어 뱃머리를 그나마 잔잔한 물살이 있는 쪽으로 이동시켜 앞으로 갔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한 번 더 배가 뒤집어졌다. 큰 바위와의 충돌이었다.
안전요원조차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세 번째로 뒤집혀진 배를 세 번째로 다시 뒤집은 우리는 구명조끼의 위대함을 느꼈다. 우리는 그저 실실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이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배 위에서 라면을 끓여먹는 상상까지 해온 채 출발했었다. 현실과 환상의 괴리감 언저리에서 우리는 할 말을 잃고 하릴없이 황당한 웃음만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마치 현실이 아닌 것처럼, 강의 상류는 거칠고 길었다.
우리는 바이킹처럼 다시 앞으로 나갔다. 아일랜드 커플은 어떻게 그렇게 빨리 갈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