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구두 아줌마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성태용
명사칼럼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김도형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마이클 킴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조성현
전정훈
Mystery
새움터
멜리사 리
휴람
김준
박기태
Timothy Cho
독자기고

빨강 구두 아줌마

0 개 2,866 오소영

밖은 비 바람이 사납다. 오늘같은 날, 밖에 볼 일이 없으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어둠침침한 집안에서 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옷을 두둑히 입고 앉아 있는데 있을수록 더 춥다. 아랫도리가 얼어오는데 견딜수가 없다.

 

뉴질랜드의 겨울 추위는 비 내리는 날, 가히 공포스럽다. 평생 몸에 베인 절약정신도 생각할 겨를이 없다. 히터의 스위치를 맨 위까지 거침없이 올렸다. 

 

그래봐야 집 안 가득 비춰주는 햇볕을 따라잡기엔 어림도 없다. 차라리 빗속으로 나서서 정면으로 도전하는게 낫겠다는 유혹이 밀려온다. 포근한 카페 의자에 파묻혀서 따끈한 커피라도 한잔 마시면 이 추위를 잊을 것만 같다.

 

서둘러 중무장으로 챙겨입고 밖으로 나섰다. 난로앞에서 달아올랐던 양 볼에 찬바람이 상큼했다. 늘상 냉방으로 썰렁하던 버스 안이 오늘은 방 안 보다 더 훗훗했다.(역시 나오길 잘 했구나) 슬며시 마음이 바뀌었다. 

 

목적없는 방황속에서 즐기는 낭만. 빗속의 나그네?. 생각을 하니 꽤 기분이 가벼워졌다. 기차로 바꿔 탔다. 출퇴근 시간이 아니니 사람도 별로 없다. 

 

텅 빈 공간이 불빛 속에 화안했다. 내가 마치 이 큰 차량 하나를 전세 낸듯 넉넉하고 편안했다. 사나운 비 바람속에. 발품을 팔아서 얻은 이 조그만 평화에 부풋한 감동이 왔다. 움츠렸던 어깨가 화알짝 펴졌다.

 

이 기찻길엔 없어서 아쉽지만 좋아하는 갈대의 꿈을 더듬어보는 것도 재미있다. 잿빛 하늘밑에 웅크려 앉은 낮은 집들. 시퍼런 나무들이 모진 매를 맞으며 앙탈하듯 몸을 흔들어댄다. 

 

달리던 차가 잠시 멈추었다. 

 

새로 올라타는 어떤이가 가볍게 몸에 묻은 빗물을 털며 앞자리로 가고 있었다. 드디어 내 전셋방(?)에 무단 침입자가 생긴 것 인가. 문득 그의 발이 내 시선을 붙잡았다. 

 

찐한 오렌지의 빛깔이 형광색으로 눈이부신 운동화. 그 화사한 빛깔이 그의 전체를 화려하게 돋보이고 있었다.

 

“또옥 똑 구두소리... 빨강구두 아가씨....”

 

젊었을 때. 유행했던‘빨간구두 아가씨’란 노래. 가수‘김상희’가 불렀다. 경쾌하고 명랑해서 쉽게 따라불렀던 생각이 난다. 예전엔 구두하면 보통 검정 아니면 갈색정도. 여름엔 백구두가 주류였다. 

 

빨강구두는 정말 특별한 멋쟁이 아가씨들이나 신었다.

 

“한번쯤 뒤돌아 볼 만도 한데... 발걸음만 하나둘 세며 가는지...”멋쟁이 아가씨를 선망했던 젊은 남자들의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그런 시절에 어느 오십대 아줌마가 빨강 구두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던 이야기 하나.

 

4502ed5eed0dffe371088913b04eb6cd_1500949579_1399.jpg
 

서울에서 나고 자랐으니 본 것은 많아 노상 촌뜨기는 아니었다. 그래도 멋하고는 담을 쌓고 살던 사람이었다. 전업 주부의 주책이었을까? 반란이었을까? 일상의 굴레를 잠깐 벗어버린 일탈이었을 것이라고 지금 생각한다.

 

어느날인가. 모처럼 시내에 나갔다. 인사동 근처였던것으로 기억한다. 제법 알려진 양화점 쇼윈도에 화려하게 진열된 그 구두를 발견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새빨강 칠피구두. 정중앙에 동전 크기의 새까만 동그라미가 조화의 포인트를 더했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중간굽으로 남으램 할데가 한군데도 없었다.

 

며칠을 그 구두가 눈앞에 어른거려 잠을 설쳤다. 살림에 묻혀서 집안에서만 사는 여자가 어불성설 말도 안되는 이변이었다. 아가씨도 아닌 오십대 주부가 감히 빨강 구두라니... 그걸신고 딱히 갈만한 곳도 있을리가 없다.

 

처음 경험하는 들뜬 마음을 달래느라 많이 애썼다. 자신 속에도 허영끼가 숨어 있었다는 사실에 놀래기도 했다. 스스로 철없음을 남으램도 했지만 그 강한 유혹에 끝내 지고야 말았다. 뭔가를 꼭 갖고싶다는 오랫만의 감정. 그 새로운 감정이 고마웠다는게 핑게였다. 그동안 주부라는 틀에 묶어놓고 요지부동으로만 살아왔던 자신임을 깨달았다. 사실 밖을 기웃거려본지도 오래 되었다.

 

벌써 어느 예쁜 아가씨가 그 구두의 주인이 되지 않았을까? 그 때는 가볍게 체념을 하리라. 마음 다졌다. 하지만 그것은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치 이 주인을 기다렸다는듯이...

 

어렸을 때 엄마가 새 운동화를 사 주시면 선뜻 신지를 못했다. 너무 좋아서 몇 밤을 품에 안고 자곤했다. 바로 그런 기분이었다. 신장 안에 모셔두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솔직히 말하면 신고나설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민망함을 참고 큰 용기를 내서 신어본게 몇번이나 될까? 젊음을 한참 비껴간 아줌마란 사실에 주눅이들어 챙피했던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 빨강구두를 신고 나설땐 어깨가 쭉 펴졌다. 꼿꼿한 자세로 당당하고 기품있게 자신을 높여 으쓱해 보기도 했던게 사실이다.

 

이민 보따리엔 그게 따라오지 못했다. 이 년만인가 귀국해서 신장을 열었을 때 그 빨강색 구두가 다시 내 눈을 자극했다. 깔끔하게 새 것처럼 포장을 해서 가지고 들어왔다. 지난 세월이 얼마인가. 그 때도 신기 어려웠던 컬러를 지금 신다니... 그건 그냥 내 신장안에 애완용이었다. 지금처럼 컬러의 다양한 물결이 일기 몇해 전. 그 구두는 나와 마지막 이별을 했다.

 

안 입는 옷 보따리에 싸여 빈으로 들어갔다. 온갖 신발들이 컬러의 다양함으로 눈이부신 요즘이다. 눈 딱 감고 한번쯤 신어봤으면 좋았을걸. 혹시 누군가 뒤에서‘빨강구두 아가씨’노래라도 불러줄지 아는가..... 후. 후. 후...

 

어느덧 종착역에 다 왔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유치한 치기의 꿈도 끝이났다. 그동안 비도 멀리갔다. 파아란 하늘에 한 뼘쯤 남은 햇살이 유난히 눈부시다.

내 여생도 저 햇살을 닮아 곱고 멋지고 싶다.

 

밝고 아름답고 향기있는 삶을.... 

새끼 고양이

댓글 0 | 조회 1,743 | 2017.08.08
새끼 고양이를 데려왔습니다.세상에 나온지 8주인 아이입니다.밥만 잘 먹어도 예쁘고,잘 뛰어 놀아도 예쁩니다.잠만 자도 세상에서 제일 예뻐 보이는조그만 아이가 생겼… 더보기

新워크비자법, 그것이 알고 싶다

댓글 0 | 조회 5,618 | 2017.08.08
지난 4월, 정부와 이민부는 일반워크비자(Essential Skills Work Visa)와 기술이민(Skilled Migrant Category, SMC) 에 … 더보기

벽면 액자 꾸미기

댓글 0 | 조회 2,388 | 2017.08.08
■ 벽면 액자 꾸미기페인트와 가구로 채워지지 않는 허전한 벽면에 가족 사진이나 그림 또는 레터링 장식(글자판) 등으로 꾸며보세요. 좀 더 멋진 인테리어 공간으로 … 더보기

동양고전이 뭐길래

댓글 0 | 조회 1,337 | 2017.08.08
지난 번까지는 우리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금주부터는 이웃 문화에 대해 알아 보고자 한다. 지난 주 이야기에‘지피지기 백전불태 (知彼知己 百戰不殆: 나를… 더보기

미련스럽게 버리지 못하는 미련

댓글 0 | 조회 2,352 | 2017.08.08
어리석고 둔한 것을‘미련하다’고 하며, 품었던 감정이나 생각을 딱 끊지 못하는 것을‘미련’이라고 한다.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며 동물을 미련스럽다고 하지만, … 더보기

간암 • 폐암 발병 원인과 예방법을 알아보자

댓글 0 | 조회 1,929 | 2017.08.05
휴람 네트워크와 제휴한 ‘중앙대학교병원’ … 간암 72%가 B형 감염자, 여성 폐암 환자 90%가 비흡연자많은 이들이 간암은 술을 많이마시는 사람에게 생긴다고 알… 더보기

폐암(肺癌)

댓글 0 | 조회 2,014 | 2017.08.05
금년에 팔순(八旬)인 영화배우 신성일(申星一) 씨가 최근 폐암 3기 판정받고 투병 중이다. 1960년 <로맨스 빠빠>로 영화계에 데뷔 당시 소속한 신필… 더보기

자신의 길을 가다

댓글 0 | 조회 1,439 | 2017.07.26
오래 전 노자 할아버지께서는 도덕경이라는 책을 통해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시작하신 적이 있습니다.道可道 非常道 (도가도 비상도)여러 가지로 해석이 분분합니다만 다… 더보기

액면가

댓글 0 | 조회 1,752 | 2017.07.26
2014년 말 한국 신문과 TV방송에 한 어이없는 뉴스가 등장합니다. 몇 명의 주물 기술자들이 10원짜리 동전들을 액면가의 거의 두 배나 되는 17원씩에 사들인 … 더보기

다시 첫 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댓글 0 | 조회 1,502 | 2017.07.26
장 석주어떤 일이 있어도 첫사랑을 잃지 않으리라지금보다 더 많은 별자리의 이름을 외우리라성경책을 끝까지 읽어보리라가 보지 않은 길을 골라 그 길의 끝까지 가 보리… 더보기

Wine Chambers Restaurant

댓글 0 | 조회 1,301 | 2017.07.26
Wine Chambers Restaurant은 오클랜드 시티에 위치한 서양요리 전문으로 모던 유러피언 레스토랑이다. 1928년에 지어진 오클랜드 시티에 고풍 건물… 더보기

옥자 Okja 2017 봉준호

댓글 0 | 조회 2,480 | 2017.07.26
봉준호 감독이 틸다 스윈튼, 스티븐 연, 제이크 질렌할 등의 할리우드 대형 스타들, 그리고 윤재문, 변희봉 등의 명품 배우들을 동원하여 찍은 옥자가 연일 화제였죠… 더보기

행복의 나라로

댓글 0 | 조회 1,698 | 2017.07.26
이젠 기억도 가물거리는 수십년 전에 즐겨불렀던 통기타 시대 노래 중에 “행복의 나라로”라는 것이 있다. 그 노래의 첫 가사는“장막을 걷어라”로 시작된다.우리가 무… 더보기

IRD감사: 자산증가 Case(Ⅰ)

댓글 0 | 조회 2,193 | 2017.07.26
<이전호 이어서 계속>이번호에는 지난호에 예고했듯이 자산증가 (Asset Accretion)과 관련한 case를 소개하겠다.케이스 요약 (TRA 케이스… 더보기

불행한 공주 3편

댓글 0 | 조회 1,408 | 2017.07.26
그러던 어느 날 왕비는 더 이상 이런 방식으로는 운명의 힘을 이길 수 없으니 세상의 모든 모이라들이 다 모인 멀고 높은 산꼭대기를 찾아가 운명을 바꿔달라고 말하라… 더보기

아마 영화 촬영하는 줄 알겠지...

댓글 0 | 조회 2,274 | 2017.07.26
언제였던가 한국에서 이 나라에 오신 지인 부부를 집에 초대하여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대접한 후 가까운 바닷가로 가서 거닐면서 대화를 나누었다.도착하니까 석양이 뉘… 더보기

대입 공동 지원서 에세이

댓글 0 | 조회 1,468 | 2017.07.26
이 번호에는 에세이 프람트를 분석해 보고자 합니다. 에세이의 주제는 “실패는 후에 성공의 초석이 될 수 있다. 실패를 경험한 때나 사건을 기억해 보라. 그 실패가… 더보기

골프에서의 겸손

댓글 0 | 조회 1,562 | 2017.07.26
골프라는 운동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말아야 하는 단어가 있다.바로‘겸손’이라는 단어이다. 조금 잘 맞는다고 우쭐대다가는 바로 다음 홀에서 무너질 수 있고 또 그 … 더보기

쇼팽과 윤이상

댓글 0 | 조회 1,707 | 2017.07.25
고국을 떠난 후 다시 고국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파리에서 영면한 쇼팽과 베를린에서 영면한 윤이상,금년이 윤이상 탄생 100주년 이라는데……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던… 더보기

제 2회 완경기 그룹을 마치면서

댓글 0 | 조회 1,426 | 2017.07.25
지난 6월 21일이 뉴질랜드에서 낮이 가장 짧은 날이었습니다.한국으로 말하자면 동지 즉 겨울의 한 중앙이지요.“후유 절반은 지났구나”안도의 숨을 조심스럽게 내쉽니… 더보기

부동산 투자 적절한 시기인가?

댓글 0 | 조회 2,292 | 2017.07.25
오클랜드를 비롯한 여러지역으로 부동산 불경기가 확산되고 있다. 물론 지역별로 소폭 오름세가 있는 곳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위축되어 가고 있음을 부동산옥션장을 가면 … 더보기

나설렘씨의 사업 체크리스트 3 - 키워드 마스터하기 1

댓글 0 | 조회 1,835 | 2017.07.25
■ 키워드 마스터하기 1지난 편에서 나설렘씨는 검색엔진이 내용을 잘 가져갈 수 있도록 기본적인 세팅을 마쳤습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웹사이트의 내용에 대한 고민을… 더보기

숲속의 완벽한 펜트하우스, 아난티 클럽 서울(Ⅱ)

댓글 0 | 조회 2,556 | 2017.07.25
75만평의 자연림에서 한국의 오거스타로 거듭나다.아난티 클럽 서울은 기존의 골프장을 인수해서 조금의 리뉴얼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골프장을 탄생시켰다.심한… 더보기

오이 데이 vs 오싫모

댓글 0 | 조회 2,024 | 2017.07.25
더운 여름철에 ‘오이냉국’을 가정에서 간단히 만들어 먹으면서 더위를 식힐 수 있다. 시원하기에 한 그릇 후룩 먹기에도 좋고, 또는 밥 먹기 전에 입가심으로 한껏 … 더보기
Now

현재 빨강 구두 아줌마

댓글 0 | 조회 2,867 | 2017.07.25
밖은 비 바람이 사납다. 오늘같은 날, 밖에 볼 일이 없으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어둠침침한 집안에서 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옷을 두둑히 입고 앉아 있는데 있을수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