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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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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초가을, 땅끝 마을 갈두리(葛頭里)에 갔다 돌아올 때 생긴 일이다. 나는 토말(土末) 전망대에서 바라본 환상적인 가을 바다의 감동에 잠겨서 서서히 차를 몰고 13번 국도를 따라 해남을 향해서 가는 중이었다. 내리막 직선 길이었다. 내차 앞에 벌써 명줄을 놓았어도 유감이 없을 만한 봉고차가 매연을 풍기면서 시속 40킬로미터에도 못 미치는 속력으로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차를 앞지를 것인지 매연을 마시면서 뒤따라 갈 것인지 망설이고 있었다. 중앙선이 넘을 수 없는 황색 선이기 때문이다. 

 

황색 선은 어떤 경우에도 넘을 수 없다. 넘으면 범행이 된다. 나는 민주국민의 양식으로 황색 선의 통제력에 순응하고 있었다. 봉고차의 매연은 스컹크의 분비물처럼 내 쾌적한 초 가을 드라이브 환경을 여지없이 오염시켰다. 신경질이 나기 시작했다. 봉고차는 운행에 문제가 있는 차가 분명했다, 그러면 뒤차를 먼저 가라고 길 가장자리로 비켜 주면서 점멸 등으로 신호를 보내 주면 고마울 터인데 뒤차는 전혀 개의치 않고 풀풀 매연을 풍기면서 ‘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것이었다. 그 주제넘은 여유가 가증스러웠다. 증오심이 발생 했다. 증오심은 자제력을 잃게 한다. 자제력을 잃으면 우발적 살인도 저지를 수 있는데 하물며 황색 선을 넘어가는 것 쯤은 대수도 아니다. 

 

나는 황색 선을 넘어 봉고차를 앞지르고 ‘약오르지 임 마-.’하는 마음으로 봉고차 앞으로 바짝 끼어들었다. 그런데 아뿔싸, 앞을 보니 저만큼 도로변에 교통경찰관의 오토바이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봉고차 때문에 미처 전방의 교통 경찰관을 발견치 못한 것이다. 나는 꼼짝할 수 없는 현행범으로 적발당하고 말았다. 젊은 순경이 길섶으로 차를 세우라고 내게 수신호를 했다. 나는 길섶에 차를 세웠다. 순경이 운전석 쪽 차 문 앞에 와 서더니 내게 예의 바르게 거수경례를 했다. 나는 죄진 사람의 본능으로 인사를 받았다. 

 

“수고하십니다.” 

목소리가 궁색할 수밖에---. 순경이 조수석의 아내를 보며 농담처럼 말했다. 

 

“동부인을 하시고 여행 중이시군요. 사모님을 위해서라도 위험한 운전은 안 되지요.” 

전혀 권위적인 태도가 아니었다. 나는 젊은 순경의 여유가 범법을 비리(非理)로 해결할 틈을 주는 거라고 여기고, 비리를 저질러 볼 요량으로 차에서 내리려고 했다. 순경은 차 문을 열지 못하게 말리며 역시 부드럽게 말했다. 

 

“내리지 마십시오. 시간이 지체됩니다.” 

나는 배설물을 깔고 앉은 사람처럼 엉거주춤하고 순경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 망측한 내 표정을 젊은 교통순경은 후각을 오염당한 사람처럼 상을 찡그리고 보았으리라고 오해하지 마시라. 순경은 밝게 웃으며 정중하게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도로교통법 제20조 앞지르기 금지와 동 법 60조의 안전띠 착용 의무를 위반하셨습니다. 면허증을 제시해 주십시오.” 

적발자답지 않은 부드러운 목소리였으나 넘볼 수 없는 형리(刑吏)의 의지가 담긴 또박또박 분명한 통고였다. 긴 가죽 장화를 신고 제복을 단정히 입은 체격 좋은 젊은 교통경찰관은 마치 히틀러의 근위병처럼 상대방을 제압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반항도 하지 못하고 면허증을 제시했다. 

 

앞지르기 금지 위반은 벌점까지 가산되는 비교적 무거운 범칙(犯則)이다. 그러나 파렴치범도 아닌데 비굴할 필요까진 없지 않은가. 위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설득력이 있든 없든 설명도 해보지 않는다면 민주국민의 항변권(抗辯權) 을 포기하는 것이다. 나는 굳이 순경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차에서 내렸다. 

 

“지금 지적한 범칙 사실은 인정하지만, 상황이 전혀 고려 되지 않은 법규 편의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상황을 설명하 고 싶은데 좋습니까?” 

나는 정중하게 말을 했다. 

 

“네, 말씀하세요.” 

 

나는 당당하려고 했지만, 똥 싼 주제에 매화타령하는 것 같아서 그게 잘 안 되었다. 결국은 어눌한 어조로 변명 이상이 될 수 없는 상황설명을 했다.

 “보아서 알겠지만, 앞차는 시속 40킬로에도 못 미치는 낡은 차였소. 매연을 다 마시며 반드시 그 차 뒤를 따라가야 합니까? 오르막길의 정상이라든지 커브 길이기 때문에 전방확인이 안 된다면 모르지만 내리막길이긴 하지만 직선이라 앞이 잘 보여서 앞지르기를 했는데 정상참작이 안 되겠습니까?” 

 

순경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멀지 않은 전방에 근무 중인 교통순경도 못 보지 않았습니까?” 

격의 없는 사이처럼 말했지만 내 상황설명을 여지없이 일축하는 한 마디였다. 

 

“황색 선이 그어져 있는 도로 상에서 앞지르기는 분별없는 짓입니다. 분별없는 운전은 아무리 익숙해도 실수가 따르고, 운전의 실수는 생명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이 길은 그 실수의 개연성이 충분히 도사리고 있는 곳이라 황색 선을 설치하고 교통순경이 운전자의 주의를 환기시킬 목적으로 먼지를 마시며 길가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는 스티커를 작성하며 초등학교 저학년을 가르치는 선생님처럼 정성껏 말했다. 나는 벌서는 초등학교 저학년생처럼 딴청을 떨고 질펀한 황금 들녘의 풍요로움을 건너다보았다. 딴에 기분 나쁘다 이거였다. 나이답지 않게 팔팔 뛰는 자존심을 꾹 물고 있으려니까 어금니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이윽고 그는 스티커를 내게 건네주고 사인을 하라고 했다. 잘했든 잘못했든 기쁘게 벌 받는 놈은 없을 것이다. 나는 볼이 부어 가지고 스티커를 받아 들었다. 스티커에 적힌 범칙 사실은 의외로 안전띠 미착용뿐이었다. 앞지르기 금지 위반은 적용하지 않았다. 나는 의아해서 순경 얼굴을 쳐다보았다. 순경은 도로 저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웬 횡재냐 싶어서 얼른 스티커에 사인했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차 한 잔을 대접하듯 스티커에 촌지(寸志)를 얹어 주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러자 순경이 얼굴을 붉히면서 정색을 했다. 

 

“선생님이 앞지르기 금지를 위반한 것은 사실이지만 분명히 앞차는 저속으로 운행했고, 선생님 역시 서행으로도 앞 지르기가 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또 다른 지방 사람이라 도로사정을 모르고 실수를 하신 것이지 고의는 아닌 것 같아서 계도 조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알 만하신 분이 공무원의 자존심을 욕보이시면 되겠습니까. 이 돈으로 안전띠 미착용 범칙금을 내십시오. 먼 곳에서 우리 고장까지 여행을 오셨는 데 좋은 추억을 남겨 가셔야지요. 불쾌한 여행이 되면 쓰겠습니까. 조심해서 운전하십시오.” 

 

내게 스티커 부본을 넘겨주며 정중히 거수경례를 했다. 

 

나는 부끄러워서 순경의 얼굴을 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젊은 교통경찰관의 순수성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내 인격의 한계가 뼈저리게 느껴졌다.‘교통법규 위반은 촌지로 해결하라’ 운전자의 통념 같은 상식을 깨끗하게 불식시켜 주는 아들 또래의 교통경찰관의 순정적(純正的)인 직무취급 앞에 내 나이가 얼마나 헛된 것인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절대로 교통법규를 위반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일부러 꾸중들은 초등학생처럼 반성의 기미가 역력한 어조로 고개를 떨구고 말했다. 그건 비굴이 아니라, 공무원의 자존심을 손상시킨 데 대한 응당 내가 취할 태도였다. 그러나 내 마음은 훌륭한 명승지를 관광한 것보다도 더 큰 감동으로 설레었다. 땅끝 앞바다의 풍광에 감동한 내 여행을 조금도 훼손하지 않고 공무를 집행해 준 그 순경의 배려에 감동한 것이다. 

 

해남은 윤선도의 인품과 학문이 배어 있는 유서 깊은 고장이다. 그 교통경찰관의 직무태도는 자기 고장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우월감에서 비롯된 젊은 협기(俠氣)인지 모른다. 길 나서면 생각지 않은 것을 배우고 감동하게 된다. 

언제 그 젊은 순경을 다시 그 길에서 만난다면 얼른 차를 길섶에 세우고 내릴 것이다. 그리고 반색을 하며 그의 손을 잡고 충청도 양반답게 고전적(古典的) 언사로 안부를 물을 것이다. 

 

“또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그간 무고하셨습니까? 아무 적에 당신에게 이 길에서 인생을 한 수 배운 바 있는 아무개 올시다.”

 

그때 그 교통순경은 자신의 실존적 가치를 인식하고 기뻐할 것이다. 그것은 그에게 진 빚을 갚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는 불가피하게 땅끝 갈두리 여행을 다시 한번 하지 않을 수 없는 구실을 만들어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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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성균 

1938년 충북 괴산 연풍에서 4남1녀 중의 장남으로 태어나다. 청 주상고 졸업,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중퇴하다. 1968년 산림직 공무원 국가고시에 합격하여 25년간 공직생활을 했다. 강릉영림서를 시작으로 충북도청, 청주시청, 충북사방사업소, 괴산군청 등에서 근무하였다. 1993년 퇴직 후 월간 에세이에 초회 추천된 후, 1995년 월간 수필문학에 ‘속리산기’로 추천 완료되었다. 2003년 수필집 ‘명태에 관한 추억’이 문예진흥원 우수문학 작품집에 선정되었고, 2004년 3월 제22회 현대수필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같은 해 5월 타계하였다. 저서로는 ‘명태에 관한 추억’, ‘생명’, ‘행복한 고 구마’, ‘돼지불알’, ‘누비처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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