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2 - 마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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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2 - 마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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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한옥 

 

장마가 지나간 후여서 잔디가 발목을 덮을 만큼 우북수북 자랐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 무렵 잔디를 깎으려고 앞마당으로 나왔다. 초겨울 폭풍에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여기저기 너부러져 있었다. 주섬주섬 치우는 동안 오른쪽 옆집의 마틴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어수선한 뜰을 보고 무슨 큰일을 치르려나 하는 궁금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꽉 낀 청바지에 감색 티셔츠를 입은 마틴은 오늘따라 한층 위풍이 늠름해 보였다. 수염을 기르지 않은 얼굴은 멀끔했고 흑갈색 곱슬머리는 군인처럼 짧게 다듬었다. 그는 붙임성이 좋았다. 입담이 세서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면 먼저 끝내는 적이 없었다. 언성이 높아지면 울룩불룩한 문신투성이의 팔 근육이 불뚝대었다.

 

“하는 일은 잘 돼?”

 

의례적인 안부를 물었다.

 

“만만치 않아요, 프로젝트가 워낙 커서. 이십 년 가량 걸리는 사업이니까요. 아마 완성되면 지금의 오클랜드 공항보다 클 걸요?”

 

마틴은 오클랜드 신 국제공항 건설의 엔지니어로 일하는데 자신의 책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하긴 자부심이 없으면 그게 어디 젊음이던가? 나는 마틴에게 벼르던 말을 꺼냈다. 그동안 이웃을 깔보던 비 공동체적인 방임주의를 꺾어 놓을 셈이었다.

 

“마틴, 본 김에 말인데 자네는 왜 내 말을 번번히 흘리나?”

 

인사차 다가왔던 마틴이 나의 퉁명한 다그침에 흠칫 놀랐다.

 

“저 울타리 나무 언제 자를 거야? 벌써 지붕보다 높잖아. 물받이에 낙엽이 쌓여 빗물이 내 집 처마로 넘쳐 흐른단 말이야. 부엌에 햇빛도 안 들어 캄캄하고.”

 

“알았어요, 주말에 꼭 자를 게요.”

 

마지못해 대답하는 마틴의 목소리는 꼬여 있었고 계면쩍은 미소엔 불편함이 드러나 보였다. 아마 어린 시절부터 지어 오던 버릇 같았다. 그 순간 나는 이웃에게 너무 야박하게 대했나 싶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밀쳐 둔 억심이 한둘이 아니었기에 다시 마틴을 채근했다.     

 

“그리고, 스파는 왜 그대로 방치해? 쓰지도 않으면서. 밤에는 펌프 모터를 끄기로 했잖아. 도대체 그 전동 펌프 소리로 잠을 이룰 수 없어. 자네가 주말마다 동네 떠나갈 듯 밤 파티를 벌이는 건 이해를 해. 그건 법으로도 허용된 거니까. 그런데 그 놈의 모터 소리는 아냐. 이젠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야. 자네는 알 만한 사람이고 또 몇 번을 말했는데 이웃을 이리 무시해도 되는 거야? 아니면 무슨 어깃장을 부리는 거야.” 

 

마틴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했다. 침을 튀기며 따다닥 쏘아대는 나의 입총알에 안절부절못했다. 나는 그가 게으르거나 시간에 쫓겨서가 아니라 자기보다 섬약한 체구의 동양인 이웃을 인종적으로 깔보는 심리 때문일 거라며 내리 면박을 주었다. 문제는 이제 나의 감정이 솟구쳐 흥분상태로 달아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조금 더 나가면 차마 하지 말아야 할 말도 게워낼 것 같았다. 목에 걸린 그 말은 나에게 매우 ‘민망스런 일’ 이었다.

 

마틴은 언뜻 보면 백인이었지만 유럽인 혈통을 지닌 마오리였다. 몇 해 전 이사를 와 오른쪽 이웃이 되었다. 유럽인과 마오리의 장점을 두루 갖고 태어난 그는 체격으로 보나 인상으로 보나 액션 영화의 주인공감이었다. 기골이 장대하고 중년에 들어선 의젓한 기백이 넘쳤으며 예의범절도 깍듯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그의 행동거지에 나는 고개를 살래살래 젓곤 했다. 

 

그가 이사오기 전 그의 집 정원은 꽃대궐이었다. 예전에 살던 노 부부가 수십 년 정성을 쏟아 가꾼 정원은 사시사철 온갖 꽃이 만발하고 향기가 넘쳤다. 창 너머로 보이는 형형색색의 꽃들은 벌나비와 달콤한 밀어를 나누며 향연을 벌였다. 나지막한 담장을 타고 흐르는 진분홍 부겐베리아의 꽃물결은 꽃을 좋아하는 아내에겐 몽환적인 선물이었고, 포도나무 사이로 번지는 동백꽃 향기는 나를 황홀한 감상에 빠지게 했다. 자카란다의 보라색 꽃잎이 흐드러질 땐 그윽한 운치에 취해 넋을 잃었다. 

 

하지만 마틴은 그 찬연한 꽃 나부랭이에 치를 떨었다. 정원사를 불러와 전쟁을 치르듯 포클레인으로 꽃대궐을 한 뿌리도 남기지 않고 갈아엎었다. 그 고운 함소와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뭉개는 잔인함이라니.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절반은 시멘트 블록을 깔고 절반은 잔디 뗏장으로 덮었다. 앞마당 담장은 밖에서 넘보지 못하도록 견고한 나무로 성벽처럼 두르고 나의 집과의 경계에는 자기 키 보다 큰 울타리 나무를 촘촘히 심었다. 그야말로 이웃과는 담을 쌓겠다는 거였다. 아내는 탄식을 하고 나는 그의 괴벽스런 성미에 팔을 떨어뜨렸다. 

 

“쟤는 아마 집도 부숴서 거꾸로 세울 거야.” 

 

아니나 다를까 마틴은 반년 가까이 멀쩡한 벽돌집을 뼈다귀만 남기고 박살을 내더니, 상하 좌우를 구분 못할 창고 모양으로 만들어 놓고 옆 마당 널찍한 덱을 부순 다음, 집채 만한 스파를 덜렁 들여놓았다. 생각의 폭과 깊이가 어찌 저리 동떨어질 수 있을까? 못 말릴 취향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들어가 뇌세포 구조라도 헤적여보고 싶었다. 기계가 돌아가고 망치 소리가 쿵쾅거리고, 화물차가 들락거리고 일꾼들이 법석대고, 공사판은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마틴은 두 여자와 섞여 살았다. 걸핏하면 이혼한 전처가 어린 남매 자식을 데리고 와 마틴이 새로 만난 파트너와 함께 뒹굴었다. 두 여자는 사이가 좋았다. 사춘기 소녀들처럼 대마초도 주거니 받거니 나누어 피우며 서로의 얼굴에 연기를 뿜어 날렸다. 몽롱한 상태에 이르면 네 얼굴이 얼간이처럼 웃겨 보인다며 엉너리를 떨며 시시덕거렸다. 남편을 뺏어 간 여잔데 포도주잔을 부딪히며 파트너의 변죽까지 받아주는 걸 보면 전처는 쓸개를 팔아먹었나 싶었다. 거기에다 마틴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나에게도 당당히 두 여자를 소개했다. 새로 맺어진 파트너가 변호사인데 엉덩이가 불룩해 아기를 잘 낳을 것 같다며 입방정도 떨었다. 그들에게 결혼이나 가정은 규율에 얽매인 희생의 굴레가 아니었다. 자유롭게 갈라설 수 있고 언제라도 해체할 수 있었다. 해체한다 한들 반복의 과정일 뿐 파탄이 아니었다. 그들은 분명 다른 시대에 사는 원시 부족이거나 생명공장에서 버려진 불량품이었다.

 

나는 잔디 깎기를 미룬 채 마틴을 붙들었다. 마틴은 나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음을 알았다. 자존심과 예의를 꿋꿋이 지키며 나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나의 입이 껄끄럽고 민망한 말로 가득 고여 근질근질했다. 하지만 차마 게워낼 수 없었다. 그 일도 분명 이웃인 나에게 인내심을 시험케 하는 소란이었고 폐해를 주는 무례였다. 이웃들에게 풍문으로 떠돌던 짐승의 울음소리였다. 

 

*

 

마틴은 고양이 두 마리를 키웠다. 한 녀석은 거머누릿한 터럭에 몸집이 통통하고 다른 녀석은 까만 털에 윤기가 흘렀다. 꼬리도 날렵했다. 이 집 저 집 할 것 없이 마당이나 담장 위를 어슬렁거리고 다녔다. 덕분에 골칫덩이 생쥐들이 자취를 감췄다. 녀석들은 낮에는 모른 척하고 지내다가 이슥한 밤이 되면 눈에 불을 켜고 으르렁거렸다. 길 건너 고양이들이 영역을 넘어와 얼쩡거리면 집단의 투쟁을 벌였다. 물어뜯는 소리는 적막을 깼다. 전쟁이 끝나면 담장 밑에서 어린아이 울음소리를 내고 때론 지붕 위에 올라가 인간의 신음소리를 냈다. 그런 밤이면 오싹오싹했다. 저놈의 야생의 소리! 나는 잠을 설치곤 했다. 녀석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잦아지고 어느 때는 한낮에도 괴성을 질렀다. 고양이들의 세상에 인간이 끼어 사는 기분이었다. 나는 아무래도 마틴에게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고양이를 단속하든지 밤만이라도 가둬 두든지, 내가 받는 스트레스가 한계점에 와 있음을 알려야 했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마틴에게 얘기해야겠지?”

 

“그런 걸 어떻게 말해? 고양이도 제 자식일 텐데.”

 

“생선에다 쥐약을 넣어 울타리 밑에 던져 둘까?”

 

“말 같은 소리를 해.”

 

아내는 눈을 흘기며 입매를 우그렸다.

 

“발정기가 됐는지 요즘엔 낮에도 요상한 소리를 질러. 못 들었어?”

 

“듣긴 들었지.” 

 

“어떻게 들으면 애기 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여자가 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아무튼 고양이는 요물이라니까.”

 

어슬녘, 빨갛게 익은 구아버 끝물을 따려고 뒤뜰로 갔다. 뒷집의 벤트와 그의 여자 친구 마샤가 빨래를 걷고 있었다. 벤트는 전기공인데 언제나 칼퇴근이었다. 인사를 나누려는 순간 마틴의 집 울타리 너머에서 또 고양이의 울부짖음이 들렸다. 윙윙대는 스파의 모터 펌프 소리와 부글부글 포말을 일으키는 물소리도 들렸다. 그날 따라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나는 창문을 두드려 아내를 불렀다. 아내가 슬리퍼를 꿰신고 달려 나왔다.

 

“왜, 무슨 일?”

 

“저 자지러지는 고양이 소리 들려?”

 

“무슨 고양이 소리? 어어, 마틴의 여자가 우는 소린데?”

 

“그래? 왜 그 여자가 울어? 부부싸움하는 거 아냐?”

 

아내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 정도 고통스런 울음이라면 예삿일이 아닌 듯했다. 앰뷸런스라도 불러야 할 성싶었다. 밴트와 마샤가 마지막 빨래를 걷어 바구니에 담으면서 벌그레한 얼굴로 킥킥거렸다. 두 사람은 ‘그렇게도 눈치를 모르세요?’ 하는 인위적인 순수한 눈빛을 던져주고 자기집으로 들어갔다. 아내가 손으로 입을 살짝 가리며 말했다.

 

“아이고, 고양이가 아니라 마틴이 지금 파트너와 뭘 만들고 있는 중이네.”

 

“뭘 만들어? 울며불며.”

 

“이렇게도 둔하다니.”

 

나는 여전히 고양이 울음소리인지 사람의 울부짖음인지 그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고 아내의 핀잔에 어안이 벙벙했다. 풍문으로 떠돌던 짐승의 울음소리, 요동치는 괴성은 극에 달했다. 나는 구아버 바구니를 떨어뜨린 다음에야 지금 이 순간 대단히 민망한 장소에 서 있음을 알아차렸다. 아내는 나의 엉덩이를 찰싹 갈긴 다음 나의 손을 잡아 끌었다. 나는 그동안 고양이들의 괴성에 속았다. 무뎌진 감각에 세상 물정을 하나씩 잊어가고 있었다.

 

*

 

지붕 너머로 어둑발이 내리기 시작했다. 마틴은 내가 어떤 핀잔을 다시 주려나 눈치를 살피다가 자기집 울타리 나무를 지그시 올려다보았다. 자르긴 잘라야겠구만,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마틴, 자네가 아무리 젊기로서니 꼭 그렇게 동네방네를 들썩여야겠어? 방음장치를 하든가, 창문을 꼭꼭 닫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하든가, 아니면 파트너 입에 양말로 재갈을 물리든가 하란 말이야.”

 

입이 근질근질하고 목에 걸려 차마 게워낼 수 없는 말은 바로 그 말이었다. 나는 끝내 목을 누르고 세상 물정 모르는 우둔한 자가 되어주기로 했다.  

 

집을 때려부숴 사각 창고로 둔갑시키더니 꽃대궐을 갈아엎고, 성벽을 두르고 촘촘한 울타리 나무로 이웃과 담을 쌓고, 스파의 모터 펌프를 쉼 없이 돌리고, 밤 파티 소란으로 동네를 뒤집고, 시도 때도 없이 원초적 괴성으로 놀라게 하고……. 나는 달리 생각하기로 했다. 마틴의 취향은 내가 반드시 꺾어 놓고야 말겠다는 비 공동체적 방임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었고 그의 날뛰는 취향을 이웃에 대한 폐해로만 볼 수 없었다. 관점의 범위는 무한했다.

 

이튿날 오후, 마틴 집에서 울타리 나무를 자르는 전기 톱 소리가 들렸다. 라디오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따라 부르는 마틴의 흥얼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나는 섬세한 빛깔의 격자 문양 메모지에 편지를 썼다. 두 번을 겹접어 셀룰러 테이프로 붙인 다음 마틴의 집 우체통에 넣었다.

 

<마틴, 나는 이제 남을 탓하지 않기로 했네. 이웃은 찾는 게 아니라 만나지는 사이였음을 몰랐네. 어쩔 수 없는 사랑의 인연처럼.>

 

그날 밤엔 모터 펌프 소리뿐 아니라 고양이의 울부짖음도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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