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이 소극(笑劇)으로 끝나지 않기 위하여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천미란
성태용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조성현
전정훈
Mystery
커넥터
Roy Kim
차자명
권레오
독자기고
새움터
김준
박기태
수선재
김도형
마이클 킴

비극이 소극(笑劇)으로 끝나지 않기 위하여

0 개 2,059 명사칼럼

이른바 ‘엔(N)번방 사건’은 여성 특히 아동과 청소년, 여성을 대상으로 성착취를 하고 불법촬영을 하여 이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대화방의 다수 회원에게 판매해 엄청난 수익을 취득한 사건이다. 취약 대상을 상대로 한 범죄의 잔혹성과 패륜성도 문제지만, 수만 명의 남성이 대화방에 가입하여 범죄를 교사ㆍ방조하였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경악하고 있다. 사람들의 공분은 가해자들에 대한 신상공개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 및 포토라인 세워주세요”라는 청원과 “텔레그램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원합니다”라는 청원이 각각 200만명을 훌쩍 넘어선 지 오래다. 

 

현행 신상공개제도는, 법원의 확정판결에 따라 재범 방지를 위한 목적으로 일종의 보안처분의 성격을 갖는 신상공개(‘성폭력처벌법’ 제42조, ‘청소년성보호법’ 제49조)와 수사 중 피의자에 대한 것으로 국민의 알 권리 내지 수사를 위한 신상공개(‘특정강력범죄법’ 제8조의2, ‘성폭력처벌법’ 제25조 등)로 나눌 수 있다. 문제되고 있는 것은 피의자에 대한 신상공개이고, 이번 사건에서는 처음으로 ‘성폭력처벌법’ 제25조가 적용되었다.

 

‘성폭력처벌법’ 상의 피의자 신상공개는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고 필요할 때 국민의 알 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게 된다. 이 경우에도 피의자의 인권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고 이를 남용해서는 안되며, 만약 피의자가 ‘청소년 보호법’ 상의 청소년인 경우에는 공개할 수 없다. 범죄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및 실제거주지, 직업 및 직장 등의 소재지, 연락처, 신체정보, 소유차량의 등록번호가 공개되는 보안처분적 신상공개와 달리, 피의자 신상공개의 범위는 얼굴, 성명 및 나이 등 피의자의 신상에 관한 정보에 국한되는데, 이때 수사기관은 얼굴을 드러내 보이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가 아니라, 얼굴을 가리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 소극적인 방식만을 취할 수 있다.

 

피의자 신상공개제도는 헌법상의 무죄추정 원칙에 반하고 이중 처벌과 인격권 침해의 소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공공의 이익’ 개념은 기본권 제한에 있어서 불명확하기도 하다. 공공의 이익은 피의자의 재범 방지, 범죄 예방과, 부수적으로는 피의자의 여죄(餘罪) 파악을 내용으로 하지만, 이미 신병이 확보된 피의자가 동종의 재범을 할 가능성은 없으며, 범죄 예방의 효과는 검증된 바는 없다. 잔혹한 범죄자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지 호기심이 일지만, 이것이 국민의 알 ‘권리’인지에 대해서는 모호하다. 실상 국민의 알 권리는 언론의 상업주의 내지 피의자에 대한 망신주기와 다름 아니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지점이다. 신상이 공개된 피의자는 방어권이 위축되고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되며, 피의자 가족에게 그 효과가 미친다는 점에서 연좌제와 같다는 비판도 따른다. 게다가 지금의 신상공개는 범행 동기나 심정을 일방적으로 표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피의자에게만 과도한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는 측면이 있다. 실무상, ‘신상공개위원회’의 판단이 자의적이라는 여론도 있다.

 

그러나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피의자 신상공개는 신상 정보가 노출되어 일상을 영위하기 힘든 피해자에 반해 피의자도 상응하는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점, 피해자의 권리보다 가해자의 권리가 더 보호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회의, 그리고 사회의 관대한 태도와 법의 미온적 처벌에 대한 보완적 조치의 필요성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더 나아가 이번 사건에서처럼 다수의 가해자가 누구인지조차 파악할 수 없는데 따른 일반의 불안과 또다시 성범죄에 노출될 것을 두려워하는 피해자들의 공포를 해소함으로써 시민의 안전과 피해자 일상의 회복에 대한 요청도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이번 사건은, 소라넷 사건을 비롯해 일련의 디지털 성범죄에 관대했던 문화와 법의 태도에 내재된 것이어서 안타깝다. 통상의 강력 범죄에 비해 디지털 성범죄의 기소율과 구속율은 현저히 낮다. 설사 기소되더라도 법원에 의해 집행유예나 선고유예를 받는 비율이 높은 편이고, 그나마 대부분은 벌금형으로 처벌된다. 더 나아가 (디지털) 성범죄의 원인을 피해자로부터 찾거나 피해자의 기여로 보는 일부 비뚤어진 시각에 분노한다. 누구도 범죄를 당해도 되거나 범죄를 저지를 권리를 갖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는 원인과 책임을 분별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책임을 희석시키고, 또 다른 피해를 낳는다는 점에서 반사회적이다.

 

이제 겨우 일부 운영자를 체포하여 수사 중에 있고, 여전히 검거되지 않은 운영자들과 가담자들에 대한 적발과 체포 그리고 수사와 재판, 처벌이 남아 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이 있다면,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범죄자를 반드시 적발하고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헤겔은 어느 부분에선가 세계사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지닌 모든 사건과 인물들은 말하자면 두 번 나타난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그는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 번은 소극(笑劇ㆍfarce)으로 나타난다고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 김대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182ea266c6ea0b42cb162e96b59beb34_1587609244_2795.jpg
 

 

출처 한국일보 칼럼 <형형색색>

 

노화(老化)와 노쇠(老衰)는 다르다

댓글 0 | 조회 235 | 22시간전
노화(Aging)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발생하는 정상적인 변화를 의미하며, 대개 모든 신체 영역에서 서서히 진행된다. 노화는 나이와 연관되어 있으며 비정상적인 과정… 더보기

변화의 시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댓글 0 | 조회 393 | 1일전
우리는 지금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과거에는 산업사회를 중심으로 물질적 생산과 경제적 효율이 중요한 기준이었다면, 오늘날에는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 더보기

대학생 공부하기 싫을 때 및 번아웃 어떻게 해야 될까요

댓글 0 | 조회 287 | 4일전
매년 이맘때쯤이면 메디컬 입시 (의대,치대,약대, 검안대 등)를 하는 학생들이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에 마주하며 번아웃 혹은 중도를 포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현… 더보기

GAMSAT 의전원.치전원 입학시험 고득점 팁과 노하우

댓글 0 | 조회 295 | 8일전
지난 칼럼에서는 GAMSAT 3월 시험 총평과 출제경향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번 칼럼에서는 GAMSAT (Graduate Medical School Admissi… 더보기

지식을 다루는 방법에 대하여

댓글 0 | 조회 456 | 9일전
인공지능과 과학기술의 발전은 우리 일상 속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과학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실제로 과학 수업이나 실험 중심 프… 더보기

드래곤 전설의 기원

댓글 0 | 조회 226 | 2026.04.29
— 인간은 왜 ‘용’을 상상했는가상상 속 생물, 그러나 너무도 익숙한 존재어린 시절 우리는 한 번쯤 ‘용’을 상상해본다. 불을 뿜고 하늘을 날며, 때로는 신의 사… 더보기

비료와 먹거리

댓글 0 | 조회 231 | 2026.04.29
먹고 살려면 농사를 지어야 한다. 산과 들에서 저절로 나는 것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논밭을 일구어 심고 가꾸어야 한다. 대표적인 먹거리가 5곡이었는데 거기다 온갖… 더보기

뉴질랜드 민사소송의 약식 판결 및 각하

댓글 0 | 조회 360 | 2026.04.29
보통 뉴질랜드 민사소송은 원고 측에서 소장을 법원에 제출하고, 법원에서 승인을 받은 후 피고 측에 송달하고, 피고 측에서도 답변서를 제출하고, 사건 관리 회의 (… 더보기

27. 우레와(Urewera) 부족과 안개 속의 여인

댓글 0 | 조회 170 | 2026.04.29
뉴질랜드 북섬의 깊은 원시림 속에는 우레와(Urewera) 숲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단순한 자연 보호구역이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마오리의 투호에나(Tuh… 더보기

고국의 품에 안긴 카자흐스탄 독립유공자 후손과 재외동포

댓글 0 | 조회 203 | 2026.04.29
카자흐스탄 재외동포 초청 낙산사 템플스테이한국불교문화사업단은 10월 27일부터 11월1일까지 진행된 ‘2024 카자흐스탄 재외동포 초청 팸투어’를 성황리에 마쳤다… 더보기

벚꽃 편지

댓글 0 | 조회 207 | 2026.04.29
창밖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일기예보에 폭우 주황색 주의보가 떠있다. 분명 어딘가에 폭우가 쏟아지고 있을텐데 홍수 피해는 없었으면 좋겠다.온 세상이 젖어가… 더보기

비자금

댓글 0 | 조회 350 | 2026.04.29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글쎄 암이란 놈이느닷없이 나를 흔들자꿋꿋이 버티던 나도마음 흔들려아내가 모르던현금으로 꼭꼭 간직해두었던내 비자금을 실토하고난 이제 필요없게 … 더보기

8편 – 체르노빌 섀도우: 봉인된 보고서

댓글 0 | 조회 178 | 2026.04.29
“체르노빌은 ‘폭발’이 아니라, ‘개방’이었다.”프롤로그 -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 프리피야트폭발 직후의 지옥 같은 밤.붉은빛이 하늘을 물들이고 수증… 더보기

고용주의 신고의무

댓글 0 | 조회 592 | 2026.04.28
▲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 AI일반적으로는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고용주에게 피고용인의 범죄 신고의무는 없습니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선 고… 더보기

유학을 보내도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이유 — 공부보다 중요한 것

댓글 0 | 조회 506 | 2026.04.28
▲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 AI안녕하세요? 뉴질랜드, 호주 의치약대 유학, 입시 및 중고등학교 내신관리 전문 컨설턴트 크리스틴입니다. 이번 컬럼에… 더보기

생각이 사람을 만든다

댓글 0 | 조회 174 | 2026.04.28
시인 천 양희이 생각 저 생각 하다어떤 날은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막무가내 올라간다.고비를 지나 비탈을 지나상상봉에 다다르면생각마다 다른 봉우리들 뭉클 솟아오른… 더보기

파트너쉽 비자, 딱 한번에 승인받기

댓글 0 | 조회 455 | 2026.04.28
뉴질랜드에서 배우자 또는 파트너와 함께 체류하기 위한 가장 대표적인 방법인 파트너쉽 비자는 단순하게 생각하면 쉬워 보이지만, 실제 심사에서는 매우 정교하고 입체적… 더보기

갬블링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 뇌와 감정의 이야기

댓글 0 | 조회 190 | 2026.04.28
도박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는 여전히 ‘의지’라는 단어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끊으려면 끊을 수 있지 않나”,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질문은 도박 문제… 더보기

골프 코스마다 스타일이 다르듯, 인생도 정답은 없다

댓글 0 | 조회 231 | 2026.04.28
골프를 오래 치다 보면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다.모든 코스는 다르다.어떤 곳은 넓고 평탄한 페어웨이를 자랑하지만, 또 어떤 곳은 벙커와 해저드가 도처에 있어 한 … 더보기

걷기 열풍

댓글 0 | 조회 458 | 2026.04.25
충북 괴산에 ‘걷기 열풍’이 불어 98세 어르신도 걷는다. 괴산군(인구 3만7000명)은 65세 노인 비율이 42.6%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노인 의료비 예산은… 더보기

GAMSAT 의.치전원 입학시험 총평 및 출제경향 (2026년 3월)

댓글 0 | 조회 333 | 2026.04.20
<GAMSAT의 급부상 인기>최근 들어 GAMSAT시험 응시자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GAMSAT은 주로 의전원 (의학전문대학원)과 치전원 (치학전문대… 더보기

건강한 겨울나기 예방 접종으로 준비하세요

댓글 0 | 조회 675 | 2026.04.17

어디가 더 들어가기 어려울까? 오타고대 의대 vs 오타고대 치대

댓글 0 | 조회 976 | 2026.04.16
지난 칼럼에서는 오클랜드대 Biomed/Health Sci 과정을 낱낱이 파헤쳐보았다. 오타고대 HSFY같은 경우 한인들 기준에서 오클랜드대 Biomed/Hea… 더보기

전쟁과 평화

댓글 0 | 조회 276 | 2026.04.15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전쟁 없이 평화롭게 살게 된 기간이 얼마나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전쟁은 비극의 시작이요 삶을 극한 상황으로 인도하며 피와 땀으로 일궈… 더보기

미확인 해양 괴생물(MO) 목격담

댓글 0 | 조회 392 | 2026.04.15
— 인간은 왜 바다에서 ‘무언가’를 계속 본다고 믿는가바다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우리는 이미 지구의 대부분을 이해했다고 믿는다. 우주를 관측하고, 인간의 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