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리 창피할까요?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천미란
성태용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조성현
전정훈
Mystery
커넥터
Roy Kim
차자명
권레오
독자기고
새움터
김준
박기태
수선재
김도형
마이클 킴

왜 그리 창피할까요?

0 개 2,419 오소영

“이제 그만 하시죠”

 

들고 간 서류를 내밀었더니 불쑥 한마디 하시는 가정의 선생님.

 

나이 많다고 이젠 자동차 운전면허증 유효기간도 짧다. 2년밖에 안 준다. 자주 바꾸는 번거로움도 있지만 안전을 위해서 하는 조언임을 잘 알고 있다. 

 

더구나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도 있으니 타당한 제안이었다. 그렇더라도 자가용이 아니면 갈 수 없는 곳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또 하나 꼭 고집을 부리는건 내 안에 아직 꿈틀거리는 늙음의 거부감이 더 컸을 것이다. 별첨의 건강진단서까지 준비해야하니 가정의를 먼저 찾아야 했던 것이다.

 

5be62fc6abb6a5d2213d679cbe3cb629_1577047235_9612.jpg
 

두툼한 서류를 들고 AA센터에 들어섰다.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맨 뒤에 서서 사람들을 휘 둘러봤다. 모두가 젊은이들 뿐이었다. 왠지 내가 잘못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손주들 같은 학생풍의 남녀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지루함을 달래고 있었다. 가볍게 팔랑거리는 서류한장 들고 서 있는 그들 앞에서 혼자만 두툼한걸 들고 외롭게 서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서 있으려니 다리도 아파왔다. 허리도 편치않고 어깨가 짓눌려왔다. 다급하게 어디에 앉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슬며시 눈동자를 굴려봤지만 걸터앉을 의자 하나도 없었다. 누구 말벗이라도 같이 올걸 그런 후회감이 들었다. 한껏 굳어진 표정으로 갑자기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이 굴욕감은 무엇일까?

 

애초에 시티 센터를 찾은게 잘못이었다. 유독 젊은 사람들이 많은 이유를 깨달았다. 그냥 나오고 싶다는 마음이 절실 해 졌다. 다리 아픔보다 불편한 마음 때문이었지만 어쩌나?인내심을 총동원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한참 서류를 들춰보던 직원이 고개를 들었다.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참 건강관리를 잘 하셨네요”

 

젊어 보여서 아주 좋다고 친절하게 웃으며 말해 주었다.

 

느닷없는 칭찬에 잠시 어리둥절 해졌다.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는듯한 표정이 싫지 않았다. 혹시 내또래 건강치 못한 자기 부모님이라도 계신건지? 그의 관심이 참으로 고마웠다. 내 굳어진 마음이 서서히 풀어지기 시작했다.

 

일을 마치고 밖으로 나서니 상쾌한 바람이 볼을 스쳤다. 갑자기 드넓은 세상이 나를 환영해 준다는 뿌듯함이 느껴졌다. 참 사람처럼 간사한 동물은 없구나. 

 

비실비실 속으로 웃음이 번져나왔다. (너희들이 하는 운전 나도 할 수 있다는데 그게 왜 창피해...)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다.

 

나이 많다는게 창피함일까? 젊은이들 틈에 섞이면 번번히 위축이 돼서 느끼는 초라함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예의에도 충실하려고 노력하며 산다. 부지런히 씻고 험한모습 안 보이려고 화장도 열심히 하고 다닌다. 젊었을 때와 달리 입음새도 깔끔하고 단정하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왜 자꾸만 옹졸해 지는건지...

 

벌써 오래 전의 일이 새삼스럽다. 친구 C와 만나려면 의례히 전철 4호선 사당역이 약속 장소였다.

그는 키가 큰 나를 맞춘다며 늘 하이힐을 신었다.

 

“키 좀 작은게 무슨 죄라고 이렇게 힘든 고생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네요”

 

이젠 굽 높은 신발도 무리라며 투덜대면서 원망의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곤 했다. 그녀다운 재롱이어서 함께 웃곤 했었다. 우리는 총신대 역까지 한 정거장을 걸어서 그 거리에서 서성댔다. 대학생들의 거리에서 좀 가당찮은 멋을 부린 것이었다. 

 

어느 날인가 예쁘게 꾸며진 카페로 커피를 마시러 들어갔다. 문을 밀자 분홍빛 홀 안이 많이 침침했다. 빈 자리를 찾아 앉으니 서서히 시야가 밝아졌다.

 

새파랗게 젊은 애들 뿐이었다. 놀라운 것은 하나같이 손가락에 담배를 꼬나물고 자랑하듯 입에 연기를 내뿜었다.

 

담배연기 때문에 침침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들은 벌써 우리에게 불편한 시선을 던져왔다. 거기 더 있을 수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자리를 차고 나와 버렸다. 주문도 하기 전이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이구 눈총 따가워라. 죽을뻔했네, 요즘 애들은 담배 피우는게 무슨 멋이래요?”

 

우리는 스스로 쫓겨난 신세를 그렇게 눙쳤다.

 

“야들아 우리도 너희 때가 있었더란다. 시시하게 까짓 담배?... 우리땐 신선하고 멋진 낭만이 있었걸랑, 까불지들 말거라잉”

 

장난끼 많은 친구가 그냥 물러날리가 없다. 나이먹은게 분통터져서 하는 하소연이기도 했다. 같이 웃을수 밖에... 

 

사당역 근처에 옛날 다방으로 돌아와야 했다.

 

예나 다름없이 문을 밀자마자 반기는 퀴퀴한 담배냄새. 늙은이들 냄새일까 텁텁하고 답답했다.

그런게 싫어서 피해 갔었던 것이다. 기분은 고약한데 마음은 오히려 편했다. 마치 내게 맞는 옷을 찾아입은 그런 폼새랄까?

 

카페와 다방이란 이름의 차이가 그런거였구나. 경험에 어울리는 자조가 한숨처럼 새어나왔다. 곁에서 흘끔거리는 초췌한 노인들을 의식하면서 우리는 아직 아니라고 반기를 들었었다. 그 때는 카페도 다방도 안 어울리는 어느 세대였던가!. 지금 묻고 싶어졌다.

 

참 걷기를 좋아했었다. 한강 건너에 살면서 버스를 타면 언제나 내 종점은 서울역이었다.

 

그 다음 행선지는 전부 걸어 다녔다. 그래서일까? 50대 후반부터 다리에 녹이 슬었다는 판정을 받았었다.

 

요행이랄까. 그랬음에도 지금까지 잘 쓰고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살아갈수록 어머니를 많이 생각하게 된다. 이제서야 어머니의 입장을 이해해 살아가기 때문이다.

붐비는 차 안에서 누군가 자리를 양보해 주면 늘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누가 나이 먹으래서 늙었수 내가 많이 살았지.... 괜찮아요, 됐어요”

 

손사래를 치면서 사양하시던 모습이 생각났다. 부끄럼 타는 소녀처럼 얼굴이 발그레 홍조로 물들곤 했었다. 아마도 그 때의 어머니는 지금 나보다는 젊었을 시절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어머니를 닮아 살려고 나도 많이 양보하며 살았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남의 자리가 탐이 나기 시작했다. 서 있을 때 보다 누운 자리가 훨씬 편하다는 유혹에 놀아난지도 한참 되었다.

 

12월 한 해의 마지막 달에 와 있다.

 

며칠만 있으면 또 하나 나이를 더해가야 한다. 나이 같은거 숫자에 불과하다는 정신력으로 버티며 살아간다. 그렇더라도 몸이 맘을 따라주지를 않는다. 문득 문득 찾아드는 찐한 외로움은 또 무엇인지...

 

곱고 예쁘게 피어났던 여린 꽃들도 어느순간 시들어 떨어진다. 내게도 꽃같은 시절이 있었다. 그 꽃잎 지고 열매맺어 할 일을 끝냈으니 갈 곳은 어디인가.

 

한번밖에 기회가 없는 인생 아닌가.

 

탐스럽게 피었다가 일생을 마치는 꽃. 아쉬운 생을 더 구걸하듯 언제까지나 매달려 버티는 지저분한 수국(水菊)은 되지말자.

 

열정으로 붉게 타오르듯 피었다가 어느날 툭 깔끔하게 종말을 고하는 동백(冬柏)꽃을 닮자. 땅에 밟히면서도 아름다운 흔적으로 오래 사랑을 받는 동백꽃. 

 

동네를 빠져나와 시원하게 뻗은 모터웨이를 타니 기분이 좋다. 

와! ___기__분 좋__다.

 

큰 소리로 최면을 거니 운전대 잡을 때 약간의 두려움도 멀리 도망을 간다.

 

2년짜리 새로운 면허증. 2년이란 기간이 짧다면 짧을 수도 있지만 길다면 무한(?)할 수도 있다.

애마가 싫다고 보챌 때까지 신나게 달려보자.

 

기죽지 말고 늙자.

 

11 Great Walks 600여km, 풍광을 카메라에 담다

댓글 0 | 조회 275 | 3시간전
1993년, 낯선 땅 뉴질랜드(New Zealand)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나는 이 나라의 자연이 내 삶 깊숙이 스며들게 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당시 환경… 더보기

추파카브라 전설

댓글 0 | 조회 84 | 3시간전
— 공포와 현실 사이, 인간이 만들어낸 괴물의 이야기1990년대 중반, 푸에르토리코의 한 농촌 마을에서 시작된 이상한 사건이 있었다. 아침이 되자 농장의 염소와 … 더보기

뜰안의 민들레 꽃처럼 . . .

댓글 0 | 조회 99 | 4시간전
달게 잘 잤는데도 깨어나면 기분이 깔끔하지가 않다. 나만 그런가해서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거의가 다 비슷했다.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인가?어쨌든 또 하… 더보기

마지막 퍼팅의 압박 – 중요한 순간에 집중하는 법

댓글 0 | 조회 123 | 4시간전
골프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라운드 내내 아무리 좋은 샷을 해도, 마지막 퍼팅 하나로 모든 결과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1미터, 아니 50cm 퍼… 더보기

내가 세상을 안다고 생각할 때

댓글 0 | 조회 85 | 5시간전
시인 문정희내가 세상을 안다고 생각할 때얼마나 모르고 있는지그때 나는 별을 바라본다.별은 그저 멀리서 꿈틀거리는 벌레이거나아무 의도도 없이 나를 가로막는 돌처럼나… 더보기

뉴질랜드 이민 삶 44년을 회고하며

댓글 0 | 조회 477 | 5시간전
1982년, 키위 구두약의 나라 뉴질랜드에 첫발을 내딛다내 글의 변(辨): 나의 한계를 솔직하게 고백하며 이 글은 44년 뉴질랜드 이민사의 흔적 단면을 기록한 것… 더보기

뉴질랜드 입법부&행정부와 사법부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

댓글 0 | 조회 394 | 10시간전
예전에 한국의 계엄령 관련 칼럼을 다루면서, 뉴질랜드는 완전한 삼권분립이 되지 않는다는 주제도 잠깐 다룬 적이 있습니다. 뉴질랜드는 일단 3년마다의 선거를 통해 … 더보기

궁극적으로 괴로움을 없애는 유일한 길

댓글 0 | 조회 244 | 10시간전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비 오는 조계사를 바라본다. 시내를 오가다 보면 불교신자든 아니든 한 번쯤 들르게 되는 활기를 가진 절이다. 한동안은 절 마당… 더보기

25. 마우이와 태양을 붙잡은 산 – 기스본의 전설

댓글 0 | 조회 84 | 10시간전
기스본(Gisborne)은 뉴질랜드 북섬의 동쪽 끝에 위치한 도시로, “태양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땅”으로 알려져 있다.이곳은 마오리 부족인 Ngati Porou… 더보기

매력만점의 은퇴부모 투자이민

댓글 0 | 조회 760 | 1일전
COVID-19 팬데믹으로 말미암아 탄생한 특별 영주권제도를 통하여 영주권을 받게 된 분들로부터 근래 들어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제가 코로나로 영주권… 더보기

호주 뉴질랜드 의대 합격의 분기점: 지금 점검해야 할 시기

댓글 0 | 조회 436 | 1일전
▲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 AI안녕하세요? 뉴질랜드, 호주 의치약대 유학, 입시 및 중고등학교 내신관리 전문 컨설턴트 크리스틴입니다. 현재 유학생… 더보기

연주 씨의 카드

댓글 0 | 조회 245 | 1일전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지적 장애를 가진 연주 씨는 부모와 함께예배에 한 번도 빠짐이 없는 아가씨입니다연주 씨네 집이 이사하여 심방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성탄절이 가… 더보기

2026년 통과된 고용관계법 개정안

댓글 0 | 조회 292 | 1일전
고용시장의 유연성을 증가시키고 피고용인들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는 고용분쟁 시스템 구조를 더 공정하게 만들고, 피고용인들의 부적절한 행동을 억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 더보기

‘취미’와 ‘문제’의 경계선

댓글 0 | 조회 126 | 1일전
- 갬블링 위험 신호 점검뉴질랜드에 거주하는 한인들에게 갬블링은 생각보다 가까운 여가 활동이다. 주말에 친구들과 스포츠 결과를 예측하거나 여행 중 카지노를 방문하… 더보기

개똥걱정 말똥걱정

댓글 0 | 조회 109 | 1일전
1898년 뉴욕에서 세계 최초의 국제 도시계획 회의가 열렸다. 하지만 전 세계의 전문가들이 모였음에도 답을 찾지 못했다. 산업이 발달하고 물동량이 늘어나자 말(馬… 더보기

6편 – MH370: 사라진 하늘

댓글 0 | 조회 106 | 1일전
“비행기는 사라졌지만, 그 안에 있던 ‘어떤 것’은… 여전히 살아 있다.”프롤로그 - 2014년 3월 8일, 새벽 1시 21분쿠알라룸푸르 관제탑.레이더 화면에서 … 더보기

오클랜드대 각 의료계열 최신 입시 정보 및 선발기준 (의대, 약대, 검안대, 영상…

댓글 0 | 조회 208 | 2일전
이번 칼럼에서는 오클랜드대 각 의료계열 최신 입시 정보에 대해 다뤄보고자 합니다. 아래는 2026년 오클랜드 의료계열 입시 기준 Dean’s Determinati… 더보기

병보다 무서운 간병비

댓글 0 | 조회 786 | 5일전
고려 말기의 명장인 이성계(李成桂)가 1392년 조선(朝鮮)을 건국한 이래 1910년 멸망할 때까지 518년 동안 조선은 총 27명의 왕을 배출했다. 조선 시대 … 더보기

오클랜드대 의료계열 입시 통계 총정리 (의대 약대 검안대 등)

댓글 0 | 조회 448 | 7일전
이번 칼럼에서는 최근 2년 (2025년, 2026년) 오클랜드대 의료계열 입시 통계를 요약해보고자 한다. 2026년 입시는 2025년 지원한 학생들을 뜻하며 20… 더보기

약 처방, 이제는 12개월분까지 처방 받을 수 있다

댓글 0 | 조회 990 | 9일전

올해부터 바뀌는 오클랜드대 의료계열 MMI 면접방식 (의대,약대,검안대 등)

댓글 0 | 조회 818 | 2026.03.12
의료계열 (메디컬)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최신 정보’를 알고 정확하게 준비를 하는것이다. 필자는 매년 면접관과 입학사정관을 만나며 최신정보를 수… 더보기

피아노의 영혼

댓글 0 | 조회 248 | 2026.03.11
▲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 AI1994년 뉴질랜드 이민을 준비하면서 마침 딸의 권고로 뉴질랜드 영화 ‘피아노(The Piano)’를 감상하였다. … 더보기

인간의 본질적 문제

댓글 0 | 조회 208 | 2026.03.11
저는 불교의 윤회설을 문자 그대로 믿지 않습니다. 윤회할 주체인 “나”라는 게 일단 본질적 의미에 존재하지 않으며, “나”라는, 인간의 뇌가 만들어내는 인식이 죽… 더보기

히말라야의 그림자 빅풋과 예티는 존재하는가

댓글 0 | 조회 172 | 2026.03.11
어느 겨울밤, 히말라야의 깊은 산속에서 바람이 눈 위를 스쳐 지나간다. 그때 누군가 발자국을 발견한다. 사람의 것보다 훨씬 크고, 그러나 분명 두 발로 걸어간 흔… 더보기

나만의 등불 밝혀 내 마음 찾는 여정

댓글 0 | 조회 144 | 2026.03.11
강진 무위사의 ‘보름달 명상 템플스테이’어둠이 존재함으로 우리는 비로소 빛을 만난다. 추석 보름을 앞두고 차오르던 달빛도 구름에 모습을 감춘 날, 가로등조차 없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