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필수록 아프다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천미란
성태용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조성현
전정훈
Mystery
커넥터
Roy Kim
차자명
권레오
독자기고
새움터
김준
박기태
수선재
김도형
마이클 킴

꽃필수록 아프다

0 개 1,705 명사칼럼

오래 전, 누가 바다 멀리 어느 섬에서 흐느껴 우는 소리가 자꾸 환청처럼 들려온다고 했다. 거기 섬사람들의 목쉰 통곡이 분명한데, 위험해서 아무도 건너가 위로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한 청년이 혼자 건너가 조문을 했다. 매일 했다. 초상집이 아닌 집이 없었고 산 자는 모두 상주였다. 

 

죽은 자는 말이 없었고 산 자는 죽은 자보다 더 말이 없었다. 모두 흐느껴 울기만 했다. 조문을 마치고 육지로 돌아온 청년은 오랫동안 앓아누웠다. 이때가 청년의 나이 27살이었으니 벌써 30여 년이나 흘렀다.

 

더 오래 전, 머리를 빡빡 깍은 한 문학소년이 부산 서면의 작은 책방으로 들어갔다. 서점의 곱슬머리 점원이 소년을 구석으로 데려가 ‘이거 폭탄’ 이라고 속삭였다. 그리고 몰래 서류봉투 하나를 건넸다. 평소에는 박현채, 리영희, 함석헌 등의 ‘이념서적’ 들이었는데 이 날은 달랐다. 집으로 돌아간 소년은 점원의 말대로 ‘문을 꼭 잠그고 혼자’ 밀봉한 봉투를 뜯었다. 낡은 복사본이 툭 떨어졌다. 읽었다.

 

“시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첫 줄이 이렇게 시작되는 김지하 시인의 ‘오적’ 이었다. 점원의 말대로 진짜 ‘폭탄’ 이었다. 소년의 심장에 지진이 일어났다. 장시를 모두 탐독한 소년이 탄식하듯 내뱉었다.

 

“아- 씨발, 시는 이렇게 써야지. 이런 게 진짜 시고 시인이지! 나도 언젠가는 이런 폭탄 같은 시를 한번 쓰고 말거다….”

 

이 때가 소년의 나이 17살 고교 2학년이었으니 벌써 40여 년이나 흘렀다.

 

몇 년 뒤, 이제 청년이 된 소년은 서울의 한 대학에 들어가 시를 쓰며 학생운동을 하다가 수배되었다. 긴 수배시절, 영문 없이 죽은 섬사람들과 조문을 떠올리며 ‘한라산’ 이란 제목의 장시를 써서 발표했다. 모두 폭탄이 터졌다고 했다. 모두 ‘고첩’(고정간첩)이 썼다고 했다. 유탄을 맞아 감옥 간 대학생들도 많았다. 물론 청년도 체포돼 ‘신체포기 각서’를 썼다. 관절이 꺾였고 물고문을 받았다. 평생 먹을 물을 하룻밤에 다 먹었다. 그리고 당시 담당 공안검사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에 의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역시 몇 년 뒤, 서점의 곱슬머리 점원은 부마항쟁의 배후인물로 구속되었다. 그리고 박정희가 죽고 전두환이 나타난 몇 년 뒤 이번엔‘부산 양서조합사건’으로 체포되었다. 혹독한 고문에 못이겨 3층 창문 밖으로 투신했다. 다행히 목숨은 건져 방면되었다. 그가 집에서 보약을 끓여 먹으며 회복중일 때 서울에서 청년이 병문안을 갔다. 점원의 온몸은 폭행고문으로 시퍼런 멍자국과 상처투성이였다. 청년은 전율했다. 그 이후 자기신념이 흔들릴 때마다 청년은 점원의 상처를 떠올리며 운동화끈을 졸라매었다.

 

어쩌면 청년이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 40년이나 은폐되어 온 ‘제주43학살’을 폭로한 글을 쓰기로 결심한 그 이면에는 한 점원이 부마항쟁과 양서조합운동으로 피를 흘리며 심어놓은 ‘폭탄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작은 것이 큰 것을 겸하고 있을 때 역사의 부챗살은 작게 접혔다가 크게 펼쳐진다. 제주4.3항쟁은 미국과 이승만 정권의 반인권반통일적 원죄였고, 부마항쟁은 박정희 유신정권의 종결을 점화시켰다. 이제 부산은 영혼의 계승이 필요하고 제주는 영혼의 치유가 필요하다.

 

매년 4.3 때마다 제주도에 갔다. 지난해는 4.3 70주년을 맞아 ‘4,3전국화세계화’ 라는 슬로건으로 다양한 행사가 펼쳐졌다. 정권의 눈치를 보며 홍보문구 하나까지 고심하던 예전과는 크게 달랐다. 모두 세상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언뜻 그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난 세상의 변화를 그 세상의 최하위 약자들의 변화에 기준을 둔다. 4.3의 최하위 약자는 죽은 자들이다. 죽은 자는 죽기 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가해자를 찾아 죽음의 계보를 밝히는 것이다. 그것이 최소한 사자의 상처와 영혼을 위로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가해자는 밝히지 않고 계속 제사만 지낸다. 그것도 이제 유가족을 떠나 정부 차원에서 지낸다. 죽음의 계보가 정권에 닿아 있다는 얘기다. 정부도 책임이 밝혀진 이상 형식적으로라도 향불을 피운다. 정부의 4.3추념식 같은 진정성 없는 미봉책이나 민간의 여러 추모문화제 등을 볼 때마다 내 한쪽 가슴이 무너지는 것은 그것이 자칫 ‘아우슈비츠 축제 마케팅’ 같은 것으로 변질될 우려 때문이다.

 

지금의 아우슈비츠는 팔레스타인을 공격하는 유태인들의 광기와 자기모순을 상쇄하기 위한 블러핑 마케팅이다. 실제로 그들은 1945년 나치패망 이후 조용하다가 1967년 아랍폭격으로 세계적인 비난이 거세지자 갑자기 ‘홀로코스트’를 들고 나왔다. 유태인 사망자 수도 계속 늘어나고 죽음의 서사도 더욱 잔인한 방식으로 부풀려 선전했다. 그 첨병이 ‘피아니스트’나 ‘쉰들러 리스트’ 같은 나치영화들의 감독들이다. 앞으로도 홀로코스트라는 브랜드가 살아 있는 한 이스라엘은 영원한 피해자인 척하며 마케팅을 극대화할 것이다. 추모를 넘는 영혼의 상품화는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부러운 이유는 최소한 가해자들의 뿌리를 뽑고 부관참시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와의 큰 차이다. 우리는 아직 가해자 언저리도 가보지 못했다. ‘제주4.3학살’은 동아시아의 자유와 평화를 참칭한 미국의 청부살인이다. 그게 죽음의 계보 꼭짓점이다. 그래서 독일 수상 빌리 브란트가 유태인 추모비 앞에 무릎 꿇었듯 미국 대통령이 제주 평화공원 추모비 앞에 무릎 꿇어야 한다. 무릎 꿇고 아직도 무덤 주위로 배회하는 까마귀들을 보아야 한다.

 

촛불로 세상은 변한 것 같지만 변하지 않았다. 설국열차 앞칸의 10%만 변했지 뒷칸의 90%는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년은 봄이 와도 꽃필수록 아프고, 남북북미 정상들이 만나도 여전히 제주도로 조문을 간다. 제주4.3의 장례는 3일장이 아니라 71년장이다. 

 

* 부산시청 신문 <다이내믹부산> 게재 (2019.4) 

 

■ 이 산하 (시인) 

838f566d251ab201c1a6d1609dc672b4_1562634033_11.jpg
 

11 Great Walks 600여km, 풍광을 카메라에 담다

댓글 0 | 조회 143 | 1시간전
1993년, 낯선 땅 뉴질랜드(New Zealand)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나는 이 나라의 자연이 내 삶 깊숙이 스며들게 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당시 환경… 더보기

추파카브라 전설

댓글 0 | 조회 52 | 2시간전
— 공포와 현실 사이, 인간이 만들어낸 괴물의 이야기1990년대 중반, 푸에르토리코의 한 농촌 마을에서 시작된 이상한 사건이 있었다. 아침이 되자 농장의 염소와 … 더보기

뜰안의 민들레 꽃처럼 . . .

댓글 0 | 조회 79 | 3시간전
달게 잘 잤는데도 깨어나면 기분이 깔끔하지가 않다. 나만 그런가해서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거의가 다 비슷했다.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인가?어쨌든 또 하… 더보기

마지막 퍼팅의 압박 – 중요한 순간에 집중하는 법

댓글 0 | 조회 88 | 3시간전
골프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라운드 내내 아무리 좋은 샷을 해도, 마지막 퍼팅 하나로 모든 결과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1미터, 아니 50cm 퍼… 더보기

내가 세상을 안다고 생각할 때

댓글 0 | 조회 67 | 3시간전
시인 문정희내가 세상을 안다고 생각할 때얼마나 모르고 있는지그때 나는 별을 바라본다.별은 그저 멀리서 꿈틀거리는 벌레이거나아무 의도도 없이 나를 가로막는 돌처럼나… 더보기

뉴질랜드 이민 삶 44년을 회고하며

댓글 0 | 조회 369 | 3시간전
1982년, 키위 구두약의 나라 뉴질랜드에 첫발을 내딛다내 글의 변(辨): 나의 한계를 솔직하게 고백하며 이 글은 44년 뉴질랜드 이민사의 흔적 단면을 기록한 것… 더보기

뉴질랜드 입법부&행정부와 사법부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

댓글 0 | 조회 392 | 8시간전
예전에 한국의 계엄령 관련 칼럼을 다루면서, 뉴질랜드는 완전한 삼권분립이 되지 않는다는 주제도 잠깐 다룬 적이 있습니다. 뉴질랜드는 일단 3년마다의 선거를 통해 … 더보기

궁극적으로 괴로움을 없애는 유일한 길

댓글 0 | 조회 240 | 8시간전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비 오는 조계사를 바라본다. 시내를 오가다 보면 불교신자든 아니든 한 번쯤 들르게 되는 활기를 가진 절이다. 한동안은 절 마당… 더보기

25. 마우이와 태양을 붙잡은 산 – 기스본의 전설

댓글 0 | 조회 82 | 8시간전
기스본(Gisborne)은 뉴질랜드 북섬의 동쪽 끝에 위치한 도시로, “태양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땅”으로 알려져 있다.이곳은 마오리 부족인 Ngati Porou… 더보기

매력만점의 은퇴부모 투자이민

댓글 0 | 조회 756 | 1일전
COVID-19 팬데믹으로 말미암아 탄생한 특별 영주권제도를 통하여 영주권을 받게 된 분들로부터 근래 들어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제가 코로나로 영주권… 더보기

호주 뉴질랜드 의대 합격의 분기점: 지금 점검해야 할 시기

댓글 0 | 조회 428 | 1일전
▲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 AI안녕하세요? 뉴질랜드, 호주 의치약대 유학, 입시 및 중고등학교 내신관리 전문 컨설턴트 크리스틴입니다. 현재 유학생… 더보기

연주 씨의 카드

댓글 0 | 조회 245 | 1일전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지적 장애를 가진 연주 씨는 부모와 함께예배에 한 번도 빠짐이 없는 아가씨입니다연주 씨네 집이 이사하여 심방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성탄절이 가… 더보기

2026년 통과된 고용관계법 개정안

댓글 0 | 조회 289 | 1일전
고용시장의 유연성을 증가시키고 피고용인들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는 고용분쟁 시스템 구조를 더 공정하게 만들고, 피고용인들의 부적절한 행동을 억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 더보기

‘취미’와 ‘문제’의 경계선

댓글 0 | 조회 124 | 1일전
- 갬블링 위험 신호 점검뉴질랜드에 거주하는 한인들에게 갬블링은 생각보다 가까운 여가 활동이다. 주말에 친구들과 스포츠 결과를 예측하거나 여행 중 카지노를 방문하… 더보기

개똥걱정 말똥걱정

댓글 0 | 조회 109 | 1일전
1898년 뉴욕에서 세계 최초의 국제 도시계획 회의가 열렸다. 하지만 전 세계의 전문가들이 모였음에도 답을 찾지 못했다. 산업이 발달하고 물동량이 늘어나자 말(馬… 더보기

6편 – MH370: 사라진 하늘

댓글 0 | 조회 106 | 1일전
“비행기는 사라졌지만, 그 안에 있던 ‘어떤 것’은… 여전히 살아 있다.”프롤로그 - 2014년 3월 8일, 새벽 1시 21분쿠알라룸푸르 관제탑.레이더 화면에서 … 더보기

오클랜드대 각 의료계열 최신 입시 정보 및 선발기준 (의대, 약대, 검안대, 영상…

댓글 0 | 조회 206 | 2일전
이번 칼럼에서는 오클랜드대 각 의료계열 최신 입시 정보에 대해 다뤄보고자 합니다. 아래는 2026년 오클랜드 의료계열 입시 기준 Dean’s Determinati… 더보기

병보다 무서운 간병비

댓글 0 | 조회 785 | 5일전
고려 말기의 명장인 이성계(李成桂)가 1392년 조선(朝鮮)을 건국한 이래 1910년 멸망할 때까지 518년 동안 조선은 총 27명의 왕을 배출했다. 조선 시대 … 더보기

오클랜드대 의료계열 입시 통계 총정리 (의대 약대 검안대 등)

댓글 0 | 조회 447 | 7일전
이번 칼럼에서는 최근 2년 (2025년, 2026년) 오클랜드대 의료계열 입시 통계를 요약해보고자 한다. 2026년 입시는 2025년 지원한 학생들을 뜻하며 20… 더보기

약 처방, 이제는 12개월분까지 처방 받을 수 있다

댓글 0 | 조회 989 | 9일전

올해부터 바뀌는 오클랜드대 의료계열 MMI 면접방식 (의대,약대,검안대 등)

댓글 0 | 조회 816 | 2026.03.12
의료계열 (메디컬)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최신 정보’를 알고 정확하게 준비를 하는것이다. 필자는 매년 면접관과 입학사정관을 만나며 최신정보를 수… 더보기

피아노의 영혼

댓글 0 | 조회 247 | 2026.03.11
▲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 AI1994년 뉴질랜드 이민을 준비하면서 마침 딸의 권고로 뉴질랜드 영화 ‘피아노(The Piano)’를 감상하였다. … 더보기

인간의 본질적 문제

댓글 0 | 조회 208 | 2026.03.11
저는 불교의 윤회설을 문자 그대로 믿지 않습니다. 윤회할 주체인 “나”라는 게 일단 본질적 의미에 존재하지 않으며, “나”라는, 인간의 뇌가 만들어내는 인식이 죽… 더보기

히말라야의 그림자 빅풋과 예티는 존재하는가

댓글 0 | 조회 171 | 2026.03.11
어느 겨울밤, 히말라야의 깊은 산속에서 바람이 눈 위를 스쳐 지나간다. 그때 누군가 발자국을 발견한다. 사람의 것보다 훨씬 크고, 그러나 분명 두 발로 걸어간 흔… 더보기

나만의 등불 밝혀 내 마음 찾는 여정

댓글 0 | 조회 144 | 2026.03.11
강진 무위사의 ‘보름달 명상 템플스테이’어둠이 존재함으로 우리는 비로소 빛을 만난다. 추석 보름을 앞두고 차오르던 달빛도 구름에 모습을 감춘 날, 가로등조차 없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