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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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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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반복해서 듣게 되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멘토가 누구였느냐. 처음엔 이 말을 인생 스승이 있느냐는 말로 들었다. 

 

그냥 없다고만 했다. 아예 그런 개념을 갖고 살지 않는다고 했다. 기껏 얘기 좀 들어보려고 물어봤는데 이렇게 거두절미하고 없다고만 하면 물어본 사람이 민망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없는 걸 어떻게 하겠는가? 하지만 그 뒤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 계속 나타나는데 그때마다 없다는 대답만 하는 건 좀 무성의한 것 같았다.

 

정말 없었나를 되새겨봤다. 없었다. 왜 그런가도 생각해봤다. 돌이켜보니 나도 학창 시절엔 멘토를 찾아다녔었다. 기대에 못 미쳤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당시는 독이 바짝 오른 박정희 독재 시절이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기가 어려운 시대였다. 당신들도 자기 하나 건사를 못 해서 고심하고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당시 나는 이십대 초반이었고 내가 찾아갔던 분들은 기껏해야 사십을 갓 넘긴 분들이었다. 그 중 30대 중반이었던 교수 한분은 요즘 학생들은 스승을 원하는데 자기는 그냥 과목을 가르치는 사람에 불과하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처음엔 실망도 했으나 생각해보니 그게 차라리 솔직하고 겸손한 대답이란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 뒤 굳이 멘토를 찾으려는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 멘토는 없었다. 주위에 훌륭한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기들도 헤매고 있었다. 내가 갖고 있는 질문과 고민은 남들이 답하고 풀어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냥 각자 보고 들은 대로 흉내 좀 내며 자기 방식으로 버티다가 시나브로 시들어가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좀더 지나면서 내가 착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은 내게 인생 스승이 있냐고 묻는 게 아니었다. 어떻게 순수한 젊은 시절에 세운 뜻을 지키고 험악한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며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느라 묻는 게 아니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사회생활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멘토가 필요하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그들이 보기에 회사원치고 출세한 편에 속하는 내게 당연히 그런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했다. 알고 보니 어떻게 하면 자기들도 ‘멘토’를 구해서 직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를 묻는 것이었다. 조금은 시시했다.

 

그러나 또 시간이 좀더 지나면서 이것 역시 나의 짧은 생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자꾸 듣다 보니 그 말 뒤에 숨어 있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승진과 출세만을 원하는 게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마음속 깊이 자기가 하는 일을 ‘잘’ 하고 싶어했다. 승진과 보너스 때문만도 아니었다.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이지만, 기왕 하는 일, 그걸 잘하고 싶고 거기서 보람을 느끼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었다. 문제는 잘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대부분 사람들에겐 제대로 배울 사람이 없다. 있어도 그분은 너무 바쁘거나 관심이 없다. 한국 시스템에서 자라면서 누구에게서 정말 배웠다는 느낌을 갖는 행운을 가져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사회에 나온 뒤엔 더욱 그렇다. 자기의 부족함을 드러내더라도 비웃지 않고 가르쳐주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드물다. 그저 들키지만 않기를 바라면서 지낼 수밖에 없다. 그게 그들의 말 뒤에 숨어 있는 뜻이었다. 좀더 잘하고 싶은데 그걸 가르쳐줄 멘토를 찾기가 어렵다 보니 내게 하는 하소연이었다. 나는 못 찾겠는데 너는 좀 찾았니?

 

이걸 깨달으면서 나는 한국 사회가 느끼는 갈증의 일면을 조금 알게 되었다.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잘 배우겠는가? 배우고 싶어도 배울 곳이 없는데 어떻게 배우겠는가? 논리적 문제 해결방식을 배워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일을 효과적으로 하겠는가? 선생이나 상사나 코칭보다는 일률적으로 상대평가 등수만 매기려고 하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제대로 클 수 있겠는가? 키우진 않고 실적만 챙기는데 어떻게 사람이 성장하겠는가?

 

한국은 더 이상 물적 자원이 부족한 나라가 아니다. 인적 자원이 더 부족한 나라다. 일 잘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그걸 가르쳐줄 사람이 부족한 나라다. 학교든 직장이든 사람을 볶지 않고 키우는 방식으로 바꾸지 않고는 지속적인 발전이 불가능하다. 그렇게 된 지 꽤 되었다. 그래서 남들은 국내총생산(GDP)의 20%만 투자하고도 지디피의 30%를 투자하는 우리와 비슷한 경제성장을 한다.

 

아, 그리고, 근래에야 비로소 깨달은 것이 하나 더 있다. 내 멘토는 원래 있었다. 내 아버지였다. 내가 조금 늦되었다. [*출처: 한겨레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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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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