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로초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천미란
성태용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조성현
전정훈
Mystery
커넥터
Roy Kim
차자명
권레오
독자기고
새움터
김준
박기태
수선재
김도형
마이클 킴

풍로초

0 개 2,205 수필기행

꽃집 앞에는 유치원 앙처럼 이름표를 단 꽃모종이 열 지어 있었다. 그 중 ‘풍로초’라는 이름이 내 눈에 들어왔다. 오종종한 잎이 무성해져 줄기도 보이지 않는 야생화였다. 꽃을 키운다고 하기가 미안할 정도다. 꽃대를 올리고 꽃잎을 밀어내고, 줄기를 옆으로 낼 것인지 말 것인지 꽃 저 혼자 다 알아서 하고 있다. 나는 그냥 간간이 물이나 주고, 베란다창을 열었다 닫았다만 해준다. 그리고 기특한 그 모습에 반해 아침마다 꽃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동안 지켜볼 뿐이다.

  

0c98b5e81fb0d86d3e9364d07678c993_1560214598_3575.jpg
 

풍로라는 것은 불을 지피기 위해 바람을 일으키던 그 옛날의 수동식 선풍기가 아닌가. 화덕 아래에 뚤린 구멍에다 풍로를 들이대 놓고 세게 돌리면 한순간 불쏘시개에 불꽃이 일면서 재어둔 숯에 빨갛게 불이 옮겨 붙었다. 같은 뜻은 아니겠지만 그 옛날 풍로처럼 꽃을 화르르 잘 피워낼 듯한 느낌이 들어 모종을 세 개나 샀다.

 

큼직한 토분에다 한꺼번에 심어주었는데 처음에는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더니, 차츰 저희들끼리도 서로가 궁금해졌는지 목을 빼들고 주위를 살피는 듯하였다. 선듯 불어오는 바람을 핑계삼아 다른 잎을 슬쩍슬쩍 밀기도 하고 옆에 있는 줄기의 발등을 툭툭건드리며 어느새 장난을 치고 있었다. 나는 고것들이 사랑스러워서 자꾸만 그 앞에 다가앉고 싶었다.

 

어느 날 꽃망울이 보인다 싶더니만 마치 풍로를 돌린 듯 한꺼번에 꽃불이 일기 시작했다. 햇살, 바람, 흙이 예전 같지 않았을 텐데도 한결같이 꽃을 피우는 것이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오만스런 타박쟁이인가. 어떤 일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면 늘 무슨‘탓’으로 돌렸다. 나 자신의 능력과 인내심을 반성하기보다는 운이 나빠서, 돈이 없어서, 사람을 잘못 만나서 등등, 꽃으로 해서 얻은 귀한 깨달음이었다.

 

가끔 지인들이 전화를 걸어와 어찌 지내느냐고 물으면 나도 모르게 쓸쓸하다는 말부터 하게 된다. 쓸쓸해 하는 것이 마치 나의 일상인 것처럼.

 

‘쓸쓸’ 이라는 말은 모양까지도 쓸쓸해 보인다. 시옷이 네 개다. 한곳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치마폭을 펄럭이며 어디론가 바삐 가고 있는 모습이다. 그것이 내 모습이라면 아쉬울 것 같았다. 나 자신의 엠블럼(emblem: 상징, 표상)은 정적인 이미지였으면 싶었다. 조용하면서도 새롭게 거듭나고 있는 정종동의 모습이기를 바랐다. 어쩌면 그런 이미지는 꽃과 나무에서 배울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또 식물을 기르는 것은 동물을 기르는 것보다 훨씬 마음 편한 일이다. 두 발이나 네 발 달린 것들은 제 맘대로 돌아다니기 때문에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자식은 물론이고 강아지나 고양이를 기르면서 제때 제자리에 돌아오지 않아 애를 태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에 비하며 식물은 아주 온순하다.

 

제자리에 앉아 조용히 꽃을 피우거나 잎을 내던가 하고, 기껏해야 창 밖을 내다보는 정도다. 내가 외출에서 돌아올 때도 강아지는 나를 보는 순간 겅중겅중 뛰고, 내 다리를 핥고 기어오르고 난리인 데 반해, 화분에 담긴 식물들은 내가 없는 동안 집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을 하며 다정한 눈빛을 보내올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화분에다 식물을 기르는 게 어렵다고 한다. 그것은 식물을 겉보기로 대하고, 자기 마음대로 다루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만 사상의학이 있는 게 아니다. 식물은 식물대로 그것이 좋아하는 자리가 있으며, 먹고 싶은 물의 양과 거름이 정해져 있는 법이다. 양지식물을 음지에 갔다 놓으면 곧 생기를 잃게 되고, 음지식물을 양지에 오래 두면 더위를 먹어 이내 잎이 타들어 가게 된다. 아이비(Ivy)는 물을 충분히 잘 주어야 잘 자란다.

 

기르는 사람은 여러 개의 눈과 손을, 또 부지런한 발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다정하게 바라보는 눈뿐만 아니라 아픔을 살피는 눈, 원하는 그것을 짐작해 내는 눈이 있어야 한다. 또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는 손과 함께, 잘못 자란 부분을 과감하게 걷어내는 손도 필요하다. 눈과 손이 여럿 있다고 해도 제때 움직여 주는 발이 없다면 그 또한 안 될 일이다.

 

많은 화분 중에서 유난히 풍로초에 마음이 쓰인다. 줄기가 제일 가늘고 꽃도 `가날프지만, 그보다는 그것이 야생화이기 때문이다. 야생화란 두터운 햇살 속에서 바람과 자유로이 만나면서 또 땅속 지하수를 벌컥벌컥 들이키면서 자라온 꽃이 아닌가. 그런데 이 아파트 14층 베란다에다 옮겨두었으니 어찌될까 싶어 내내 마음이 쓰였다.

 

내 걱정과는 달리 풍로초는 아주 열심히 줄기를 내고 꽃을 피워댔다. 화분 가장자리를 넘어와 베란다 바닥에 아예 저만의 꽃밭을 만들 정도다. 작은 꽃잎 다섯 장에 하늘을 받쳐들고 있기라도 한 듯 꽃대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다. 꽃잎이 벙그는 모습 또한 너무나 천진스러워 꽃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겨우 내 엄지손톱 만한 꽃을 피우면서도 풍로초는 우리 집에서 가장 부지런하다.

 

꽃에서 어떤 열정이 느껴진다. 풍로초는 쉴 새 없이 풍로를 돌리고 있는 걸까. 뻗어 나가는 줄기는 생기로 가득 차 있고, 몽실몽실한 꽃망울에서는 아침을 기다리는 예비 꽃들의 심호흡 소리가 드리는 듯하다. 풍로초는 이래저래 신나 보인다. 피울 게 있기 때문이다. 나이 삶에도 과연 피울 게 있기나 한지, 만일 있다면 어떤 형상인지 궁금해진다.

 

꽃을 보고 있으니 꽃도 나를 빤히 쳐다본다. 너는 왜 꽃을 피우지 않느냐고 묻는 듯하다. 대답이 없는 내게 꽃은 다시 말할 것 같다. 이 세상에 준비 없이 피울 수 있는 꽃은 한 송이도 없는 거라고.

내 삶에 있어서 무언가 피워낼 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보람된 일이 될 것이다. 그것이 잎이면 어떻고, 꽃이면 어떤가. 또 꽃잎이 다섯 장이면 어떻고, 여섯 장이면 또 어떤가. 피워내기 위해 성실히 준비하는 삶 자체만으로도 충만한 게 아닐까 싶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 하늘이 너무 높아 보일 때, 그리고 조금씩 쓸쓸해지려고 할 때 나는 풍로초를 찾는다. 어쩌면 꽃잎 하나하나가 작은 풍로가 되어 내 가슴에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어 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수필세계] 발췌

■ 정 성화  

 

11 Great Walks 600여km, 풍광을 카메라에 담다

댓글 0 | 조회 345 | 5시간전
1993년, 낯선 땅 뉴질랜드(New Zealand)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나는 이 나라의 자연이 내 삶 깊숙이 스며들게 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당시 환경… 더보기

추파카브라 전설

댓글 0 | 조회 99 | 5시간전
— 공포와 현실 사이, 인간이 만들어낸 괴물의 이야기1990년대 중반, 푸에르토리코의 한 농촌 마을에서 시작된 이상한 사건이 있었다. 아침이 되자 농장의 염소와 … 더보기

뜰안의 민들레 꽃처럼 . . .

댓글 0 | 조회 118 | 6시간전
달게 잘 잤는데도 깨어나면 기분이 깔끔하지가 않다. 나만 그런가해서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거의가 다 비슷했다.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인가?어쨌든 또 하… 더보기

마지막 퍼팅의 압박 – 중요한 순간에 집중하는 법

댓글 0 | 조회 148 | 6시간전
골프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라운드 내내 아무리 좋은 샷을 해도, 마지막 퍼팅 하나로 모든 결과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1미터, 아니 50cm 퍼… 더보기

내가 세상을 안다고 생각할 때

댓글 0 | 조회 95 | 6시간전
시인 문정희내가 세상을 안다고 생각할 때얼마나 모르고 있는지그때 나는 별을 바라본다.별은 그저 멀리서 꿈틀거리는 벌레이거나아무 의도도 없이 나를 가로막는 돌처럼나… 더보기

뉴질랜드 이민 삶 44년을 회고하며

댓글 0 | 조회 538 | 6시간전
1982년, 키위 구두약의 나라 뉴질랜드에 첫발을 내딛다내 글의 변(辨): 나의 한계를 솔직하게 고백하며 이 글은 44년 뉴질랜드 이민사의 흔적 단면을 기록한 것… 더보기

뉴질랜드 입법부&행정부와 사법부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

댓글 0 | 조회 397 | 12시간전
예전에 한국의 계엄령 관련 칼럼을 다루면서, 뉴질랜드는 완전한 삼권분립이 되지 않는다는 주제도 잠깐 다룬 적이 있습니다. 뉴질랜드는 일단 3년마다의 선거를 통해 … 더보기

궁극적으로 괴로움을 없애는 유일한 길

댓글 0 | 조회 248 | 12시간전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비 오는 조계사를 바라본다. 시내를 오가다 보면 불교신자든 아니든 한 번쯤 들르게 되는 활기를 가진 절이다. 한동안은 절 마당… 더보기

25. 마우이와 태양을 붙잡은 산 – 기스본의 전설

댓글 0 | 조회 84 | 12시간전
기스본(Gisborne)은 뉴질랜드 북섬의 동쪽 끝에 위치한 도시로, “태양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땅”으로 알려져 있다.이곳은 마오리 부족인 Ngati Porou… 더보기

매력만점의 은퇴부모 투자이민

댓글 0 | 조회 767 | 1일전
COVID-19 팬데믹으로 말미암아 탄생한 특별 영주권제도를 통하여 영주권을 받게 된 분들로부터 근래 들어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제가 코로나로 영주권… 더보기

호주 뉴질랜드 의대 합격의 분기점: 지금 점검해야 할 시기

댓글 0 | 조회 439 | 1일전
▲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 AI안녕하세요? 뉴질랜드, 호주 의치약대 유학, 입시 및 중고등학교 내신관리 전문 컨설턴트 크리스틴입니다. 현재 유학생… 더보기

연주 씨의 카드

댓글 0 | 조회 248 | 1일전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지적 장애를 가진 연주 씨는 부모와 함께예배에 한 번도 빠짐이 없는 아가씨입니다연주 씨네 집이 이사하여 심방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성탄절이 가… 더보기

2026년 통과된 고용관계법 개정안

댓글 0 | 조회 292 | 1일전
고용시장의 유연성을 증가시키고 피고용인들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는 고용분쟁 시스템 구조를 더 공정하게 만들고, 피고용인들의 부적절한 행동을 억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 더보기

‘취미’와 ‘문제’의 경계선

댓글 0 | 조회 127 | 1일전
- 갬블링 위험 신호 점검뉴질랜드에 거주하는 한인들에게 갬블링은 생각보다 가까운 여가 활동이다. 주말에 친구들과 스포츠 결과를 예측하거나 여행 중 카지노를 방문하… 더보기

개똥걱정 말똥걱정

댓글 0 | 조회 110 | 1일전
1898년 뉴욕에서 세계 최초의 국제 도시계획 회의가 열렸다. 하지만 전 세계의 전문가들이 모였음에도 답을 찾지 못했다. 산업이 발달하고 물동량이 늘어나자 말(馬… 더보기

6편 – MH370: 사라진 하늘

댓글 0 | 조회 108 | 1일전
“비행기는 사라졌지만, 그 안에 있던 ‘어떤 것’은… 여전히 살아 있다.”프롤로그 - 2014년 3월 8일, 새벽 1시 21분쿠알라룸푸르 관제탑.레이더 화면에서 … 더보기

오클랜드대 각 의료계열 최신 입시 정보 및 선발기준 (의대, 약대, 검안대, 영상…

댓글 0 | 조회 209 | 2일전
이번 칼럼에서는 오클랜드대 각 의료계열 최신 입시 정보에 대해 다뤄보고자 합니다. 아래는 2026년 오클랜드 의료계열 입시 기준 Dean’s Determinati… 더보기

병보다 무서운 간병비

댓글 0 | 조회 786 | 5일전
고려 말기의 명장인 이성계(李成桂)가 1392년 조선(朝鮮)을 건국한 이래 1910년 멸망할 때까지 518년 동안 조선은 총 27명의 왕을 배출했다. 조선 시대 … 더보기

오클랜드대 의료계열 입시 통계 총정리 (의대 약대 검안대 등)

댓글 0 | 조회 448 | 7일전
이번 칼럼에서는 최근 2년 (2025년, 2026년) 오클랜드대 의료계열 입시 통계를 요약해보고자 한다. 2026년 입시는 2025년 지원한 학생들을 뜻하며 20… 더보기

약 처방, 이제는 12개월분까지 처방 받을 수 있다

댓글 0 | 조회 990 | 9일전

올해부터 바뀌는 오클랜드대 의료계열 MMI 면접방식 (의대,약대,검안대 등)

댓글 0 | 조회 821 | 2026.03.12
의료계열 (메디컬)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최신 정보’를 알고 정확하게 준비를 하는것이다. 필자는 매년 면접관과 입학사정관을 만나며 최신정보를 수… 더보기

피아노의 영혼

댓글 0 | 조회 250 | 2026.03.11
▲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 AI1994년 뉴질랜드 이민을 준비하면서 마침 딸의 권고로 뉴질랜드 영화 ‘피아노(The Piano)’를 감상하였다. … 더보기

인간의 본질적 문제

댓글 0 | 조회 209 | 2026.03.11
저는 불교의 윤회설을 문자 그대로 믿지 않습니다. 윤회할 주체인 “나”라는 게 일단 본질적 의미에 존재하지 않으며, “나”라는, 인간의 뇌가 만들어내는 인식이 죽… 더보기

히말라야의 그림자 빅풋과 예티는 존재하는가

댓글 0 | 조회 173 | 2026.03.11
어느 겨울밤, 히말라야의 깊은 산속에서 바람이 눈 위를 스쳐 지나간다. 그때 누군가 발자국을 발견한다. 사람의 것보다 훨씬 크고, 그러나 분명 두 발로 걸어간 흔… 더보기

나만의 등불 밝혀 내 마음 찾는 여정

댓글 0 | 조회 145 | 2026.03.11
강진 무위사의 ‘보름달 명상 템플스테이’어둠이 존재함으로 우리는 비로소 빛을 만난다. 추석 보름을 앞두고 차오르던 달빛도 구름에 모습을 감춘 날, 가로등조차 없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