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겨울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천미란
성태용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조성현
전정훈
Mystery
커넥터
Roy Kim
차자명
권레오
독자기고
새움터
김준
박기태
수선재
김도형
마이클 킴

아버지의 겨울

0 개 1,618 오소영

a7a37213e822d253fa38847935c251e2_1537863680_4114.jpg
 

친정집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살던 시절이었다. 어느날 아버지의 부름을 받았다. 어머니가 병이 나셨나? 자주 있는 일이 아니어서 무슨 일인지 약간의 긴장을 하면서 달려갔다.

 

함께 살던 아들들 가족 분가시키고 두분만 오롯이 남아 사는 헐헐한 집이었다. 어머니가 역시 안 보였다. 그럴리 없는 일이지만 혹시 부부 다툼이라도 있었던걸까? 아버지의 표정부터 살폈다. 의아하게 바라보는 나를 대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그런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네 어머니는 장에 가셨다. 이리 좀 들어와 봐!”

장난끼가 보이는 눈빛으로 한발 먼저 들어가시는 아버지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장농서랍 깊은 곳에 손을 넣어 무엇인가를 한참 찾는 아버지. 긴장이 풀리고 맥이 빠지려는 찰나 아버지의 손에는 빳빳한 고액지폐 몇장이 들려 있었다. 비상금을 털어 딸에게 용돈을 주시려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잠시 설레었다.

 

“이 돈 가지고 가서 왜 그거있지...”그게뭔지 한참을 주춤거린후 생각난듯이“여자들 들고다니는 빽... 핸 드 백...그거 하나 사다주렴... 아무도 모르게...비밀이다..”

 

눈이 동그랗게 놀래서 바라보는 딸을 등떠밀어 내쫓듯 돌려세웠다.“네 어머니 선물이니까 알아서 잘 골라봐”

 

의구심 가득한 딸을 안심시켜야하는 아버지의 구차스러운 변명섞인 부탁이었다.

 

그럼 그렇지. 마누라 바보로 칭해도 좋을 아버지. 지금으로 말하자면 깜짝 이벤트를 하시겠다는 뜻이었다. 딸의 눈치를 알아차린 아버지께서 민망한듯 얼른 얼굴을 돌렸다.

 

그 날 어머니가 한번도 손에 들어본 적 없는 고급 핸드백을 당당하게 사 들고 왔음은 물론이다. 어떤 방법으로 이벤트를 했는지는 두분만의 비밀로 물어보지 못했다.

 

어렸을 적엔 몰랐었는데 결혼해서 살다보니까 아버지는 대단한 애처가였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늘상 마누라 덕에 산다고 어머니를 추켜세웠다.

 

아래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지대높은 집이었다. 외출에서 돌아오는 어머니의 모습이 골목에 보이면 아버지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저기봐라 호박같이 둥글둥글한 네 엄마가 오시잖니 골목이 화안하다”아버지가 어머니를 호칭하는 호박같이 둥글다는 표현은 복있는 마누라란 뜻이었다.

 

당신은 복 붙은데가 없는 인상이지만 엄마 얼굴엔 잔뜩 복이 붙어있다고 은근히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오랑조랑 육남매 건강하게 잘 키우고 따뜻한 가정 일구는게 전부 아내의 덕이라고 공을 돌리는 아버지였다. 그럼에도 아버지 사업이 잘 풀리던 호시절 어머니가 늘 하는 불만은 있었다.

 

모든 여자들이 그렇듯이 돈만 갖다주지 말고 뭔가를 직접 사서 들고 오기를 많이 원했던 어머니였다. 바쁘다는 핑계였지만 아버지는 그게 안되어서 칭찬을 못 받았다. 뭐라고 군말 안할테니 맘대로 사라는 소신이었다.

 

내가 알기로 어머니는 그 소원을 풀지 못했다. 6.25전쟁이 휩쓸고 간 몰락과 잡아둘 수 없는 세월은 저만치 흘러가버렸다. 이젠 그런걸 탐할 나이도 지났다고 접어둔 모양이었다. 얼마나 긴 세월을 가슴에 품고 살아오셨을까? 역시나 아버지의 아내사랑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어느 여름날 두 분이 나드리를 간다고 나섰다. 얌전하게 푸새손질한 눈이 부시게 새하얀 모시옷을 입은 아버지. 자랑스럽게 남편을 앞세우고 뒤따르는 어머니의 손에 예의 그 핸드백이 들려 있었다.

 

“우와... 핸드백 멋지다. 언제 샀어요?”

 

모르는척 호들갑을 떠는 딸에게 이번에는 어머니가 민망해 했다. 소녀처럼 살짝 볼이 달아오른 어머니. 비둘기 한쌍처럼 길을 나서던 두 분. 지금도 그 화사한 그림이 지워지지가 않는다.

 

‘우래옥’에 가서 냉면 먹고 남산에 올라가 놀다 왔다며 스냅사진을 내밀던 어머니의 행복한 모습. 겨울인생이 참으로 따뜻했던 부부였다.

 

이지적으로 냉정한 인상이었지만 인정많고 너그러운 아버지는 우스갯 소리도 잘 해서 식구들을 자주 웃겼다. 누군가 밥에서 돌을 씹었다고 투덜대면 그런것 삼켜둬야 무거워서 바람에 날라가지 않는다고 웃음으로 달래주었다.

 

“얘들아 나 지금 뒷간(화장실)에 가고싶다 근데 추워서 나가기가 싫거든. 내대신 갈사람...?”

 

식구들끼리 둘러앉아 놀던 긴 겨울밤. 갑자기 아버지가 툭 내뱉은 한마디 말에 어이가 없어 웃음천국을 만든다.

 

꼬맹이 막내동생만이 무슨 영문이지를 몰라 아버지를 바라본다. 그게 또 웃겨서 웃고... 항상 웃음 꽃 피는 봄날같이 따뜻한 가정. 다복한 집안이라고 이웃들이 부러워 했다.

 

그렇다고 부부싸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직선적인 아버지가 어머니의 심기를 먼저 건드려 시작되는 언쟁이었다.

 

평생 울궈먹는 어머니의 한풀이가 흘러나오기 시작이다. 어리디 어린 나이에 이 집에 시집와서 모진 시집살이에 어린 시동생이 어쩌고 저쩌고...이 때부터 아버지는 말을 잃은 벙어리가 되고 천천히 돌아간 몸은 어느새 완전히 뒤를 보고있다. 혼자서 맥이 빠진 어머니가 조용해지면 그 때 바로앉아 한 말씀 하신다.

 

“이제 다 끝났수? 속이 시원하겠네... 얘들아 네 엄마 냉수 한그릇 떠다드려라!”

 

혹 취기라도 있는 날이면 발소리도 안들리게 방으로 직행을 했다. 아버지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밤이 그런때 였다.

 

평범한 집안의 자손이었지만 참으로 반듯한 인품으로 사셨던 아버지.

가끔씩 친정에서 자고 오는 밤이 있다. 추운 겨울 비워 두었던 방이 혹시라도 추울까봐 어둠속을 들어와 봐주는 사람도 아버지였다. 바람들까봐 이불깃을 올려주고 벽에 걸린 옷가지들까지 내려 더 눌러 덮어주고 조용히 나가시는 자상한 아버지.

 

철이 들어서일까? 아버지가 방을 나가고나면 왠지 그렇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들만 내세우는 어머니보다 언제나 칭찬으로 대해주는 자상한 아버지가 더욱 정이 깊은 딸이었다.

 

요즘은 황혼 이혼이니 졸혼이니 해서 나이든 부부들이 갈라서기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예전에야 여자들이 무조건 참고 살아왔지만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남자들이 살기 힘든 세상이 된 것 아닐까? 동등한 고학력. 고능력 시대이니 위아래가 있을 수 없나보다.

 

대등한 입장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간다는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주변에서 늙어가는 남자들의 삶을 보면 안타깝다. 세태파악을 못하고 아직도 옛날 남자를 고집하는 사람들. 그들의 겨울은 늘상 외롭고 춥기 마련이다.

 

아내사랑에 부족함이 없었던 아버지의 겨울은 춥지않았다. 늘 포근하고 따뜻했다. 그래서일까? 아버지의 아들들도 한결같이 애처가들이어서 가정이 원만하다. 그들 인생에도 꽃샘추위가 있었을것이다. 폭풍우인들 왜 없었을까?

 

모든 시련을 잘 견뎌내고 맞은 겨울인생들. 아버지의 겨울처럼 언제까지나 그렇게 따뜻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11 Great Walks 600여km, 풍광을 카메라에 담다

댓글 0 | 조회 149 | 1시간전
1993년, 낯선 땅 뉴질랜드(New Zealand)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나는 이 나라의 자연이 내 삶 깊숙이 스며들게 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당시 환경… 더보기

추파카브라 전설

댓글 0 | 조회 52 | 2시간전
— 공포와 현실 사이, 인간이 만들어낸 괴물의 이야기1990년대 중반, 푸에르토리코의 한 농촌 마을에서 시작된 이상한 사건이 있었다. 아침이 되자 농장의 염소와 … 더보기

뜰안의 민들레 꽃처럼 . . .

댓글 0 | 조회 79 | 3시간전
달게 잘 잤는데도 깨어나면 기분이 깔끔하지가 않다. 나만 그런가해서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거의가 다 비슷했다.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인가?어쨌든 또 하… 더보기

마지막 퍼팅의 압박 – 중요한 순간에 집중하는 법

댓글 0 | 조회 88 | 3시간전
골프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라운드 내내 아무리 좋은 샷을 해도, 마지막 퍼팅 하나로 모든 결과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1미터, 아니 50cm 퍼… 더보기

내가 세상을 안다고 생각할 때

댓글 0 | 조회 68 | 3시간전
시인 문정희내가 세상을 안다고 생각할 때얼마나 모르고 있는지그때 나는 별을 바라본다.별은 그저 멀리서 꿈틀거리는 벌레이거나아무 의도도 없이 나를 가로막는 돌처럼나… 더보기

뉴질랜드 이민 삶 44년을 회고하며

댓글 0 | 조회 373 | 3시간전
1982년, 키위 구두약의 나라 뉴질랜드에 첫발을 내딛다내 글의 변(辨): 나의 한계를 솔직하게 고백하며 이 글은 44년 뉴질랜드 이민사의 흔적 단면을 기록한 것… 더보기

뉴질랜드 입법부&행정부와 사법부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

댓글 0 | 조회 392 | 8시간전
예전에 한국의 계엄령 관련 칼럼을 다루면서, 뉴질랜드는 완전한 삼권분립이 되지 않는다는 주제도 잠깐 다룬 적이 있습니다. 뉴질랜드는 일단 3년마다의 선거를 통해 … 더보기

궁극적으로 괴로움을 없애는 유일한 길

댓글 0 | 조회 240 | 8시간전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비 오는 조계사를 바라본다. 시내를 오가다 보면 불교신자든 아니든 한 번쯤 들르게 되는 활기를 가진 절이다. 한동안은 절 마당… 더보기

25. 마우이와 태양을 붙잡은 산 – 기스본의 전설

댓글 0 | 조회 82 | 9시간전
기스본(Gisborne)은 뉴질랜드 북섬의 동쪽 끝에 위치한 도시로, “태양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땅”으로 알려져 있다.이곳은 마오리 부족인 Ngati Porou… 더보기

매력만점의 은퇴부모 투자이민

댓글 0 | 조회 756 | 1일전
COVID-19 팬데믹으로 말미암아 탄생한 특별 영주권제도를 통하여 영주권을 받게 된 분들로부터 근래 들어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제가 코로나로 영주권… 더보기

호주 뉴질랜드 의대 합격의 분기점: 지금 점검해야 할 시기

댓글 0 | 조회 428 | 1일전
▲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 AI안녕하세요? 뉴질랜드, 호주 의치약대 유학, 입시 및 중고등학교 내신관리 전문 컨설턴트 크리스틴입니다. 현재 유학생… 더보기

연주 씨의 카드

댓글 0 | 조회 245 | 1일전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지적 장애를 가진 연주 씨는 부모와 함께예배에 한 번도 빠짐이 없는 아가씨입니다연주 씨네 집이 이사하여 심방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성탄절이 가… 더보기

2026년 통과된 고용관계법 개정안

댓글 0 | 조회 289 | 1일전
고용시장의 유연성을 증가시키고 피고용인들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는 고용분쟁 시스템 구조를 더 공정하게 만들고, 피고용인들의 부적절한 행동을 억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 더보기

‘취미’와 ‘문제’의 경계선

댓글 0 | 조회 124 | 1일전
- 갬블링 위험 신호 점검뉴질랜드에 거주하는 한인들에게 갬블링은 생각보다 가까운 여가 활동이다. 주말에 친구들과 스포츠 결과를 예측하거나 여행 중 카지노를 방문하… 더보기

개똥걱정 말똥걱정

댓글 0 | 조회 109 | 1일전
1898년 뉴욕에서 세계 최초의 국제 도시계획 회의가 열렸다. 하지만 전 세계의 전문가들이 모였음에도 답을 찾지 못했다. 산업이 발달하고 물동량이 늘어나자 말(馬… 더보기

6편 – MH370: 사라진 하늘

댓글 0 | 조회 106 | 1일전
“비행기는 사라졌지만, 그 안에 있던 ‘어떤 것’은… 여전히 살아 있다.”프롤로그 - 2014년 3월 8일, 새벽 1시 21분쿠알라룸푸르 관제탑.레이더 화면에서 … 더보기

오클랜드대 각 의료계열 최신 입시 정보 및 선발기준 (의대, 약대, 검안대, 영상…

댓글 0 | 조회 206 | 2일전
이번 칼럼에서는 오클랜드대 각 의료계열 최신 입시 정보에 대해 다뤄보고자 합니다. 아래는 2026년 오클랜드 의료계열 입시 기준 Dean’s Determinati… 더보기

병보다 무서운 간병비

댓글 0 | 조회 785 | 5일전
고려 말기의 명장인 이성계(李成桂)가 1392년 조선(朝鮮)을 건국한 이래 1910년 멸망할 때까지 518년 동안 조선은 총 27명의 왕을 배출했다. 조선 시대 … 더보기

오클랜드대 의료계열 입시 통계 총정리 (의대 약대 검안대 등)

댓글 0 | 조회 447 | 7일전
이번 칼럼에서는 최근 2년 (2025년, 2026년) 오클랜드대 의료계열 입시 통계를 요약해보고자 한다. 2026년 입시는 2025년 지원한 학생들을 뜻하며 20… 더보기

약 처방, 이제는 12개월분까지 처방 받을 수 있다

댓글 0 | 조회 989 | 9일전

올해부터 바뀌는 오클랜드대 의료계열 MMI 면접방식 (의대,약대,검안대 등)

댓글 0 | 조회 816 | 2026.03.12
의료계열 (메디컬)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최신 정보’를 알고 정확하게 준비를 하는것이다. 필자는 매년 면접관과 입학사정관을 만나며 최신정보를 수… 더보기

피아노의 영혼

댓글 0 | 조회 247 | 2026.03.11
▲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 AI1994년 뉴질랜드 이민을 준비하면서 마침 딸의 권고로 뉴질랜드 영화 ‘피아노(The Piano)’를 감상하였다. … 더보기

인간의 본질적 문제

댓글 0 | 조회 208 | 2026.03.11
저는 불교의 윤회설을 문자 그대로 믿지 않습니다. 윤회할 주체인 “나”라는 게 일단 본질적 의미에 존재하지 않으며, “나”라는, 인간의 뇌가 만들어내는 인식이 죽… 더보기

히말라야의 그림자 빅풋과 예티는 존재하는가

댓글 0 | 조회 171 | 2026.03.11
어느 겨울밤, 히말라야의 깊은 산속에서 바람이 눈 위를 스쳐 지나간다. 그때 누군가 발자국을 발견한다. 사람의 것보다 훨씬 크고, 그러나 분명 두 발로 걸어간 흔… 더보기

나만의 등불 밝혀 내 마음 찾는 여정

댓글 0 | 조회 144 | 2026.03.11
강진 무위사의 ‘보름달 명상 템플스테이’어둠이 존재함으로 우리는 비로소 빛을 만난다. 추석 보름을 앞두고 차오르던 달빛도 구름에 모습을 감춘 날, 가로등조차 없는… 더보기